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43화 (143/650)

143화 가진 자의 마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한진영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 할 때 마침 주문했던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성우는 종업원을 도와 자리에 음식을 깔았다.

종업원을 돕겠다는 모습이 아니라 어서 빨리 내려놓고 내보내야 한진영의 다음 말을 들을 수 있지 않냐는 행동이었다.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석영은 그때까지 놓여있지 않은 수저와 젓가락을 깔아놨으며, 김준하는 물을 따라 자리에 하나씩 놓았다.

다 함께 힘을 모아 자리 세팅을 한 뒤 한진영의 말을 듣자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모든 음식이 자리에 깔리자 이성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VIP들을 홀리게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그들을 우리에게 빠지게 만들어서 어떻게 할 건데?”

“돈 많은 사람을 홀리는 이유가 뭐겠어? 왜 당연한 걸 물어?”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한진영은 수저를 들어 밥을 입에 넣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한진영의 말에 앞에 놓인 수저를 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직 한진영만이 알밥과 함께 나온 복어 지리를 맛볼 뿐이었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안 하기로 했다며?”

“뭘?”

“투자 권유. VIP들을 모아놓고 투자 권유는 하지 않기로 했다며?”

한진영은 당황한듯한 표정의 이성우를 바라보고 웃었다.

“너는 참 능력도 좋다. 그런 이야기까지 알아?”

“알지. 왜 모르겠어. 우리가 VIP를 모으고 투자설명회를 한다는 이야기에 WM 본부가 술렁였던 것 같아. 왜 우리 사업부에 그 일을 넘겼냐고 말이야. 이번에 강선건설 투자금도 우리가 다 빨아 먹었지, 대한정유 지분매각 건도 우리가 진행하지, 거기에 VIP 투자설명회까지 우리가 한다면…… 우리를 좋게 볼 사람들이 회사에서 없을 것 같아.”

“그건 걱정할 문제가 아니야.”

“그게 왜 걱정이 아니야?”

이성우가 펄쩍 뛰었지만, 한진영은 여유롭기만 했다.

한진영은 신성증권의 미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잡음쯤은 한진영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이런 잡음이 터지는 쪽이 나중에 신성증권에서 나올 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최석영은 이성우의 어깨를 누르며 진정시킨 뒤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래. 뭐 그건 한 부부문장이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일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나는 그것보다 처음 성우가 이야기했던…….”

“투자 권유요?”

“맞아. 그거. 그거는 생각 좀 해봐야 하는 문제 아니야?”

“아무래도 과장님께서는 그쪽이 더 신경 쓰이시겠죠.”

“맞아. 힘들게 떠들었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으면…… 그것만큼 힘 빠지는 게 없으니까. 정말로 투자 권유는 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건 약속이니까요. 그런 약속도 하지 않고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는 없는 일이죠.”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한진영의 모습이 이상했던지 이성우가 최석영을 대신하여 물었다.

“그럼 그런 자리를 왜 만들어?”

한진영은 지리 국물을 떠 맛을 보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맞잡은 채 앞에 앉아 있는 이성우와 최석영을 번갈아 바라보고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돈 때문이지.”

“돈? 무슨 돈?”

“그 사람들이 왜 VIP인지 알아?”

“그거야…… 신성증권에 맡기고 있는 돈이 많으니까?”

“그것도 맞지만 그 사람들이 VIP인 진짜 이유는 신성증권에 맡긴 돈이 그 사람들에게는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뭐?”

“말 그대로야. VIP들은 한 번에 수십억에서 100억의 돈도 턱턱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야. 달리 말하면 이미 투자하고 있는 돈 외에도 아직 투자할 여력은 넘친다는 말이지.”

“그러면…….”

“그들을 계속 붙잡아 두고 홀릴 생각이야. 그리고 기왕에 붙잡아 둔다면 우리 사업부를 그들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시키려고.”

“……좋아 그건 알겠어. 그런데 투자 권유도 안 하고 VIP에게 투자금은 어떻게 받아내려고? 투자 권유를 해야 VIP들도 투자할 마음이 생길 거 아니야?”

“그건…….”

한진영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숟가락을 다시들어 복어 지리를 한 입 떠 먹었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손을 들어 다시 또 지리를 맛보려는 한진영을 막았다.

“그만 좀 먹어!”

“왜?”

한진영은 지리를 떠먹으려던 수저를 든 채로 인상을 찌푸렸다.

먹는 것을 먹지 못하게 해서 짜증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이성우도 한진영이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밥보다 조금 전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말을 하다 말아? 투자 권유도 없이 어떻게 투자를 끌어내는지 말해줘야지. 과장님. 과장님도 궁금하시죠?”

자기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이성우가 최석영을 끌고 들어갔고, 최석영도 이성우의 말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나도 궁금하긴 해.”

“그래요?”

한진영이 최석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최석영은 그런 한진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물었다.

“대체 무슨 방법을 쓰려는 거야?”

“그렇죠? 저만 대답 못 들어서 답답하다고 생각한 줄 알았는데 역시 과장님도 같은 생각이셨네요.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해봐.”

계속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려는 이성우를 최석영이 진정시켰다.

지금은 이성우의 말을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 말은 잠시 뒤에 듣기로 하고…… 아까 하던 설명 좀 이어서 해줘.”

한진영은 그것 때문이냐는 표정으로 막고 있던 이성우의 손을 치우고 복어 지리에 숟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복어 지리 국물을 입에 넣은 뒤 입을 열었다.

“맛이 좋네.”

“알아. 맛 좋은 거. 빨리 좀 이야기해. 숨넘어가겠다. 대답만 해주면 내 것도 줄 테니까. 대답하고 내 것까지 실컷 먹어.”

