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31화 (131/650)

131화 무엇이 됐건 결론은 하나다

김정대가 회의실에 자리하자 투자전략사업부의 주요 인원들도 하나둘 회의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비록 FICC본부에서 나와 독자적인 사업부에 자리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어쨌든 얼마 전까지는 김정대의 밑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전 상사의 방문에 그들도 자연스럽게 회의실로 모인 것이었다.

“본부장님. 여기 차 내왔습니다. 차 드시면서 보시지요.”

최준호는 직접 차를 타가지고 와 김정대 앞에 놓았다.

아직 본사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최준호는 김정대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다.

그래서 직접 차까지 타오며 최준호에게 최선을 다하려 했다.

김정대도 그런 최준호의 마음을 아는지 가볍게 최준호를 향해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차를 마셨다.

김정대가 차를 마시고 사람들이 회의실에 모였는데도 지수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했다.

위에 2,000이라는 상징적인 자리를 놓고 부담스러워 더는 올라가기 어려워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떨어질 생각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지수는 1,970대 위에 올라앉은 채 이대로 끝나기를 바란다는 듯이 움직임이 멈춰 있었다.

회의실에 모여 있는 직원들의 머릿속에는 점차 한진영이 말한 일이 정말 벌어질지 의문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동시호가에 일이 터진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자기만 느끼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렇게 아직 불안에 떠는 직원들과 달리 처음부터 한진영의 능력을 곁에서 지켜본 최준호와 이성우 그리고 최석영 등은 전혀 불안한 빛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진영이 말한 일이 도대체 어떤 식으로 벌어진다는 건지 그걸 더 궁금해하며 시장을 지켜봤다.

이렇듯 회의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결국 장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끝나는 순간까지도 하락에 대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257에서 마무리되려나 본데요?”

김석현이 조심스럽게 말하고 주위 반응을 살폈다.

그때 눈을 마주친 최준호가 김석현에게 말했다.

“동시호가 시작되니까 이제 잘 봐. 옵션 쪽은 어때?”

최준호의 질문에 김석현이 급히 각 주체의 옵션 포지션을 살폈다.

“이상 없습니다. 외국인과 기관 모두 양매도를 치고 있습니다. 몇몇 기관들이 콜 옵션을 틀어쥐고 상방으로 밀어버릴까 눈치를 보는 형태이지만, 이것도 쉬워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김석현은 간단하게 현 상황을 보고했다.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진영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한진영이 움직이기 시작한 만큼 시장에도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한진영은 천천히 모니터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는 김석현에게 말했다.

“김 대리님. 옵션 중에 250, 252.5, 255 풋옵션 상태창 좀 띄워 주세요.”

“250부터 255까지의 풋옵션이요?”

“네. 반대 포지션인 콜옵션의 매도포지션도 같이 띄워 주시고요.”

“콜옵션의 매도포지션까지요?”

김석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리둥절했지만 빨리 띄우라는 재촉이 담긴 최준호의 눈빛에 조용히 상태창을 띄웠다.

창에 떠 있는 숫자들은 이상이 없었다.

휴짓조각에 가까워진 250 풋과 252.5 풋은 제로에 수렴하여 들어갔으며 동시호가를 코앞에 둔 지금 거래량도 쪼그라들어 있었다.

콜옵션도 가격만 반대일 뿐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결제가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 특별히 거래가 들어오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왜 이런 뻔한 옵션 창을 띄우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치열하게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257.5를 기준으로 콜과 풋의 거래창을 띄운다면 모를까 250기준의 콜과 풋은 이미 답안지가 나와 있는 문제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이성우만은 한진영의 의도를 이해했다.

“250언더 결제?”

이성우의 말소리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성우에게로 쏠렸다.

회의실에 자리한 사람 중에 내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이성우가 유일했다.

아래 직원들끼리 모여 심심풀이로 내기를 진행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팀장급 이상의 사람들로 이성우가 진행하는 내기에는 참여하지 않았었다.

당시 한진영이 250언더에 자신 있게 배팅하던 것을 본 사람은 이성우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성우의 말을 더욱 이상하게 받아들였다.

“250언더라니? 무슨 소리야?”

김정대가 이성우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이성우가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 만기 결제라인이 250이 아닌가 해서요.”

“결제라인 250이라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제 몇 분 뒤면 257에서 동시호가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3% 가까이 빠진다고? 그게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소리를 치려던 최준호는 동시호가에 사고가 터진다는 한진영의 말을 떠올리고는 천천히 시선을 한진영 쪽으로 돌렸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을 듣고서도 옵션별 미결제 잔량과 주체별 옵션 포지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50과 252.5는 휴지 확정이고…… 255도 휴지가 되며 257.5 결제 가격 놓고 싸우고 있는 거 잘 보이시죠?”

