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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37화 (137/650)

137화 어차피 일어날 일

강선건설에서 나와 회사에 도착한 이성우는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한진영을 근처 커피숍으로 끌고 들어갔다.

“회사가 코앞인데 왜 여기로 왔어? 그냥 회사에서 커피 타 마셔도 되는 걸 가지고…….”

“빨리 좀 이리 와 봐.”

커피를 주문한 이성우는 오후 한적한 커피숍 한 귀퉁이로 한진영을 끌어당겼다.

“어허. 거참. 남들이 오해하게 왜 구석으로…….”

“아 쫌~”

“알았다. 알았어. 왜 네가 더 난리야? 앉자. 앉아.”

농담할 기분이 아니라는 듯한 이성우의 모습에 한진영은 고분고분 이성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성우는 자리에 앉은 후 잠시 주변을 살피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아까 뭐?”

“이게 참……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도대체 뭐가 궁금해서 그러는 거야? 귀찮으니까 빨리 물어봐. 어차피 조금 뒤에 또 똑같은 대답을 할 것만 같으니 말이야.”

한진영은 귀찮은 듯이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들이켰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제일 궁금한 것 하나를 물었다.

“이거 괜찮은 거냐?”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빨대를 입에 물고 있던 한진영은 이성우를 가만히 지켜봤다.

“실현 가능성을 물어보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어떤 의미의 괜찮냐고 묻는 거냐?”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겠어?”

잠시 목소리가 커진 것 같다고 느낀 이성우가 급히 주변을 둘러보고는 몸을 숙였다.

혹시라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런 이성우와 달리 한진영은 태연한 표정으로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마시기만 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신 한진영은 반쯤 비워진 컵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무조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지. 편법 승계라느니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한 행위라면서 손가락질할 거야. 거기에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는 한동안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 딱 좋은 이야기지.”

“그러니까 말이야. 그런데 왜 그걸…… 추천했어?”

“어차피 일어날 일이니까.”

“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어서 그런 것인지 몸을 굽히고 있던 이성우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오히려 몸을 숙이며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일어날 일이었어. 내가 아니라 그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나와도 나왔을 이야기야. 아니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도록 천 회장이 상황을 만들어갔던가. 뭐 어쨌든…… 나는 그걸 조금 더 빨리 천 회장에게 알렸을 뿐이야. 내가 모르던 사실을 알려준 건 아니라는 말이지.”

“그럼 어차피 이런 식의 승계 절차가 이루어질 거라는 이야기야?”

“그래. 지금은 이런 류의 상속이 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킬만한 시기가 아니니까.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천 회장이 그냥 넘어갔을 것 같아? 시간문제였어. 나는 그걸 먼저 이야기하고 내 이득을 취한 것뿐이야.”

한진영의 말에도 이성우의 눈에 담겨있는 불안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런 식의 승계 절차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편법은 편법이잖아. 사람들 눈에는…….”

“그래서 내가 이야기했잖아. 기부하라고 말이야. 사람들의 시선에 불의라는 단어가 보이기 전에 먼저 선수 쳐서 천 회장의 지분을 사회에 환원시키면 사람들도 계속 강선건설을 나쁘게 보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한진영은 다시 컵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잔에 담긴 커피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한진영은 얼음만 남은 커피잔을 잠시 좌우로 흔들고는 바닥에 내려놓고 이야기했다.

“내가 이야기했으니 천 회장 주머니에서 기부라는 것을 꺼낼 수 있었던 거야. 그러지 않았다면…… 기부? 사회 환원? 그 노랭이 천 회장이 퍽이나 했겠다. 절대 주머니에서 돈 꺼내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데 내 손모가지를 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이 방법이 쓰였다면 말이지.”

지난 시절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기자회견을 열어 기부와 사회 환원 이야기로 비난을 잠시 잠재웠던 천계산이었다.

그러나 비난이 잦아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닦아 버렸다.

처음과 달리 두 번째 비난은 강도가 많이 사그라진 것이었기에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승계 절차가 많이 진행된 상황에서 되돌릴 수도 없었다.

