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44화 (144/650)

144화 뽐내는 자리

약 일주일간의 준비를 마치고 투자전략사업부의 한진영과 최석영 그리고 최준호 등은 투자설명회가 펼쳐질 호텔로 향했다.

“준비 잘 됐지?”

최준호는 며칠 전부터 계속 최석영만 만나면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만큼 그도 떨린다는 뜻이었고, 지금의 자리를 잘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물어본 것이었다.

최석영도 그런 최준호의 마음을 알기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이야기를 받았다.

“최선을 다하기는 했습니다.”

“그래. 최선을 다하면 됐어. 그래도 자네는 이런 자리에 이제는 익숙하잖아.”

“익숙한데…… 떨리기는 마찬가지네요.”

한진영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최석영은 서류도 제대로 들고 있지 못할 정도로 손을 떨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금 달리고 있는 차가 호텔이 아니라 병원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석영은 병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석영을 잘 알고 있는 최준호와 한진영은 이런 최석영을 걱정하지 않았다.

귀신같이 이러다가도 사람들 앞에만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아다닐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최석영도 걱정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그런데 진영아.”

“네. 말씀하세요.”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한진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최석영은 한진영이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운전석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말했다.

“유가야 우리가 준비하고 있고 실제로 이집트에서 번진 불길이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있어 그럴 수 있다지만…… 이건 뭐야? 예상치 못한 쇼크를 대비해야 한다? 어떤 쇼크?”

최석영은 한진영과 함께 만든 원고 속에 있는 글자를 슬쩍 내려보고 다시 물었다.

“뭔지 알아야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건 너무 추상적이라서…….”

“그건…….”

한진영도 이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답을 내리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날벼락이 내린 것처럼 찾아온 천재지변이었기에 이걸 어떤 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풀어내야 하는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지금까지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한진영은 운전대를 잡은 채 슬쩍 최석영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릴 테니 그걸 제외하고 준비하시면 될 거예요.”

“네가 직접 이야기한다고?”

“네. 아무래도 그편이 나을 것 같아요.”

최석영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석영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차는 계속 설명회가 펼쳐질 호텔로 달려 나갔다.

호텔에 도착한 세 사람은 호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설명회가 펼쳐질 컨벤션 룸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일찍 도착한 장근수가 호텔 직원과 함께 탁자와 의자 그리고 주변 집기들의 배치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 왔어?”

한진영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장근수가 손을 들어 한진영에게 아는 체를 하고 직원과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본부장님. 저희가 늦게 도착했나 봅니다.”

“아닙니다. 제가 일찍 온 거지요. 혹시 이상이 있을까 봐 점검하기 위해 일찍 온 거니 크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안한 듯한 표정의 최준호를 향해 괜찮다는 이야기를 건넨 장근수는 한진영을 향해 다짐을 받았다.

“너 오늘 절대 여기 오시는 분들께 실례를 저지르면 안 된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어찌 실례하겠어요. 그리고 지금의 자리는 도움을 드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니까 나중에는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게 될 거예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돼요.”

“그래. 그 말 잊으면 안 돼. 도움을 드려야 한다는 것. 우리에게는 정말 중요한 고객님들이야.”

장근수는 걱정을 지우지 못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때 김정대까지 도착하며 신성증권 측의 사람들이 모두 모이게 됐다.

“내가 제일 꼴찌로 왔네. 늦은 건 아니지?”

김정대가 가볍게 한진영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한 후 장근수에게 다가갔다.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매년 하는 건데 말이야.”

“매년 하는 거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니까. 더 긴장된다. 혹시라도 사고가 터지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내가 생각하기엔 너보다 더 잘할 것 같은데 뭘 그래?”

장근수는 김정대를 향해 웃으며 말하고는 한진영을 돌아봤다.

“오늘 기대한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좋아. 우리 자리는 어디지?”

한진영의 자신 있는 대답에 김정대는 손뼉을 치고는 자리를 찾아 탁자로 향했다.

