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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39화 (139/650)

139화 승계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대한정유 본사가 자리한 마포에 도착한 한진영은 대한정유 본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기를 맞으러 나온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한진영은 차에서 내리며 찾아온 대한정유의 직원을 둘러봤다.

한진영을 반기기 위해 찾아온 회장 비서실의 직원들은 스무 명이 넘었다.

한진영은 한편으로 웃음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너무 과합니다.”

“과하지 않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미리 알려주셨다면 현수막까지 만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늦게 알려주셨다고 아쉬워하셨습니다.”

“현수막이요? 하하…….”

한진영은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흘리고는 차 키를 마중 나온 직원을 향해 건넸다.

그는 열쇠를 받아 들고 한진영 차를 대신 운전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뒤를 이어 직원이 다가와 한진영을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온 듯이 회장실 비서들이 총출동한 모습에 대한정유의 직원들이 한진영을 바라보고 쑥덕거렸다.

사람들의 쑥덕거림은 한진영의 귀에까지 들렸다.

사위일지 모른다는 소리와 숨겨놓은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소리까지 온갖 소리가 한진영의 귀로 들려왔다.

그런 소리는 직원의 귀에도 들린 듯했다.

앞서 걷던 직원은 한진영을 돌아보고 미안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한진영은 그런 직원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보인 후 묵묵히 직원의 뒤를 따랐다.

이런 한진영에 대한 관심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회장실 앞에 갈 때까지 계속됐다.

“들어가십시오.”

안에 있던 윤길영에게 한진영이 도착했음을 알리고 비서가 열어준 문을 통해 안에 들어오고 나서야 관심이 끝이 났다.

“이게 얼마 만인가? 잘 지냈나?”

윤길영이 반가운 듯이 인사하자 한진영도 꾸벅 윤길영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늦게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우리 사이에 늦게 찾아뵙고 말고 할 게 무어 있나? 이렇게 왔으면 됐지?”

생각 이상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윤길영의 모습에 ‘우리 사이’가 무엇인지 물어볼 뻔한 한진영이었다.

윤길영은 직접 한진영의 손을 잡고 소파로 안내하여 자리에 앉게 해주고는 한진영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직접 찻잔에 찻물을 따라주는 것이, 사위가 찾아온 것 이상으로 한진영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회장님. 괜찮습니다.”

“아니야. 자네 차는 내가 직접 따라 줘야지. 한번 맛보게. 이번에 내가 중국에 출장 갔다가 받아온 벽라춘이라네. 장쑤성에서 생산한 아주 본토박이 진짜 찻잎이라네. 어떤가? 향이 아주 그만이지?”

한진영은 눈앞에서 찻물을 어서 맛보라는 윤길영의 눈빛에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차 맛을 맛본 뒤 윤길영의 말에 맞장구쳤다.

“아주 좋습니다.”

“그래.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네.”

윤길영은 기분이 좋은지 손으로 무릎을 치고 즐거워했다.

그리고 웃으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자네가 찾아오겠다는 연락에 오늘 스케줄을 모두 취소했다네.”

“괜히 저 때문에 바쁜 일정을 취소하신 것 아닙니까?”

“제일 바쁜 일정이 바로 자네라네. 그러니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뒤로 쳐지는 것들은 취소해야지. 괜찮네.”

“제일 바쁜 일정이 저라고요?”

한진영은 윤길영의 말에 미소 지었다.

어떤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한진영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소를 지은 것이었고 윤길영은 그런 미소를 보고 이야기를 바로 던졌다.

“빙빙 돌려서 얘기하지 않겠네. 여보게. 한 부부문장.”

“네.”

“우리도 해주게.”

“해달라니요? 무얼 말씀입니까?”

한진영이 모르는 척 윤길영의 말을 떠봤다.

