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32화 (132/650)

132화 강선건설에서 투자금을 유치할 계획이다

만기 쇼크는 바로 그날 저녁 뉴스부터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외국계 증권사 창구를 통해 약 2조 5천억의 자금이 동시호가에 쏟아져 나왔다며 뉴스의 앵커가 놀란 목소리로 대본을 읽었다.

이렇게 쏟아진 물량에 종합주가지수가 동시호가에서만 약 3%에 가까운 폭락을 보였다는 이야기에는 앵커도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뉴스에서 언급된 외국계 증권사가 어디인지 눈에 불을 켜고 찾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특별 대책반을 서둘러 소집하여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사태를 파악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다.

금감원과 증권거래소 그리고 총리실 산하의 경제특위 등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2조 5천억이라는 자금을 쏟아낸 것인지 원인을 파악해 나갔다.

외부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는데도 신성증권은 조용하기만 했다.

다른 증권사들이 갑작스럽게 터진 만기 쇼크에 손실을 파악하는 중에도 신성증권만은 충격을 피해갔기 때문이다.

“도이츠증권이라면서?”

장근수가 김정대의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김정대의 손에는 서류가 들려져 있었지만, 눈은 딴 곳을 향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어제…… 한진영이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기는 지금 네 손에 들려져 있는 게 서류가 아니라 네 머리카락이었겠지. 가뜩이나 우리 나이에 머리카락이 수시로 빠져서 숱도 별로 없는데…… 나한테 가발 맞추자고 하지 마. 나는 가발 없어도 괜찮으니까.”

장근수는 말을 하고 슬쩍 김정대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라면 소리치고 화를 내야 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멍한 표정으로 있는 것이 아직도 어제 일에 대한 후유증이 남아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장근수는 그런 김정대의 반응에 흥미를 잃었는지 들고 있는 커피만 홀짝였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김정대는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장근수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궁금한 게 떠오른 김정대는 장근수를 향해 어제 일을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포지션 잡지 않은 거냐? 너 분명 상방 포지션 잡을 거라고 했잖아. 내가 그 이야기 떠올라 얼마나 놀랐는데.”

“그래서 그렇게 전화한 거였어?”

“그래. 혹시 포지션 잡았을까 봐.”

“그럼 좀 일찍 전화하던가. 동시호가 들어가서 포지션 어쩌지도 못할 때 전화해서 뭔 생색이야?”

장근수는 가볍게 김정대를 향해 투덜거리고는 들고 있던 커피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김정대 사무실에 찾아오자마자 단숨에 커피잔 하나를 다 비워낸 것이었다.

그는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고는 김정대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가 한진영이를 엄청나게 믿길래. 그래서 나도 혹시 몰라 각 지점에 연락해서 만기 날 오버하지 말라고 말했지. 이번 만기는 분위기가 영 안 좋으니 살살 몸 사리라고…… 뭐 그 덕분에 큰 사고는 안 터진 것 같다. 그래도 말 안 듣는 놈들은 말 안 듣더라. 저기 경북 쪽하고 강원도 쪽에서 사고 친 지점들이 있더라고. 그래도 내 말을 들었는지 큰 사고는 아니라서 다행이지 뭐. 그것만 아니었으면 깔끔했을 텐데. 에이~”

장근수는 짧게 혀를 찼다.

다른 증권사에 비하면 양호하다 못해 피해가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들의 경우에는 이번 쇼크로 인해 적게는 100억에서 많게는 수백억까지 엄청난 액수의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특히 매번 만기 날마다 양매도 포지션을 잡아 프리미엄만 쪽쪽 빼먹던 모 자산운용사의 경우에는 900억에 달하는 손해를 보는 바람에 회사 간판을 내려야 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벌써 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성증권이 봤다는 수억 단위의 손해는 다른 회사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너도 괜히 본부장 자리에 앉아있는 건 아니구나.”

“당연하지. 이런 촉이 있으니 여기까지 올라온 거 아니겠냐? 너도 알겠지만, 우리 동기만 해도 몇 명이야? 거기에 우리 위 기수, 아래 기수 다 합치면…… 그 사람들 다 제끼고 본부장 자리에 앉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냐? 나 너무 설렁설렁 보지 마.”

장근수는 말을 하고 커피잔을 다시 들어 올려 마시려 했다.

그러나 이미 커피잔은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조금 전에 커피를 다 마시고 내려놓았다는 것을 그새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장근수는 커피잔을 돌려 안에 남아있는 커피 방울을 혀로 핥으려 했다.

김정대는 설렁설렁 보지 말라는 말을 하자마자 팔푼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장근수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혓바닥으로 커피잔 바닥을 핥아먹던 장근수는 김정대의 모습에 커피잔을 내려놨다.