컨벤션 룸은 크지 않았다.

기다란 회의용 탁자와 탁자 주변에 원을 그리듯이 의자가 둥그렇게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벽 주변으로 화분과 커다란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햇볕이 방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회의 및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기에 여러 가지 잡다한 집기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장근수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 쓸데없어 보이는 가구들까지 모두 치우도록 호텔 측에 주문을 넣었기에 방 안은 사람이 있지 않다면 휑한 느낌이 들 정도로 썰렁한 모습이었다.

장근수가 호텔 직원과 세팅을 마무리하자 하나둘 오늘 초대를 받은 신성증권의 VIP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냈지. 장 본부장 얼굴이 좋아 보여. 요새 재미 좀 본다며?”

“제가 재미 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회장님께서 재미를 보셔야지요.”

“장 본부장이 재미 보는 게 내가 재미 보는 일이지. 안 그래? 요즘 계좌 보는 재미에 푹 빠졌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저야말로 회장님의 은덕 덕분에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장근수는 노신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했다.

“여기는 아시죠?”

“잘 알지. 김 본부장도 잘 지냈나?”

“연말에 안부 인사를 드리고 오늘 또 새해 인사를 드리네요. 새해에도 건강하셔야 합니다. 회장님께서 건강하셔야 저희 회사도 건강하니 말입니다.”

“하하하. 김 본부장이 그리 말하니 올해는 건강을 더 챙겨야겠어.”

김정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지 인사를 나눈 노신사는 김정대와 손을 잡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부터는 처음 보시죠?”

“저 친구는 잘 알지.”

노 신사는 김정대와 잡은 손을 슬쩍 떼어낸 후 최석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친구는 유명한 친구 아닌가?”

“회장님께서 방송도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방송을 보지 않아도 알겠던데?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명해. 잘 맞춘다며?”

최석영은 꾸벅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석영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잘 부탁해요.”

노신사는 최석영과도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최석영 곁에 있는 최준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는 저희 회사의…….”

“최석영 과장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니 같은 투자전략사업부 소속 같은데. 부문장이신 최준호 부문장님이신가?”

소개를 하지 않아도 알아보는 모습에 최준호와 최석영은 흠칫 놀랐다.

그리고 급히 최준호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투자전략사업부의 부문장을 맡은 최준호라고 합니다.”

“그래요. 뵙고 싶었어요. 투자전략사업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어여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노신사는 최준호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던지 최준호와 악수를 하고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 있는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장 본부장.”

“네. 회장님.”

노신사의 부름에 장근수가 공손하게 손을 모아 대답했다.

노신사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근수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이 젊은 친구가 그 유명한 한진영 부부문장님이신가?”

“회장님은 모르시는 게 없으십니다. 저희 회사 회장님보다 신성증권을 더 속속들이 알고 계시니 제가 따로 소개할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자네 회사 회장님이야 사업하느라 바쁘시니 계열사 하나쯤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도 있지. 하지만 나 같은 노인네는 할 일이 없어서 남의 집안 숟가락이 몇 개인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다 알아보고 다니지 않나? 그래서 아는 거야.”

노신사는 한진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기대하겠어요.”

“기대에 부응하도록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래요.”

한진영의 손을 꽉 쥔 노신사는 위아래로 한진영의 손을 흔든 후 손을 뗐다.

“평소에는 WM 본부에서 주최해서 간단한 다과와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누고는 했는데…… 올해는 특별히 투자전략사업부에서 신년 설명회를 준비했다는 말을 듣고 많이 궁금했어요. 작년에 보여준 투자전략사업부의 행보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제 겨우 첫발을 뗀 저희 사업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발치고 보폭이 꽤 컸으니까요.”

노신사는 한진영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보네요.”

