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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49화 (149/650)

149화 여전히 그 생각은 유효하다

리비아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내전으로까지 번진 이번 사태는 반군들이 리비아의 송유관들을 파괴하며 유가의 방향을 강력하게 밀어 올려버리고 말았다.

한차례의 조정도 보이지 않은 상승이었다.

다이렉트로 올라왔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하루에 많게는 10%, 적게는 2~3%의 상승을 이어가며 결국 110불을 넘기고 말았다.

유가는 서브프라임 이후 최고가격을 연일 경신하는 중이었다.

대한정유의 윤길영 회장은 110불이라는 목표가가 달성되자마자 한진영을 불러들였다.

명목상으로는 유가 110불을 달성한 것을 자축하자는 뜻의 초대였다.

하지만 한진영은 윤길영 회장이 유가 110불 이후의 움직임을 알고 싶어 불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더하여 새롭게 출시한 펀드에 대한 관심을 윤길영이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한진영은 속내가 뻔히 보이는 윤길영을 마주한 채 그가 건네는 이야기를 웃으며 들었다.

“덕분에 짭짤했네.”

“저를 부르신 게 돈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려고 그러신 것은 아니신 것 같고…… 혹시 다음이 어떻게 하면 될지 궁금하셔서 부르신 겁니까?”

“하하하. 자네를 속일 수가 없구먼. 맞네. 110불까지 쉬지 않고 올라온 유가가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나는 매우 궁금하다네. 어떤가 이야기해 줄 수 있겠나?”

한진영은 윤길영의 말에 그저 웃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윤길영은 한진영이 쉽사리 입을 열 것 같지 않자 우선 다른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자네 회사에서 특이한 펀드를 출시했다며?”

“들으셨습니까?”

“들었지. 그렇게 특이한 펀드는 뉴스를 타지 않아도 우리 같은 사람들 귀에는 들리는 법이니까.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을 노리고 만든 거 아닌가?”

한진영은 이번에도 말없이 미소 지은 채 차만 마셨다.

윤길영은 그런 한진영을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섭섭하네. 그런 게 있다면 나에게 먼저 말해주지 그랬나? 그렇다면 내가 3~4계좌는 책임져줬을 텐데…….”

“회장님께 말씀드렸다면 거래를 하자고 하셨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렇기는 하지. 자네에게 좋은 정보를 들은 뒤에 들어갔겠지. 어떤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내가 들어가 줄까?”

윤길영은 한진영에게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골적인 제안을 건넸다.

그리고 이런 자기의 유혹을 한진영이 그냥 보고 넘어가지 않을 거로 확신했다.

이렇게 한 번에 3~4개의 계좌를 책임져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이한 만큼 들어갈 사람도 소수에 불과한 것이었다.

최소 10여 명에서 많게는 40명을 모집한다고 하지만 윤길영의 생각으로는 사람을 모두 채우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자기가 전체 금액의 1/10을 책임진다고 하면 한진영이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감사한 마음을 이용하여 110불 다음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그만큼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은 푹 빠진 상태였다.

“나는 큰 것 바라지 않는다네. 110불 다음을 알고 싶은 것뿐이야. 그것만 이야기해주면 당장 자네가 출시했다는 펀드에 투자하겠네. 내 약속하지.”

윤길영은 말을 하고 한진영의 얼굴을 살폈다.

이 정도 이야기했다면 ‘어이쿠, 감사합니다’ 하면서 한진영이 자기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웃기만 할 뿐 윤길영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윤길영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제안했다.

“내가 이번 일로 고마운 것도 있어서 그런 거니…… 좋네. 6계좌. 어떤가? 이 정도면 자네 회사에 내놓은 그 특이한 펀드가 성공적으로 고객 유치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겠나? 40개 중에 내가 6개를 책임질 테니 말일세.”

한진영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윤길영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이미 그 상품은 주인이 정해져 있습니다.”

“주인이 정해져 있다고?”

윤길영은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 특이한 상품은 바로 신성증권의 VIP들을 위해 설계된 상품이었다.

