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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36화 (136/650)

136화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다

한동안 웃던 천계산이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 아버지인 이 회장님이 그러더구나.”

천계산은 가만히 이성우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네가 이제 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이다.”

“아버지께서요?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그래. 나에게 그랬어. 이제 좀 네가 쓸 만해졌다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예전부터 성우는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 그렇게 말하냐고 말이야. 그러자 이 회장님께서 그러시더구나.”

천계산은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친구를 잘 만나서 그런 것인지 이제 사업이 무엇인지 좀 아는 것 같다고 말이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참 이 양반이 자식에게 소홀하지 않았냐고 생각했다. 아무리 친구가 중요하다지만 친구 때문에 어찌 사업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인지 아직도 제대로 아들을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천계산은 한진영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한진영의 눈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듯이 한진영의 눈을 깊이 쳐다봤다.

마치 눈싸움을 하는 듯이 한동안 한진영의 눈을 바라보던 천계산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이제 그 말의 뜻을 알겠구나. 여보게. 한 부부문장.”

“네. 말씀하십시오.”

“기왕에 성우하고 함께 노는 거 우리 아들도 같이 데리고 노는 것은 어떻나?”

“아버지.”

한참 어린 동생을 향해 데리고 놀아달라는 말이 무안한 천정모였다.

그러나 천계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천정모의 손을 잡고 한진영에게 계속 이야기했다.

“남들은 10년.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준비해야 하는 게 바로 이 승계 문제라고 하더군.”

천계산은 천정모의 얼굴을 슬쩍 돌아봤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을 수 있다는 말이지. 그래서 마음이 조급했었네. 마침 그때 도이치증권이 날 찾아왔어. 자기들과 함께 승계작업을 준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야. 솔직히 솔깃했네. 그냥 이 녀석에게 지분을 넘겨주다가는 최소 3,000에서 많게는 4,000억의 세금을 두들겨 맞을 수 있었으니 말이야. 그것도 현 주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4,000억이지 미래에는 어떻게 될 일인지 모르는 것 아닌가?”

한진영은 천계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계산은 한진영이 자기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을 깨닫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미리부터 준비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 그래서 조금 조급했었나 봐. 도이치증권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으니 말이야. 그런데 마침 이 녀석이 자네 이야기를 하더군. LZ의 골칫거리를 해결해주는 것을 옆에서 봤다며 자네에게 이야기해보는 건 어떠냐고 이 녀석이 그렇게 졸랐어. 그래서 자네를 만난 거네.”

“다행이군요.”

“다행이지. 정말 다행이야. 그날 자네를 만나 자네가 나를 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다음날 도이치증권과 작업에 들어갔을 테니까 말이야.”

한진영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천정모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찾으려고 했던 강선건설이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려 천정모가 부른 것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일이 잘 풀린 것이었다.

천계산은 한진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 채 그저 아련한 표정만 지었다.

마치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듯한 천계산의 표정에 한진영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날 이후 몇 번이나 생각했었네. 어땠을 것 같나?”

천계산이 한진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천계산을 향해 천천히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건넸다.

“도이치증권과 함께 묶였겠지요.”

“그랬을까?”

“분명합니다. 사고가 터지기 전에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부터 의심을 받기 좋으니까요. 게다가 계약의 내용이 승계라는 것에서 의심은 더욱 짙어졌을 겁니다. 금감원과 증권거래소는 물론이고 정부의 경제부처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든 연관성을 찾기 위해 강선건설을 수년 동안 들쑤셨을 게 분명합니다.”

“정말 그렇게 됐을까?”

“백 프로입니다.”

한진영의 말에는 의심의 빛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천계산은 한진영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랬다면 아찔해. 정말 아찔해.”

천계산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뒤 한진영에게 말했다.

“자네 덕분에 큰 위기를 피해서 정말 고마운 마음이야.”

“집값은 좀 한 것 같나요?”

한진영은 주머니에서 지난번에 받은 아파트 열쇠를 꺼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손에 올려져 있는 열쇠를 보고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쳐다봤다.

“너도 받았어?”

“어. 돌고 돌았지만 내 손에도 들어왔지.”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계산을 바라봤다.

