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45화 (145/650)

145화 예상할 수 없는 악재

초대된 모든 VIP들이 컨벤션 룸에 도착하자 최석영이 앞으로 나서 사람들 앞에 자기를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성증권의 최석영이라고 합니다.”

사람들 앞에 꾸벅 인사를 한 최석영은 평소에 보여주던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긴장한 기색이 살짝 보이는 듯했다.

강당에 수백 명을 모아놓고 하는 투자설명회보다 열댓 명의 사람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는 지금 자리가 더 큰 무게감으로 최석영의 어깨를 누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긴장을 한 듯한 최석영은 금방 안정을 찾았다.

아무리 큰 중압감이 최석영을 덮치더라도 이런 자리에서의 최석영은 그런 것을 오히려 즐겼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본인 소개를 이어갔고, 사람들을 향해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하하하.”

어느새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오히려 소수 인원을 모아놓고 한 덕에 최석영의 말솜씨가 더욱 유창하게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를 휘어잡아 나간 최석영은 VIP들의 시선에 활기가 돌았을 때 농담을 건네던 것을 멈췄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간단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풀은 최석영이 준비해 놓은 자료를 화면에 띄우며 투자설명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때까지 긴장하고 바라보던 장근수는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모습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잘했다는 뜻의 눈빛을 보냈다.

매해 똑같은 분위기의 신년 설명회와 달리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꾼 것이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됐다는 생각마저 한 장근수였다.

그는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설명회를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최석영은 지난해의 이슈들을 간단하게 짚은 뒤 연초 증시 전망을 이어갔다.

“증시는 현재 2,100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전고점을 넘기고 2,100대라는 신대륙에 언제라도 발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난번에 2,000을 뚫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시장이 단단하게 잘 계단을 쌓아 올라 커다란 위협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수려한 말솜씨의 최석영이었지만 듣는 사람들은 부족함을 느낄만한 이야기였다.

내용이 말솜씨와 달리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뻔한 이야기에 처음 농담을 건네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가 몇 분 더 지속된다면 VIP들이 지겨움을 느낄지도 모를 것만 같았다.

투자전략사업부의 설명회라 하여 잔뜩 기대하고 왔던 VIP들이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에 실망하게 된 것이었다.

VIP들은 앉아 있던 자세를 연신 고치며 몸으로 지금의 자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리기 시작했다.

한진영은 이런 VIP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최석영을 향해 눈짓했다.

슬슬 흥미를 끌어올릴 때가 됐다는 뜻을 전한 것이었다.

최석영도 한진영의 눈짓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보통의 투자설명회에 나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다른 곳에서는 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석영의 말에 금방이라도 졸음이 올 것 같던 VIP들의 눈이 반짝였다.

최석영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의자 뒤를 천천히 걸어 다녔다.

계속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그들의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게 하여 집중도를 올리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최석영은 자기를 따라 움직이는 눈빛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가 지금 무얼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 말은 준비해야 할 만한 일이 있다는 말인가요?”

고 회장이 최석영의 질문에 참지 못하고 반응했다.

최석영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질문을 던진 고 회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신성증권에서는 중요하게 여기고 준비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김 본부장님?”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은 김정대는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어? 어. 뭐를…….”

김정대는 갑작스럽게 쏠린 VIP들의 시선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김정대를 향해 최석영이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사실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되는 이야기인데…… 뭐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우리 신성증권과는 남이라 할 수 없는 돈독한 관계를 이루고 있으니 말씀해주시죠. 본부장님.”

김정대는 자기가 앉아 있는 곳까지 걸어온 최석영을 올려다본 채 대답했다.

“유가를 말하는 건가?”

“바로 그겁니다.”

최석영은 김정대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어깨를 주무르는 행동을 하며 마치 이야기를 잘했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김정대와 장근수는 이런 최석영의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평소 회사에서는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던 최석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모자라 어깨에 손을 올리기까지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까마득한 직급 차이를 생각했을 때 하기 어려운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었다.

김정대와 장근수는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돌변하는 최석영에게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최석영은 당황한 김정대와 장근수 근처를 떠나 VIP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뒤 이야기했다.

“저희 신성증권은 현재 80불대 중반에 머물러 있는 유가가 110불까지 점프한다는 것을 가정하여 전략을 짜놓은 상태입니다.”

“110불? 상반기에 110불까지 간다는 건가?”

최석영은 한진영을 슬쩍 돌아봤다.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석영은 작은 한숨을 내쉰 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설이 지나고 바로 110불까지 간다는 것이 저희의 판단입니다. 기간은 상반기가 아니라 2월 중으로 터치를 할 거라는 것이 저희의 생각입니다.”

자리에 있던 이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정대와 장근수는 이 사실을 바로 꺼내 든 것에 놀랐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유가 이야기가 지금 자리의 히든카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최대한 감출 때까지 감춘 뒤에 펼쳐놓아야 좋다고 생각했다.

뜸을 들일 때까지 들이다가 최후의 순간에 꺼내놓아야 극적 효과가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먼저 꺼내 든다면 뒤에 나올 이야기에 힘이 빠질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런 김정대와 장근수의 생각과 달리 최석영은 술렁이는 VIP들을 향해 서슴없이 이야기했다.

“이런 유가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코스피는 조정을 보일 게 분명합니다. 갑작스러운 유가의 변동에 우리나라 경제도 민감하게 반응할 게 분명하니까요.”

“2,100을 제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인가?”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숫자를 보게 된다면 밀리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때에 유가 리스크가 시장을 덮치며 한동안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근수는 최석영의 말에 보다못해 중간에 끼어들었다.

