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47화 (147/650)

147화 꿀이 담긴 호수

길었던 설 연휴 동안 닫혀있던 국내시장과 달리 해외에서는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집트에서 불어 닥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의 불꽃이 주변국으로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특히, 악명을 떨치던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에 대한 리비아 국민의 성토가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리비아 대사관을 통해 교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

점점 과격해지는 소요사태 속에서 각국 정부들은 리비아에서 이번 소요사태의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른 곳과 달리 설 연휴까지 반납하고 계속 퀀트 프로그램의 전략을 수정해나갔던 투자전략사업부는 오늘도 다른 곳보다 일찍 출근하여 회의를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어제 성적은 어떻습니까?”

한진영이 조수아가 나눠준 서류를 훑어보며 김준하를 향해 물었다.

“어제 올린 총 수익은 5만 불이었으며…… 승률은 87%였습니다.”

“몇 계약으로 진행한 거죠?”

“시작은 10계약으로 시작하여 최대 20계약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세팅했습니다.”

“20계약 5만 불이라…….”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밤새 진행됐던 유가 선물 시장의 체결 내역을 살폈다.

최대 20계약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다지만 대부분은 한두 계약을 빠르게 사고파는 게 전부였다.

특이사항이 벌어졌을 때나 10계약, 20계약 보유하는 것이지, HFT 매매의 특성상 그렇게 다수의 계약을 보유하고 있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길면 몇 분, 짧으면 마이크로 단위의 시간에 사고파는 내역까지 종이에 적혀있었다.

한진영은 꼼꼼히 종이에 적혀있는 체결 내역을 살핀 뒤 박도하를 향해 물었다.

“프로그램이 받는 부하는 어떻습니까?”

“초당 20건 이상의 주문은 이상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개선한 상태입니다.”

“초당 20건…….”

박도하는 가만히 혼잣말하는 한진영의 얼굴을 살핀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부문장님. 이거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하는 건가요?”

한진영은 내려다보던 서류에서 고개를 들어 박도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박도하는 한진영의 시선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개선해 나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도 충분히 빠른 게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초당 20건. 굉장히 빠른 속도이기는 하죠. 아마 국내는 물론이고, 아직 외국에서도 이렇게 빠른 속도를 가진 프로그램은 없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우리 사업부의 기술력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모두 박 팀장님을 비롯하여 팀원들의 뛰어난 실력 덕분이겠지요.”

“감사합니다.”

한진영의 칭찬에 얼굴이 발그스레해진 박도하였다.

자기의 실력을 IT 회사도 아니라 증권회사에서 인정받을 줄은 몰랐던 박도하였다.

게다가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대우가 일반 IT 회사보다 훨씬 좋았다.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으며 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회의 자리에서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박도하의 말에 잠시 보던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은 후 입을 열었다.

“지금은 초당 20건을 처리하는 우리가 제일 뛰어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이 매매법에 적응해 나갈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초당 100건, 1,000건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하이 프리퀀시 트레이딩이 보편화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죠.”

“초당 1,000건이요?”

박도하는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초당 1,000건이라는 숫자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벌써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알게 모르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쿼트 스터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하이 프리퀀시 트레이딩(HFT)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미국 시장의 흐름까지 꿰고 있는 한진영을 향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어떻게 대한민국에 앉아 미국 투자은행의 매매 방식까지 아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퀀트 매매와는 다른 방향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방향이 다르다고 해서 지금 이렇게 꿀이 떨어지고 있는 곳을 그냥 지나쳐버릴 수는 없지요.”

한진영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이런 시장의 변화를 각국 정부는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제재를 가할 것이고 감시자가 되어 우리를 들여다볼 겁니다. 이런 꿀이 가득 담겨 있는 호수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다 퍼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을 때 모두 말입니다.”

한진영은 박도하가 품고 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건넨 후 지시를 내렸다.

“계속 처리 건수를 높여가도록 하십시오. 프로그램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까지 쭉쭉 높이세요. 미국의 나스닥은 초당 만 건의 거래까지도 받아낼 수 있는 곳이니까요.”

