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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26화 (126/650)

126화 검증된 확실한 방법

식사를 하며 두 사람은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날씨가 어떻냐부터 시작해서 연예인들의 사생활 이야기까지 술자리에서나 나눌 이야기를 밥을 먹으며 한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자리가 너무 좋지가 않았다.

옆 테이블 혹은 뒤 테이블에서 하는 이야기까지 다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한진영을 부른 이유를 말하기에는 이벤트를 좋아하는 천정모도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30여 분간의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테이크아웃 음료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고 나서야 천정모는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이제 좀 이야기를 나눌 만하겠군요.”

천정모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커피를 마시는 한진영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한진영 씨를 뵙자고 한 건…….”

한진영은 천정모가 어떤 이유로 만나자고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시절 이맘때쯤부터 강선건설이 준비하던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히 한진영은 천정모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아는 척을 해 봤자 좋을 것이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룹 상속 문제 때문에 뵙자고 했습니다.”

천정모는 말을 한진영의 표정을 살폈다.

한진영이 놀라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만 한진영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천정모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오히려 자기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다.

“놀라지 않으셨습니까?”

“예상했던 일이었습니다.”

“예상했다고요?”

한진영은 여전히 테이크아웃 커피에 꽂혀 있는 빨대에 입을 댄 채 대답했다.

“저를 만나는 일이 그것 말고는 없을 테니까요.”

“역시…… 역시…….”

천정모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버지께서는 안 된다고 하셨지만 제가 한진영 씨를 적극 추천했습니다. 용재 건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 신뢰를 얻었거든요. 그리고 지금 제 말에 전혀 놀라지 않는 것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한진영 씨라면 잘 해결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놀라지 않는 것을 보고 확신하셨다고요?”

“어떤 일에도 의연한 모습. 저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천정모가 왜 이렇게 이벤트를 좋아하는지 알게 된 한진영이었다.

자기 딴에는 그것을 통해 사람을 테스트한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진영의 눈에는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천정모가 안쓰럽게 보였다.

‘다가오는 놈들이 어떤 놈들이기에…….’

사람을 만날 때마다 테스트한다는 천정모도 그렇고, 테스트를 하게 만든 사람들도 그렇고 모두 한진영의 눈에는 똑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런 건 한진영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진영에게 중요한 건 강선건설이 상속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이야기였다.

“저에게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한진영은 천정모의 생각을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그리고 일이 진행되며 어떤 일들이 펼쳐지는지 이미 지난 시절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한진영이었다.

그러나 천정모 앞에서는 모르는 척 강선건설의 의도를 묻는 것으로 먼저 이야기의 시작을 열었다.

천정모는 잠시 주변을 살피고는 한진영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용재 문제를 해결해준 것처럼 저희 쪽 문제도 해결해주길 바랍니다.”

한진영은 말없이 걸으며 커피를 마셨다.

천정모는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는 한진영의 옆얼굴을 슬쩍 바라보고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상속세를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천정모는 다시 한진영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한진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묵묵히 한옥 사이에 나 있는 자그마한 골목을 커피를 마시며 걸을 뿐이었다.

한진영의 이런 모습에 천정모의 마음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는 한진영에게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서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한진영 씨. 저는 세금을 모두 내고 상속받고 싶지 않습니다.”

한진영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천정모를 돌아봤다.

그리고 천정모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채 물었다.

“세금 문제를 이야기하실 거라면 세무사나 회계사를 찾아가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한진영 씨.”

“저는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게 할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요. 단지…….”

한진영은 걷던 것을 멈추고 천정모를 바라봤다.

천정모는 한진영의 표정을 기대에 찬 얼굴로 쳐다봤다.

“내야 할 세금을 줄일 방법을 알고 있기는 합니다.”

한진영의 말에 몸이 바짝 달아올랐는지 천정모가 한진영의 팔목을 잡아 왔다.

한진영은 천정모에게 팔목을 잡힌 채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게 하는 것과 같은 불법은…… 저는 모릅니다.”

“그거면 됩니다. 그게 뭡니까?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천 전무님.”

