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그 어려운 걸 해낼 곳
강선건설에 다녀온 이후 회사에서 이성우가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
“아까웠어.”
지금도 이성우 곁을 지나던 리서치센터 직원이 이성우를 향해 웃으며 건넨 말이었다.
이성우는 그가 어떤 의미로 아깝다고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조금 뒤면 또 다른 사람이 이성우를 찾아와 그 이유를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우가 자리에 앉자 곁에 앉아 있던 직원이 슬그머니 의자를 밀어 이성우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대리님. 정말 아까워요.”
“아. 네. 뭐…….”
이성우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 앉아있던 직원은 평소라면 호들갑스러워야 할 이성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이성우를 바라봤다.
그러나 왜 호들갑을 떨지 않냐고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는 다음 이야기를 하며 이성우의 반응을 살필 뿐이었다.
“어제 지수가 전고를 갭으로 뛰어넘더니 오늘도 상승세 이어가고 있어요. 1,940이에요. 코스피200으로 따지면 251이고요. 이럼 이 대리님 말대로 만기 결제라인은 250오버가 될 것 같은데요? 그때 그 내기 파투 내지 않고 그냥 했으면…… 그 돈 대리님이 다 먹는 거였잖아요. 너무 아까워요. 그게 얼마예요. 어휴~”
“아. 네. 뭐…….”
이번에도 이성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직원이 기대하던 것과는 한참 다른 반응이었다.
곁에 앉아 있던 직원은 이런 이성우의 반응에 흥미를 잃었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성우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성우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한진영에게 이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250언더라고?’
이제 겨우 251을 찍은 상태라서 언제라도 250언더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었다.
거기다 자신 있게 250오버를 외쳤지만, 이성우도 100% 250오버를 확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러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250오버를 외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250언더를 도이츠증권이 만든다고?’
그러나 250언더를 증권사 한 곳에서 만든다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한 종목을 주무르며 주가를 원하는 곳에 가져다 놓는 것과 종합주가지수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은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려움도 어려움이었지만 사회에 미칠 파장은 예상이 불가할 게 뻔했다.
이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아무래도 궁금한 것을 물어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의 이성우였다.
“어. 마침 잘 왔다.”
“어?”
찾아온 건 이성우였건만 한진영이 먼저 이성우를 반겼다.
이성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다가갔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말했다.
“부문장님을 비롯한 각 팀 팀장급들 회의실로 모두 모이라고 해. 너도 회의실로 오고…….”
“모두 회의실로 모이라고 하라고? 왜?”
“만기 대응 때문이라고만 말해. 너도 지금 그거 궁금해서 나한테 온 거 아니야?”
“너 신기 있냐?”
“신기고 뭐고 간에 네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모를 수가 없지. 어서 다녀와. 그래야 너도 궁금한 거 빨리 대답 들을 수 있을 테니까.”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를 툭 하고 치고는 먼저 회의실로 향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지시에 최준호 부문장을 비롯하여 투자전략사업부의 핵심 직원들을 소집했다.
그들은 한진영이 만기 대응을 이야기하기 위해 모이라는 말에 모두 고개를 갸웃하며 회의실로 향했다.
그동안 만기라고 하여 특별히 대응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모든 사람이 모이자 한진영이 일어나 회의실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모두들 오늘 모이는 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만기라고 하여 특별할 것 없이 진행되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이렇게 모이기까지 했으니까요.”
“부부문장님. 그럼 이번 만기는 특별하다는 말씀입니까?”
외환팀의 김석현이 손을 들어 한진영에게 질문했다.
한진영은 김석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 만기는 특별합니다.”
꿀꺽.
먼저 강선건설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들었던 이성우가 마른침을 넘기고 한진영의 말을 기다렸다.
도이츠증권이 어떻게 종합주가지수를 가지고 장난친다는 건지 궁금했던 것의 대답을 기다리는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바짝 긴장한 얼굴의 이성우를 슬쩍 바라보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번 만기만큼은 우리는 손을 놓고 지켜보기만 할 겁니다.”
“네?”
자리에 있던 김준하가 놀랐는지 한진영의 말에 바로 반응했다.
평소의 김준하는 이런 류의 회의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다가 한진영의 지시를 따라 움직였던 김준하였다.
할 말도 없고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없었기에 공기처럼 회의 자리에서 있다가 사라지고는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손을 놓고 지켜보기만 한다고요? 부부문장님. 이번에 자금이 움직이는 사이 매매 전략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이번 참에 테스트해보려고 하는데…… 특히 만기와 같이 변동이 심하게 움직이는 날 테스트를 꼭 해봐야 해요. 전체를 움직이지는 못하더라도 테스트 개념으로 대략 10여 개의 대형 종목을 잡아 테스트해볼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것만은 꼭 필요하니까요.”
김준하가 포문을 열자 IT 담당의 박도하도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프로그램도 이번에 쉬는 동안 반응 속도에서 한 단계 빠르게 업그레이드를 진행했습니다. 이제는 초 단위가 아니라 소수점 단위의 반응 속도에도 빠르게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게 됐습니다. 이걸 정식으로 운용하기 전에 테스트했으면 했는데…… 만기 날과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날이라면 더욱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도 만기 날 테스트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한진영은 김준하와 박도하를 번갈아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운용자금을 거둬가고 난 뒤 오히려 우리는 바쁘게 움직였지요. 그리고 이제 부현그룹에서 1,000억이라는 자금이 들어온 만큼 그동안 준비했던 것을 제대로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했을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모두 같은 생각을 했던 듯 보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들의 표정에서 한진영의 말에 무언의 동의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성우는 그런 직원들의 표정을 살핀 뒤 한진영의 입을 바라봤다.