“너는 너희 본부 안 가냐?”

“거긴 나 없어도 잘 돌아가. 어차피 어제 피해도 별로 없었고…… 신경 쓸 것도 없어.”

“그래서 나 있는 곳에 온 것도 모자라 나 가려는 곳도 따라서 오려고?”

“어. 너 있는 곳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어제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어떤 자리?”

장근수는 김정대의 뒤를 따르며 매우 아깝다는 듯이 손뼉까지 치며 말했다.

“투자전략사업부에서 만기 쇼크를 애들하고 같이 구경했다며? 진영이 설명 들으면서…… 캬~ 그 자리에 내가 없었던 게 너무 아쉽다. 그걸 직접 같이 설명을 들으며 봤어야 했는데…… 주체별 투자 포지션까지 다 까보면서 지켜봤다는데…… 도이츠증권의 수상한 옵션 포지션을 확인하고 옵션 각 종목 부검까지 하면서 말이야.”

장근수는 연신 고개를 흔들며 김정대의 뒤를 따랐다.

“그걸 봤어야 했는데…… 그래서 어디 간다고?”

“휴우~”

김정대는 졌다는 표정으로 따라오는 장근수를 향해 말했다.

“어제 우리를 살려준 영웅한테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으러 간다.”

“진영이한테 물으러 간다고? 네가?”

“왜? 나는 그런 거 물으면 안 되냐?”

장근수가 고개를 빼 아래서 위로 김정대를 쳐다봤다.

마치 신기한 물건을 쳐다보는 듯한 장근수의 표정에 김정대가 인상을 찌푸리며 장근수의 얼굴을 밀어냈다.

그러나 장근수는 김정대의 손에도 물러나지 않은 채 계속 김정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천하의 김정대가 누군가에게 물어보러 간다고?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냐?”

“나는 뭐 물으면 안 되는 거냐?”

“아니야. 물어도 돼. 그런데…… 네가 누군가에게 묻는 모습을 20년 전에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본 이후 처음인 것 같아서…….”

“네가 못 봐서 그렇지. 나도 뭐…… 많이 물어봤어. 그만 이야기해.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오고 아니면 그냥 너희 본부나 가.”

김정대는 부끄러운 것인지 얼굴을 붉히고는 급히 발걸음을 놀렸다.

장근수는 그런 김정대의 모습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뒤를 따르며 계속 물었다.

“왜 창피해하냐? 누가 보면 숨겨놓은 애인 만나러 가는 줄 알겠다. 너 정말 진영이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애인 만나러 가는 건 아니겠지? 너 그러면 내가 제수씨한테…….”

“아 정말 시끄러워 죽겠네.”

김정대는 멀리 떨어지기 위해 발걸음을 빠르게 놀렸지만, 장근수는 그런 김정대를 놓치지 않고 뒤따르며 계속 김정대를 놀려댔다.

김정대와 장근수가 도착한 투자전략사업부는 어제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여긴 또 왜 이래?”

어제도 이맘때쯤 도착해서 빈자리들이 생긴 것을 이상하게 바라봤던 장근수였다.

그런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자리는 군데군데 비어 있었으며 아래 직원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다들 어디 갔어?”

장근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직원이 회의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회의실에? 어제 잘했다고 자축하고 있는 건가?”

장근수는 슬쩍 김정대를 바라본 뒤 회의실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엄연히 이곳은 장근수의 WM 본부 간섭을 받지 않는 독자적인 사업부였다.

그러나 행동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만큼 스스럼이 없다는 것이었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자주 왔다는 뜻이 발걸음에 담겨있었다.

“미안합니다.”

장근수는 슬며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에 모여 있던 투자전략사업부의 직원들은 갑자기 등장한 장근수의 모습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이어 들어온 김정대까지 확인하고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최준호 부문장이 장근수와 김정대에게 급히 달려와 둘을 반갑게 맞았다.

장근수는 그런 최준호 부문장의 팔뚝을 툭 하고 치고는 회의실을 살피며 말했다.

“아니. 한 부부문장하고 식사나 할까 해서 왔는데…… 다들 밥 안 먹어? 점심시간이야. 어제는 남들 점심 먹지 않을 때 다들 알아서 먼저 먹더니 오늘은 남들 다 점심 먹으러 가는데 여기 모여 있네. 뭐야? 투자전략사업부 컨셉은 청개구리야?”

장근수는 자리에 있는 직원들을 살펴본 뒤 회의실 앞 화이트보드에 적혀있는 글자로 시선을 옮겼다.

“강선건설? 투자금 2,000억 유치? 두선그룹에 강선건설 자금으로 코스피200 모든 종목에 프로그램 적용?”

