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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00화 (100/650)

100화 불을 붙였으니 불길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그렇게 한참을 화를 내던 홍지란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박지은을 확인하고 소리쳤다.

“뭐야?”

“저기…….”

“저기 뭐?”

잔뜩 주눅이 든 박지은을 향해 호통을 치려던 홍지란의 눈에 한진영이 들어왔다.

그는 빙글빙글 웃고 있는 한진영을 확인하고 한진영에게로 화의 방향을 바꾸었다.

“넌 뭐야?”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홍지란의 외침에 박지은은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한진영은 박지은과 달랐다.

여전히 웃는 얼굴을 거두지 않은 채 홍지란의 질문에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를 부르셨다고요?”

“너를 불러? 네가 뭔데?”

무슨 말인지 잠시 알아차리지 못하던 홍지란은 한진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박지은에게 자기가 시킨 것을 떠올렸다.

“아~ 네가 그 한 뭐 시기인가 그놈이구나?”

박지은은 홍지란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타 부서의 사람에게까지 이러는 홍지란의 모습이 창피했던 듯했다.

하지만 한진영은 이런 홍지란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계속 회사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앞으로 한진영이 할 일을 위해서도 이쯤에서 그가 신성증권에서 그만 나가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네. 제가 그 한 뭐 시기인가 하는 놈입니다.”

홍지란은 한진영의 대답을 듣고 한진영을 위아래로 훑었다.

지난 임원 회의에서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멀리 앉아 앞에 나가 발표를 하는 한진영의 모습을 보았을 뿐이었다.

이제 가까이 다가온 한진영을 홍지란은 자세히 살폈다.

“아직 새파랗게 어린놈이구나.”

홍지란의 말에 한진영은 빙글빙글 계속 웃기만 했다.

홍지란은 그런 한진영의 미소가 신경이 쓰였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물었다.

“왜 웃지? 내 말이 그렇게 우습나?”

한진영은 홍지란의 질문에 미소를 깊게 드리우고 대답했다.

“익히 명성이 자자하신 홍 센터장님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기분이 좋아 그렇습니다.”

잔뜩 찌푸려졌던 홍지란의 얼굴에 살짝 웃음기가 스쳐 지나갔다.

“아주 모르는 놈은 아니었구나.”

홍지란은 한진영에게 흥미가 생기는지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래. 나에 대한 어떤 명성을 들었다는 거냐?”

“홍 센터장님께서 지나오신 증권사에서 보여주셨던 탁월한 분석 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습니다. 날카로운 분석과 예측이 돋보이는 것들이었지요. 서부증권에 계셨을 때까지 보여주셨던 예측은 어두운 시장을 밝게 비추어주는 보름달과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부증권까지?”

홍지란은 자기를 칭찬하는 말속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말을 이상하게 하는군. 감명을 받았었다고 이야기하는 데다 서부증권 때까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말인가?”

“솔직히 지금은…….”

한진영은 아쉽다는 듯이 잠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대답했다.

“지금은 좀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아쉬운 게 사실이다? 이게 어디 와서 웃기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럼 지금의 나는 예전만 못하다는 거야?”

한진영이 찾아와 잠시 잦아들었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르는 모습의 홍지란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홍지란의 모습을 보면서도 주눅 드는 모습 하나 없이 대답했다.

“예전만 못하다는 정도로 이야기할 수준이 아니지요. 그보다 훨씬 못합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지요. 서부증권 이후의 행보를 보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실 텐데요. 설마 본인이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셔서 이러는 것은 아니시지요?”

“뭐라고?”

홍지란은 마치 집어 던질 것을 찾으려는 듯이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다.

이런 홍지란의 태도에도 한진영은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제가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센터장님의 분석이 서부증권 이후 계속 틀리지 않았습니까? 강우건설의 매각 건에서는 그게 정점에 달했고요. 어휴~ 강우건설만 생각하면…….”

“너 이 새끼.”

홍지란은 겨우 손에 잡히는 것을 찾았는지 한진영을 향해 연필꽂이를 집어 던졌다.

박지은은 연필꽂이가 자기에게 날아오기라도 한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막았다.

눈을 감은 박지은의 귀에 낯선 형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너…….”

박지은은 살그머니 눈을 뜨고 어떤 상황인지 확인했다.

보통은 연필꽂이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거나, 신음이 들려왔던 리서치센터였다.