미리 이유를 들은 이성우였다.
다른 사람들이 이유를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유에 대한 설명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한진영의 입에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이성우는 유독 오늘 회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진영은 입술이 바짝 말라오는지 침으로 연신 입술을 적시는 이성우를 흘깃 바라보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른 때보다 빠른 속도를 보이는 만기 날 테스트를 해 보려 하는 것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번은 안 됩니다.”
“한 부부문장.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최준호 부문장이 입을 열었다.
한진영에게 있어서만큼은 예스맨인 최준호 부문장도 이런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궁금해하는 최준호를 향해 천천히 이유를 설명했다.
“만기 날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입니다.”
“뜻밖의 사건? 어떤 사건?”
“모 증권사에서 만기 날 위험한 짓을 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위험한 짓이라니? 다른 날도 아니라 만기 날 그런 짓을 할 곳이 어디가 있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날이 만기 날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어려운 걸 해낼 것 같으니까 이야기가 돌지 않았을까요?”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러니까 위험한 일을 벌인다는 이야기가 돈 거겠지. 근데 그 위험한 일이 도대체 뭔데 그래?”
“지수를 한 방향으로 밀어 버리려 한다는 이야기…… 저도 여기까지만 들었습니다.”
“한 방향으로?”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다른 직원들도 생각에 잠기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진영이 소집하여 만기 날 조심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라면 허튼 이야기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만기 날 한진영이 말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었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그려갔다.
“지금까지 상승장이라서 밀어낸다면 위쪽이 맞을 것 같은데…… 전고점도 벗겨냈고 말이야.”
“아니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위험한 짓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최준호와 최석영이 의견을 나누었다.
최준호는 최석영의 말에 동의하며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그럼 아래인가?”
“아래가 맞지 않을까요? 충격이 나온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아래일 것 같은데요.”
“맞아. 그렇긴 해. 그럼 서킷 브레이커?”
최준호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들어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설마 만기 날 서킷이 터져서 충격을 준다는 이야기야?”
최준호는 폭락과 같은 말인 서킷 브레이커가 터져서 그러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물은 것이었다.
자리에 있던 직원들도 모두 최준호의 입에서 서킷 브레이커라는 단어가 나오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킷 브레이커가 터진다면 지수가 아침부터 종료 시점까지 원웨이로 찍혀 눌린다는 이야기인데, 이렇다면 테스트고 뭐고 하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킷 브레이커라면 한진영이 하지 말라고 할만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성우만은 최준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서킷이 아니야.’
이성우는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계속 생각해봤다.
증권사 한곳이 종합주가지수를 그것도 만기 날 장난을 칠 방법이 무얼까 하고 말이다.
평범한 날이라면 이 악물고 증권사 한곳이 미친 짓을 한다면 원하는 곳에 종합주가지수를 옮겨 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뒤에 벌어질 일이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하에서 말이다.
하지만 만기 날은 달랐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축제와 같은 날이었다.
이런 날 자기가 원하는 곳에 지수를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리고 만약 어딘가에서 그런 짓을 벌이려 한다면 서로 힘겨루기를 하던 이들이 모두 힘을 합쳐 그곳을 물 먹이려 들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도박판에서 패가 들켜버린 참가자는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이츠증권이 독일계 증권사로 큰손 중에 하나라지만 그들이 원한다고 하여 무조건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성우는 가능한 경우가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동시호가?”
회의실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이성우에게로 모였다.
이성우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깜짝 놀라 입을 가렸다.
그러나 소리는 이미 입을 통해 튀어나온 상태였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성우가 한 말을 듣고 말았다.
이성우가 기대대로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에 한진영이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만기에 도이츠증권이 벌일 일은 앞으로 오랜 기간 증시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한 것이었다.
그런 것을 운 좋게 알게 됐다는 말로 얼버무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모른 척 이런 이벤트를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이번 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됐다.
돈을 벌게 된다면 당장 금감원에 줄기차게 출석하여 돈을 벌게 된 내용을 증명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금감원을 비롯하여 증권거래소, 정부 등등 모두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만한 일이었다.
돈을 번 곳이라면 모두 증명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던 것을 기억했다.
특히, 유독 돈을 많이 번 몇몇 곳은 정부 주도하에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도이츠증권에 동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지우기 위해 몇 년간이나 치열하게 싸워야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하면 한패로 낙인찍혀 이 판에서 퇴출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심각했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 이번 만기에 벌어질 일이었다.
한진영은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는 아니었으며, 알고 있는 사실로 유추를 한 결과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정도로만 사람들 앞에 보이려 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자기 외에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떠올릴 사람이 하나 정도 더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이성우에게 먼저 정보를 흘린 것이었고, 이성우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었다.
“바로 그겁니다. 동시호가. 저도 만기 날 사고가 터진다면 동시호가에서 터지게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사고가 터지기 힘든 날이 만기 날이니까요.”
“동시호가라면…… 문 닫고?”
“네. 문 닫고 만기 지수를 결정짓는 10분. 그 사이에 모 증권사가 사고를 치는 게 아니냐 생각됩니다.”
한진영의 말에 김준하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동시호가라면 저희 프로그램이 전혀 먹히지 않겠네요. 그렇다면 하지 말라는 부부문장님의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네. 그리고 만기 날 이슈가 생기면 여러 가지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만큼은 그날을 조용히 보내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겨우 하루를 그냥 지나 보낸 게 되는 것이고 만약 정말로 사고가 터진다면…… 우리는 그저 방관자로서 사고가 터진 것을 보기만 하자는 것이지요.”
한진영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