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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34화 (134/650)

134화 내가 갑이다

동태탕 집에서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는 최준호와 한진영 둘만이 함께했다.

김정대와 장근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채로 회사로 이미 떠나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가시면서 김 본부장님이 계산하고 나가시기는 하셨네요.”

한진영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박하사탕을 입에 물고 이야기했다.

최준호는 그런 한진영을 향해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뭐가요?”

“저 두 본부장님이 자네 말을 듣고 밥을 먹다 말고 회사로 달려갔잖아. 그걸 예상했냐고.”

“아~ 뭐…… 예상했으니까 제가 말을 꺼내지 않았을까요?

“단순히 지수 숫자를 알려준 게 전부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저럴 걸 예상했다고?”

한진영은 당황한 듯한 표정의 최준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숫자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같은 이야기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최준호도 한진영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김정대와 장근수에게는 어떤 종목이 당장 다음 달 2배 간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전체 지수의 흐름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큰 흐름을 알았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최준호는 확답을 듣지 못한 게 못내 꺼림직하기만 했다.

그들이 나가면서 알았다고 손을 흔드는 것만으로 그들이 도와줄 거라 믿어도 되는지 확신이 없는 최준호였다.

한진영은 최준호의 표정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도와주실 겁니다.”

“진짜? 아무리 그래도 2,000억인데…… 아까 장 본부장 이야기 듣지 못했어? 2,000억은 자기도 포기할 수 없는 금액이라는 말 말이야.”

“그거야 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의 생각이었지요.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을 겁니다. 지금 두 본부장님에게는 2,000억보다 당장의 연말 장과 연초 장이 더 중요하니까요. 두고 보세요. 아마 임원급 회의에서 적극적으로 부문장님을 밀어줄 테니까요.”

“그럴까? 나는 혹시 이야기 듣고 입을 닦는 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먼저 확답이라도 받아놓고 정보를 건네줄 걸 그랬어.”

여전히 걱정되는 듯한 최준호의 표정에 한진영이 웃으며 말했다.

“부문장님.”

“어?”

“두 본부장님이 저를 한번 보고 말 것도 아니고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셔도 돼요.”

“정말 그럴까?”

“그럼요. 다음에 저에게 소스를 받으려면 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예요. 더더군다나 제 말대로 흘러가는 시장에 더욱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할 테고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최준호는 몇 번이나 강조하여 걱정하지 말라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보면 허풍처럼 들릴지도 모를 이야기였다.

이제 겨우 서른을 눈앞에 둔 부부문장에게 소스를 얻기 위해 본부장급이 잘 보이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또한 자신만만한 태도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미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의 이야기와 상황이었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 한진영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은 본부장급이 아니라 대기업의 오너도 한진영의 입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진영의 입을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 더 추가됐다.

따르릉.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한진영의 전화기 벨이 울렸다.

한진영은 휴대폰 화면에 적힌 상대측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웃으며 최준호에게 말했다.

“부문장님.”

“어?”

“올라가시면 성우 좀 내려오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리고 저 잠시 외근 좀 다녀오겠습니다.”

“외근? 성우하고 함께?”

“네. 강선건설에서 보자고 할 것 같네요.”

한진영은 벨이 울리는 전화기를 최준호에게 들어 보였다.

최준호는 한진영의 행동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몸을 돌려 사무실로 올라갔다.

한진영은 멀어져 가는 최준호의 등을 바라본 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진영 씨. 저 천정모입니다.

“네. 천 전무님.”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지금이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회사 로비에 도착한 차를 타시겠습니까?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사 로비에 도착한 차요?”

천정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비 앞에 차가 도착했다.

그리고 운전석에서는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매번 한진영과 마주했던 강선건설의 직원이 운전석에서 내려 한진영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아는 얼굴의 직원을 보냈는데 확인하셨습니까?

“네. 지금 바로 제 앞에 있습니다.”