이성우가 자기 앞에 놓인 복어 지리를 한진영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어서 이야기하라는 식으로 손짓을 하자 한진영이 그런 이성우를 향해 복어 지리를 턱짓했다.

“바로 이거야.”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바로 이거라고.”

“바로 이거? 이게 뭔데?”

이성우는 자기가 앞에 내민 복어 지리와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시선을 받으며 숟가락으로 이성우 것을 맛본 뒤 이야기했다.

“네 복어 지리. 내가 달라고 한 건가?”

“아니.”

“그래. 나는 달라고 한 적이 없어. 그런데 네가 알아서 줬지?”

“어. 그런데…… 그게 왜…….”

이성우가 한진영의 말에 함께 앉아있는 최석영과 김준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나 그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이성우가 내민 복어 지리와 이야기 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향해 천천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안달이 나니까 네가 나한테 내민 거지? 마찬가지로 난 VIP들에게도 같은 행동을 할 거야. 투자 권유를 하지 않을 거고, 어디에 투자하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을 거야. 대신 연초의 증시를 예측해 줄 거야. 그거면 충분해.”

“뭐? 증시를 예측한다니…….”

허황된 소리에 이성우는 기가 찬다는 듯 말을 하려다가 급히 입을 닫았다.

그동안 한진영의 말도 안 되는 증시 예측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한진영의 장담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데?”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탕탕.

한진영은 복어 지리가 담긴 뚝배기를 숟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예측이 들어맞는걸 한 번 맛보면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를 거고, 돈을 싸 짊어지고 찾아와서 우리에게 돈을 맡길 거야. 특히, 우리 사업부를 지목하면서…… 그리고 VIP들은 다른 곳에 눈 돌리지 못하게 되겠지. 우리 회사를 떠나려 하지 않고, 꼭 붙어서 다음에 나올 이야기를 기대하겠지.”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세 사람은 잠시 멍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러다 최석영이 무언가를 떠올리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우리가 시흥지점에서 했던 것처럼?”

“그렇죠. 그거죠. 그거의 확장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때보다 금액이 조금 더 커질 테니까요.”

이성우도 시흥지점 때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무 시간이 촉박하지 않았나? 조금 더 여유를 두고 미리 이야기하던가, 아니면 만나는 날을 뒤로 미뤘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은데…….”

“촉박하지 않아.”

“촉박하지 않다고?”

“그래. 새해가 밝았고 설이 아직이야. 이런 때 WM 본부가 VIP들과 만남 자리를 준비하지 않았을 거 같아? 지금이 바로 VIP를 초대해서 올해 시황을 이야기하기 가장 좋은 때인데?”

“그럼…….”

“오히려 딱 좋은 시기란 거지. 뭐 물론 WM 본부 측에서는 그 자리를 우리에게 뺏긴 것 같아 기분은 좋지 않겠지만…….”

“그래서 더 불만이 많았던 거였구나.”

이성우는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VIP들이 쉽게 돈을 맡기려 할까?”

“시흥지점 때보다 오히려 더 쉬울 거야.”

“오히려 더 쉽다고? 오히려 더 어려운 게 아니라?”

“아니지. 너도 가진 자면서 왜 가진 자의 마음을 모르냐?”

“내가 무슨…… 가진 자라고…….”

이성우는 아니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지금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앞에 두고 아니라고 계속 우길 수도 없기에 이성우는 빨리 화제를 다시 본래 자리로 돌리려 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고…… 그러니까 VIP들이 가진 자라서 오히려 쉽게 돈을 맡긴다는 말이야?”

“당연하지. 돈 냄새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는 사람들이니까. 돈이 잘 벌릴 수 있다는 것만 보여주면 알아서 찾아보고 확인해서 우리 앞에 돈을 밀어 놓을 거야. 네가 나한테 네 복어 지리를 내어놓은 것처럼 말이지.”

한진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성우의 복어 지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성우는 눈 뜨고 자기 것을 뺏겼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일이 풀려갈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진영아.”

평소에는 부부문장이라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존중해주던 최석영이 한진영을 이름으로 불렀다.

그만큼 지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자리였던 것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그런데 네가 한 말 중에 아까…… VIP들이 떠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 그건 무슨 소리냐?”

“흐음…….”

한진영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다른 곳에서 VIP들에게 접근하는 일이 없지 않을 테니까요. 저쪽에서 더 좋은 조건을 내세우면 우리와 거래를 끊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그걸 방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좋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요.”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됐다.

설명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최석영이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몰랐다.

한진영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신성증권이 흔들리며 VIP들도 흩어졌던 일을 미리 이야기할 수는 없지.’

한진영은 지난 시절 경험했던 일을 꺼내놓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는 미래에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유가라느니 코스피 같은 일은 오히려 쉽게 이야기하기 좋았다.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내 일과는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이야기들이었기에 받아들이기도 쉬웠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신성증권이 흔들릴 거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이유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알았는지까지 말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아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만으로는 상대를 납득시킬 수 없었다.

애초에 전제조건인 지난 시절 겪었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모르는 척 여기까지만 이야기한 후 숟가락을 들어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최석영은 그런 한진영을 향해 부족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계속 추궁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VIP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룸 안의 네 사람은 모두 숟가락을 들어서 나온 지 한참 지난 음식을 이제야 겨우 먹기 시작했다.

***

코스피가 2,100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지만 외부에서 흐름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한진영이 윤길영 회장을 비롯하여 장근수와 김정대 등에게 경고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리고 이런 바람은 결국 이집트의 독재자를 끌어내리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제 이 바람이 어디로 불지 궁금하다는 눈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봤다.

아직 사람들은 이 바람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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