방법을 알고 있다는 한진영의 말에 얼굴이 살짝 상기된 천정모였다.

한진영은 양 볼이 붉게 물든 천정모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에게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요?”

천정모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가 얼추 다 왔는데 갑자기 시간을 달라고 하는 한진영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한진영이 의도한 상황이었다.

의심이 많고 성격이 급하기로 유명한 강선건설 오너가였다.

천정모는 물론이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다른 가족들까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들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주도권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주도권을 잡는 가장 첫 번째가 그들을 안달 나게 만드는 거로 생각한 한진영이었다.

그래서 이쯤에서 살짝 뒤로 물러나며 시간을 달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럼 방법만이라도 이야기해주세요.”

천정모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몸이 달았는지 한진영을 향해 애원하다시피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천정모의 표정과 말에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좋은 방법이 아니라 섣불리 이야기드릴 수 없는 겁니다. 저에게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제가 깊이 생각을 해보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한진영의 모습에 천정모는 계속 이야기해달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한진영이 이야기해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천정모는 한 가지만큼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 방법이라는 게…… 확실한 겁니까?”

한진영은 천정모의 말에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이기만 했다.

‘확실하지. 너희들이 썼던 방법이니까.’

강선건설이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더해 쓴 방법이었다.

그리고 의심이 많은 천정모와 그런 천정모보다 백배는 더 의심이 많은 그의 아버지이자 현 회장인 천계산 회장이 택한 방법이기에 이것보다 확실한 것은 없었다.

한진영이 생각하기에 다른 이들에게 확실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강선건설에 있어서만큼은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천정모는 한진영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지 않아도 알겠네요. 지금 한진영 씨가 생각하는 방법은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언제까지 생각할 시간을 드리면 될까요? 저희도 급한지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말입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조만간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천정모의 진심이 느껴지는 부탁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천정모의 진심에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에 했다.

***

리서치센터와 투자전략사업부는 협업을 이어가며 이제는 같은 식구나 마찬가지처럼 일해나갔다.

전략을 세울 때도 리서치센터의 도움 받기를 꺼리지 않았으며,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리서치센터에서도 서슴없이 투자전략사업부에 제안했다.

한진영의 뜻대로 두 곳은 유기적으로 맞물려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끈끈한 모습 속에서도 더욱 특별한 모습을 보이는 곳이 있었다.

“거참. 내 말이 맞는다니까요.”

“알았어. 누가 아니래? 그러니까 걸자고. 코스피200이 250을 기준으로 위냐 아래냐. 먼저 위에 걸 사람부터 시작하자고.”

“하 참. 이건 뭐 내기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저부터 할게요. 250 오버에 10만 원이요.”

이성우가 5만 원짜리 2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큰소리를 친 이성우 주위에 모여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이번 만기 결제지수를 놓고 내기를 진행 중이었다.

“어서 걸어요. 무조건 오버라니까.”

“그런데…… 250은 전고점을 넘기는 자리야. 쉽게 갈까?”

리서치센터 직원 하나가 이성우를 향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이성우는 그런 리서치센터 직원을 향해 무슨 소리 하냐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오버라는 거죠. 그 자리만 넘기면 거칠 것이 없는 자리라니까요. 250 찍기 위해서 3번 치고 이번이 네 번째 시도인데…… 계속 두드리면 열린다. 설마 이 말을 잊은 건 아니죠?”

“알아. 아는데…… 이 대리. 너무 확신하는 거 아니야?”

이성우는 특별승진을 하여 그렇게 원하던 대리 직함을 달게 됐다.

지난 프로젝트의 성과를 회사에서 인정한 것이었다.

이성우는 대리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기분이 좋았는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거참. 절 믿으시라니까. 250 오버 들어오세요. 아니면…… 제가 밥 한 끼 살게요.”

“그래 뭐 까짓거. 들어가 보자. 좋아. 나도 250오버에 10만 원.”

이성우의 꼬임에 빠진 리서치센터 직원 하나가 250오버에 돈을 걸자 뒤를 이어 몇몇이 따라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최석영은 그렇게 250오버에 걸 사람들을 모은 뒤 판을 멈췄다.

