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40화 (140/650)

140화 내년을 준비한다

윤길영은 한진영을 따라 벽에 붙어 있는 달력을 쳐다봤다.

그리고 며칠 남지 않은 날짜를 확인하고 말했다.

“조금 전에 한 말이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연초부터 이집트에서는 소요사태가 벌어져 군과 민간인들이 충돌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집트를 철권통치하고 있던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하게 될 겁니다.”

“무바라크의 하야라…… 허허.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건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여겨서 그런 것인지 윤길영의 얼굴에 잠시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린 윤길영은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래. 이집트에서 큰일이 벌어진다는 건 알았네. 그런데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인가? 국제정세가 어지러워져 그게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긴가? 그러기에는 이집트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미미해.”

윤길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집트만으로는 영향을 받을 게 없다고 느껴졌는지 손까지 휘두르며 말했다.

“이집트가 엎어지고 난리가 난다고 하더라도 영향 없어. 미국도 마찬가지고 중국이나 일본 어디라도 마찬가지야. 이집트만으로는 세계 경제를 뒤흔들지 못해.”

“그렇죠. 이집트만으로는 할 수 없지요.”

손을 흔들던 윤길영은 그대로 손을 멈추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이집트만으로는 할 수 없다? 그럼 다른 게 또 있다는 말인가?”

한진영은 윤길영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튀니지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튀니지?”

“네.”

윤길영은 잠시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이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머릿속 한 귀퉁이에 들어있던 튀니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래. 며칠 전에 튀니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구먼. 튀니지에서…… 민주주의…… 잠깐!”

윤길영은 앉아있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자네 설마 이게 민주화 물결로 아프리카 전체를 강타할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가?”

처음 이집트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달리 윤길영의 표정이 진지해져 있었다.

한두 국가의 소요사태는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연달아 주변국으로 그 물결이 번져나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아무리 아프리카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더라도 이게 물결이 되어 아프리카를 휩쓴다면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게 분명했다.

윤길영은 바로 이걸 걱정하여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윤길영은 그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그렇지? 이게 물결이 되어 아프리카를 강타하지는 않겠지? 민주화 운동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거니까.”

안심하는 듯한 윤길영을 바라보고 한진영은 더욱 걱정되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프리카 전체를 강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을 강타할 겁니다.”

“다른 곳?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프리카와 가까운 곳 중에 독재와 민주화에 목말라 있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아프리카와 가까운 곳이라면…….”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중동?”

“맞습니다. 중동을 강타할 겁니다. 튀니지에서 지금 일어난 이 물결이 중앙아프리카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동쪽에 있는 중동으로 흘러가게 될 겁니다.”

“이…….”

윤길영은 쌍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중동으로 흘러간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특히 대한정유와 같은 정유사들에는 세계 경제를 논할 것도 없이 몇 배의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한진영은 가만히 화를 참아가는 윤길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는 모습을 보였을 때 입을 열었다.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끌려 내려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걸 본 중동의 다른 국가들이 자기네들도 독재자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가 중요해지는 겁니다.”

“지금 튀니지만으로 이야기를 너무 확대하는 것 아닌가?”

한진영은 의심하는 윤길영을 향해 웃었다.

“지난 번에 잘 드셨지요? 유럽 문제로 말입니다.”

“흐음…….”

“이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회장님을 찾아왔습니다. 다른 곳보다 지금의 이야기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곳이 이곳이라서요.”

“이게…… 정말인가?”

“저를 믿는다는 이야기를 하신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요.”

“믿어. 믿는데…… 에이 씨.”

윤길영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으로 다가가 담뱃갑을 찾았다.

손님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실례인 줄 알면서도 담배를 물지 않으면 지금의 짜증을 덜어낼 수 없을 것 같은 윤길영이었다.

그는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뒤 선 채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래서? 유가가 어디까지 움직일 거라고 예상되나?”

“우선 110불까지 가지 않겠습니까?”

“110불? 그래. 그 정도면 다행이군. 오히려 다행이야. 몇 년 전에 찍었던 140불까지 가지 않는 게 어딘가?”

“유가가 문제가 아니라 수급이 문제가 될 겁니다.”

“수급. 그래. 그렇겠지. 우리는 중동 쪽에서 원유를 대부분 수입하니까. 그래. 먼저 수급부터 확인해야겠어.”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을 듣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달력에 다시 눈을 돌리고 말했다.

