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30화 (130/650)

130화 빚을 졌으니 밥은 내가 산다

회의 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은 참석자만 아는 것으로 결정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소수의 사람만이 아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보니 이성우가 듣는 이야기는 다음 날에도 계속됐다.

“아깝다. 이 대리님. 너무 아깝죠?”

“아. 네. 뭐…….”

이성우가 머쓱하게 웃고 지나가자 다음 사람이 또 이성우에게 같은 말을 던졌다.

“너무 아까워요.”

“아. 네. 뭐…….”

대답하는 이성우도 같은 대답만 계속할 뿐이었다.

그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이런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251을 넘긴 코스피200이 단번에 255를 터치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제 250오버냐 언더냐를 논하기에는 250자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이성우를 비롯하여 회의실에 자리했던 직원들은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정말로 일어나나?’

장이 2,000 탈환을 앞두고 안정기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변동성이 줄었으며 하락에 대한 공포를 지워갔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상방만을 온통 씌워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쏜다고 한다면 위로 쏘지 절대 아래로는 쏠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만기 전날까지도 이어졌다.

전날 255 터치에 힘이 빠진 듯이 251까지 밀려 내려왔던 코스피200이 만기 전날을 앞두고 256을 넘기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250이 문제가 아니라 지수상 2,000까지 올라간다는 확고한 믿음이 시장에 퍼져 있는 것만 같았다.

눈을 씻고 쳐다봐도 전날 하락 정도가 하락이면 하락이지 시장에 충격을 줄 만한 하락이 나타날 것으로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시장이었다.

만기 날까지도 이성우는 같은 말을 들었다.

“대리님. 너무 아까워요.”

“하아~”

만기 날까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지겨워진 이성우였다.

이성우는 이제는 그만하라는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곳에는 한진영이 서서 음료수를 든 채 이성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처음 하는 건가? 반응이 어제와 다른 거 보니까 이제는 지겨워졌나 봐?”

이성우는 한진영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흔들며 몸을 돌렸다.

“아니. 처음 아니야.”

“내가 처음이 아니야?”

“그래. 아까 엘리베이터 타는 곳에서 한번 들었어.”

“아깝네. 내가 처음일 줄 알았는데…….”

이성우는 농담을 건네는 한진영을 향해 기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너는 오늘 같은 날도 농담이 나오냐?”

“오늘 왜?”

“왜긴 왜야? 오늘이 만기 날이잖아.”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이성우가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지금 그래서라는 말이 나와? 오늘…….”

“그러니까 오늘 뭐? 사고가 안 날까 봐 걱정하는 거야? 아니면 사고가 날까 봐 걱정하는 거야? 뭐 어떤 게 됐든 상관없지만, 태도 정확히 해. 그렇지 않으면 너도 헷갈리게 되니까.”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돌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자기가 뭣 때문에 이러는지 잠시 떠올려봤다.

“깊게 고민하지 말아라. 그러다 머리 지진 난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가슴팍을 한 대 친 뒤 손에 먹던 음료수를 건넸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음료수를 든 채 한진영의 뒤를 가만히 따랐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슬쩍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러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우리는 상관이 없는 거야. 알았어?”

“그건 그렇지.”

“그런데 뭘 걱정을 하고 있어? 그냥 오늘 놀다 퇴근해. 이런 날도 있어야지. 어떻게 매번 긴장하고 피곤하게 회사 생활하냐? 안 그래?”

한진영은 이성우를 향해 웃고는 자리로 들어갔다.

장이 시작되자 전일 있었던 상승에 대한 힘이 남아 지수를 끌어 올렸다.

시작하자마자 1,970대를 터치하는 것이 오늘이라도 당장 2,000 탈환이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만기지수를 결정하는 코스피200은 257을 넘겼다.

이제 250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이성우는 자리에 앉아 한진영이 앉아있는 곳을 쳐다봤다.

‘분명 250언더에 돈을 걸었는데…….’

이성우는 한진영이 자신 있는 모습으로 250언더에 배팅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진영이 천계산 회장을 향해 도이츠증권이 사고를 친다고 이야기한 것도 떠올렸다.