윤길영은 한진영이 떠본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알면서 그러지 말게.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LZ도 그렇고 강선도 그렇고 다 자네 솜씨 아니던가? 난 이야기 듣고 좀 섭섭했다네. 내가 자네를 알면 그들보다 먼저 알지 않았나? 그럼 나한테 먼저 제안을 했어야지. 설마 내가 LZ나 강선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서 나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은 건가?”

“설마 제가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대한그룹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부터 먼저 해결해줬어야지.”

한진영의 말에 마음이 조금 풀어진 것인지 윤길영은 다시 웃는 얼굴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오늘 나를 찾은 것이 바로 그것 때문에 온 거겠지?”

한진영은 윤길영의 말에 그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윤길영은 한진영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엉덩이를 들썩였다.

“강선이 2,000억을 내놓았다고? 나도 내놓겠네. 어떤가? 그럼 되겠나?”

윤길영의 말에 한진영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회장님.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오해하다니?”

“강선건설이 저희 회사에 내놓은 2,000억이 마치 사례금처럼 들릴 수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례금처럼 들린다고?”

“네.”

한진영은 들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차 받침대에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저를 과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도 제가 누구인지 궁금해할 정도더군요. 그런데 회장님.”

한진영은 윤길영은 똑바로 바라봤다.

“저는 정말로 회장님께 볼일이 있어서 온 겁니다. 물론 볼일이란 게 지금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일은 아닙니다. 아쉽게도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일이 아니야?”

“네. 회장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브로커가 아닙니다. 그저 그때그때 타이밍 좋게 기회를 만들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없는 기회를 억지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특히 지금 대한그룹처럼…… 오랫동안 승계 준비를 착착 이어온 곳 같은 경우에는 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지요.”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의 얼굴은 차분해졌다.

“알고 있었나?”

“그럼요. 알고 있지요. 다른 곳도 아니라 대한그룹에서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겁니다.”

“탐탁지가 않아.”

알고 있었다는 말에 윤길영은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10여 년 전부터 준비하기는 했는데 말끔하지가 못해. 그런데 자네가 진행한 일들은 명쾌했어. 들어보고 나도 무릎을 칠 정도였으니까.”

“감사합니다.”

“자네보고 감사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진심으로 내가 느껴서 하는 말이야.”

윤길영은 한진영을 빤히 바라보고 말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네. 자네가 우리도 좀 설계해주게나.”

윤길영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만큼 큰 인상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한진영은 노골적인 눈빛으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윤길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진영은 눈싸움하듯이 허공에서 잠시 윤길영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LZ 건과 강선 건의 이야기를 들으셨다니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그래. 뭐든지 물어보게.”

“정말로 저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기실 수 있으십니까?”

“그럼. 당연하지. 누구보다 자네를 잘 알고 있는데 어찌 자네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겠는가?”

윤길영의 말에 한진영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저에 대한 확신이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내가 아니면 누가 자네를 이렇게까지 믿겠나? LZ나 강선도 나만큼의 믿음을 자네에게는 주지 못할 거야. 그거 하나만큼은 내가 자신하네.”

“그렇다면 앞으로 이야기가 좀 쉬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야기가 쉽다고?”

윤길영은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

“그래. 말하게.”

“혹시 제가 이곳에 온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곳에 온 이유?”

“네.”

“회장님이 저를 부른 게 아니라 제가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도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혹시 그게 궁금하지는 않냐고 여쭙는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승계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게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내가 들은 게 맞는 건가?”

윤길영의 말에 한진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길영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을 보고 더욱 눈을 좁혀 한진영을 노려보듯이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윤길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이야기했다.

“네. 승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다른 곳에 비해 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 대한 그룹이라면 제가 가져온 이야기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실 겁니다.”

“그래?”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에 흥미가 동하는 것인지 좁혔던 눈을 다시 크게 떴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숙였던 몸을 펴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윤길영의 모습에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듣고 나셔서 관심이 생긴다면 저에게 선물 하나만 해주시면 됩니다.”

“선물? 우리 승계 문제를 해결한다면 투자하겠다는 2,000억? 아니면 강선에서 받았다는 그 집과 같은 것을 따로 원하는 건가?”