“해가 바뀌고 바로라고?”

“해가 바뀌는 순간 이집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그럼 그다음은 리비아입니다.”

“환장하겠군.”

리비아는 산유국이었다.

리비아가 타격을 받는다면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까지 타격을 받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리비아가 중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가늠자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어떠십니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야기 아닙니까?”

“좋아. 자네 말을 믿겠네.”

“그럼 어떠십니까? 주관사로 저를 지목하시는 데 동의하시는 겁니까?”

“동의하지. 그렇게 하겠네.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윤길영은 몇 번이나 거푸 담배를 빨아들인 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깊게 담배 연기를 내쉰 뒤 다시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

“어떻게 안 건가?”

“회장님. 제가 아프리카부터 시작된 소요사태가 중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알아냈는데, 대한그룹이 신사업을 위해 지분매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모르겠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은 웃고 말았다.

“하하하. 그거 말 되는군. 오히려 이렇게 되고 보니 자네 말에 확신이 더 생겨.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일이 진짜로 중동에까지 영향을 줄 것 같아. 좋아. 알겠어. 주관사로 자네를 선정하도록 하지.”

윤길영은 마음속에 조금 남아있는 의심까지 모두 털어내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한진영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비워놓은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윤길영은 이것만으로도 한진영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며 지분매각 파트너로 신성증권을 지목하겠다는 구두 약속을 건넸다.

한진영은 지분매각 주관사로 선택된 것에 크게 만족했다.

지분매각을 시작으로 대한정유가 벌이려는 사업에 참여를 할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한진영은 그저 조용히 지분매각 건에만 관심이 가는 척 윤길영 앞에서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하나하나 계단을 밟아 나가듯이 대한정유가 벌이려는 일에 함께 발맞춰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약 10여분 간의 한담이 이어지고 나서 한진영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한진영이 떠나자마자 윤길영은 인터폰을 통해 대한정유의 임원과 팀장급 이상을 모두 소집했다.

***

크리스마스를 지나 주식시장이 폐장하자 신성증권의 불도 오랜만에 꺼졌다.

해외 시장 또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아 하나둘 휴장에 들어가며 신성증권의 모든 파트가 짧은 휴가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어두워진 신성증권에 오직 한 곳만은 불이 켜져 있었다.

“내 참. 살다 살다 회사에서 쉬라고 휴가를 주는데도 반납하고 회사에 다시 나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다 저녁때에 말이야.”

투덜대는 이성우는 가지고 온 술을 품에 꼭 안은 채 이야기했다.

“내가 어? 너하고 글렌그란트 60년산을 같이 먹으려고 이렇게 싸 가지고 왔는데…… 나를 어? 꼭 회사로 끌고 와야 했냐?”

이성우는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모습으로 한진영을 향해 투덜거렸다.

“아니. 오늘 같은 날 좋은 곳에 가서 술 한잔하지는 못할망정…….”

“아 참. 시끄럽네. 그래서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나 일하니까 너는 너 놀고 싶은 데 가서 놀라고. 그런데 네가 네 발로 직접 와 놓고 왜 나한테 투덜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너 노는 곳으로 어서 가라.”

짜증나서 더는 듣기 싫다는 한진영의 말투에 이성우가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말했다.

“지금 가기는 어딜 가?”

“그럼 조용히 있어. 다른 사람들 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정신 사납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입술을 쭉 빼 내밀었다.

그리고 여전히 양주를 품에 꼭 안은 채 한진영의 뒤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한진영은 이제야 이성우가 좀 조용해진 것을 느끼고는 다시 박도하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이상 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유가 시장이 조기종료 하는지라 움직임도 더디고 거래도 한산하여 테스트하기 알맞습니다.”

“잘됐군요.”

한진영은 박도하의 말에 웃으며 김준하에게 물었다.

“승률은 어때?”

“어…… 90%에 약간 못 미치지만 조금만 손보면 90%를 찍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수고했다.”

“별말씀을요. 절 믿고 맡겨주신 덕분에 할 수 있었던 거죠.”

“예상보다 시간을 앞당겨 다행이야. 우리는 지금 시간싸움을 하는 중이라서 시간이 가장 중요했거든.”

가만히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성우가 한진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뭘 놓고 싸우고 있는 건데?”

한진영은 뒤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성우는 혹시라도 한진영이 화를 낼까 걱정하는 모습으로 어깨 사이에 목을 숨겼다.

