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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99화 (99/650)

99화 리서치센터장

장근수 본부장은 간단하게 한진영과 김정대에게 인사하고 컴퓨터를 요리조리 살폈다.

그의 눈에는 대단한 프로그램이 겨우 컴퓨터 한 대로 돌아간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듯했다.

“이게 그 대단한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컴퓨터인가?”

“여긴 또 웬일이야?”

“웬일은…… 내가 어디 못 올 곳 온 건가? 우리 큰 고객님께서 장사를 시작하셨으니 내가 필히 와봐야지. 그런데 우리 고객님. 투입된 자원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진짜 이 컴퓨터 하나로 모든 게 다 되는 겁니까?”

장근수는 너스레를 떨고는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어이쿠. 잘 돌아간다. 하나로도 잘 돌아가는구나. 이게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네. 거위야. 이봐 한 팀장.”

혼자 질문과 대답을 다 한 장근수는 고개를 들어 올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런 거 한 열 대만 놓으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수익도 열 배로 오를 거 같은데…….”

“네 수수료도 열 배로 오르고?”

“겸사겸사지. 겸사겸사.”

김정대의 기가 찬다는 듯한 말에 장근수는 너스레 떠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긴 후 한진영에게 말했다.

“이거 참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 한 팀장.”

“네.”

“정말 수수료율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아? 내가 본부장 권한으로 조금 낮춰줄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다. 수수료가 어디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다 우리 회사 내에서 돌고 도는 것 아닙니까?”

“역시 통이 커. 김 본부장아. 봐라. 이런 것 좀 보고 배워.”

장근수는 기분이 좋은지 한진영의 어깨에 손까지 둘렀다.

그렇게 한동안 한진영과 함께 기쁨을 누리던 장근수는 한진영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데…… 골치 아플 수도 있겠더라. 리서치센터장이 불만이 많은 눈치야.”

“불만?”

“그래. 불만…….”

장근수가 한진영의 어깨를 둘러맨 채 이야기했다.

“왜 안 그러겠어? 생각해봐. 자기를 배제한 채 진행되는 이 일이 기분이 좋겠어? 나 같아도 기분이 안 좋을 거야.”

“기분이 안 좋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김정대는 별것이 다 기분이 안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말속에 그도 리서치센터장의 서운함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

한진영은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슬슬 움직이겠지.’

한진영은 리서치센터장의 기분을 예상하였다.

이런 그들의 반응은 모두 한진영의 계산 속에 담겨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리서치센터장. 그 양반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 이야기로 잘 풀어봐.”

장근수가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처음 만남은 이야기로 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것도 아니라 주식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리서치센터의 의견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을 거라는 것은 장 본부장과 김 본부장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장 본부장은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사람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 팀장. 내가 도와줄까?”

왜 불만을 가지냐는 듯한 말을 건넨 김정대도 걱정은 되었던지 한진영을 향해 도와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아닙니다.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라고 하니 제가 이야기를 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양반이…….”

김정대는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을 꺼냈다가 잠시 주춤거렸다.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를 오히려 안심시켰다.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잘할 수 있어?”

“같은 식구인데 제가 충분히 설명해 드린다면 이해하시겠죠.”

“그래야 할 텐데…….”

김정대는 걱정 어린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김정대가 어떤 의미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리서치센터장인 홍지란 센터장.

그는 외골수에 가까운 성격이었다.

게다가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신성증권보다 높은 증권사에서 넘어오며 자기의 커리어를 넘볼만한 사람이 신성증권에는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신성증권의 직원들은 모두 자기 아래에 있으며, 자기의 말을 따라 전략을 짜는 것만이 신성증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매번 이야기했었다.

그런 사람이 한진영이라는 핏덩이에 불과한 직원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김정대는 벌써 걱정되는 눈치였다.

한진영은 김정대의 눈빛을 보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사실 홍지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면 알고리즘 속의 여러 전략을 조언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다음 단계를 위해 일부러 그를 자극하기 위해 만든 전략이었다.

한진영은 홍지란이 기분이 좋지 않아 한다는 이야기에 일이 뜻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

한진영이 진행한 프로그램에 대한 성과는 FICC 본부를 넘어 신성증권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하루 5천만 원의 수익과 수수료 2천만 원이 모두 신성증권의 수익으로 잡혔다.

이런 실적은 팀 단위를 아득히 넘어가는 실적으로 웬만한 본부급에서도 보기 어려운 실적이었다.

“한 달에만 저희 팀 실적으로 10억이 잡히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테스트 단계인 것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그 규모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석현 대리는 보고를 하며 살짝 상기된 모습을 보였다.

한 달 동안 돌린 실적의 성장세 속에 김석현도 기분이 업 된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보고서를 훑어보며 말했다.

“나머지 10개의 종목은 어떻게 됐습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김석현이 마음을 다스리며 대답했다.

“현재 신뢰성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좋습니다. 최대한 빨리 진행해서 2차 테스트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한진영은 보고서를 덮고 자리에 있던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2차 테스트는 50여 개의 종목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국내 선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야지만 다음 단계로 무리 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힘이 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우리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단계라는 것 명심해 주십시오.”

팀원들은 한진영의 말에 모두 힘차게 대답했다.

팀원들의 얼굴은 처음 한진영과 만났을 때보다 많이 상한 상태였다.

얼굴에 피로감이 쌓여 있었으며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해 제대로 된 옷 상태를 보여주는 사람도 몇 없었다.

그만큼 지금의 작업은 고되고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개척자의 느낌으로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 내의 다른 직원들의 경외심과 기대로 피곤함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어서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만이 가슴 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번뜩이는 팀원들의 시선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곁에 앉아 있는 김준하와 박도하에게 지시했다.