-그럼 그 차를 타고 바로 좀 와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조금 뒤에 뵙겠습니다.”

한진영은 전화를 끊고 다가오는 강선건설의 직원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자주 뵙습니다.”

“네. 그렇네요. 생각보다 자주 뵙게 되어 조금 놀랐습니다. 그럼 타실까요?”

“아니요. 잠시만요. 함께 갈 친구가 있어서요.”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건물 안쪽을 바라봤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건물 안에서는 이성우가 급히 옷을 여미며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 나왔다.

“아니. 어디를 가자고 불러?”

이성우는 옷을 만지다 한진영의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강선건설의 직원을 발견했다.

“어?”

“안녕하셨습니까?”

“그…… 강선건설에서 뵈었던 분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그럼 가실까요?”

한진영은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성우를 끌고 차로 향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손에 이끌려 차에 올라타고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질문보다 먼저 직원이 조금 전 했던 말을 떠올리고 물었다.

“자주 봐서 놀랐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경우가 드문가요?”

차에 시동을 걸어 운전하기 시작한 강선건설의 직원은 룸미러를 통해 한진영과 눈을 마주치고 대답했다.

“네. 이렇게 세 번이나 뵌 적은…… 저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한진영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여전히 룸미러를 통해 한진영을 바라보고 있는 직원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는 자주 뵐 테니 이제부터는 신기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되는 건가요?”

“네. 저는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이 되고요. 물론 회장님의 판단에 따라 다른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직원을 살짝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다시 바라보고는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의 눈에서는 의외라는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때까지도 가만히 한진영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강선건설 가는 거야?”

“어. 강선건설에 간다.”

“회장님께서…….”

이성우는 말을 하고 슬쩍 운전석 쪽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운전사가 강선건설의 직원이라 신경이 쓰였는지 말하는 게 조심스러운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고는 이성우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먼저 꺼냈다.

“어. 회장님께서 보자고 하신다.”

“직접?”

“뭐…… 직접은 아니지만 천 전무님을 통해 이야기를 전했으니 직접 전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안 그렇습니까?”

한진영이 귀를 세우고 있는 강선건설의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강선건설의 직원은 갑작스러운 한진영의 질문에 운전대를 잡은 채 급히 대답했다.

“네. 회장님께서 모시라는 지시를 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들었지? 회장님께서 뵙자고 하신 거란다.”

“그럼…….”

“내가 방을 나오기 전에 한 이야기를 따랐다는 얘기겠지?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도 들으셨을 테고…….”

“결정을 하신 걸까?”

“그렇게 쉽게 결정하실 양반이 아니야. 이번에도 불러다 놓고 간을 보려고 하실 거야. 찍어 먹어도 되는 놈인지 아니면 찍어 먹었다가는 탈이 날 놈인지 하고 말이야.”

“그걸 알고…… 가는 거야?”

이성우는 운전하는 강선건설의 직원을 슬쩍 살폈다.

한진영의 노골적인 이야기에 강선건설 직원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말을 하는 한진영이나 운전을 하는 강선건설 직원 모두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한진영은 운전하는 게 강선건설의 직원이 아니라 자기와 마찬가지의 신성증권 직원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어쩔 수 없어. 천 회장님하고 거래하려면 말이야. 그걸 견디는 사람은 계속 천 회장님과 거래를 하는 거고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천 회장님과 거래를 하지 못하지. 그리고 나 같은 경우는 또 이야기가 달라. 다른 사람들이야 을 입장에서 천 회장님과 만나러 가는 거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내가 갑이야. 천 회장님이 나에게 잘 보여야 해.”

“뭘…… 잘 보이기까지 해야 해?”

이성우가 이번에도 슬쩍 운전하는 강선건설 직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천계산 회장이 한진영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하는 듯한 눈치였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어깨를 잡고 운전석으로 같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앞에 운전을 하는 직원을 향해 말했다.