괜한 말로 신경을 쓰게 만든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이성우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참은 것도 이성우 입장에서는 용했기 때문이다.

“궁금해?”

“궁금하지. 왜 안 궁금하겠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궁금하냐는 말에 용기를 얻어 어깨 사이에 숨어있던 목을 빼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피면서 말했다.

“오늘 같은 날.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테스트를 한다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다른 사람들은 다 쉬는 우리에게 몇 없는 공식적인 쉬는 날인데 말이야.”

“그렇지. 폐장일이라는 날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날이지.”

“그런데도 불렀다는 건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단 뜻이지?”

“그렇지.”

한진영은 이성우를 사무실 한쪽으로 끌고 갔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불 꺼진 리서치센터에 가까이 위치한 곳이었다.

그렇게 어둠 속에 숨어든 한진영은 불이 켜진 사업부 쪽을 바라보고 말했다.

“지금 충분히 국내시장에 대한 퀀트프로그램의 신뢰성을 쌓은 상태야.”

“어.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승률 장난 아니라며? 거의 95%에 달한다고 하던데?”

“그래. 그 덕분에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놨지. 국내 증권사 어디를 데려다 놓아도 우리처럼 자동으로 프로그램이 매매를 알아서 하는 곳이 없을 거다.”

“다른 곳은 생각도 못 하고 있을걸? 이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곳도 있을 거다. 그런데? 그 얘기는 왜 꺼내는데?”

여전히 양주를 끌어안고 있는 이성우가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한진영은 이성우가 아닌 형광등 아래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본 채 말했다.

“이제는 확장해야 할 때야. 그리고 지금이 그럴 타이밍이고.”

“대한정유 다녀온 이야기 들었어. 유가가 심상치 않다며? 그래서 유가에 퀀트프로그램을 적용 시키려고?”

“유가만이 아니야.”

“유가만이 아니라고?”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년에는 아주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진다. 연초부터 시작해서 봄과 여름 할 것 없이 해외시장이 미쳐 날뛸 거다. 물론 우리나라 시장도 해외시장에 따라 날뛸 테고…….”

“설마 서브프라임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는 거야?”

“서브프라임? 뭐 그 정도의 파괴력까지는 아니겠지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벤트를 생각한다면 정신은 그때보다 더 없을 정도로 어지러울 가능성이 높아.”

“도대체 뭔 일인데 그래?”

한진영은 이성우의 품 안에 들어가 있는 양주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네가 빈손이었으면 이야기해주지 않으려 했는데…… 뭘 들고 왔으니 이야기해주마. 딱 그 양주 값만큼만 이야기해줄게.”

“뭔데 사람 감질나게 그래?”

이성우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감질나는 맛이 혀끝에서 도는 것만 같았던 이성우였다.

“중동에서 소요사태가 터지며 유가가 미쳐 날뛰는 게 우선 첫 번째.”

“유가가 날뛴다고 그럼…….”

“가만히 이야기 들어. 이제 첫 번째니까.”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두 번째는…… 천재지변.”

“천재지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한진영이 고개를 돌려 이성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알았어. 가만히 있을 게.”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가만히 미소 지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세 번째는 미국에서 벌어질 쇼크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전 세계에 몰아칠 폭풍.”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재지변보다 미국에서 벌어질 쇼크가 더 신경 쓰이는 이성우였다.

천재지변이야 한진영이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쇼크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닐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탕비실로 걸어가 종이컵을 들고 왔다.

“혼란스러워진 해외시장이 우리에게는 기회로 다가올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히 테스트를 끝내놔야지. 비록 국내시장에서는 검증이 끝났다지만, 아직 해외시장에서의 검증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다들 이렇게 휴일도 반납하고 나와 일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다들 한 잔씩 돌리자. 고생하고 있으니 다들 먹으면서 하자는 의미에서…….”

한진영은 이성우의 품에 들려 있는 양주를 빼앗아 종이컵에 양주를 따랐다.

그리고 그 술들을 직원들에게 건네고는 다 같이 들이켰다.

“그거…… 2,000만 원 짜리인데…….”

이성우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한진영이 이야기했던 첫 번째니 세 번째니 하는 소리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양주를 새참시간에 먹는 막걸리처럼 마시는 모습만이 머릿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거…… 그렇게 먹으면 안 되는데…….”

이성우는 벌써 반이나 비어버린 병을 보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