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
김준하가 약속한 98%의 승률을 올리는 프로그램은 다음 날도 계속 유가 선물 시장에서 돌아갔다.
“이거 뭐 돈을 쓸어온다. 쓸어와. 이게 얼마야?”
함께 한밤중까지 남아 시세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는 이성우는 계속 올라가는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늘만 벌써 10만 불이야?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너무 쉽게 돈을 버니까 뭐 현실감이 없어져 버렸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원래 프로그램이란 게 이런 거였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인데?”
최준호도 이성우와 같이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성우 손 위에 올려져 있는 팝콘으로 손을 뻗었다.
“조금씩 드세요.”
한 뭉텅이를 가지고 가는 최준호를 보며 이성우가 아깝다는 표정으로 팝콘을 내려다보고 투덜거렸다.
최준호는 이성우의 말을 못 들은 척 입에 팝콘을 넣으며 말했다.
“이게 문서로 볼 때하고 또 다르네. 진영아. 이렇게 모니터링할 수 있게 만들길 잘했다. 더 박진감 있어서 볼만하다.”
한진영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이 이야기하는 최준호의 말에 웃으며 곁에 놓여 있는 의자로 다가갔다.
그리고 비어있는 의자에 앉으며 이성우의 팝콘에 손을 뻗었다.
“너도 먹으려고? 아 진짜. 여기 밑에 편의점 가면 있으니까 사다 먹어. 왜 내 거 먹어.”
또다시 한 움큼이 사라져버린 팝콘을 안타깝게 내려보며 이성우는 투덜거렸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에게 팝콘을 한 알 던져 맞히고는 최준호에게 말했다.
“보기 좋으라고 이렇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보면 바로바로 수익이 얼마나 났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옆에 저 그래프를 보면 공식이 얼마나 잘 맞아 들어가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요. 우리는 단순히 호가 공백을 통한 차익거래만을 위주로 하는 게 아니니 저렇게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오류를 잡아내기도 편해요.”
“이걸 다 어떻게 생각해낸 거냐? 대단하다.”
최준호는 놀랐다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커다란 화면에 프로그램이 현재 보여주고 있는 모든 것들을 숫자와 그래프로 나타내는 것이 너무나 훌륭해 보인 최준호였다.
그리고 이런 시각적으로 뛰어난 것이 실제 운용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김준하가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모니터링 하며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운용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도하도 마찬가지였다.
프로그램이 오류 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천장에 매달려있는 화면만 쳐다보면 되는 것이었다.
이상이 있다면 완만하게 상승 중인 그래프에 이상이 보일 것이었고, 숫자 또한 이상을 보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시각적으로 확인되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이런 화면을 바라보며 입에 팝콘을 집어넣었다.
사실 한진영의 머리에서 이런 모니터링용 화면이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회귀 전, 박도하의 사무실에 방문하여 프로그램 구매 문의를 할 때 박도하가 보여줬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사다 쓰며 한진영도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지금 이렇게 투자전략사업부에 적용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칭찬하는 최준호를 돌아보고 웃었다.
“그렇게 저를 칭찬해주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네가 몸 둘 바를 모르면 안 되지. 이제 시작인데…… 안 그래?”
최준호의 말에 이성우가 팝콘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남들이 그런 이야기 들으면 욕해요. 이번 주에만 이걸로 올린 우리 사업부 수익이 20억이 넘어가잖아요. 수수료 같이 떼어야 할 돈 다 떼이고 순수하게 올린 수익만 20억이요. 거기다가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거의 무위험으로 올리는 수익 같아 보이니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도 이걸 보고 이제 시작이라고 하면…….”
최준호는 이야기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기를 노려보듯이 쳐다보는 최준호를 보고 물었다.
“왜 그러세요?”
“너는 집에 안 가냐?”
“저요?”
“그래. 너. 너 집에 안 가?”
“제가 왜요?”
“너는 여기 있어도 아무 도움이 안 되잖아. 그러니 이제 그만 가라. 시간도 늦었다.”
한창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초를 치는 이성우가 얄밉게 느껴진 최준호였다.
이성우는 그런 최준호를 향해 입을 삐죽이고는 자리를 옮겨 한진영 곁에 앉았다.
그리고 한진영에게 들고 있는 팝콘을 내밀고 말했다.