지난 시절의 천계산은 단돈 20억으로 거대한 강선건설을 아들에게 넘겨주는 작업을 성공했다.

“나는 어차피 일어날 일에 내 이득을 취하고 조금이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오히려 도움을 준 거야. 내가 편법을 가르쳐 준 게 아니라.”

한진영의 단호한 말에 이성우는 더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진영의 말대로 그가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벌어졌을 일이라는 것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걱정되는 부분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그 노랭이 천 회장이 진짜로 기부를 할까?”

“하게 만들어야지. 걱정하지 마. 그건 내가 생각해 놓은 게 있으니까. 한 5,000억쯤? 그 정도 내놓게 하면 되겠지.”

“5,000억을 내놓게 한다고?”

이성우는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5,000억이라면 상속세 이상의 돈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상속세 내는 돈도 아까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내게 한다는 것인지 이성우는 알 수 없었다.

한진영은 놀란 눈을 크게 뜬 이성우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나랑 함께 있으면서 잘 봤으니 알겠지? 내가 한다고 하면 그렇게 됐다는 거 말이야. 걱정하지 마. 5,000억을 내놓게 만들 방법이 다 있으니까. 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네 아버지에게 가서 이야기할 거나 신경 쓰면 돼.”

“아버지한테…… 아~ 그거?”

“그래. 다 널 위해 내가 마련해 둔 거다. 이거로 너도 점수 더 따야지.”

이성우의 표정이 화사하게 변해갔다.

“그런데 정말 아버지가 내 말 들을까?”

“원래 실적이란 게 쌓기가 어렵지 한번 쌓으면 잘 무너지지도 않아. 지난번에 네가 쌓은 실적이 있으니 이번에도 들어주실 거다. 넌 그저 오늘 보고 들은 것만 잘 기억했다가 아버지한테 이야기하기만 하면 돼.”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만 잘 따라오면 기풍철강의 꼭대기에 앉혀주겠다는 말. 허투루 한 게 아니니까 잘 따라와. 가자. 들어가서 보고하고 앞으로 일 설명하려면 또 한참 이야기해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한진영이 먼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성우는 급히 앞에 놓여있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한진영의 뒤를 따라 커피숍을 나갔다.

이성우의 표정인 처음 커피숍에 들어올 때 보였던 걱정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

이정훈 회장은 앞에 앉아 있는 이성우를 빤히 바라보고 말했다.

“이게 모두 사실이냐?”

“사실이에요. 제가 왜 비싼 밥 먹고 허튼소리를 하겠어요?”

말을 하는 이성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모습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 전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을 이성우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기가 허튼소리를 왜 하겠느냐는 반응을 보이었다.

이정훈은 바뀐 이성우의 모습에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고는 말했다.

“좋아. 천 회장이 부탁하는데 들어줘야지. 덕분에 천 회장에게 빚을 지우게 되는 건가?”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그냥 고마운 정도? 그쯤으로만 여기시는 게 좋을 거예요. 괜히 빚이라느니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는 지금까지 이어온 천 회장과 좋은 관계도 망칠 수 있으니 너무 나가지는 마세요.”

이성우의 말에 이정훈은 가만히 이성우를 바라보고 물었다.

“한진영 그놈이 이렇게 말하라고 시키던?”

“네? 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이성우는 화들짝 놀랐다.

이정훈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네 표정을 보니 스스로 생각해서 이야기한 건가 보구나. 그럼 다행이다. 나는 네놈이 머릿속까지 모두 그놈에게 물들었을까 걱정한 건데…… 네놈이 직접 생각해서 말한 것 같아 안심이다.”

“죄송해요.”

“아니야. 죄송할 것 없다. 나는 오히려 이런 네 모습이 매우 만족스럽구나. 대견해. 아주 대견해. 역시 자식을 품 안에만 껴안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옛말이 틀린 게 없는 것 같아. 너를 내보내니 이리 성장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

이성우는 살짝 눈을 치켜뜨고 이정훈을 살폈다.

정말로 자기를 대견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로만 그러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정훈의 표정은 말로만 대견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만족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었다.

