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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07화 (107/650)

107화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앉히면 될 일이다

분기 실적 회의가 이제는 한진영의 투자전략팀의 사업부 승격에 관한 회의로 바뀌었다.

며칠에 걸쳐 열띤 논의를 거쳤고 여러 방안이 나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너무 빠르다는 쪽과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다는 쪽의 의견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사원에서 과장으로 단번에 올라선 지도 얼마 안 된 한진영이다.

그런데 이번엔 사업부 수장을 맡는 임원급으로의 승진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리를 건너뛴 것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무시하고 차장과 부장을 지나 임원의 자리에 앉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런 그들의 반대쪽에 있는 찬성파들은 이순신도 특수한 상황에서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는 것으로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순신 같은 경우에도 파격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승진에 승진 거듭하여 위기의 조선을 구했는데, 지금의 신성증권도 당시 조선만큼이나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때에 가능성이 있는 곳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면 다음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렇게 주장이 갈리는 두 곳이 모두 동의하는 것은 한 가지가 있었다.

“모두 한진영 팀장의 투자전략팀이 사상 초유의 성과를 낸 것은 동의하시죠?”

남원석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전략팀이 만들어낸 프로그램과 그동안의 성과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앞으로도 이런 실적을 올리는 곳이 다시 나타날 것 같지가 않았다.

“일궈낸 성과는 인정하는데 한 팀장의 승진 속도 때문에 그러는 것이죠?”

양쪽이 주장할 때도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남원석이 정리에 들어갔다.

자리에 있던 임원들은 남원석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남원석이 좋은 생각이 있다는 듯이 의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업부로의 승격과 한 팀장의 승진을 다르게 놓고 보는 것이죠. 지금 문제가 같이 놓고 봐서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니 나눠서…… 사업부 승격은 사업부 승격대로…… 한 팀장의 승진은 한 팀장의 승진대로…… 이렇게 나눠 생각하면 서로 이야기하기 편하지 않겠습니까?”

남원석이 손날로 케이크를 자르듯이 반으로 내리쳤다.

자리에 있던 이들은 남원석이 하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 가만히 자리에 앉아 남원석의 손만 바라보고 있을 때 남원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팀장 내 방으로 오라고 하세요.”

남원석은 비서에게 지시를 내리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는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죠.”

남원석이 자리를 떠나자 조금 전까지 날 선 토론을 벌였던 이들은 멍한 눈으로 남원석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남원석이 사장실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진영이 남원석의 사장실로 찾아왔다.

“어서 와요. 어서 와.”

언제나 그렇지만 찾아오는 한진영을 문 앞까지 나가 맞이해주는 남원석이었다.

그는 한진영을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잡고 마치 몇 년이나 못 본 것처럼 살갑게 굴었다.

“왜 자주 오지 않는 겁니까? 난 우리 한 팀장 얼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하하하. 어서 들어갑시다. 들어가서 이야기 나눠요.”

남원석이 한진영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자기도 자리에 앉으며 한진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한진영은 남원석의 시선에 얼굴을 슬며시 만지며 말했다.

“혹시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네. 묻었지요. 잘생김이 묻었습니다.”

한진영은 남원석의 낯부끄러운 농담을 듣고 멋쩍게 웃기만 했다.

남원석은 그렇게 한참을 한진영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한 팀장이 우리 회사를 위해 한 일을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아요. TF팀. 그러니까 지금은 투자전략팀이 이뤄낸 성과도 내가 제일 잘 알지요. 우리 실적보고서를 단숨에 바꿔놓았으니 내가 모를 수가 없지요. 그래서 매일매일 우리 한 팀장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내가 살아갑니다.”

한진영은 물끄러미 남원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남원석은 그런 한진영을 향해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그룹에서도 우리 한 팀장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라 우리 회장님도 눈여겨보신다고 하시고요. 저도 몇 번이나 직접 보고 했으니 아마 회장님도 한진영 씨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어쩌면 우리 한 팀장을 보고 싶어하실지도 모릅니다. 내가 기회를 봐서 회장님과 만날 자리를 잘 마련해볼 테니 기대하세요.”

한진영은 남원석이 회장까지 들먹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한진영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남원석이 얼굴에 금칠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다.

“한 팀장은 우리 회사의 보물과도 같습니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우리 그룹의 보물이 될 겁니다. 그건 제가 장담합니다. 한 팀장이야말로 발군의 실력을 갖춘 능력자니까요.”

남원석은 더는 올릴 수 없을 정도로 한진영을 높은 곳에 올리고는 천천히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입니다.”

“네.”

“흐음…… 한 팀장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는 한데…… 공교롭습니다. 너무 능력이 뛰어나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저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남원석은 한진영의 이런 말에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그럼 바로 이야기할게요. 한 팀장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 주변 요건과 발을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에이.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팀장이 사업부 부문장 자리에 오르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남원석은 말을 하고 한진영의 표정을 살폈다.

분명 들으면 기분 나빠할 만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남원석과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으면 기분이 상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해합니다.”

오히려 이해한다는 소리에 남원석이 깜짝 놀랐다.

“이해한다고요?”

“이렇게 신경 써주신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다른 회사였으면 이런 일은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겠죠. 아무리 실적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을 임원으로 올리는 곳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신성증권이기에 이것으로 고민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저를 위한 마음으로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제가 다 고맙군요.”

“사실 제가 사업부 부문장으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업부로 팀이 승격되더라도 사업부를 책임질 사람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원석은 한진영의 말에 감탄했다.