“부부문장님 혹시 그러다 허위거래로 잡히지는 않을까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김석현이 의문을 던졌다.

한진영은 김석현의 말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허위거래를 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한진영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바로 잡아내는 박도하의 질문에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일일이 설명하거나 그쪽으로 생각을 유도할 필요가 없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따라 그대로 따라오는 박도하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은 손가락을 들어 올려 박도하를 가리키고 말했다.

“초당 수백에서 수천 건이 주문과 취소가 이루어진다면 호가 공백이 일어나게 될 겁니다. 거래소에서는 이런 이상 현상을 가만두고 보지 못하겠지요. 분명 이상 거래라면서 제재를 가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한진영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둘러봤다.

“이게 법제화가 되어 시장에서 금지를 때리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우린 그 안에 해먹을 만큼 해 먹고 빠지면 됩니다.”

“해 먹고 빠지자고?”

최준호 부문장이 한진영의 말에 놀란 눈으로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쓰지 않을 때, 우린 먹을 만큼 먹고 빠지는 겁니다.”

한진영은 다시 시선을 박도하에게 돌렸다.

그리고 그에게 지시를 내리듯이 이야기했다.

“시장에 혼란을 줄 수도 있고, 시장을 어지럽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러 곳에서 동시에 써서 서로 부딪혔을 때 일어날 일이니 지금은 그런 것을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만 쓸 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속도를 올리십시오. 우리나라가 목표가 아니라 미국. 그중에서도 초당 수만 건의 주문이 들어가더라도 버틸 수 있는 나스닥이 목표이니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을 마지막으로 투자전략사업부의 회의가 끝이 났다.

각 팀에 지시를 내린 한진영은 김준하를 불렀다.

“김준하 대리.”

“네. 부부문장님.”

“잠시만 저 좀 보시죠.”

한진영은 자기 곁으로 김준하를 부른 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밖에 나온 한진영은 김준하를 향해 슬며시 물었다.

“지난번에 그랬지? 방향을 알면 승률을 높일 수 있다고…….”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에 지난번에 한진영이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충분하지 않은 승률에 한진영이 방향을 알면 승률을 높일 수 있느냐고 물었었다.

“네. 방향을 알면 승률을 높이는 건 가능한데…… 진짜 아세요?”

김준하는 한진영이 물어본 뒤 별다른 말이 없어 그저 확인하기 위해 물어본 것쯤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테스트를 마치고 정식 운용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또다시 물어보는 한진영의 말에 진짜로 한진영이 방향을 아는 것인지 궁금해진 김준하였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제는 더는 비밀이 아니니까.”

한진영은 말을 마친 후 김준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방향은 상방. 무조건 상방으로만 세팅해. 그렇게 되면 승률이 얼마까지 될까?”

“상방이요?”

김준하는 질문을 던지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는 한진영이 던진 질문에 대답했다.

“방향만 알면 95%까지 승률을 높일 수 있어요. 거래량과 속도가 코스피 선물 시장보다 빠른 유가 선물 시장이라고 하더라도요. 혹시 모를 일에도 대응하기 편하고요. 그런데 정말 상방만 보고 하방은 계산에서 제외해도 되는 거예요?”

“그래. 그러니까 그냥 하방은 염두에 두지 말고 상방으로만 전략을 짜도록 해. 110불까지 간다는 전제로 말이야.”

“110불…….”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을 잠시 떠라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아까 말씀하신 프로그램의 속도를 높이는 것도 더 쉬운 일이 될 거예요.”

“그래? 그것도 알아?”

박도하에게 물어보려 했던 질문이었다.

김준하는 한진영이 궁금했던 것을 박도하를 대신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박 팀장하고 많이 이야기했던 부분이었어요. 한쪽을 배제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속도는 두 배가 아니라 10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요.”

“속도를 10배 더 높일 수 있다고? 반을 잘라냈는데?”

“네. 그렇다고 해요. 반을 잘라내면 프로그램이 받는 부하는 1/10로 줄어들 수 있다고요. 그런데 정말로 상방으로만 보고 진행해도 되는 거예요?”