“회장님들. 이건 어디까지나 최 과장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저희 신성증권의 공식적인 스탠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시장이 마냥 곤두박질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저 단순히 신고가 뒤의 조정을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나? 최 과장?”

어서 자기 말이 맞는다는 맞장구를 치라는 눈으로 최석영을 바라본 장근수였다.

부동산 전문가가 언제나 집값은 오를 거라고 이야기하듯이 주식쟁이들도 항상 주식시장을 장밋빛으로 고객들 앞에서 보여야만 했다.

그래야 고객들이 투자를 계속 이어 할 수 있었고, 그 투자금으로 업계 종사자들이 밥을 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석영은 시장이 하향곡선을 그릴 거라는 이야기를 숨김없이 그대로 꺼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아닌 거액을 집어넣고 있는 VIP들 앞에서 이야기한 것이었다.

장근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기겁하기는 김정대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이게 어찌 된 일이냐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러나 최석영은 두 사람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시장은 새로운 지수에 대한 부담감과 급변하는 해외시장에 영향을 받아 1,900선까지 다시 밀리게 될 겁니다.”

“이봐! 최 과장!”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는 장근수의 말을 무시한 최석영의 말에 장근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이 타는 장근수와 모르는 척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최석영과 달리 VIP들은 이런 광경을 재미있어 했다.

어디 가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근수는 최석영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는 자리에 있던 VIP들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어떤 말을 할지 확인을 해야 했는데…….”

이런 장근수의 태도에 재미있게 바라보던 VIP들의 눈에 불쾌함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가장 불편한 표정을 짓던 고 회장이 다른 VIP들을 대표하여 장근수에게 말했다.

“이보게. 장 본부장.”

“네. 회장님.”

“나는 저기 계시는 최 과장님이 하려는 말을 듣기 위해 여기 온 거라네. 다른 회장님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솔직한 뷰를 듣고 싶어 귀한 시간을 내서 서울까지 올라온 거라네. 그런데 미리 우리 앞에서 말할 것을 검토 했어야 하니 마니 같은 이야기를 하려거든 자네는 여기서 그만 빠지게.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는 자네가 더 불편한 존재니까 말이야.”

고 회장은 말을 마치고 다른 VIP들을 둘러봤다.

“어떻습니까? 다른 분들께서도 제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맞습니다.”

“그게 맞는 거지요.”

“그저 좋다는 말만 들으려면 여기 왜 왔겠습니까?”

“고 회장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고 회장의 물음에 여기저기서 같은 생각을 한다는 뜻이 터져 나왔다.

고 회장은 보란 듯이 장근수를 향해 눈을 흘기고는 최석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최 과장님. 계속하시지요. 지금까지 보여준 과장님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그 말의 무게감이 남다르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최석영이 고 회장을 향해 인사하자 장근수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최석영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불안해하는 장근수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의 한진영.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잘 모르게는 최준호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김정대까지 모두 최석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최석영은 한진영을 슬쩍 한번 바라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저의 뷰는 신성증권의 공식적인 뷰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속한 투자전략사업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웠습니다. 유가는 110불. 종합주가지수는 2,100까지 상승 후 조정. 조정폭은 10%의 하락. 즉, 1,900대까지의 반락을 염두에 둬야 함. 이게 다음 달까지의 저희 사업부의 뷰입니다.”

정리를 한 최석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사업부의 뷰가 곧 한진영의 뷰였기 때문이다.

최석영의 말이 끝나자 한진영은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최석영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하겠습니다.”

최석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진영에게 자기 자리를 내어주고 뒤로 빠졌다.

그리고 처음 앉아 있던 의자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이런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VIP들이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진영에 대해 알고 있었다.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그들 입장에서 한진영이라는 존재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알고 있는 한진영은 절대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최석영을 앞에 내세우고 뒤에서 모든 전략을 짜는 막후의 조종자와 같은 위치에 있는 게 한진영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최석영이 있는데도 그를 자리로 돌려보내고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진영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한차례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항상 위기는 환호 속에서 피어나고는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증시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고가를 갱신한 뒤에 꼭 외부 사고에 증시가 충격을 받고는 했습니다.”

“사고?”

한진영은 말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네. 누구도 손 쓸 수 없을 사고 말입니다.”

한진영은 천천히 걸어가 최석영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컨벤션룸에 준비된는 화면에 과거 차트들이 떴다.

“짧게는 2,000이라는 신고가를 찍은 뒤 터진 서브프라임, 길게 봤을 때는 94년 말 1,145라는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환호에 빠져 있던 증시에 고춧가루를 뿌린 고베 대지진. 이렇게 손 쓸 수 없는 사고는 신고가 갱신 뒤에 우리를 덮치고는 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흔들렸다.

당장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볼 수 없지만, 한진영이 말한 두 가지만큼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짧은 한진영의 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저는 이번에도 2,100이라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뒤에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주의를 주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고 회장의 입에서 짧은 탄성과 함께 질문이 나왔다.

“그럼 한 부부문장님은 이번 중동 사태가 예상보다 깊은 충격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고 회장의 말에 한진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고베 대지진과 같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어 준비되어 있는 것과 달리 어느 순간 눈 뜨자마자 갑자기 터지는…… 예상할 수 없는 악재. 바로 그게 우리를 덮칠 거로 생각합니다.”

“예상할 수 없는 악재?”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의 말에 서로 바라보며 그게 무엇이 있을까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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