윤길영의 말에 한진영이 웃었다.

“회장님은 정말 모르는 것이 없으시군요. 제가 집을 받은 것까지 알고 계십니까?”

“그게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분양이 되지 않아 생색내기로 여기저기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거 받고 너무 좋아하지 말게. 나중에 세금 문제 때문에 괜히 골치 아파질 물건이야.”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에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집이야 뭐 받으면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라 그럴 수 있다지만…… 투자금도 필요 없다고?”

“네. 투자금은 더욱더 원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받은 돈만으로도 내부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골치가 아프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투자금을 더 받아 간다면 제 손에 쥐어지는 돈은 한 푼도 남아있지 못할 게 뻔합니다. 미래가 보이는 상황에서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요.”

“어차피 같은 회사 아닌가? 같은 회사에 흘러 들어가는 돈인데 그것도 싫어?”

“제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돈은 제 돈이 아니니까요. 제 이름을 걸고 유치한 돈을 제가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저를 믿고 돈을 내어준 회장님 뵐 면목이 있겠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은 얇게 미소 지었다.

“내 입장에서는 듣기 좋은 말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듣기 거북하겠구먼. 같은 회사인데…….”

“같은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동료일 수는 없지요. 그 안에서도 경쟁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잘 알지.”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뭘 원하나? 원하는 것부터 이야기해보게. 그걸 듣고 다음에 자네가 가지고 왔다는 그 승계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세.”

“제가 원하는 것은…….”

한진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윤길영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번에 새롭게 진행하는 지분매각 주관사로 저를 선택해 주십시오.”

“주관사로 자네 회사를 선택해달라고?”

“저희 회사뿐만이 아니라 저를 선택해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같은 회사 내에서도 경쟁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저희 회사만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저희 회사의 저를 선택해 주셔야 합니다.”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의 표정이 다시 찌푸려졌다.

“자네를 선택하는 것이야 문제가 될 것 없는데…… 어떻게 알았나? 우리가 지분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말이야. 외부에 절대 이야기하지 않은 채 내부에서 조용히 진행하고 있던 일인데…….”

“그것만 알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지분매각을 통해 신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자네…….”

윤길영의 표정이 급히 어두워졌다.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이 이렇게 다른 사람 입에서 이야기 나온다는 것에 커다란 위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자기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윤길영을 바라보고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아직 중요한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그렇게 신경을 쓰시다가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실 수가 있으십니다.”

“좋아.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따져봐야겠네. 그 중요한 이야기부터 해보게.”

어떻게 안 것인지 당장에라도 확인을 하고 싶었던 윤길영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은 묻고 싶은 것을 참았다.

어차피 한진영이 이곳을 떠나기 위해서는 자기의 동의가 필요했고 잡아놓은 상황에서 물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윤길영이었다.

한진영은 심각한 표정의 윤길영을 향해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이곳에 온 이유에 관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래. 해보게.”

“회장님. 이집트 쪽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이집트?”

생각도 못 한 이야기에 윤길영의 표정이 애매모호하게 변했다.

한진영은 그런 윤길영을 바라보고 계속 이야기했다.

“이집트에서 조만간 소요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이미 미국은 그에 대한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소요사태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무슨 소요사태가 벌어진다는 말인가?”

“우리도 한번 겪었던 것 말입니다.”

“우리도 한번 겪은 것?”

“민주화 운동이 이집트에서 벌어질 겁니다.”

“어? 이집트에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다고? 그 이집트에서?”

“네. 벌어집니다. 그것도 해가 넘어가자마자 바로 말입니다.”

“해가 넘어가자마자라니? 앞으로 며칠 남지도 않았다는 말 아닌가?”

“네. 앞으로 며칠 남지 않았지요.”

한진영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달력을 바라봤다.

달력은 12월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날짜는 크리스마스가 코앞에 다가온 22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년이라고 해 봤자 열흘도 안 남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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