천계산은 한진영의 손 위에 올라가 있는 열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히려 부족한 기분이야. 지금 같아서는 뭘 더 해주고 싶은데…… 보자.”

천계산은 한진영의 열쇠에 적혀있는 숫자를 메모지에 적었다.

그리고 메모지를 천정모에게 건넨 후 한진영을 향해 웃었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바꿔주지.”

“지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넓을 것 같은데요?”

“아니야. 딱 4채만 따로 지은 게 있는데 그것 중에 하나를 내어주도록 하지. 이걸로 자네의 고마움을 모두 갚을 수는 없지만 내 성의라고 생각하게.”

천계산이 어떤 집을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었다.

서울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 개념으로 지은 집이 바로 지금 천계산이 주겠다는 집이었다.

“분양가로 책정해 놓은 게 30억인데…… 실제로 분양을 받겠다고 나오는 사람은 없었어. 우리도 예상했던 일이지. 분양가가 너무 높았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는 거니 그렇게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되네. 분양가가 30억이지만 사실 실제 거래되는 금액은 그보다 더 낮을 테니까. 게다가 가지고 있으면 나가는 세금까지 생각한다면…… 그리 큰 선물은 아니야. 오히려 짐일 수도 있어.”

별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하는 천계산이었지만, 한진영은 알고 있었다.

천계산이 업그레이드시켜준 펜트하우스는 앞으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집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중에는 200억에 거래가 된다는 것도 소문도 돌 정도였으며, 실제로 거래가 되는지조차 의문인 집이었다.

그 집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은 팔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4채만 따로 지었다는 프리미엄까지 붙어 한동안 서울에서도 부의 상징으로 이야기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천계산은 한진영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자기 선물이 나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덩달아 즐거워하며 손뼉을 쳤다.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정모야.”

“네?”

“여기 지금 인테리어 공사 중이지?”

“네. 지금 한창 인테리어 공사 중이기는 한데…… 그건 왜…….”

“내 지시라고 특별히 이야기해서 바닥하고 벽 그리고 안에 들어가는 자재들 싹 다 최고급으로 집어넣으라고 해.”

“최고급으로요?”

“어. 혹시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직접 말하게. 정모한테 이야기하면 원하는 대로 꾸며 줄 거야. 그리고 정모야. 여기 있는 한 부부문장의 집을 최우선으로 준비하라고 해. 알았지? 괜히 좋게 꾸민다고 시간 더 끌지 말고…….”

강선건설의 회장이 직접 챙긴다는 뜻을 작업자에게 알리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허투루 작업할 사람이 없을 것이며 예정을 벗어나 입주를 받는 일도 없게 되는 것이었다.

천계산의 말에 한진영이 웃으며 말했다.

“괜히 부담을 주시는군요.”

“부담이 아니라 내 성의라고 알아주게. 앞으로 함께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주는 선물이라고만 알고 있게. 그런데…… 그 회사 말이야.”

선물이라며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행동은 달랐다.

바로 조금 전 이야기한 것에 의문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천계산이었다.

“자네가 이야기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네. 회사를 키워 그 회사의 지분을 통해 상속에 들어가는 자금을 확보하자는 거지?”

“조금 더 멀리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멀리 보라고?”

“네. 강선건설은 급격하게 외형을 불리며 쓸데없는 군살이 많이 끼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군살 빼기에 돌입하셔야지요.”

천계산은 한진영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

한진영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천계산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강선건설의 군살을 떼어내어 자회사들을 설립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강선건설도 체중이 좀 줄지 않겠습니까? 산만했던 덩치가 줄어 뒷산 정도쯤이 되면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걸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알고 있지?”

“알고 있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고, 마침 시기가 딱 좋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주사로 체제를 전환해야 하네. 지주사로 전환을 하면…….”

“지주사 있지 않습니까?”

“그래. 알아 강선건설을 중심으로 자회사들을…….”

“아니요. 새롭게 만들 회사.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야지요. 강선건설로 모이면 큰일 납니다. 그렇게 되면 군살을 뺀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어?”

천계산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그런 천계산을 향해 차분히 설명했다.

“지주사는 새롭게 설립될 회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상속세를 낼 필요가 없지요. 물론 강선건설에 대한 회장님의 지분이 희석되고 가치가 떨어지겠지만, 그룹의 지배력은 고스란히 여기 있는 천 전무에게 넘어가는 것일 테니 그게 바로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나?”