“자 그럼 오버는 끝이 났고…… 250언더. 250언더에 들어가실 분 누구 있으십니까?”

후끈 열기가 오른 분위기에 처음 대여섯 명이 모여 있던 이성우 자리에는 지금은 열 명을 훌쩍 넘기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 사이로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250 언더에 100 걸겠습니다.”

암묵적으로 10만 원씩 배팅하는 공간에 100만 원을 넣겠다는 사람에게로 시선을 모였다.

룰도 모르고 어떤 사람이 내기를 망치려고 이러는지 보겠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러나 화가 난 듯한 사람들의 시선은 손의 주인을 확인하고 바뀌고 말았다.

그곳에는 5만 원짜리 다발을 든 한진영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판 위에 돈을 올려놓고 있었다.

“한진영 부부문장?”

최석영이 당황한 표정을 잠시 지은 뒤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자. 한진영 부부문장님이 통 크게 250언더에 배팅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마구 250언더가 쓰인 판 위에 돈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암묵적인 룰대로 10만 원을 올린 사람도 있었으며, 룰을 무시한 채 더 많은 돈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250오버에 돈을 올려놓은 사람도 슬그머니 250언더가 적힌 판 위라 자기 돈을 옮겼다.

이제 250오버라는 글자가 적힌 곳 위에는 이성우 돈만이 홀로 덩그러니 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최석영은 일방적인 내기에 내기가 더는 진행될 수 없다고 손을 흔들었다.

“너무 일방적이니 다음 만기 때 다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석영의 말에 사람들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판 위에 올려져 있는 자기 돈을 가지고 가기 시작했다.

이성우만이 홀로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자기 돈을 내려다본 뒤 한진영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250 오버 맞는데…….”

이성우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깨어진 판을 내려다봤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보고 말없이 웃었다.

이렇게 이성우가 확신을 가질 때마다 정확히 이성우의 말과 반대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한진영은 알고 있었다.

한진영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 자기보다 이런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이성우의 능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성우는 판 위에 홀로 놓인 자기 돈을 바라보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나 정말 이번은 확신이 들거든. 무조건 250오버야. 어? 진영아. 무조건 250오버 맞는다니까. 나 정말 느낌이 확 와.”

한진영은 조금은 시무룩해진 이성우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기운 빠진 모습 보이지 마라. 나하고 조금 뒤에 어디 좀 가야 하는데 네가 이런 모습이면 내가 너를 데리고 가기 좀 그렇잖아.”

“나하고? 어디를 가자고?”

이성우는 다른 직원들과 진행하던 내기를 금방 다 잊기라도 한 듯이 시무룩한 표정을 얼굴에서 다 지워냈다.

그리고 궁금증이 가득 묻은 표정으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나하고 어디를 가는데?”

“강선건설. 오늘도 네 얼굴 좀 팔아야겠다.”

“강선건설에 간다고? 네가 연락하기로 했다면서…… 그럼 네가 연락한 거야?”

“아니. 내가 왜 연락해. 그쪽에서 안달하라고 그렇게 이야기 한 것뿐이야. 연락은 똥줄 타는 쪽에서 연락해야지.”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가 알고 있는 강선건설은 똥줄 탄다는 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강선건설에서 먼저 연락했다고? 연락을 안 하면 안 했지 먼저 하는 곳이 아닌데…….”

“그만큼 급하다는 거지.”

“누가? 정모 형이?”

이성우는 당연히 상속을 받는 쪽 입장에서 다급하여 연락을 먼저 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급한 건 천계산 회장 쪽이야. 그렇지 않다면 먼저 연락했겠어? 그러니 어서 준비해. 성질 급해서 연락했으면 아마 바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에 둘러 있던 팔을 풀고 이성우의 등을 한 대 때린 후 자리로 돌아갔다.

이성우는 천계산 회장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는 말이 실감이 가지 않았는지 한진영이 자리를 떠난 후에도 한동안 서서 한진영의 등을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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