이성우가 가지고 온 말과 그의 태도 그리고 무의식중에 나온 말까지 모두 이정훈의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뒤는 이 아비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이번에 물어온 것도 우리 기풍을 위해 아주 도움 되는 것이니 말이야.”

천 회장의 강선건설을 돕는 일이라면 싫어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먼저 강선건설에서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이런 일은 없어서 못 할 정도로 귀한 일이었다.

빚을 지우는 것까지 나가지는 말라고 하지만, 어쨌든 이런 류의 도움은 상대방이 고마움을 넘어서는 무게를 지우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서 한진영에게 그냥 진행해도 된다고 이야기해.”

“네. 그럼…….”

이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를 만나러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이성우였다.

싫다고 하면 어쩌나, 그대로 하는 대신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면 어쩌나 걱정이 가득했다.

그러나 설득은 할 필요도 없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만으로 바로 알아들은 이정훈은 한진영의 뜻을 따라 강선건설이 새롭게 설립하는 회사의 첫 계약자가 되기로 나선 것이었다.

이성우는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이정훈의 방을 나갔다.

이정훈은 잠시 떠나가는 이성우의 뒷모습을 보다 인터폰으로 김 비서를 불러들였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어. 들어와.”

김 비서는 이정훈에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정훈은 김 비서를 불러들인 후 무언가 고민을 하는 듯이 양손을 맞잡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김 비서는 그런 이정훈의 곁에서 이정훈이 생각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한동안 생각을 하던 이정훈은 고개를 들어 김 비서에게 조금 전 이성우가 했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던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써도 되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은데…….”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를 키워 상속세를 마련하는 방법은…… 알게 모르게 많은 기업이 쓰는 방식입니다.”

“그래. 그러니 우리도 한번 해보는 게 어떤가 싶어서 자네를 부른 거네.”

“하지만 회장님. 위험부담이 큽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괜히 잘못하다가는 정부에 찍혀 본보기가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

“맞습니다. 굳이 그런 리스크를 떠안고 진행해야 할 만큼 매력적이냐고 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 비서의 말에 이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돈에 눈을 붉히고 있는 천계산이나 앞뒤 생각하지 않고 쓸만한 방법이지. 쩝.”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신 이정훈은 등받이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조금 전 이성우가 떠난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그건 그런데…… 성우가 많이 바뀌었어.”

“지난번하고 또 다른 것을 느끼셨습니까?”

“그래. 또 느꼈어. 그런 의미에서…….”

이정훈은 고개를 돌려 김 비서를 올려다봤다.

“회사로 불러들이는 건 어떨까?”

김 비서는 이정훈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도련님을 불러들이신다는 말씀은…… 본격적인 후계 구도를 정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우리도 슬슬 정해야 하지 않겠어? LZ도 그렇고 강선도 그렇고 다들 후계를 준비하는데 우리만 너무 느긋하게 있는 게 아니냐 싶어서…….”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고? 그게 무슨 의미지?”

김 비서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미 외부에서는 우리 기풍은 후계 구도를 정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계 구도를 정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정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외부에서 그렇게 생각해?”

“이미 외부에서는 아가씨로 정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허.”

송구한 듯한 김 비서의 태도에 이정훈은 허탈한 듯이 웃었다.

“내가 그렇게 매몰차게 성우를 대했던가?”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김 비서는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마당에 못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다 이야기했다.

“매몰찬 정도가 아니셨습니다. 거의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하셨습니다.”

“내가? 내가 그랬다고?”

“남보다 못한 수준이었지요. 게다가 아가씨와 비교가 더 됐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기에는 후계는 고사하고 집안의 수치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으로 우리 기풍과 도련님을 지켜봤습니다.”

“허허.”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도련님을 불러들이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가 있는 행동이라 생각됩니다.”

“오해? 무슨 오해?”

김 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지도 모르니 제거하겠다는…….”

“그만! 알겠네.”

이정훈은 손을 들어 말을 멈추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그랬단 말이지. 알았네. 그럼 우선 성우는 놔두도록 하지. 허허. 내가 그 정도로 보인 건가?”

이정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성우가 떠난 문을 가만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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