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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02화 (102/650)

101화 중재해주겠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미래가 현실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딱!

김정대가 들고 온 서류철을 한진영의 책상 위에 집어 던졌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한진영은 서류철을 집어 던지고는 씩씩대는 김정대를 올려다봤다.

김정대는 한참 동안을 서서 화를 식힌 후에 한진영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리서치센터에서 난리다.”

김정대는 분이 풀리지 않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프로그램을 적용할 때 왜 자기네들의 조언을 듣지 않냐고 아주 난리야.”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뭐라고 하긴…… 아직 테스트 중이라고 했지.”

김정대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조수아를 향해 손짓했다.

이야기 좀 나누게 의자에서 일어나라는 손짓이었다.

그렇게 조수아의 의자를 빼앗아 한진영의 곁에 옮겨 앉은 김정대는 임원 회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진영에게 해주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을 짤 때 자기네들의 분석이 들어가야 정확하다는 거야. 내가 분명히 수리적인 접근을 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분석은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래도 안 된다는 거야. 지금이야 쓰이지 않아도 문제가 없지만, 언젠가는 자기네들 분석이 쓰이게 될 텐데 그제야 자기들이 합류하면 흐름을 따라잡지 못해 어려우니 지금이라도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프로젝트에 합류하고 싶다는 건가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런 뜻으로 한 말이겠지. 우리 잘나가니까 한 발 걸쳐 보려는 수작 아니겠어?”

“흐음…….”

이미 예상했던 이야기지만 한진영은 모르는 척 짐짓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마음이 심란해져 가는 것을 확인하고 같이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렇게 되면 리서치센터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야 받지 않을 수가 없어. 야. 심지어 종목 선정부터 종목에 들어가는 알고리즘 설계까지 다 자기네들의 관리하에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더라. 아니 무슨 곁다리로 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네 밑에서 일하라고 하는 건지…… 염치가 없어도 어떻게 그렇게 없나 몰라.”

“누가 그럽니까?”

“누가 그러기는 그 미친 홍 센터장이 그러는 거지. 그 양반 왜 그렇게 남의 잿밥에 관심을 가지는 건지 모르겠다.”

김정대는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고는 곤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거 좀 귀찮아질 수도 있을 거 같아.”

“피할 수 없을 것 같나요?”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피하기 어려울지도 몰라.”

“작정하고 덤비나 보네요.”

“맞아. 작정하고 덤비는 것 같아. 어떻게든 우리 프로젝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게 눈에 뻔히 보이더라. 자기네들께 잘 안되니까 그러나 봐. 아~ 죽겠다. 죽겠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

한진영이 답답해하는 김정대에게서 시선을 돌려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달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예비심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내일이던가요?”

“어?”

김정대는 갑작스러운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도 시선을 돌려 김정대를 바라보고 다시 물었다.

“두선화학에 대한 예비심사 결과가 나오는 날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내일 나오는 거는 맞는데……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아? 그건 웬만한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인데…….”

“들은 기억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내일이군요.”

한진영이 어떻게 양 그룹 간의 물밑 협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예비심사 날짜를 아는 것인지 김정대는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한진영의 대답대로 어딘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 아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시절 듣고 경험했던 사실이 있었기에 아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날짜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도 있었다.

바로 그날 홍 센터장이 사고를 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예비심사 결과가 나오는 날 직원을 구타했던 사실이 폭로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었다.

이로 인해 홍 센터장은 그렇게 나오고 싶어 하던 뉴스에 얼굴을 내비치기도 했으며 여론에 의해 뭇매를 얻어맞기도 했다.

신성증권은 국민들을 향해 사죄를 했지만 홍 센터장은 모습을 숨기고는 끝끝내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기에 한진영은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바로 그날이 다가왔음을 확인했다.

“제가 내일 사장님을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사장님을? 홍 팀장이 아니라?”

딴지를 거는 것은 홍 팀장이었다.

그런데 남 사장을 만나겠다는 한진영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든 김정대였다.