그러나 오늘은 홍지란 센터장의 앓는 소리만이 고요한 리서치센터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너…….”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물건을 함부로 던지고 그러십니까? 제가 잡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너…….”

“상식이 없으셔서 그런가 본데, 이런 거 던지면 다칩니다.”

연필꽂이를 잡아낸 한진영은 가까이 있던 책상 위에 연필꽂이를 올려놓고 손을 털었다.

홍지란은 생각도 하지 못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에 당황한 듯이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한진영은 손 위에 이어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강우건설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시면 안 되죠. 그 한 건으로 인해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게 나 때문이라는 이야기냐?”

“그럼 아닌가요?”

한진영은 홍지란의 말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발뺌해도 자기는 다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의 한진영이었다.

“강우건설 건으로 부랴부랴 도망치듯이 해외로 도피 유학을 가셨던 걸로 아는데, 그런 건 숨긴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그건 나하고 상관이 없는 일이야.”

한진영은 홍지란의 말에 웃으며 조금 전 놓았던 연필꽂이 위에 손을 올려놨다.

“그런 말씀은 이런 걸 던지시기 전에 하셨어야지 설득력이 생기는 겁니다. 다음부터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 먼저 물건을 던지기 전에 잘 생각해보고 행동하도록 하십시오.”

홍지란은 한진영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린 듯이 제자리에 서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기만 했다.

한진영은 그런 홍지란을 향해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저희 프로젝트에 리서치센터를 참여시키지 않아 기분이 나쁘시지요?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홍 센터장님의 성적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안 이상 함께하자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못하는 게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시간이 지나 성적이 잘 나오게 된다면 그때 함께 하자는 요청을 하도록 할 테니…… 이번은 아쉽더라도 이해해주십시오.”

“뭐? 실적? 지금 네놈이 실적, 실적 노래를 부르는 거냐?”

“그게 현실이니까요. 억울하시면 실적으로 증명을 하시면 됩니다. 자신이 있으시다면요.”

도발적인 말에 자리에 있던 리서치센터 직원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한진영과 홍지란을 번갈아 바라봤다.

홍지란의 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홍지란이 두렵지 않다는 듯이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한진영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럼 더 나은 성적이 나오거든 그때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뵙도록 하지요.”

한진영이 홍지란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리자 홍지란은 급히 떠나려는 한진영의 뒤를 잡았다.

“잠깐!”

한진영은 걷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홍지란을 돌아봤다.

홍지란은 멈춰선 한진영을 향해 입을 뻐끔거렸다.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홍지란의 모습에 한진영이 안 들린다는 듯이 표정을 짓자 그제야 홍지란의 입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 학교 어디 나왔어?”

“허.”

한진영은 코웃음을 내뱉고는 시선을 돌려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고 대답했다.

“좋은 대학 나오는 것을 따지자면 여기 센터장님보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어째서 그런 사람들을 향해 아까처럼 소리를 치셨던 겁니까?”

한진영은 직원들에게서 홍지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 학교 나왔는지를 따지기보다 실력을 우선하지 않으셨습니까? 실력만큼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뀌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너무 아쉬울 테니 말입니다. 그럼 저는 이제 진짜로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한진영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리서치센터 밖으로 걸어 나갔다.

뒤에서는 알아듣기 힘든 괴성이 울려 퍼졌다.

한진영은 그런 괴성 소리를 들으며 낮게 읊조렸다.

“불을 붙였으니 불길이 일어나길 기다리면 되겠지.”

한진영은 분을 못 이겨 홍지란이 지금 진행하는 인수합병 건에 무리할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큰 손해를 볼 거라는 것도 예상했다.

그래야만 홍지란을 리서치센터에서 날려버릴 수 있으며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리서치센터장의 자리에 앉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괴성 소리가 마치 자기가 걷는 걸음 속의 배경음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즐기며 걸어갔다.

***

신성증권에서는 두 가지의 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한진영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퀀트매매에 관련된 것이었다.

한진영의 프로젝트는 회사에서 투입된 자원은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실패했을 때 받을 피해 또한 미미했다.

그저 회사의 많은 팀 중 하나의 자그마한 실수 정도로 치부해도 될 정도의 리스크였다.

그러나 돌려받을 이득은 투입된 자원을 까마득히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들려오는 매매성과에 프로젝트의 크기를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성토가 들려왔다.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 미미한 것도 문제를 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한진영이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주변에서 프로젝트에 회사가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니냐는 질타 섞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투입자원 대비 돌아오는 이득이 너무나 큰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회사에서 한진영의 프로젝트에 긴급자금을 투입했다.