만약 자기가 한진영의 자리에 앉아있다면 이걸 이렇게 태연하게 받아들였을지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남원석도 서운했을 만한 일이었다.

어떤 사람을 가져다 놔도 서운한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처음부터 자기는 부문장에 앉을 생각이 없었다는 듯한 한진영의 태도에 남원석은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사장님?”

“네? 아. 네.”

한진영이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원석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안합니다.”

남원석은 한진영에게 사과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한 팀장이 부문장 자리를 욕심내지 않는다면 투자전략팀의 사업부 승격은 가능합니다.”

“좋네요.”

“그럼…… 정말로…….”

“사장님. 조금 전에 이야기대로 저는 부문장 자리에 욕심이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회의 자리에서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치기는 했지,만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될 줄 몰랐던 남원석이었다.

그는 안심한 표정으로 소파에 몸을 뉘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겠습니다. 투자전략사업부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김정대 본부장에게 증권거래소와의 다이렉트 라인을 요청했다고요?”

“네. 속도를 높이는데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어서요.”

“그것도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괜히 회사 쪽 라인을 한번 거쳐 갈 필요가 없지요. 그리고 서버확충도 요청했다고요?”

“지금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체계를 갖추어야 하니까요.”

“그것도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IT 부서에 공식으로 승인을 내릴 테니 그쪽과 이야기를 나눠 원하는 조건에 맞게 진행하셔도 됩니다.”

남원석은 중요한 이야기를 끝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몸에 힘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한진영에게는 자기가 사업부 부문장이 되는 것보다 지금의 이야기가 더 중요한 이야기들이었다.

남원석 사장은 한진영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이야기했다.

“위치도 리서치센터와 같은 층을 쓰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냥 물건만 치우고 쓰는 것은 보기가 좋지 않으니 인테리어를 다시 하도록 하지요.”

“괜찮습니다. 파티션만 몇 개 올리고 써도 됩니다.”

“아니요. 앞으로 우리 회사의 간판이 될 곳인데 그렇게 대충 자리를 마련해서는 안 되지요. 투자전략사업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회사 차원의 지원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니 원하는 게 있다면 바로 제게 이야기하세요. 그럼 다 이뤄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이런 것밖에 해주지 못해서 오히려 제가 미안하지요.”

남원석은 진심이 담긴 말투로 한진영에게 미안해했다.

이런 것들보다 사업부 부문장 자리가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얼추 남원석의 이야기가 끝이 나는 모습을 보이자 부문장 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럼 사장님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제가 사업부 부문장의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는 게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격이 맞지 않아서라는 것이지요?”

남원석은 소파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남원석은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격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규정상 사업부 급부터는 임원이 장으로 앉아야 하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원석은 마른침을 삼켰다.

괜찮다고는 이야기하지만 역시 한진영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더 많은 것을 해줬어야 하지 않느냐는 후회도 했다.

‘회사에서 차가 나온다는 이야기할 걸 그랬나? 법인카드 한도를 올려준다는 이야기를 내가 했던가? 해외 지사 설립 시에 지사장 자리를 약속한다고 해야 했는데 내가 그걸 왜 까먹었지?’

남원석은 아직 꺼낼 조건이 많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한진영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어차피 기대는 하지 않았고…… 그렇다면 내 말을 잘 들을만한 사람을 앉히면 될 일이지.’

한진영이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그럴만했기 때문이다.

괜히 자기가 부문장으로 앉겠다고 욕심을 계속 부리다가는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내릴 게 뻔했다.

부문장이 되더라도 견제가 계속 들어올 것이며, 이게 약점이 되어 일하려는 데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얻는 것을 더 많이 하는 쪽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부문장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으로 앉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럼 급이 맞는 사람을 제가 추천하는 것은 어떨까요?”

남원석은 바짝 긴장하던 얼굴이 잠시 그대로 굳어졌다.

그러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급이 맞는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를 부부문장으로 앉혀주십시오.”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요. 당연히 그렇게 하려고 했으니까요. 투자전략사업부의 팀장으로 한 팀장을 앉히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요. 한 팀장에게 부문장 자리가 힘들다 이거지 부부문장은…… 문제없어요. 그건 내가 보증하지요.”

남원석이 손바닥으로 가슴을 쳤다.

오히려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은 모습에 신난 남원석이었다.

한진영은 남원석과 사업부에 관련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후 사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바로 부문장 자리에 추천할 사람과 통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 진영아. 오랜만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최준호 지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점장님. 이번에 권역장으로의 승진이 예정되어 있으시다고요? 축하드립니다.”

-이게 다 네 덕분 아니겠냐? 네 덕분이 우리 시흥지점 실적이 아주 장난이 아니었어. 그리고 그 실적을 바탕으로 경기 남부 권역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게 됐고…… 다 네 덕택이다. 언제 시간 되냐? 내가 한턱 낼 테니까 얼굴이나 보자.

“네. 얼굴 봐야지요. 그럼 오늘은 어떻습니까?”

-오늘? 나야 괜찮은데…… 무슨 일 있어?

한진영은 이상해하는 최준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우선 전화로 먼저 말씀드릴게요. 권역장 말고 사업부 부문장 어떻습니까?”

-어? 사업부 부문장?

“네. 지점장님도 본사로 넘어오셔야죠. 그래서 제안하는 겁니다. 권역장보다는 부문장으로 본사에 복귀하시죠.”

전화기 너머에서는 가뿐 숨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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