“한 팀장. 홍 센터장은 외압에 굴복하는 스타일이 아니야. 뭐…… 표현이 이상하기는 한데 어쨌든 그래. 남 사장님을 이용해서 위에서 누르는 건 좋은 판단이 아니야. 차라리 홍 센터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김정대는 허심탄회하게 홍지란과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하려다 말을 멈췄다.

지난 리서치센터에서의 사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성이 오가고 물건이 날아다녔다는데 여기서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든 김정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한 번은 부딪혀야 하는 일입니다.”

“한 번은 부딪혀야 한다고?”

“네. 홍 센터장님의 성격상 지금 잘 풀어본다고 해도 언젠가는 또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홍 센터장님이 쿨한 성격은 아니니까요.”

“뭐…… 꽁한 성격이기는 하지.”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동감했다.

지난 일에 대한 앙금을 품에 간직한 채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홍지란이라는 것을 김정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장님을 만나서 어떻게 할 건데?”

“그건 저에게 맡겨주시면 됩니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꿍꿍이가 궁금했다.

그러나 이런 궁금증도 내일이면 해결된다는 사실에 말없이 한진영이 하려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한진영이 무언가를 진행해서 나쁜 결과를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다음 날 한진영은 점심 식사를 마친 늦은 오후쯤에 남원석 사장이 있는 사장실로 향했다.

아침부터 언제 남 사장을 만나러 가는지 궁금했던 김정대는 드디어 떠나는 한진영의 모습에 일이 제발 잘 풀리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의 생각과 달리 회사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을 벌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한진영이 남원석 사장실에 도착하자 사장실 비서들은 급히 남원석에게 한진영이 온 것을 알리고 문을 열었다.

지금 남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한진영이라는 것을 비서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구. 어서 오세요.”

이번에도 찾아온 한진영을 일어나서 맞아준 남원석은 직접 한진영을 소파로 안내하며 말했다.

“오늘은 어쩐 일입니까? 말도 없이 말입니다. 뭐 한 팀장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니 이렇게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남원석이 급히 대기하고 있던 비서에게 차를 내올 것을 지시하려 하자 한진영이 그런 남원석을 말렸다.

“사장님. 차는 다른 곳에 가서 마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다른 곳이요?”

남원석은 한진영의 말에 비서에게 나가라고 손짓하고 궁금한 얼굴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저와 어디를 가려고 온 겁니까?”

“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오기도 했고요.”

“도움을 요청한다? 제가 한 팀장님을 도와줄 게 뭐가 있을까요?”

남원석은 한진영의 말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소파 끝에까지 빼 앉았다.

지금 신성증권에서 한창 잘나가는 한진영이 어떤 것을 도와달라고 할지 궁금해하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남원석을 향해 최대한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김 본부장님을 통해 이야기 들었습니다. 홍 센터장님께서 저에게 단단히 오해하고 계신 게 있다고요.”

남원석은 한진영의 모습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급히 손을 휘저었다.

“아닙니다. 오해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홍 센터장님은 함께 돕는 게 어떠냐는 뜻에서 제안하는 것이지요. 그런 거 아닙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러셨다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워낙 지난 일에 대한 추측성 이야기들이 회사에 떠돌아다니다 보니 홍 센터장님께서 기분이 상하신 게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장님을 찾아온 겁니다.”

“추측성…… 이야기요?”

남원석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진영에게 조용히 물었다.

“설마 그…… 센터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 하는 겁니까?”

“네. 그 이야기 말입니다.”

남원석은 잠시 이야기의 주인공을 앞에 앉혀놓고 꺼내기가 어렵다는 듯이 주저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한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센터에서 고성이 오가고 물건이 날아다녔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요?”

사실이 아니라는 한진영의 말에 남원석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였는데 아니라는 이야기에 안심하게 된 남원석이었다.

“네. 잠시 화를 참지 못해 홍 센터장님이 화를 내기는 했지만 저는 소리를 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화가나 연필꽂이를 집어 던지기는 하셨지만, 얼굴로 날아와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진영의 말은 교묘했다.