겨우 컴퓨터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하겠는지 IT 부서와 논의하여 일사천리로 전용 서버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수시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알고리즘과 관련된 인원의 보충도 계속 이어졌다.

사내에 수학과와 통계학과 출신을 골라내 한진영의 팀에 배정하며 신입사원 채용 시에 박사급 인재들을 확충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그만큼 한진영의 프로젝트가 뛰어난 성과를 보이자 아낌없는 지원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었다.

한진영의 프로젝트와 함께 신성증권에서 주목받았던 프로젝트는 인수합병에 관련된 프로젝트였다.

우리나라 30대 그룹에 포함된 LZ그룹과 두선그룹 간의 사업부 빅딜로, LZ그룹의 자문역으로 신성증권이 참여하여 빅딜이 진행될 시에 받을 시너지와 내어줄 것에 대한 미래 등을 예측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빅딜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LZ그룹이 내어줄 건설기계 분야의 회사가 두선그룹에서 받을 화학회사에 비해 지나치게 크다는 관점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LZ그룹은 화학회사에 더해 무언가를 받기를 원했고, 두선그룹은 화학회사 이상을 줄 수 없다는 태도로 첨예하게 대립하며 두 그룹 간의 인수합병 프로젝트는 휴식기에 접어들고 말았다.

이렇게 두 프로젝트가 극명한 차이를 보이자 앞으로 홍지란이 보일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홍지란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이들은 홍지란이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TF팀의 한 팀장을 리서치센터의 홍 센터장이 불렀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리서치센터가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

회사 옥상에 마련되어 있는 흡연공간에서 신성증권의 직원들이 주변을 살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자기 주변에 리서치센터의 사람이 있지나 않나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한 팀장에게 그 센터장이 또 행패를 부렸다고 하던가요?”

“꼬장? 에이. 한 팀장에게는 찍소리도 못했다고 하던데?”

“진짜요? 그 센터장이 진짜 찍소리도 못했다고요? 휘유~ 들리는 소문에 그 사람 장난이 아니라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한 팀장에게는 찍소리도 못한 거죠?”

이미 홍지란에 대한 소문은 리서치센터를 넘어 외부에까지 퍼진 상태였다.

한번 지랄을 하기 시작하면 리서치센터의 직원들이 한 시간은 홍지란을 붙잡고 막아야 겨우 안정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물건을 던지는 것은 예사였으며, 인격적인 모독에 가까운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고 했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려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 다닐 정도로 그의 행동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는 했다.

그런 홍지란이 한 팀장을 향해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했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 직원은 소식을 전한 사람을 보고 다시 물었다.

“제가 듣기로는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FICC 본부에까지 센터 직원이 찾아와 한 팀장을 데리고 갔다던데…… 그런데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요?”

“말도 마. 리서치센터의 다른 직원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홍지란의 코를 납작 눌러줬다고 하더라.”

“누가요?”

“누구긴 누구야. 한진영이 그랬다는 거지. 이 사람 도대체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어디 갔다 온 거야?”

자기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지 않은 상대를 타박한 이는 필터 부분까지 타들어 가는 담배를 비벼 끄고 혀를 찼다.

“이제 또 시끄러워지겠어.”

“시끄러워진다고요?”

“그럼. 그 홍 센터장이 가만히 있겠어? 가뜩이나 일도 잘 풀리지 않아 심사가 불편할 텐데 말이야. 아마 처음 한진영이를 불렀을 때는 한진영이 진행하는 거에 자기를 끼워주지 않았다는 심통을 부리려 괜히 그런 거 같은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딴지를 걸려 할 것이야. 자기 직속 부하들이 있는 앞에서 망신을 줬으니까.”

“그럼 한 팀장이 피곤해지겠네요.”

“피곤해지겠지. 리서치센터장이 딴지를 걸기 시작하면…… 잘 되던 일도 엎어지기 마련인데 작정하고 덤벼드는 것은 어떻게 되겠어?”

“설마 엎겠다고 노골적으로 나서기야 하겠어요? 그래도 회사에서 주목을 받는 사업인데…….”

“홍 센터장이 어떤 사람인데.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야. 한 팀장이 똥 밟은 거지. 그런 사람을 건드렸으니…….”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걱정이 되는 듯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은 신성증권의 옥상에서 한진영의 미래를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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