한진영은 말을 하고 255 풋 미결제 잔량 움직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거. 지금 어디서 매집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한진영의 말에 김석현이 급히 거래소와 직접 연결된 단말기로 주체별 움직임을 확인했다.

“외국계 증권사. 도이츠증권에서 대량주문을 넣고 있습니다.”

당장 2~3분 뒤면 동시호가에 들어갈 만큼 시간이 흘러 있었다.

만기 동시호가 때는 거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 거래를 한다는 것은 도박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개인들이야 그럴 수 있었다.

만기 날 배팅은 월드컵 승부를 맞추는 것만큼이나 스릴이 넘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들은 만기 날 거래정지 전에 배팅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매매에서나 나오는 일이었다.

그것도 소액으로 비싸 봐야 몇만 원 정도 길바닥에 버린다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 만기 동시호가 직전의 배팅이었다.

그런 배팅을 지금 다른 곳도 아니라 외국계 증권사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정대는 앉아있던 자세를 고치고 단말기를 쳐다보고 있는 김석현에게 확실히 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어디서 뭘 매수했다고? 확실하게 보고 이야기해.”

“확실하게 봤습니다. 확실하게 도이츠증권에서 조금 전…… 아니 지금까지 계속…… 255풋을 대량으로 매입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네. 지금까지…… 누적으로 5만 계약을 매수한 상태입니다.”

“5만 계약? 255 풋을?”

김정대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김석현을 바라보자 한진영이 김정대를 대신해서 그가 궁금해할 만한 것을 물었다.

“그럼 도이츠증권의 평균 단가는 얼마나 됩니까?”

“평균 단가는 1.0입니다.”

한진영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지금 255 풋은 휴지가 될 게 유력하기에 거래되는 단가는 0.1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도이츠증권의 평균단가가 1.0이라는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꾸준히 255 풋을 매집해 왔다는 이야기였다.

“당장 휴지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 50억을 태워? 다른 곳도 아니라 도이츠증권이?”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255콜 매도포지션 확인해보세요. 어디가 대량으로 매도포지션을 잡고 있습니까?”

한진영은 흥분한 표정의 김정대를 잠시 진정시켰다.

그리고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파악해갔다.

도이츠증권이 사고를 치며 외부에 많이 언급됐던 것이 풋을 대량으로 매집하여 수백억의 차익을 거뒀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수백억 이득을 취하기 위해 수조 원의 주식을 내다 던질 바보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 한진영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만기 포지션의 큰손은 매수 포지셔너가 아니라 매도 포지셔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진영은 도이츠증권이 진짜 이득을 본 자리는 콜옵션 매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풋옵션에서 이득을 취했다는 것만 외부로 드러나게 하고 실제 이득은 옵션 매도로 취하는 작전을 펼친 것이 아니냐는 것이 한진영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지난 시절에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미 장이 마무리되어 결제까지 끝난 마당에 어떤 포지션을 잡았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석현은 한진영의 지시에 따라 콜옵션 매도 포지션을 확인해 나갔다.

“어…… 그게…….”

“뭔데 빨리 이야기해봐.”

김석현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정대가 답답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준호는 그런 김정대의 모습에 냉큼 자기가 먼저 김석현이 보고 있는 단말기를 빼앗아 확인했다.

그리고 화면에 보이는 숫자를 불렀다.

“255 콜. 7만 계약 매도. 뭐야?”

보이는 대로 읽고 나서 자기도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김정대는 그런 최준호를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7만 계약? 평균 매도 단가는?”

“5.0…… 입니다.”

김석현에게 다가가려던 김정대는 그대로 자리에서 서서 한진영을 돌아봤다.

“콜 매도에는 350억을 태워? 만기 한 방에?”

“이게 끝이 아닐 겁니다. 그 이하는 어떻습니까? 255 이하 콜들 말입니다. 250까지의…….”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가 단말기에 고개를 묻고 보이는 숫자를 그대로 읽었다.

“252.5 콜은…… 5만 계약 매도. 매도 단가 7.0.”

“후우~”

“그리고…… 250콜은…… 3만 계약 매도. 매도 단가…… 평균 단가 10.”

한진영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 뒤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약 1,000억 매도. 아마 255 윗단에 있는 콜에 들어가있는 물량까지 더한다면 약 2,000억 정도는 가볍게 콜 매도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같네요. 거기에 풋 매수까지 더한다면…… 이러면 말이 좀 되겠어요.”