“그나저나 진짜로 리비아에서 난리가 났네. 나스닥도 죽죽 떨어지고…… 유럽 장도 시퍼렇고…… 우리나라 증시도 기운 다 빠진 것 같아.”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성우가 내민 팝콘을 집어 먹었다.
늦은 밤에 팝콘을 먹으며 화면을 쳐다보니 그 어떤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만 같은 한진영이었다.
최준호는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그 컨벤션 룸에서 이야기한 대로 되는 거냐?”
“컨벤션 룸?”
최준호의 말을 이성우가 받았다.
“그 컨벤션 룸의 이야기라면…… 대지진이요? 대지진이 진짜로 일어나는 거야?”
이성우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치자 사업부에 남아있던 직원들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봤다.
이성우는 갑작스럽게 몰린 시선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가린 손 사이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서 말한 말이 진짜로 실현되는 거야?”
한진영은 이성우가 얼굴을 가리느라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팝콘을 뺏어 들었다.
그리고 큼지막하게 팝콘을 손에 쥐고 말했다.
“너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대지진이 일어나느니 마느니 이야기는 또 어떻게 알아?”
“자리에 없었어도 들은 게 있지.”
“하여튼 너도 대단하다.”
한진영은 입에 팝콘을 부지런히 넣었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을 향해 가렸던 손을 슬쩍 풀었다.
“아무튼 내가 어떻게 아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진짜로 대지진이 일어나는 거야?”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피식하고 웃고는 팝콘을 들어 시세 전광판을 가리킨 후 대답했다.
“네가 저걸 보고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가 중요하지 않듯이 대지진이 일어날지 아닐지가 중요한 게 아니란 거지.”
이성우는 이제는 가렸던 손을 완전히 내렸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슬쩍 돌아보고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대지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잠식해 들어갔다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네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겠냐? 궁금해 미칠 지경일 거다.”
“그럼 일부러 떡밥만 던졌다는 이야기야?”
“떡밥만 던졌다?”
“그래.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일어날 것처럼 속였냐 이 말이야.”
한진영은 이제 먹을 만큼 다 먹었는지 팝콘 상자를 이성우에게 돌려줬다.
이성우는 가득 담겨있던 팝콘 상자가 이제는 바닥을 드러낸 모습으로 다시 자기 손에 돌아온 것을 보고는 가슴 아파했다.
그러나 텅 비어버린 팝콘 상자에 오랫동안 눈을 둘 수 없었다.
한진영이 팝콘 상자를 건넨 뒤 꺼낸 한진영의 의미심장한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아니지. 지금까지 내가 한 말 중에 이루어지지 않은 게 있었어?”
이성우는 천천히 팝콘 상자에서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한진영은 이성우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화면 속에서 수시로 변하는 유가의 가격과 그로 인해 쌓이는 수익 숫자만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새 유가는 90불 중반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
그동안 아프리카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이 없었던 세계 금융시장도 이제는 이번 사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어제 벌어진 유가의 폭등사태 때문이었다.
[유가 10% 상승마감.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당일 10%상승 기록]
하루 만에 10%가 상승하며 유가가 단숨에 90불 중반대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이제 서브프라임 사태 전에 기록했던 유가 100불 시대에 다시 성큼 눈앞으로 다가서고 말았다.
리비아의 소요사태가 쉽사리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유가의 상승을 견인하고 있었다.
실제로 리비아의 소요사태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단순했던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정부군과 경찰을 향해 시민이 무장을 하기 시작하며, 시위가 내전으로 확산할 거라는 예상이 시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게다가 보통이라면 하룻밤 만에 10%가 상승을 했을 경우, 조금은 하락하며 조정이 나오고는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10%가 상승한 것은 좀 과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시각이 시장에 경고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유가는 이번 악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채 상승에 큰 힘을 쏟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오르려고 저러는 거야?”
이성우와 한진영은 커피를 입에 물고 화면을 올려다봤다.
사무실 천장에 달린 전광판에서는 블롬버그 뉴스와 함께 서부 텍사스유 선물 가격이 표시되고 있었다.
“야. 어디까지라고?”
이성우는 곁에 있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질문에 별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110불.”
“맞아. 110불이라고 했지.”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가가 폭등하자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바로 이런 유가 사태에 반응하고 말았다.
