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사업부로의 승격을 제안하겠다
FICC 본부 TF팀의 실적은 날이 갈수록 계속 쌓여만 갔다.
가만히 있어도 매일 5천만 원씩 한 달 10억의 수익이 쌓여가는 것에 사람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TF팀을 바라봤다.
외부에서 느끼기에 이보다 더 쉬운 돈벌이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직 시장에 뛰어든 이들도 없었고, 특히 국내시장의 경우에는 블루오션이라는 말조차도 모자랄 정도로 물 반 고기 반의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어설픈 패턴에도 먹을 수 있었으며, 엄청난 처리속도를 가진 컴퓨터와 증권거래소와 다이렉트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회선으로도 돈을 벌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눈감고 알고리즘을 짜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시장은 널널하기만 했다.
그래도 한진영은 무리하지 않았다.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사람들에게 아직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해 먹으려 했다.
괜한 호들갑과 당장 눈 앞에 펼쳐진 것을 먹겠다고 움직이다가 다른 이들에게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가 됐든 남들도 알게 될 테고, 그렇게 레드오션으로 변하며 여러 가지 규제가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해 먹고 싶어도 해 먹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때가 오기 전까지 혼자 해 먹기를 바랐다.
테스트는 순항을 계속 이어갔다.
하락장이든 상승장이든 상관하지 않은 채 꾸준히 돈을 벌어오는 프로그램에 신성증권의 직원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회사에서도 이런 모습에 크게 고무되어 인색하지 않은 성과급을 지급했다.
일반 팀원 급에는 천만 원의 성과급을 주었으며, 김준하와 김석현같이 중추적인 일을 수행한 직원들에게는 5천만 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한진영에 대한 대우도 잊지 않았다.
한진영에게는 3억의 성과급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 공로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 달 건너 한 달마다 들어오는 성과급에 같은 신성증권 직원들은 부러운 눈으로 FICC 본부의 TF팀을 바라봤다.
월급이 용돈이 되어버린 모습이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성취감은 돈으로도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신성증권의 직원들은 TF팀에 합류하는 것을 꿈에 그릴 정도로 TF팀의 위상은 신성증권 내에서도 특별하기만 했다.
약 두 달간의 테스트가 마무리된 후 공식적으로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신성증권에서 내세운 명칭은 자동투자전략프로그램으로 한진영의 TF팀도 투자전략팀으로 명칭을 바꾸게 됐다.
최종적으로 약 200여 개의 코스피 종목과 10여 개의 코스닥 종목 그리고 해외선물까지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약 50여 개의 코스피 종목을 지정하여 돌아가는 것으로 정식 운용의 시작을 알렸다.
테스트 때는 10여 개 종목에 50억을 투입하여 하루 5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었다.
그런 프로그램이 정식 운용을 하며 50여 개 종목에 200억을 투입하여 하루 2억의 수익을 올리도록 세팅되었다.
한 달 40억.
테스트 기간에 올린 수익만으로도 팀 단위의 수익을 넘어서는 것이었는데 정식 운용으로 넘어가며 이제는 팀으로 그냥 놔둘 수 없을 정도의 사이즈가 되고 말았다.
“어이구. 우리 투자전략팀장님 오셨습니까?”
장근수가 들어오는 한진영을 보고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한진영은 그런 장근수를 향해 인사했다.
“장 본부장님도 계셨네요?”
“그럼. 우리 투자전략팀장님 보고 싶어서 왔지. 어서 와.”
장근수는 마치 김정대의 사무실이 자기 사무실이라도 된 것처럼 옆자리를 내어줬다.
김정대는 고개를 흔들고 한진영에게 들어와 앉을 것을 권했다.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의 허락을 확인하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와 장근수 옆에 앉았다.
장근수는 옆에 앉은 한진영의 옆구리를 연신 찌르며 말했다.
“여기서 계속 사이즈를 키워갈 거지?”
한진영은 장근수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 운용이기는 하지만 이제 시작 단계니까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200개까지 늘릴 계획이에요.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선물시장이고요. 현물시장은 사실 그리 큰 메리트가 없어요. 사이즈가 종목이 많은 만큼 개개로 봤을 때는 선물시장만 못하니까요.”
“어이구. 이거 뭐 듣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이야기구먼 그래.”
진짜로 침이 나오는 것인지 입을 훔치는 장근수의 모습을 보고 김정대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넌 더럽게 남의 방 와서 왜 난리야?”
