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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24화 (124/650)

124화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주는 선물

한진영은 물끄러미 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성수동에 새롭게 짓고 있는 아파트의 열쇠 아닙니까?”

“어떻게 알았습니까? 놀랍네요. 그걸 알고 있다니 말입니다.”

“한 번 본 적이 있는 열쇠입니다. 열쇠 모양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본 적이 있으시다고요? 분명 열쇠를 가지고 있는 분도 평범한 분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아직은 손에 꼽는 몇몇 사람에게만 나간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네…… 뭐…… 그렇죠.”

한진영은 어색하게 웃고는 열쇠로 시선을 돌렸다.

이성우가 가지고 온 것과 열쇠 머리에 달린 사자문양이 똑같았다.

보통 열쇠에는 있지 않은 문양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특별함이 느껴지는 문양이었다.

그래서 한진영은 기억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왜 이 열쇠가 자기 손에 있는지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열쇠를 내려다보던 한진영은 얼굴을 들어 올리고는 이수암에게 물었다.

“처음 열쇠를 봤을 때도 궁금하긴 했는데……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아파트의 열쇠가 왜 있는 겁니까?”

“상징적인 것이지요. 완공 후에 집을 계약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씩 준다고 하더군요.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증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아무래도 고급 아파트를 지향하는 곳이라 이런 특별한 이벤트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요즘 세상에 열쇠를 준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실제 문을 여는 용도는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맞아요. 아직 문도 달리지 않은 곳에 열쇠부터 먼저 생길 리는 없을 테니까요.”

한진영은 이제 알겠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설사의 하청회사거나 아니면 건설사에 잘 보여야 하는 곳 몇몇이 미리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구입한 것으로 보였다.

한진영의 손에 그 집이 들어온 것이었고, 이성우가 가지고 와서 보여준 것도 그런 의미의 열쇠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생뚱맞게 기풍철강이 왜 완공도 안 된 집을 샀나 했더니…….’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사는 집이라면 굳이 서울에 집을 살 이유가 없었다.

한적하고 공기 좋은 곳에 별장을 사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하고 열쇠를 이수암에게 내밀었다.

“받을 수 없습니다.”

“받을 수 없다고요?”

이수암은 한진영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이 선물을 거절할 거로 생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아무리 완공 전에 샀다고 하더라도 수십억은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큰 선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수암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한진영 앞에 손을 흔들고는 말했다.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 많이 했습니다. 직급을 올려주기에는 과장을 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렵고…… 사업부 부문장 자리를 내어주자니 새로 온 부문장이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요? 게다가 한 부부문장이 부탁하여 부문장으로 온 사람이기도 하고…… 성과급이야 당연히 주는 것이니 선물이라도 할 수 없고 참 여러 가지로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이수암의 표정에서도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진영은 이런 이수암의 고민이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외면할 만도 한데…….’

선물은 선물일 뿐이었다.

당연히 회사 일을 하며 초과 성과를 올리기 마련이었고, 그럴 때마다 매번 선물을 그것도 회장이 직접 나서서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잘했다는 말이면 충분했고,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성과일 때는 금일봉 수준만 내려주어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을 했다는 모습이 한진영에게는 낯설기만 한 풍경이었다.

물론 이번 성과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어려운 커다란 성과이기는 했다.

이번 일을 기초로 해서 터만 잘 닦는다면 신성증권은 인수합병 분양의 신흥강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인수합병은 외국계 증권사들의 전유물과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국내 증권사들은 이와 관련된 경험도 적었으며, 국내에서 벌어지는 인수합병 건도 극히 드물었기에 대부분의 증권사에서는 외면하는 분야처럼 여겨졌었다.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 여러 인수합병 건을 진행하며 쌓은 노하우로 접근하는 외국계 증권사들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의뢰하는 쪽에서도 값이 싸다는 이유로 국내 증권사들을 선택하기보다는 안전한 거래를 위해 외국계 증권사들을 선택하는 쪽으로 많이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일을 성공했으니 이 모든 게 한진영의 성과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기는 했다.