“그래. 그래도 돼. 그러니 바로 세팅하고 이번 주 안으로 정식 운용에 들어가도록 하자.”

“이번 주 안에요? 그렇게 빨리요?”

“그래. 저기 보니까 일이 더 급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니까.”

한진영이 김준하와 이야기를 하다 사업 부문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턱짓했다.

김준하는 한진영이 턱짓한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김정대가 빠른 걸음으로 한진영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준하가 급히 김정대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김정대는 그런 김준하의 인사를 향해 손만 들어 받고는 한진영 앞에 다가와 섰다.

한진영은 김준하에게 가도 된다는 말을 전한 후 김정대에게 인사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표정이 매우 급해 보이십니다.”

김준하는 김정대의 모습을 보고 조금 전 한진영이 한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김정대는 FICC 본부의 본부장이었다.

유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곳의 수장이 바로 김정대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급한 얼굴로 한진영을 찾아왔다면 외부에서 한진영이 한 말을 뒷받침할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대로 이번 주 안에 정식으로 프로그램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촉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김준하는 급히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김정대는 떠나는 김준하를 슬쩍 돌아보고는 한진영에게 말했다.

“터졌다.”

“뭐가 말씀이십니까?”

“리비아가 터졌다고…… 이거 정말 일이 심각하게 될지도 모를 것 같아.”

“아~”

한진영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 후 천천히 걸어 나갔다.

김정대는 그런 한진영의 뒤를 따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놀라지 않는 거냐?”

“오늘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 정부에서 리비아 대사관을 통해 교민 안전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거하고 내가 이야기하는 건 달라. 그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다는 거고…… 나는…….”

“소식이 들려온 겁니까?”

한진영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김정대를 바라보고 물었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는 리비아란 나라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

1969년 리비아 정권을 잡은 뒤 철권통치를 하며 독재자로서 유명세를 크게 떨쳤다.

미국과 날을 세우는 것도 서슴없었다.

강도 높은 발언을 하는 것을 즐겼으며 사치를 부리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아프리카 연합 의장으로 선출된 뒤 UN 총회에서 한 연설은 한동안 뉴스 면을 장식할 정도로 나라보다 통치자가 더 유명한 사람이었다.

카다피가 이렇게 자신 있게 국제무대에서 활개를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리비아가 산유국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전 세계 생산량의 4%. 혹은 그보다 못한 점유율을 가진 곳에 불과했지만, 석유 수출국이라는 지위가 그의 지지기반을 확고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전세계 유가의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OPEC 회원국이라는 사실도 그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와 신경전을 벌이다가는 다른 OPEC 회원국과도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의 행동을 눈감아주게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독재를 할 때도 다른 곳보다 더욱 심하게 국민들을 쥐어짰다.

카다피 일가의 부정 축재는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으며, 측근들의 비리는 눈감고 지나갈 수준을 한참 전에 넘은 상태였다.

카다피의 리비아는 속 안에까지 썩어 문드러져 들어갔다.

이런 나라 상황에 불만이 많았던 국민은 옆에서 불길처럼 번져가는 민주화의 열망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 손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릴 수도 있구나.’

그동안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옆에 나라인 이집트에서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리비아 국민도 카다피를 끌어내리기 위해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리비아로까지 번진 민주화 불길은 다른 방향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90불대를 넘었습니다.”

한진영은 시세 전광판 앞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시시각각 움직이는 유가 차트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미 어둑해진 밤이었다.

국내장은 폐장을 한 지 한참 지난 상태였으며 유럽장 또한 개장한 지 몇 시간이 흐른 뒤였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막차 또한 끊길 시간이었건만 신성증권의 투자전략사업부의 불은 환하게 켜진 상태였다.

“지금까지의 승률은?”

한진영은 유가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질문했고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던 김준하는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현재까지 승률은 97%예요. 이것도 오늘 결과를 확인하고 내일 수정을 한다면 98%대까지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98% 좋네. 시작치고는 말이지.”

한진영은 몇 달 동안 준비했던 유가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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