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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08화 (108/650)

108화 밥값을 할 때가 왔다

한진영이 음식점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 이미 와 있던 최준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문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와락 한진영을 끌어안은 뒤 큰 소리로 한진영을 불렀다.

“진영아~”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이 반가워한 최준호는 한진영을 만나자 감동한 것처럼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날 안 잊었을 줄 알았다. 날 안 잊었을 줄 알았어.”

한진영은 감정이 복받쳐 올라오는 최준호의 등을 두드려줬다.

그렇게 한동안 한진영을 안고 있던 최준호는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의 이상한 시선을 받고 나서야 한진영을 품에서 놓아줬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종업원 앞에서 의자를 가리키고 말했다.

“흠. 흠. 그래. 앉아서 이야기하자.”

괜히 멋쩍게 옷을 정리한 최준호 지점장은 한진영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한 후 자기 자리로 가 앉았다.

한진영은 최준호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의자를 빼 앉았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한 최준호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아까 그 전화…….”

“네. 그럼 우선 식사가 나오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마무리할까요?”

최준호는 괜히 안달하는 모습으로 비칠까 봐 꾹 참고 있던 모습을 풀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야 나야 좋지. 그래서…… 나를 사업부 부문장으로? 그게 정말이야?”

“그럼요. 정말이죠. 어떠세요? 관심 있으세요?”

“관심뿐이냐? 가능하다면 정말로 하고 싶은 자리지.”

최준호는 물잔에 담겨 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물잔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다시 물을 가득 담은 뒤 말했다.

“권역장도 비록 임원급의 자리라지만 본사 임원과 외부 임원은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 아니냐? 게다가 사업부 부문장은…… 그야말로 회사의 중추나 마찬가지인 자리인데…… 그것도 네가 있는 투자전략사업부는 지금 한창 떠오르는 곳으로 유명하고. 그런데 내가 정말 부문장 맡아도 되는 거야?”

직접 한진영을 마주하고 앉아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최준호였다.

신성증권에 있으면서 권역장 자리까지 올라가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최준호였다.

그 이상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게다가 본사의 사업부 부문장 같은 자리는 자기와 인연이 없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자리가 잘 닦여져 자기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최준호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한진영은 몽롱한 표정의 최준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요. 저는 최 지점장님이라 믿고 제안드리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제안한 뒤 찾은 것도 아니고, 최 지점장님 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오직 최 지점장님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자리나 마찬가지니 꼭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정중함까지 느껴지는 한진영의 부탁에 최준호는 감동했다.

“사실…… 나는…… 네가 나를 잊은 줄 알았다.”

눈물이 살짝 비치는 최준호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냅킨을 빼 들고 눈을 찍어갔다.

“물론 나하고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들리는 이야기에 너는 본사에서 날개를 달고 높은 곳으로 오르고 있다고 하고…… 나야 이 바닥에서 힘을 잃어 고개가 점점 숙이는 늙은 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힘을 잃고 색을 잃었으니 앞으로 찬란하게 빛을 낼 너를 지켜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지점장님. 이걸로 감동하시면 어떡합니까?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산더미인데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는 살짝 눈물이 비치던 눈가를 닦아내고 냅킨을 내려뜨렸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웃었다.

“솔직히 나는 네가 최 과장하고 성우만 데리고 갔을 때 섭섭했다. 나야 뭐 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지 않잖아. 한번 물어라도 봐줬으면 어땠을까 조금 아쉬워하고 그랬어. 그런데 너는 잊지 않고 있었구나. 하긴 너는 의리가 있는 놈이니까. 나는 너 처음 보는 순간 의리파라는 거 한눈에 알아봤다.”

최준호는 마음을 다 다스렸는지 양손으로 탁자를 잡고 한진영을 향해 몸을 기울인 채 말했다.

“그래. 그럼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어떤 거냐?”

한진영은 이런 모습에 단번에 최준호를 선택한 것이었다.

자기가 아무런 실적을 보여주지 않았을 때부터 자기를 믿고 지지했던 사람이 바로 최준호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기가 능력을 뽐내자 그때부터는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한진영의 윗자리로 모시겠다고 제안한 것임에도 최준호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었다.

한진영의 위에 앉아 한진영과 의견을 다툴 생각은 꿈에도 꾸지 않고 있었다.