“아 미안. 나도 모르게 침이 나와서 흐흐흐. 이해해라. 너도 내 마음 알지?”
장근수가 천연덕스럽게 손을 들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김정대는 더러운 마음이 가신 것은 아니지만 장근수가 이러는 것이 이해되기도 했다.
“연말에 한 팀장에게 뭐 선물이라도 해. 너희 본부 가장 큰 고객 아니냐?”
“그럼. 우리 큰 고객님께 뭐라도 하는 거 잊지 않았어. 우리 딸내미가 조금만 더 컸으면 딱 사위 삼으면 좋을 텐데…….”
“네 딸 아직 초등학생 아니냐? 너 늦게 결혼해서 애도 늦게 봤잖아.”
“그러니까. 그게 이제 와서 아쉽단 말이지. 그때 내가 사귀던 그…… 누구냐?”
“희진이?”
“그래. 걔랑 결혼했으면 벌써 애가 20대 초반은 됐을 텐데…… 그랬으면 우리 한 과장님하고 짝지어주면 얼마나 좋아.”
장근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보다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런데 너는 왜 남의 전 여자친구 이름을 기억하고 있냐? 나도 기억이 안 나서 가물가물한데.”
김정대는 이런 장근수의 모습에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 대답했다.
“누가 소개해줬는지도 까먹은 거냐?”
김정대의 대답에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이 장근수가 크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맞다. 네가 소개해줬지?”
“그만 주접떨고 네 사무실로 가. 왜 남의 사무실에서 그러고 있는 건데?”
“그러지 마. 나도 나 나름대로 영업을 하는 거니까. 우리 고객님 보러 온 거야. 너 보러 온 게 아니라.”
“어휴. 저 화상.”
김정대는 더는 장근수를 내쫓을 수 없음을 깨닫고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어쩐 일이야?”
김정대는 장근수를 볼 때와 달리 단내가 느껴지는 듯한 눈빛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장근수만큼은 아니지만, 김정대도 한진영 덕을 톡톡히 보는 중이었다.
투자전략팀의 실적이 고스란히 FICC 본부의 실적으로 쌓여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정대도 장근수만큼이나 프로그램의 운용범위를 넓히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한진영은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장근수와 김정대를 번갈아 바라본 뒤 말했다.
“투자전략팀의 자리 이동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자리 이동?”
“자리가 좁나? 아~ 그래 좁겠다.”
장근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김정대는 그런 장근수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장 본부장. 자네는 좀 가만히 있어 봐.”
장근수를 제지한 김정대는 조금 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봐. 자리 이동이라니?”
“아무래도 사람이 더 늘어나야 하는데 지금 있는 곳에서는 사람을 더 늘리기 힘들어서요. 공간도 부족하고…… 앞으로는 리서치센터와 더욱 긴밀히 움직여야 하는데 이렇게 분리된 것도 아무래도 업무효율 측면에서 불편하기에 정식으로 이동을 요청하려고 왔습니다.”
“그럼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리서치센터하고 긴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리서치센터 근처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리서치센터 근처? 같은 층을 쓰겠다는 말이야?”
“네. 그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근수는 한진영의 말에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김정대를 돌아봤다.
장근수의 귀에는 명백히 한진영의 지금 말이 FICC 본부 품을 떠나겠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봐. 김 본부장. 괜찮겠어?”
장근수는 김정대가 불같이 화를 내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밑에 있는 직원이 품을 떠나겠다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대의 표정은 생각보다 좋았다.
오히려 이런 한진영의 선택이 언젠가는 올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도 있었다.
장근수는 그런 김정대의 표정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의 얼굴은 처음 사무실을 들어왔을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오늘 점심은 칼국수가 좋지 않겠냐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요청을 하는 표정이었다.
“뭐야? 두 사람 다 괜찮아?”
장근수는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모습에 오히려 두 사람을 대신해서 당황했다.
김정대는 그런 장근수를 슬쩍 돌아보고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임 팀장. 아니지. 지금은 센터장인가? 임시직이라도 센터장은 센터장이니까. 어쨌든…… 임 센터장과는 논의가 끝난 이야기인가? 자기가 혼자 쓰고 있는 층에 다른 팀이 온다는 걸 괜찮아할까?”
김정대는 질문을 던진 뒤 한진영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손을 들었다.