그리고 성공보수 형태의 무언가를 주기는 해야 했다.

외부의 시선도 있었고 성공한 한진영도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이 기대했던 것은 성과급을 조금 더 주는 정도였다.

그것도 회장이 아니라 남원석이 다른 직원들 앞에서 성과를 치하하며 내주는 정도가 딱 알맞은 수준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수암이 내민 것은 아파트 열쇠였다.

아직 완공되지 않아 가격이 얼마인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10억대 단위는 훌쩍 넘길 게 분명한 것이었다.

게다가 기본 평수가 60평대부터 시작하는 것이기에 가격은 생각 이상일 수도 있었다.

이런 성과급은 한진영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수암은 한진영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내민 한진영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펴진 손가락을 접어주며 말했다.

“받아요. 이편이 내 마음이 편하니 말입니다.”

한진영은 손가락을 접어주는 이수암의 힘에 대항하지 않았다.

그의 손길에 따라 손가락을 접으며 가만히 이수암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고급지게 만들었다고 해요. 앞으로 오랫동안 고급 아파트라고 하면 사람들 이름에 오르내릴 만하게 작정하고 만들었다고 하니 기대해도 돼요.”

“잘됐습니다. 한 부부문장님. 어서 회장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세요. 이렇게까지 회장님이 권하는데 계속 싫다고 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니 말입니다.”

남원석은 한진영의 곁에서 눈짓했다.

조금 전 이곳에 오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라는 뜻에서의 눈빛이었다.

‘예의를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한진영은 이제야 이수암을 만나러 오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가 이해가 됐다.

예의를 그렇게 이야기하던 것이 아무래도 선물이 무엇인지 남원석은 알았던 듯했다.

그리고 이수암의 뜻에 따라 선물을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에게 그렇게 예의를 강조했던 것이 아녔느냐는 생각이 든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은 손안에 든 열쇠를 느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을 거둔 뒤 이수암을 향해 물었다.

“이곳을 만드는 건설사가 어디죠?”

“네? 그건 왜 묻는 겁니까?”

“아무래도 알아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어디죠?”

한진영은 생각이 날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이수암에게 물었다.

이수암은 잠시 남원석을 돌아본 뒤 천천히 한진영이 묻는 말에 대답했다.

“강선건설입니다.”

“아…… 강선건설이군요.”

한진영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거둬 바지 주머니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선물 받는 것을 꺼리던 한진영이었다.

그런 그가 강선건설이라는 말에 대뜸 열쇠를 주머니에 넣는 것에 이수암은 신기한 듯이 한진영을 바라봤다.

강선건설이라는 글자가 무슨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이수암의 눈빛이었다.

이수암의 생각대로 한진영은 강선건설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이 강선건설이라는 글자로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받으시니 드리는 저도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조금 전까지는 받기 부담스럽다고 하시더니 강선건설이라는 이름을 듣고 마음을 바꿔먹으시는군요. 혹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이수암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수암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씀은 오히려 저에게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네?”

“이게 단순한 선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고 느껴지신다고요?”

“네. 지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 했다는 뜻도 있지만, 앞으로 할 일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요?”

한진영이 이수암과 남원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무리 한진영이 뛰어난 성과를 얻어냈다고 하더라도 받기에는 과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강선건설과 신성건설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강선건설이 진행하는 럭셔리 아파트가 선물로 나온 이상 한진영은 선물이라는 아파트가 마냥 선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한진영의 시선에 남원석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중간에 끼어 사실대로 말하기 곤란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침묵을 지키는 것만이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한 남원석이었다.

남원석은 굳게 입을 닫은 채 이수암을 바라봤다.