장근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짓고는 자리에 앉아있는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장근수의 시선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회의실에 모여있던 사업부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자 조금 전 이야기한 대로 진행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다들 준비하기 바랍니다.”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장근수와 김정대에게 다가갔다.

“식사하러 오셨다고요? 그럼 식사하러 가실까요? 오늘은 동태탕 어떠십니까? 제가 직원들한테 들으니까 새로 연 동태탕 집이 서비스가 괜찮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동태탕? 동태탕도 동태탕인데…… 저게…….”

장근수는 화이트보드에 쓰인 글자의 의미를 물으려 했다.

그러나 김정대가 가볍게 장근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장근수는 김정대의 손길을 느끼고는 하려던 말을 멈췄다.

김정대가 어떤 의미로 자기를 잡아당겼는지 단번에 알아챘기 때문이다.

김정대는 장근수가 조용해지자 웃으며 한진영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동태탕 좋지. 오늘도 내가 살 테니 그렇게 알아.”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에 빙긋이 웃었다.

“설마 호텔 식사권에 숙박권을 이거로 퉁 치려고 그러시는 거 아니시죠?”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오늘 식사는 어제 이야기한 것과는 별개이네. 그리고…… 조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면 앞으로도 며칠간 더 식사를 책임질 생각이 있는데 어떤가? 조금 더 해줄 이야기가 있는가?”

김정대도 화이트보드에 쓰인 글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장근수처럼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려 이야기 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자기를 향해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은 화이트보드에 쓰인 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눈빛을 노골적으로 한진영을 향해 보냈다.

한진영은 김정대와 장근수를 위해 회의실 문을 직접 열어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식사 자리는 한동안 힘들 것 같습니다.”

“힘들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기 힘들다는 이야긴가?”

“아닙니다. 이야기는 해드려야죠. 뭐 크게 비밀도 아니니까요.”

“그럼 왜 힘들다고 하는 거지?”

“제가 바쁠 것 같아서요. 그러니 본부장님에게 점심을 얻어먹는 건 오늘까지만 하겠습니다. 물론 앞으로 두어 달 정도만 바쁠 것 같으니 그 뒤에 사주시는 건 감사히 얻어먹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가실까요?”

한진영이 회의실 밖을 향해 손을 내밀자 김정대와 장근수는 회의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김정대와 장근수는 한진영의 뒤를 따라 새로 열었다는 동태탕 집으로 향했다.

***

여의도 앞에 자리한 동태탕 집은 보통의 동태탕 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보통이라면 탁 트인 공간에 테이블이 놓여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벽 쪽으로 룸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곳과는 다른 사무실 분위기에 식당 주인이 영업 센스를 보인 것만 같았다.

“이런 곳이 생겼어?”

점심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멀리 나가야 했던 것과 달리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생겼다는 것에 장근수는 신기한 듯이 음식점을 둘러봤다.

앞으로 자주 애용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 음식 맛은 별로인가?”

점심시간인데도 휑한 음식점 내부를 보며 장근수가 혼잣말하자 김정대가 창피한 듯이 장근수의 등을 내리치며 말했다.

“너는…… 점심 먹으러 오면서 회사에다가 머리를 놔두고 온 거냐?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 못 해?”

“아~”

김정대의 말에 그제야 음식점이 휑한 이유를 깨우친 장근수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음식점을 살폈다.

“하긴. 다들 정신이 없겠네. 밥맛도 없을 테고…… 우리가 좀 특이하지. 이런 날 이렇게 점심을 먹으러 왔으니 말이야.”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가장 안쪽에 자리한 방에 들어간 한진영 일행은 가운데 테이블을 놓고 자리에 앉았다.

최준호는 한진영 곁에 앉아 급히 장근수와 김정대 앞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았다.

그리고 물컵에 물을 따르며 가장 막내가 할만한 일을 도맡아 했다.

실질적으로 가장 막내는 한진영이지만, 그는 숟가락 등을 놓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지금 맡고 있었기 때문에 최준호가 나서서 막내 역할을 자원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주문을 마친 뒤 자기 입만 바라보고 있는 김정대와 장근수를 향해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화이트보드에 쓰인 대로입니다. 저는 강선건설에서 2,000억의 투자금을 유치할 생각입니다.”

“강선건설에서? 2,000억? 어떤 명목으로?”

“이유야 많지요. 그들을 살려줬다? 혹은…… 그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문제를 해결해줬다? 어떤 게 좋을 것 같습니까? 본부장님께서 하나 골라주시지요.”

한진영이 입을 열면 자기들의 궁금증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던 두 사람의 얼굴에는 더욱 큰 궁금증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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