“제가 그 정도로 회장님의 관심을 끌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나 같은 노인네는 하는 일이 없거든요. 그래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면 거기에 정신을 팔리고는 해요. 그래서 알고 있는 거니까 너무 그렇게 후벼 파듯이 한 부부분장을 조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 회장님.”

노회해 보였던 고 회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고 씨는 아무렇게나 부른다고 하여 맞출 수 있는 성씨가 아니었다.

자기가 한진영을 알고 있듯이 한진영도 고 회장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고 회장은 한진영의 말에 흥미로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오늘은 무척 재미있는 자리가 될 것 같네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좋아요.”

고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근수에게 어디에 앉으면 되느냐고 물은 뒤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한진영은 조금 전 이야기를 나눈 고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충청도의 큰손으로 대전의 빌딩 절반은 고 회장의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의 인물이었다.

“아이고 이 회장님.”

고 회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VIP가 컨벤션룸에 도착했다.

이 회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부동산계의 큰손으로 오늘 찾아오는 VIP들 대부분이 부동산 쪽에서 크게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주식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재미’ 때문이었다.

부동산의 경우에는 매매가 이루어지는 데 짧으면 수년 길면 10년 이상이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오늘 자리한 사람들처럼 단위가 수만 평에서 수십만 평을 거래하는 사람들은 거래 자체가 어려울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남는 자투리 시간에 흥미를 끌 만한 일을 찾았고, 그런 그들에게는 주식이 바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여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무렇게 수십억을 던지듯이 집어넣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 컨벤션룸에 속속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VIP들이 도착할 때마다 장근수는 한진영이 포함된 투자전략사업부 사람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소개를 받는 사람들 대부분 부문장인 최준호는 물론이고, 방송에 자주 나왔던 최석영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한진영까지 다 알고 있었다.

이런 모습에 놀라는 최준호와 최석영과는 달리 한진영은 모습은 담담하기만 했다.

최준호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던지 잠시 비는 시간에 한진영을 향해 나직이 물었다.

“너는 놀라지도 않아? 여기 오시는 분들이 나는 물론이고 너희를 다 알고 있는데도? 쟤야 TV에 얼굴을 내비치기라도 했다지만…… 너는 그러지도 않았잖아.”

장근수와 김정대는 슬쩍 말을 한 최준호를 돌아봤다.

자기들은 이유를 알았지만, 한진영도 과연 이유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한진영은 질문한 최준호를 향해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우리나라에서 정보가 가장 빠른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땅장사 하는 사람들입니다. 재개발이 들어간다고 하면 구역을 나누는 공무원들보다 어쩌면 여기 계시는 분들이 더 먼저 알지도 모르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부문장님과 저를 모르겠습니까?”

장근수는 놀랐다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잘 알고 있구나. 그런데 난 네가 저기 계신 고 회장님을 아는 것도 놀라운데?”

“그것만이 아니죠. 저기 계신 김 회장님은 창원의 유지시고…… 저기 계신 장 회장님께서는 강남 브라운빌딩의 실소유주분 아니십니까?”

“그걸 어떻게…….”

장근수와 김정대는 입이 떡 벌어진 채로 한진영을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고 회장을 알아본 것까지야 어떻게 어떻게 설명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창원 유지인 김 회장에 브라운빌딩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장 회장까지 모두 아는 것이, 어쩌면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아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한진영은 다음 말로 증명했다.

“방금 전에 오신 강북 최 회장님과 그 전에 오신 강동 김 회장님 등등, 뭐 여기 오신 분 대부분을 알고 있지요. 고 회장님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다 알고 있어?”

“본부장님.”

한진영은 놀란 얼굴의 장근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정보에 빠삭한 분들을 상대하려면 그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벌써 놀라시면 안 됩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요. 오늘은 제가 저분들 앞에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뽐내는 자리가 될 테니까요.”

한진영은 웃으며 비어있는 의자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신성증권 직원들이 앉게 되면 비어있는 의자는 다섯 개가 채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얼추 사람들이 온 것을 확인하고 최석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