“준하는 기존에 돌아가고 있는 프로그램 속의 알고리즘을 계속 모니터링 해.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상이 있다면 실시간으로 수정하는 것 잊지 말고…….”

“네. 제가 놓치지 않고 살필게요.”

“박 대리님은 프로그램의 안정성을 계속 유의 깊게 봐주세요. 지금이야 열 개지만 앞으로는 수십 개, 수백 개가 동시에 돌아가야 하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프로그램은 지금 계획보다 한 단계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것보다…… 서버 확충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박도하의 질문에 한진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IT 부서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처리 속도를 회사 서버가 어디까지 처리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테스트하는 중입니다. 우리로 인해 서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부서장님의 확답을 들었고, 경영본부의 지원도 약속을 받은 상황이니 우리는 믿고 진행하면 될 겁니다.”

“네. 그럼 그대로 믿고 달려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자기가 꿈꾸던 일을 회사의 지원 아래 진행할 수 있다는 것에 박도하 또한 신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해 머리에 새집을 지은 듯한 박도하였지만, 대답만큼은 시원시원했다.

짧은 프로젝트의 중간회의를 마친 TF팀의 팀원들은 하나둘씩 회의실을 나섰다.

한진영은 회의에서 팀원들에게 지시하지 못한 것들을 세심하게 지시하며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한진영 팀장님.”

회의실을 막 나선 한진영에게 여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네. 누구신가요?”

여직원은 한진영에게 꾸벅 인사하고 자기가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리서치센터의 박지은이라고 해요. 센터장님께서 한 팀장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한진영은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이 찾아온 것에 더는 이유를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후 들고 있던 서류를 조수아에게 건넸다.

그리고 서류를 자기 책상 위에 올려놓아 달라는 부탁을 한 후 박지은에게 말했다.

“앞장서시죠.”

박지은은 이유를 묻지 않는 한지영의 태도에 오히려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자기를 왜 찾느냐는 질문 하나쯤은 던질 줄 알았던 박지은이었다.

그런데 한진영은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에 박지은이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이자 한진영이 박지은을 앞서 나갔다.

박지은은 자기를 지나쳐가는 한진영을 보고 급히 말했다.

“저기…… 팀장님.”

“네?”

한진영이 걷던 것을 멈추고 박지은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박지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센터장님께서…… 기분이…….”

“알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가볍게 대답하고 걱정을 하는 듯한 박지은을 안심시켰다.

“박지은 씨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지은 씨는 이제 겨우 주니어 아니십니까?”

“네? 네. 맞아요.”

“아직 수련 과정에 속하는 주니어 신분에 말을 전하는 사람으로 저를 찾아왔는데 이상한 이야기를 들어서는 안 되겠죠. 그러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한진영이 안심을 시켰는데도 아직도 걱정은 모두 사라지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박지은을 향해 엷게 웃어 보이고는 리서치센터를 향해 앞서 걸어 나갔다.

한진영은 박지은의 반응을 보고 홍 센터장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화가 잔뜩 나 있나 보군.’

이맘때쯤에 진행되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리서치센터의 실수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를 주체하지 못하던 홍 센터장이 자기의 화를 쏘아낼 대상을 찾고 있다는 것도 한진영은 지난 시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박지은은 이런 사실을 한진영이 모를 것으로 생각하여 주의를 주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화살 세례 속에 괜히 한진영을 데리고 갔다는 것만으로 자기도 함께 화살을 맞을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박지은의 생각을 모두 읽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리서치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서치센터가 자리한 층에 도착하자 한진영은 공기부터가 자기가 있던 FICC 본부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 이 새끼야.”

한진영은 센터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것만 같은 목소리에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서류뭉치들이 날아다니며 시끄러운 호통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너 이 새끼야. 너 나 물 먹이려고 작정했지? 이걸 보고서라고 써 왔어?”

한진영은 곁에 서서 자기를 데리고 온 박지은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이 두려운 듯이 제자리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 혼자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같이 가야죠.”

그러면 감사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던 박지은이었다.

그러나 감히 그러지 못했다.

지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었고 끝까지 지시받은 것을 완수해야 뒤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박지은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홍지란 센터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진영은 그런 박지은의 뒤를 빙글빙글 웃으며 따랐다.

“너는 뭐 하는 새끼야? 시니어 자리에 올라온 지 벌써 5년 차가 지났다면서 이런 보고서를 중간에서 체크하지도 못했어?”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어? 죄송하면 실수가 없어져?”

홍지란은 고개를 숙이고 연신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시니어의 머리를 보고서로 내리쳤다.

“이 밥버러지 같은 놈들아. 회사에서 너희에게 왜 월급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너 연봉이 얼마야?”

“저는…….”

“왜 말을 못 해? 네 연봉이 무슨 국가 기밀이라도 돼? 좋아. 네가 말하지 않는다고 내가 모를 것 같아?”

홍지란은 곁에 있는 비서에게 손가락질했다.

그러자 비서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종이에 글자를 써서 홍지란에게 건넸다.

홍지란은 비서가 건넨 종이 위의 숫자를 확인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어이구. 이런 버러지 같은 놈도 회사에서 연봉을 6천이나 줘? 이거 뭐 신성증권은 거의 자선단체나 마찬가지인 수준이잖아. 이러니 회사가 성장을 하지 못하지. 나 같으면 3천도 아까워서 못 줄 거야. 아니. 나였다면 애초에 이런 놈을 시니어 자리에 앉히지도 않았겠지. 네가 애널리스트가 맞아? 어디 가서 애널리스트라고 말하지도 마. 너 같은 놈은 저기 지점에 내려가서 사람들 등쳐먹는 수준이 딱 맞으니까. 내가 지금이라도 자리 알아봐 줄까?”

신나게 소리친 홍지란은 그래도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계속 씩씩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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