이야기를 풀기 위해서는 이수암의 결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수암은 잠시 숨을 가슴 깊이 들이마신 뒤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한진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순서가 바뀌기는 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것 그냥 바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한진영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이야기를 꺼내려던 이수암이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기뻐하는 내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로 이수암과 남원석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선물이라는 열쇠를 받아 주머니에 넣은 것만으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 이수암이었다.

그는 천천히 선물의 진짜 뜻을 이야기했다.

“강선건설이 한 부부문장을 만나고 싶어 하더군요.”

이수암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그룹의 모태는 건설 사업입니다. 그런데…… 창업주이신 조부님을 이어 그룹을 맡은 부친과 저 모두 사업적 수완이 그리 좋지 못했어요. 그래서 조부님 때의 위세를 이을 수가 없지요. 게다가 제 대에 와서는 사업을 영위하는 것마저 힘든 상황입니다. ”

한진영은 어두운 표정의 이수암을 가만히 바라보고 물었다.

“그 정도로 어렵습니까?”

“신성증권을 매각하려 했던 것 아십니까?”

“네. 기억합니다.”

“신성증권은 조부께서 신성건설을 만든 뒤 두 번째로 세우신 회사예요. 그런데도 매각하려 한 것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음…….”

한진영은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생각보다 신성그룹의 어려움이 심각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강선건설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강선건설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대형토목 사업에는 입찰도 하지 못하는 수준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씁쓸한 표정의 이수암은 한진영을 향해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번에 두선그룹에서 1,000억을 투자받기로 하셨다고요?”

“아직 계약은 마치지는 않았습니다.”

“남 사장님.”

“네. 회장님.”

“미안하지만 그럼 투자전략사업부에서 운용하던 500억을 다시 좀 가져와야겠습니다.”

“500억을 회수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게 됐습니다. 한 부부문장. 미안합니다.”

이수암의 사과를 한진영은 덤덤히 받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이수암 회장의 요청이 뜻밖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선건설과의 만남도 이미 예상됐던 이야기 중의 하나였다.

지난 조용재의 별장에서 강선건설의 아들을 만났을 때 언제가 됐건 강선건설과 엮이게 될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강선건설에서 자기를 찾지 않는다면 한진영이 직접 강선건설을 찾아가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강선건설의 미래를 아는 이상 그것을 이용하고 넘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강선건설이 접촉하는 시점이 빨랐다.

그리고 접촉 루트도 의외였다.

조용재의 술친구 중 하나였기 때문에 조용재를 통해 접근해 올 것으로 생각했던 한진영이었다.

그런데 그쪽이 아니라 바로 신성그룹을 통해 접근해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일을 업무적으로 접근하겠다 이건가?’

한진영은 이수암을 통해 강선건설이 자기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에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궁금함보다 눈앞에 있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했다.

한진영은 여전히 미안해하는 이수암을 향해 살짝 미소를 띄웠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미안해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쨌든 신성그룹의 오너는 제가 아니라 회장님이시니까요.”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고마워요. 한 부부문장.”

한진영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수암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 시절의 경험으로 머릿속에 박혀 있던 이미지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허겁지겁 신성증권을 매각해야 했던 게 생각보다 신성그룹의 상황이 좋지 못해 그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로 돌아가서 시간이 나는 대로 신성그룹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은 생각을 정리하고 이수암 회장을 향해 조금 전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건넸다.

“강선건설을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잘 생각했습니다. 다행입니다. 한 부부문장이 만나지 않겠다고 할까 봐 나는 조금 가슴을 졸였어요.”

“싫다고 할 이유가 없지요. 절 만나겠다고 하는 게 부탁을 하는 걸로 보이니까요.”

“부탁이요?”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진영은 어떤 이유 때문에 강선건설이 보자고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수암 회장의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진영은 이수암 회장의 이야기를 나누며 아파트 열쇠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어쨌든 앞으로 수십억을 우습게 넘길만한 아파트가 한진영의 주머니에 들어왔으니 기쁜 것은 사실이었다.

한진영은 지금 자리가 즐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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