한진영은 최준호라면 자기 뜻대로 사업부를 움직이게 해줄 거라고 믿었다.

“앞에 서서 사업부를 이끌어주시면 됩니다. 방향은 제가 가리키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다. 걱정하지 마. 외부와 싸우는 역할은 내가 할 테니까 너는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라. 네 덕분에 본사로 화려하게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여한이 없어. 자 그럼 이제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축복하는 의미에서 한잔할까?”

최준호는 이야기를 마쳤는지 술병을 들어 올렸다.

둘은 음식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술부터 나눠 마셨다.

***

리서치센터가 홀로 사용하던 신성증권의 9층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느라 며칠 전부터 시끌벅적했다.

9층의 넓은 공간의 절반을 새롭게 탄생한 투자전략사업부가 사용하기 위한 공사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머지 공간에서 일하는 리서치센터의 직원들을 보며 신성증권 직원들은 불편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리서치센터의 직원들은 불평이 없었다.

한진영이 리서치센터의 임시 센터장인 임재홍에게 건넨 내용 때문이었다.

리서치센터의 직원들은 두선화학의 부실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놓고 따지느라 공사 같은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센터장님. 이게 진짜라면…… 전임 홍 센터장을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임재홍이 맡고 있던 화학 섹터의 후임으로 새롭게 팀장직을 맡은 정 팀장이 임재홍을 향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건 사기예요. 사기. 홍지란은 수처리사업에 대한 가치만 5천억이 넘게 책정했었어요. 그런데 실상은 돈 먹는 하마나 마찬가지였어요. 여기에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년 500억씩 적자를 보고 있으니…… 그것도 나중에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홍지란이 이 사람 혹시 두선그룹에서 돈 받아먹은 거 아니에요?”

정 팀장은 화가 난 얼굴로 임재홍이 들고 있던 서류를 손가락질했다.

“우리가 막아서 다행이지 이거 나중에 큰 문제 될 뻔했어요. 센터장님. 센터장님께서는 어떻게 이걸 찾아내신 거예요?”

“그러게. 어떻게 찾아낸 거지?”

정 팀장은 자기에게 두선화학의 수처리사업을 심도 있게 살펴보라고 지시를 내렸던 임재홍을 가만히 쳐다봤다.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이 대답한 임재홍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정 팀장. 나 좀 나갔다 올게.”

“센터장님.”

한창 이야기를 하던 임재홍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정 팀장이 급히 임재홍을 붙잡으려 했다.

두선화학 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직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재홍은 그런 정 팀장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문을 잡은 채 정 팀장을 돌아보고 말했다.

“조금 뒤에 돌아와서 처리 방법을 이야기해 줄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네? 조금 뒤에 알려주신다고요? 지금…….”

임재홍이 정 팀장의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곳으로 다가갔다.

공사업체가 분진이 날릴까 걱정하여 몇 겹으로 쳐놓은 비닐 사이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임재홍은 그 무리의 선두에 서 있는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한 팀장님. 아니. 한 부부문장님.”

한진영은 자기를 부르는 임재홍을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임 센터장님. 잘 지내셨죠? 지난번에 사장님을 뵈었을 때 그때 같이 만난 이후 찾아뵙지를 못했네요.”

“부부문장님. 저기…….”

“아참. 인사하세요. 이번에 우리 사업부에 부문장님으로 새롭게 오실 최준호 시흥지점 지점장님입니다.”

한진영의 소개에 임재홍은 최준호와 손을 잡고 인사했다.

최준호가 부문장으로 오더라도 실권이 없는 부문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든 결정은 한진영이 하게 될 것이며, 앞으로도 자기와 한진영과의 관계가 리서치센터와 투자전략사업부와 관계가 될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한진영이 나서서 소개하니 임재홍으로서는 가볍게 최준호를 바라볼 수 없었다.

최대한 성의 있는 모습으로 최준호에게 인사를 한 후 한진영을 돌아봤다.

“부부문장님.”

“저희 때문에 괜히 시끄럽지는 않으세요? 제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괜찮으니 최대한 피해가 없도록 하라고 이야기를 하기는 했는데…… 제가 여기 서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서 어떤지 모르겠네요. 괜찮으세요?”