“잘 전하세요. 저는 앞에 계신 분과 자주 뵙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회장님의 태도가 앞으로의 만남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갑의 위치에 있으니 저에게 잘 보이셔야 한다고 꼭 전하세요.”

“야. 뭔 소리야?”

이성우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이성우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룸미러를 빤히 쳐다봤다.

강선건설의 직원의 눈이 천천히 룸미러를 통해 비쳤다.

그는 운전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셨습니까?”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한 분이 세 번이나 저를 찾으셨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드물다는 말에 확신이 생겼지요. 너무 노골적이셨습니다.”

이성우가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눈빛으로 운전하는 강선건설 직원과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한진영은 여전히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이야기했다.

“회장님이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하셔서 보내신 분이야.”

“뭐?”

“세 번이나 마주했으니 좀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내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말이야. 그런데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물어보면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기분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네.”

운전하고 있던 직원은 룸미러로 한진영을 보는 게 아니라 고개까지 돌려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운전하고 계시는 분이 죄송할 일이 아니지요. 회장님이 시키신 걸 텐데요. 뭘…… 그것보다 제 이야기를 잘 전하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운전하시는 분과 자주 만나고 말고는 제가 아니라 회장님의 선택에 따라 달렸다고 말입니다.”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이성우의 어깨에 올린 손을 내렸다.

그리고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봤다.

차에 타자마자 한진영이 대화를 나눈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 앞에 앉아 있는 강선건설의 직원이었음을 이성우는 알게 됐다.

***

차가 강선건설에 도착하자 건물 밖에까지 천정모가 나와 찾아온 한진영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안녕? 안녕했다면 했고…… 그렇지 못했다면 못 했지요.”

애매모호한 말을 던진 천정모에게로 직원이 다가왔다.

그는 천정모를 향해 손을 가리고 귓속말을 건넸다.

직원의 말을 들은 천정모의 안색이 살짝 변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본래의 표정을 찾고는 한진영을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가시지요. 회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네.”

차에서 내린 이성우는 천정모가 앞서 걸어가자 한진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성우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 아무래도 조금 전 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신경 쓰는 것만 같았다.

이성우는 한진영에게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너무 심했던 거 아니야?”

“심하기는…… 오히려 내 생각보다 덜한 게 아닌가 싶다.”

한진영은 아쉬운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걱정하는 이성우를 보고 웃었다.

“그게 걱정돼 온 거야?”

“어. 걱정되니까. 조금 전에 운전했던 직원이 정모 형한테 우리 이야기를 한 것 같기도 하고…….”

“같기도 한 게 아니라 했겠지. 그리고 하라고 내가 그런 거야.”

“하라고 그런 거라고? 왜?”

당황스러운 표정의 이성우였다.

우리 집도 아니라 남의 집에 가면서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를 이유가 있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한진영은 여전히 걱정하는 이성우의 팔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긴 후 이야기했다.

“오늘 결론을 내고 싶어서 그래.”

“결론? 무슨 결론?”

“이곳 회장님은 매우 피곤한 성격의 사람이라 쉽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내가 여기에만 묶여서 다른 일을 못 보면 어떡하겠냐? 그러니 간 볼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이야기한 거야. 그리고 좀생이처럼 틀어쥐고 있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놓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혹시…… 우리 투자금?”

아무리 강선건설이라도 2,000억이라는 투자금을 선뜻 내놓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이성우는 그 돈을 주머니에서 털어놓게 하기 위해 한진영이 차 안에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그것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투자금에 더한 걸 끌어내기 위해 그런 거야. 너는 내 옆에서 얼굴 잘 비추고 있으면 돼. 너는 간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

한진영은 웃으며 이성우의 팔뚝을 때린 후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성우는 한진영과의 페이스를 맞추기 위해 빠르게 발을 놀렸지만, 여전히 한진영의 발걸음 속도를 맞추기에는 버거운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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