고성이 오간 것은 거짓이지만 홍지란이 소리를 친 것은 사실이며, 물건이 날아다니지는 않았지만 홍지란이 물건을 던진 것은 사실이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모두 홍지란의 일방적인 행위들이었다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이상함을 느끼기 전에 한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이야기가 돌아다니니 홍 센터장님과 만나는 것이 부담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남 사장님을 찾아왔습니다. 홍 센터장님이 제안한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자리에 사장님께서 동행해주시면 어떤가 해서 말입니다.”

“동행이요?”

“네. 사장님께서 함께 해주신다면 소문의 확산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동행하신다면…… 조금 더 분위기가……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한진영이 말을 더듬더듬하며 고개를 숙이자 남원석이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마치 홍 센터장을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에 자기가 들은 소문이 모두 헛소문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 남원석이었다.

소문에서는 오히려 한진영이 홍지란의 기를 죽이고 그에 분노한 홍지란이 난리를 피웠다는데, 눈앞의 한진영을 보아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상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원석은 불쌍함마저 느껴지는 한진영을 향해 큰소리를 쳤다.

“한 팀장님. 그런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불러서 잘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원석은 당장에라도 홍 센터장을 호출하려는 듯이 스피커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한진영이 급히 남원석을 막아 세웠다.

“사장님. 잠시만요.”

한진영은 남원석을 바라보고 처량한 빛을 보이며 말했다.

“기왕이면…… 리서치센터로 함께 가시면 안 될까요?”

“리서치센터로요?”

“네. 거기에 함께 가서…….”

남원석은 잠시 한진영의 말뜻이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보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여달라 이거군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게 좋겠습니다. 여기로 불러올리기보단 말입니다.”

한진영은 남원석이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제 마지막 마무리를 위한 말을 은근히 건넸다.

“그리고 기왕이면 미리 이야기하지 말고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미리 짠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다 오해하니까요. 뭐 그게 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것도 좋겠네요.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남원석은 한진영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런 자리를 먼저 제안하는 한진영에게 호감이 더욱 쌓였다.

안 좋은 소문이 오가는 두 사람을 중재한다.

그리고 그런 중재 자리에 직접 모습을 나타내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지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건 한진영이 제안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이야기해야 할만한 행동이었다.

아무리 홍 센터장이 막 나간다고 하더라도 자기 앞에서 그럴 일은 없었기에 자기가 나선다면 소문을 잠재우는 건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소문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을 때 모회사는 물론이고 회사 내에서도 남 사장의 입지는 올라갈 게 분명했다.

남원석은 한진영의 말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가시죠.”

“네. 저도 지금 바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장님. 제 터무니없는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건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부탁하지 않아도 제가 나서야 했던 일입니다.”

한진영은 남원석의 말에 고개를 숙인 채 미소 지었다.

이제 리서치센터로 가는 일은 한진영이 의도한 일이 아니라 남원석이 의도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누가 물어보더라도 이렇게 대답할 게 분명했다.

‘내가 한 팀장과 홍 센터장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한 팀장을 데리고 리서치센터로 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이 홍 센터장을 정리하는 데 주요하게 움직일 거라 생각했다.

한진영은 가만히 남원석의 뒤를 따라 리서치센터로 향했다.

남원석이 움직이자 비서진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급히 남원석과 한진영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행동 속에서 미리 리서치센터에 연락하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사장실과 리서치센터간의 거리도 짧았고, 예정되어 있는 일정 속에 리서치센터 방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서진은 남원석과 한진영의 뒤를 조용히 따르기만 했다.

일행이 모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리서치센터에 도착하자 직원들은 남원석의 등장에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남원석은 그런 직원들을 지나 리서치센터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확실히 리서치센터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곳들과 분위기가 다르군요. 깊은 사색과 고민의 흔적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진영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리서치센터를 보고 사색과 고민을 이야기하는 남원석의 말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러나 남원석은 정말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리서치센터를 만족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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