“됐어. 자네 표정을 보니까 알겠네. 두 사람 사이에서 이미 이야기가 끝났으니 나에게 말한 거겠지. 좋아.”
“좋아? 너. 지금 좋아라고 그랬어?”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장근수가 놀란 얼굴로 김정대에게 물었다.
김정대는 장근수의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한진영에게 말했다.
“공식적으로 팀을 사업부로 승격시키자는 제안을 넣도록 하지.”
“이봐. 김 본부장.”
장근수는 깜짝 놀란 얼굴로 김정대를 바라봤다.
“자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품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사업부로 승격이 된다면 FICC 본부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다는 소리였다.
이제 겨우 황금알을 낳기 시작하는 투자전략팀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낳는 알 수와 알의 크기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를 게 확실시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을 스스로 알아서 손을 놓으려 한다는 것인지 장근수는 알 수가 없었다.
김정대는 장근수를 돌아보고 말했다.
“장 본부장님은 가만히 계시지요. 장 본부장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니잖아. 어차피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간다고 해도 장 본부장님의 수수료에는 영향이 없을 테니까.”
“아니. 나는 내가 어떻게 될까 봐 그런 게 아니라…….”
장근수는 슬쩍 한진영을 돌아봤다.
아무리 지금 한진영으로 인해 큰 실적을 쌓고 있다지만, 한진영보다는 김정대와의 쌓은 인연이 더 깊었다.
장근수는 한진영이 곁에 있음을 알고도 김정대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야. 정대야. 너희 본부. 이제 겨우 승격되지 않았냐? 게다가…… 여기 한 팀장네 팀의 실적이 승격의 주요한 영향을 끼쳤고…… 그런데 그런 팀을 내보내는 것도 모자라 사업부로 승격하는 일을…… 네가 제안한다니? 너 제정신이야? 너 아침에 뭐 잘못 먹었니?”
“내가 제안하면 네가 회의 때 재청해라.”
“뭐? 내가 재청하라고? 너……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장근수는 한진영을 돌아봤다.
혹시 한진영이 뭔 이상한 것을 먹여 김정대가 이러지 않냐는 듯한 눈이었다.
장근수의 상식으로는 이럴 수가 없었다.
만약 한진영의 투자전략팀이 FICC 본부를 빠져나간다면 실적 면에서 엄청난 손해를 볼 게 불 보듯 뻔했다.
본부로 승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실적하락은 다시 사업부로의 격하도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문제였다.
한진영은 걱정이 가득한 장근수의 표정을 살핀 후 김정대를 향해 들고 온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손이 얹어져 있는 서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게 뭔가?”
“지난번에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그냥 이대로 약속을 지켜달란 말씀을 드리기에는 제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준비했습니다.”
“준비했다고?”
“네.”
한진영은 여전히 서류 위에 손을 얹어놓은 채 장근수를 올려다봤다.
장근수의 눈에도 한진영이 가지고 온 게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빛이 담겨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장근수를 가만히 쳐다보고 말했다.
“장 본부장님이 김 본부장님을 걱정하셔서 하신 말씀 저도 백번 공감합니다. 저희가 떨어져 나가면 FICC 본부에 큰 타격이 온다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저희가 나가더라도 FICC 본부에 타격을 받지 않고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장근수는 한진영의 손이 얹혀 있는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진영이 보여준 능력으로 봤을 때 서류에 쓰여 있는 것들이 예사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평소 한진영의 모습으로 보았을 때 투자전략팀의 황금알보다 서류에 있는 게 더 좋은 것일 수도 있었다.
장근수는 그게 무엇일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김정대는 그런 장근수와 달리 서류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한진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게 뭔가? 내가 분명 약속하지 않았나? 자네의 사업부 승격을 내가 적극 지지하겠다고.”
“네. 그 이야기를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한 겁니다.”
“이러면 내 성의가 빛을 잃어버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져 먹게 됐다고 생각하십시오.”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
“네. 저희 팀이 FICC 본부를 나서게 되는 타이밍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정도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저는 이걸 결코 본부에서 나가기 위해 써먹으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누가 먹어도 먹을 것을 나가는 타이밍에 김 본부장님에게 선물하는 것일 뿐입니다. 편하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슬쩍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한진영의 손이 서류에 올려진 채로 손가락이 까딱거렸다.
궁금하지 않냐는 한진영의 손에 김정대도 더는 성의 어쩌고 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장근수만큼은 아니지만, 김정대도 서류에 무엇이 쓰여있을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