2,100이라는 역사적 고점을 찍은 지수가 힘없이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축포 쏜 지 뭐 얼마나 됐다고 2,000이 깨져버렸네.”
“그렇지. 쏘아 올린 축포의 화약 냄새가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2,000 아래까지 빠졌으니 허탈할 거야.”
“그래. 누구는 허탈하고 누구는 돈 벌고…….”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이 말없이 웃음을 짓기만 했다.
이성우가 말하는 돈을 버는 사람이 바로 신성증권의 투자전략사업부라는 것을 알고 있던 한진영이었다.
그는 전광판에서 높아져 가는 숫자를 빙그레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 유가 사태와 주식시장의 조정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곳이 바로 신성증권으로 평가됐다.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유가의 상방 배팅을 80불대 초반부터 꾸준히 이어왔으며, 주식에 대한 고점 수익실현도 2,000중 후반대부터 꾸준히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한창 분위기 좋은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설 연휴가 끝난 뒤 급변하는 시장의 흐름 속에 신성증권의 뷰가 정확했음을 알게 됐다.
그래도 사람들은 1,900라인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1,900라인은 오랫동안 공방전을 벌였던 곳으로, 상방이 하방을 완벽하게 힘으로 제압한 라인이었기 때문이다.
이곳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의 조정을 건강한 조정쯤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2,200이나 2,300라인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힘의 응축이 필요했기에 지금의 조정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숨 고르기 정도로 생각한 것이었다.
적당한 시점에서 나온 외부의 악재가 쉴 타이밍을 주었고, 이 악재가 잠잠해진다면 증시는 더 높은 곳에 가 있을 거라는 것이 시장의 대다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한 부부문장. 한 부부문장. 어디 있어?”
이성우와 함께 서서 전광판을 바라보던 한진영은 소란스러운 입구의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잔뜩 상기된 표정을 한 장근수가 한진영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한진영은 장근수와 그의 뒤로 보이는 김정대를 보고는 먹고 있던 커피 음료수를 이성우에게 건넸다.
“이거 네가 버려라. 저 양반들 좀 상대해야 할 것 같으니까.”
“아니 저 두 분은 여기다 사무실 차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왜 또 오셨대?”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는 두 사람을 보며 이성우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웃으며 등을 두드렸다.
“리비아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지며 유가를 끌어 올렸어. 100불이 코앞이지. 게다가 우리나라 지수는 어때? 진짜로 연말부터 이어온 상승이 설 연휴까지 계속되어 2,100을 찍었지? 그리고 찍은 뒤 귀신같이 빠져 내려와 지금은 2,000도 깨지며 1,900대에 들어와 있고…… 이럼 뭐가 떠오른다고?”
“대지진?”
“그렇지. 그게 떠올라야지.”
“그럼…… 본부장님들도…….”
“그래. 왜 너하고 같이 생각하지 않겠어? 대지진 떠올라야지. 내가 지난 투자설명회에서 그랬거든.”
한진영은 앞으로 한걸음 내디딘 후 고개를 슬쩍 돌려 이성우를 뒤돌아봤다.
“진짜 악재는 유가가 아니라고 말이야.”
“그럼…… 진짜 대지진이 일어난다는 거야?”
“그와 같은 천재지변쯤이 일어나야 할 타이밍 같아 보이지 않냐?”
한진영은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
1,900 라인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강력한 지지를 보여줬다.
이곳이 뚫리게 된다면 지금까지 이어왔던 상승세가 힘이 꺾인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00라인을 테스트하는 외부 악재들은 계속 쌓여갔다.
특히, 리비아의 독재자를 타도하자는 내전이 벌어지며 유가가 결국 100불 대를 뚫고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에서는 리비아 사태가 중동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신성증권에서는 특이한 펀드를 출시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펀드가 아니었다.
1계좌당 최소 50억 이상을 받는 펀드로 펀드 총 유치 금조차 2,000억을 상한선으로 잡은 특이한 펀드였다.
사람들은 최소 입금액이 50억이라는데 놀랐으며, 50억씩 받는 펀드의 상한선이 2,000억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최소 입금액만 받더라도 40명만 받겠다는 뜻이었다.
만약 한 사람이 2계좌, 3계좌를 튼다면 10여 명 정도만 받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왜 지금 시점에 이런 펀드를 내놓은 것인지 그리고 이런 펀드를 누가 가입하겠다고 내놓은 것인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