두 이야기를 합치면 도이츠증권이 코스피200을 250언더까지 찍어 누른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게 가능해?’

257을 넘긴 시점에서 250언더에서 결제가 되려면 3%에 가까운 폭락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도 지수는 상승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3% 폭락은 고사하고 260 결제를 염두에 둬야 하는 게 아니냐 싶은 게 현시점에서의 상황이었다.

투자전략사업부는 바쁘게 움직이는 주식시장과는 다르게 고요하기만 했다.

며칠 전부터 준비하던 만기 테스트가 모두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어떤 이유로 테스트를 취소했는지 아래 직원들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직원들은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만기를 즐기는 중이었다.

“식사는…… 도시락이지?”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이성우가 한진영이 있는 자리로 찾아왔다.

이성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묻고는 어떤 도시락으로 시킬까 물어보려 했다.

그러나 이성우는 오히려 이성우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시락을 왜 먹어? 오랜만에 여유로운데 먹고 와야지. 부문장님에게도 물어봐. 밥이나 먹고 오자고.”

“밥이…… 지금 들어가?”

“왜 안 들어가? 어서 부문장님한테 물어봐. 앞에 나가서 설렁탕이나 한 그릇 하고 오자고 말이야. 우리가 챙기지 않으면 그 양반 누가 챙기냐? 빨리 가.”

한진영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이성우의 등을 밀었다.

그리고 주변을 서성이며 이성우가 최준호 부문장을 데리고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때 한진영의 귀에 장근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여기는 왜 이렇게 한가해? 다들 시마이 친 거야?”

한진영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자 장근수 본부장과 김정대 본부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장근수는 한진영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사업부를 둘러봤다.

“오늘 무슨 날인지 모르는 건 한 부부문장만이 아닌 것 같네. 다들 어디 갔어? 왜 이렇게 빈자리가 많아? 죄다 외근을 나간거는 아닐 테고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기는요? 시계 보세요. 점심시간이잖아요. 그러니 다들 식사하러 자리를 비운 거지요.”

“점심시간? 우리가 언제 점심시간이 있었다고 점심시간을 챙겨? 그것도 만기 날 말이야. 이봐 김 본부장. 자네 사업부에서는 점심시간도 챙기고 그랬어?”

장근수가 곁에 있는 김정대 FICC본부장에게 물었다.

김정대는 장근수를 빤히 바라보고 대답했다.

“우리 본부로 승격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사업부야? 내가 기억 떠올리게 해줄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한테는 그게 중요해.”

김정대의 말에 장근수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김정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김정대는 시선을 회피하는 장근수를 확인하고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투자전략사업부는 마무리한 건가? 아직 점심시간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네. 끝났다기보다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리겠네요. 오늘은 시장에 참여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시장에 참여하지 말라고 했다고? 왜?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

김정대가 신중한 모습으로 물었다.

한진영은 김정대가 적당한 시점에 딱 맞춰 왔다는 생각하며 대답했다.

“분위기가 좋지가 않아서요.”

“자네 사업부는…… 분위기와는 상관이 없는 곳이잖아? 그렇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상관이 있을 때도 간혹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저희도 어쩌지 못할 일이 발생하던가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자네 쪽에서도 어쩌지 못 하는 일이 발생한다?”

“확신은 아닙니다.”

“알았네. 확신은 아니란 말이지?”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상대방에게 지시했다.

“오늘 만기 우리는 포지션 잡지 않는다. 그렇게 전하고 슬슬 정리하라고 해. 괜히 시간에 몰리다가는 엄한 꼴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이봐 김 본부장. 그게 무슨 소리야?”

옆에서 전화를 듣던 장근수가 놀란 눈으로 김정대를 바라봤다.

투자전략사업부에 함께 오며 대화를 나눈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김정대는 이곳에 오며 상방 포지션을 잡도록 본부에 지시를 내려놨다고 했다.