“가능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니 제가 말씀드리는 것 아닐까요? 저만 믿으십시오. 정 저를 못 믿으시겠다면 회장님 자신을 믿으세요. 저에게 이런 선물을 주신 이유가 제 계획을 믿고 싶어서 아닙니까?”

한진영은 손안에서 놀고 있는 키를 잠시 공중에 던져 다시 받았다.

집을 건네줬을 때의 그 생각을 잊지 말라는 행동이었다.

천계산은 가만히 열쇠를 바라보다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새롭게 설립된 회사가 기틀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회사가 밀어주다 보면 의심 사기 딱 좋지 않나?”

“그래서 의심 없이 회사의 기틀을 잡게 해드리기 위해 이 친구를 데리고 온 것 아닙니까?”

한진영이 천계산의 말에 이성우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천계산은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 기풍철강에서 나오는 철근부터 시작하시지요. 이 회장님께는 이 친구가 잘 이야기 해놓을 겁니다.”

“자재를 받는 루트가 바뀌는 건데…… 기풍철강에서 싫어하지 않겠나?”

“그건 이 친구가 이 회장님을 설득할 겁니다.”

“내가?”

이성우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네가 할 거야. 설득.”

“어…… 어. 알았어. 해볼게.”

한진영은 이성우의 대답에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고 계속 이야기했다.

“기풍철강이 시작을 하면 다른 곳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따라가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의심이 생기기 전에 기틀부터 먼저 잡히겠죠. 그럼 그 뒤는 자연스럽게 진행해도 됩니다. 의심과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한진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천계산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아직 자회사로의 계열 분리가 되어 있지 않으며 지주사 역할을 할만한 회사가 생기지 않은 곳. 이런 곳만이 써먹을 방법이지요. 새롭게 설립된 회사에 일감을 팍팍 밀어주어 회사를 크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다른 곳의 일을 하지 않아도 연 매출 1조 원을 넘기는 데 10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주사의 역할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기틀이 잡히게 될 테니. 딱 좋지요. 지금부터 준비해서 밀어붙이면 10년 뒤에는 자연스럽게 여기 계신 천 전무님에게로 그룹 경영권이 넘어가게 될 겁니다. 딱 20억만을 써서 말입니다.”

천계산은 한진영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진영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마치 그렇게만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방법이 가장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 천계산이었다.

“그런데 걱정이 한 가지 있네.”

“사람들의 비난이 걱정되시지요?”

매번 질문하지 않아도 핵심을 찔러오는 한진영이었다.

천계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필연적으로 회사를 키우며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일 게 분명하네. 정부나 언론이야 내가 어떻게 해본다지만…… 대중들의 시선까지 내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회장님의 지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희석된 회장님의 지분 말입니다.”

“그게 왜 필요하지?”

“그걸 내놓으시면 됩니다. 여러 가지 논란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사회에 기부하는 겁니다.”

“기부?”

“재단을 설립하여 소외계층을 위해 써달라고 먼저 선수를 치십시오. 그렇다면 사람들도 바라보는 시각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을 겁니다.”

“자네…….”

천계산은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준비한 건가?”

한진영은 천정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천정모는 이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는지 멀뚱멀뚱 한진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난 조용재 상무의 별장에서 천 전무님을 뵈었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 상무가 고민이 많듯이, 천 전무님도 고민이 많았을 테니까요. 대충 지금 나이대의 재벌 자식들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고민 아니겠습니까?”

“운명적으로 자네를 선택했다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닌가 보구먼.”

“운명은 운명이지요. 이렇게 만나 앞으로 강선건설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왕에 여기까지 이야기가 흘러온 것 제가 원하는 것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해보게. 이렇게까지 다 준비했으니 자네가 원하는 것 또한 범상치는 않을 것 같으니 말이야.”

천계산의 말에 한진영은 손가락을 두 개 들어 펴 보였다.

“2,000억. 저희 신성증권에 2,000억을 투자해 주십시오. 제가 그 돈을 튀겨 드리겠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천계산은 큰소리로 웃었다.

방 안에 가득 천계산의 웃음소리가 가득 들어차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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