“말이 된다고?”

“들리는 이야기에 조 단위의 물량이 동시호가에 튀어나온다고 이야기 들어서요. 겨우 수백억을 벌기 위해 조 단위의 돈을 쏟아부었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매도분까지 더한다면 수익이 2,000억 수준까지 튀어 버리는 건데…… 이러면 수조 원을 집어 던진다는 게 설득력이 좀 생기는 것 같아서요.”

“뭐? 동시호가에 조 단위 물량을 쏟아낸다고?”

김정대가 놀라 소리친 사이 코스피200은 257.5를 기준으로 공방을 벌이며 동시호가에 들어갔다.

지수는 1,970선을 유지한 모습으로 누가 보더라도 만기지수는 257.5에 시장 참여자들이 대충 합의를 한 듯한 모습이었다.

김정대는 동시호가에 접어들어 예상지수가 떠 있는 화면을 보며 이야기했다.

“지금 모든 참여자가 257.5로 만기지수를 만들겠다고 합의를 한 상태처럼 보여. 그런데…… 여기서 조 단위의 물량이 쏟아진다고? 도대체 어디서 그런 물량을 쏟아낸다는 건가?”

“조금 전에 보시지 않았습니까? 도이츠증권이 옵션 판에 지금 꼴아 박은 돈이 2,000억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콜 매도에 미친 듯이 물량을 집어넣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상방은 인정 못 할 겁니다. 아니. 물량을 쏟아낼 걸 알고 옵션 매도에 물량을 미친 듯이 실었을지도 모르지요. 뭐가 됐든 결론은 같습니다. 도이츠증권에서 동시호가에 물량이 쏟아낸다. 이건 바뀌지 않을 겁니다.”

확신에 찬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한 한진영의 말에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였다.

김정대도 한진영을 믿었기에 점심나절 포지션을 다 풀어버리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여러 주체의 합의에 따라 지수가 하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렇게 한 곳의 증권사에서 조 단위의 물량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으며 상상한 적도 없었다.

“도이츠가 그 정도의 물량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최석영이 궁금한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도이츠증권이라고 하더라도 기관 명의로 들고 있는 물량이 조 단위를 넘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주머니에 든 물량을 싹싹 비우면 가능하겠지요. 혹은 주머니에 물량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같은 제도권에 있으니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법을 떠올렸다.

실물이 없어도 수기 결제를 이용하여 물량을 먼저 처리하는 것.

개인 매매자들은 불가능하지만 제도권에 속한 기관이기에 가능한 방법.

무차입 공매도와 같이 확정되기 전에 물량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먼저 매도를 때리고 나중에 물량을 확보하여 결제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의 말에 일제히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동시호가는 벌써 절반 이상이 지나 있었다.

옵션 시장은 거래가 정지된 채로 예상지수를 보며 결제라인을 예측할 뿐이었다.

여전히 결제라인은 257.5로 잡히고 있었다.

그러나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곳이 결제라인일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진영이 이야기하는 250언더.

사람들은 그곳에서 결제가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이 점점 깊게 들었다.

마감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대 본부장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급히 전화를 넣었다.

“야. 장근수.”

신호가 가자마자 소리를 친 김정대였다.

김정대는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장근수를 향해 소리 질렀다.

“너 혹시 상방 포지션 잡은 건 아니지? 아니. 그래. 상방포지션 잡아도 좋은데 설마…… 풋 매도 친 건 아니지?”

싸우면서도 그래도 가장 먼저 동기이자 친구를 챙기는 김정대였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김정대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발 아니기를 한마음 한뜻으로 빌었다.

“그래. 다행이다. 아니야.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장근수의 입에서 풋매도를 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 듯했다.

순간 긴장이 풀렸는지 김정대는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만기 카운트다운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257.5에서 꼼짝 않고 있던 지수가 점차 고개를 떨구고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뭐야? 삼선전자 -8%. 민국은행 -10%. 미래차 -12%. 동시호가에 갑자기 시가총액 상위주들이 대폭락을…….”

누군가의 입에서 대폭락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동시호가가 끝이 나고 말았다.

1,970 선에서 머물러 있던 예상지수가 갑작스럽게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1,960.

1,950.

1,940.

“잠정 지수. 1,915입니다. 코스피200은 249. 만기 결제라인이 250언더에서…… 형성됐습니다.”

1,970 선에서 단숨에 1,915까지 50포인트 이상 폭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초에 불과했다.

동시호가 10분 중 9분 50초 동안 움직이지 않던 시장이 갑작스럽게 10초 만에 3% 가까운 폭락을 보인 것이었다.

회의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그들의 하나같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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