다만 너무 일방적인 포지션이라 확인이 필요했고, 그 확인을 한진영을 통해 하기 위해 투자전략사업부로 가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장근수는 그 이야기에 김정대를 따라 온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확인이 아니라 한진영의 포지션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포지션을 정리한다니? 자네 분명 오늘 상방 포지션 잡고 밀어붙인다고 했잖아. 그런데 이렇게 쉽게 포지션을 바꾼다고? 그것도…… 한 부부문장 말만 듣고?”

장근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천하의 고집불통에 세상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고 사는 게 바로 김정대였다.

그런 김정대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모자라 따라 한다는 것에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들었음에도 믿기지 않는 장근수였다.

장근수는 김정대가 뭘 잘못 먹은 게 아니냐는 생각에 김정대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물었다.

“자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너도 사람 그렇게 볼 시간에 빨리 너희 본부에 연락해서 포지션 풀라고 해. 잘못하다가는 큰코다칠 테니까.”

“큰코가 다친다고? 너 그럼 이러는 게 진심이라는 거야? 어디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김정대는 자꾸 어디가 아픈 게 아니냐는 장근수의 말에 더는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자기는 동료이자 친구로서 할 만큼 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부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여기까지 다 오시고 말입니다.”

최준호와 이성우가 한진영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며 김정대와 장근수를 향해 인사했다.

두 사람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본부장들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김정대는 최준호의 인사를 가볍게 받고는 나란히 선 투자전략사업부의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다들 어디 가려는 건가?”

“저희는 식사하러 가려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식사? 하하하. 식사하려고 했다는 말이지? 좋아. 같이 가세나. 오늘 점심은 내가 살 테니 말이야. 한 부부문장에게 빚을 진 거 같아서 어떻게 갚을까 잠시 고민했는데 잘됐어. 이렇게라도 갚을 수가 있게 됐으니 말이야.”

“자네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됐어? 밥까지 먹으러 가겠다고? 그리고 빚은 뭐야? 한 부부문장에게 뭘 빚졌는데?”

환하게 웃는 김정대와 황당하다는 표정의 장근수가 잘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상반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후 김정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본부장님. 겨우 점심 정도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그 정도야? 그럼 오늘 끝나고 술까지 사야겠는걸?”

“술에 주말 호텔 식사권까지 더한다면 얼추 셈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

김정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진영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렇다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좋아 호텔 식사권에 숙박권까지 더하도록 하지. 어떤가 이러면 괜찮겠나?”

“제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이 정도에서 받아들여야지요.”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의 모습에 장근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 하는 거야? 식사권에 숙박권은 또 뭐야?”

“너도 나랑 같이 사야 하는데…… 넌 됐다. 조금 뒤에 머리에 스팀 날 놈한테 뭘 바라냐? 너도 밥이나 얻어먹으러 따라와.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김정대가 장근수에게 혀를 짧게 차고 한진영과 함께 신난 얼굴로 앞장서 걸어갔다.

장근수는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따르며 이성우와 최준호를 향해 무슨 소리인지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멋쩍은 웃음만 보일 뿐이었다.

***

식사를 마치고도 김정대는 FICC 본부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만기를 투자전략사업부에서 맞이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자리를 펴고 앉아 회의실에서 오후장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260이 결제되면…… 속 좀 쓰릴 것 같은데…….”

김정대는 말을 하고 슬쩍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의 말을 믿고 FICC 선물거래팀의 전략을 멈춰놓은 상태였다.

처음 그들이 전략을 세운 상방 풀 세팅을 풀은 채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처음 생각했던 대로 상방으로 결제가 터져버린다면 본부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것만 같았다.

아무리 본부의 최종 결정은 본부장이 내린다고 하지만, 결정이 틀렸을 때 그런 결정을 내릴만한 근거가 무엇인지 직원들에게 이야기는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김정대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한진영의 투자전략사업부가 포지션을 잡지 않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이런 이유는 한진영을 믿는 김정대에게는 설명이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지수가 아래로 빠져주기를 바라는 김정대였다.

하락한다면 이런저런 설명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하락이 아니라 폭락이 나오기를 바라는 김정대였다.

본부로 돌아가 직원들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말이다.

김정대는 말없이 미소를 짓는 한진영의 표정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반대로 지수는 계속 오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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