임재홍은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한진영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자리에서 결론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다급히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부부문장님. 두선화학 말입니다.”

“아~ 두선화학. 문제가 많지요?”

“문제가 많은 정도가 아닙니다.”

임재홍의 급한 모습을 보면서도 한진영은 느긋하기만 했다.

오히려 이야기를 나누며 최준호 등에게 이사 올 곳을 설명하는 것이 마치 전혀 문제가 없는 곳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태도였다.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임재홍만 속이 바짝바짝 타고 있었다.

“홍지란 센터장이 큰 사고를 쳤습니다.”

“그래서 확인을 해보라고 한 겁니다. 이대로 진행을 했다면 우리는 LZ그룹에게 죽일 놈이 되었을 테니까요.”

“LZ그룹만이 아니지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회사가 우리에게 인수합병에 관련된 자문역을 맡기려 하겠습니까? 이건 회사를 죽이려고 작정한 겁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됐다면 아마 회사는 큰 어려움을 겪었겠지요.”

한진영은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 점점 숨이 끊어져 가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한진영이 느꼈던 감정이 다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부부문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요? 무얼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이걸 그대로 사장님께…… 보고해야 하나 해서 말입니다.”

임재홍은 말을 하며 주변에 서 있던 최준호와 이성우 그리고 최석영을 훑어봤다.

다른 사람이 듣고 있어 말하기 곤란한 거였지만 그래도 꺼낼 수밖에 없었다.

한진영이 아니고서는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을 정확하게 내려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임재홍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이해했다.

차라리 손도 못 댈 수준의 문제였다면 터트리고 나 몰라라 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문제의 수준이 딱 경계선에 있었다.

지금이라도 해결하려 노력한다면 봉합이 가능한 수준.

임재홍은 이걸 해결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사장에게 보고해서 사장에게 턴을 넘겨야 하는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남원석 사장의 능력과 그가 회사에 내려온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장에게 턴을 넘긴다는 것은 결국 이번 인수합병을 무산시키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대규모 인수합병의 자문역을 맡아 수행했던 모든 경험치가 허공으로 날아가고 마는 것이었다.

임재홍은 사장에게 턴을 넘기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턴을 넘기지 않는다면 이대로 폭탄을 안고 계속 일을 진행할 자신이 없었다.

임재홍에게는 아직 이런 일을 수행할만한 경험과 배짱이 부족한 상태였다.

한진영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임재홍을 향해 몸을 돌려세웠다.

“센터장님. 제가 이곳으로 온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업무적 효율을 위해서…… 아닙니까?”

“그렇지요. 누구와?”

“저희와?”

“맞습니다. 리서치센터와의 업무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사 온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임재홍의 얼굴이 점점 퍼졌다.

한진영은 공사를 진행하느라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가 내려앉은 임재홍의 어깨를 손으로 털어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도와드릴 테니 말입니다. 함께 하시죠. 이번 인수합병 건 말입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지요. 가능하니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한진영은 임재홍의 걱정을 가볍게 덜어주고 자리로 돌아가도록 해줬다.

한진영과 함께 이사 올 곳을 둘러보던 최준호는 멀어져 가는 임재홍의 등을 바라보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함께하자니 그건 무슨 소리야?”

“일 이야기지요.”

“일 이야기? 우리가 저 인수합병 건에 합류한다는 이야기인가?”

“합류라기보다는…….”

한진영의 얼굴에는 미소가 짙어졌다.

“우리가 접수해야지요.”

“접수한다고?”

한진영은 이성우를 슬쩍 바라보고 말했다.

“너도 이제 밥값 해야지.”

“밥값?”

“그래. 잘 놀고먹었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한데…… 어떤 밥값?”

이성우는 한진영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리서치센터 임시 센터장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니 자기를 향해서는 웃으며 밥값을 하라고 했다.

이성우는 두 이야기 사이에 관계가 있는 듯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최준호와 최석영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너를 데리고 올 때 이유가 뭐라고 했지?”

“어~”

이성우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 기억을 떠올리고는 대답했다.

“내 인맥이 필요하다고 했지.”

“그래. 네 인맥이 필요해. 그리고 그걸 써먹을 때가 지금이고…….”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의 뜻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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