투자전략사업부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간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상품으로, 그들에게 투자전략사업부의 수익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잡힌 물고기나 마찬가지인 윤길영에게 그 맛을 보여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컨셉 자체가 대규모 금액을 집행한 측에서 돈을 회수해 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펀드였기에 윤길영 혼자 6개의 계좌를 책임진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윤길영에게는 110불 뒤를 이야기해줄 생각이 없었기에 한진영은 윤길영의 제안을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시험적으로 출시한 만큼 그 대상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거기에 내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네.”

한진영은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110불 뒤의 이야기를 한진영에게 들을 기회가 사라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진영이 출시한 펀드에 관심을 보인 것은 윤길영만이 아니었다.

이미 한진영의 능력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진영에게 펀드에 대해 문의를 하기 바빴다.

수익만을 위해 모집한 펀드였기에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신성증권이 아니라 온전히 투자전략사업부에 맡기는 조건이 한진영을 아는 사람들의 구미를 더욱 당기게 만들었다.

기풍철강의 이정훈 회장을 비롯하여 LZ그룹과 강선건설 그리고 프라임리츠까지 한진영을 아는 이들이라면 너도나도 펀드에 가입하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심지어 신성증권의 모회사인 신성그룹의 이수암 회장조차 그룹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투자 차원에서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이런 연락을 모두 거절한 채 가만히 그물에 걸려들 물고기들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렇게 2월이 지나갔다.

***

리비아에서 불거진 유혈사태는 UN의 개입으로 빠르게 진정세를 찾기 시작했다.

리비아 반군에게 석유 시설의 파괴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거라는 미국의 반응까지 나오자 유가는 빠르게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투자전략사업부는 물론이고 FICC 본부와 WM 본부까지 신성증권은 풍악을 울려도 모자랄 지경으로 알차게 해 먹었다.

그러나 이런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김정대와 장근수는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톡톡톡톡.

김정대가 자리에 앉아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는 피로감에 젖어 있는 얼굴을 한 장근수에게 질문했다.

“VIP들에게는 뭐라고 연락 와?”

“뭐라고 연락 오기는…… 네가 조금 전에 한 이야기하고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지. 혹시 가입한 사람이 있느냐고 말이야. 서로 간에 간을 보는 것 같아. 들어간 사람이 있는지 아닌지 하고 말이야.”

장근수는 피곤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말했다.

“문의는 끊이지 않고 오고 있기는 해. 지난 호텔에서 보였던 것처럼 완전히 무시하는 모습은 아니야. 그런데 아직도 긴가민가하기는 하나 봐. 하긴 그럴만하지. 긴가민가할 거야. 왜 안 그렇겠어. 나도 마찬가지인데…….”

장근수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유가의 고점과 코스피의 저점을 맞혔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있어 한진영은 아직 확신이 안 서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부부문장은 계속 VIP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다고 하더라. 가입하겠다고 문의해오는 곳들도 받지 않고 VIP들이 연락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 왜 하겠다는 사람을 받지 않고 죽자 살자 호텔에 모여 있었던 그 VIP들만 기다리는 거야? 아닌 말로 대한정유의 윤 회장님은 VIP 아니야? 소문으로는 윤 회장님이 혼자 6계좌까지 책임지겠다고 했다는데 그걸 마다하셨단다. 그 한 부부문장님이 말이다.”

장근수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계속 이야기했다.

“어차피 남의 사업부가 결정한 일을 가지고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가. 그렇게까지 VIP들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 윤 회장님도 VIP기는 마찬가지잖아. 그날 호텔에 오시지 않아서 그렇지…… 왜 그렇게 고집인지. 쯧.”

장근수는 혀를 차고는 고개를 저었다.

김정대는 가만히 장근수의 이야기를 다 들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장근수는 자리에서 일어난 김정대를 올려다봤다.

“가보자.”

“어딜?”

“지금 내가 가자고 하면 어딜 가자고 하겠냐? 뻔하지 않아?”

“한 부부문장 만나러 가보자고?”

“그래. 거기 가봐야 할 거 아니야?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접 보고 물어봐야지.”

“지난번에 갔을 때도 그냥 기다려 보자고 말한 게 전부였잖아.”

종합주가지수가 1,900라인에 걸치고 유가가 110불에 도달하자 한동안 김정대와 장근수는 뻔질나게 한진영이 있는 투자전략사업부를 찾았다.

다음 이야기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확인하기 위해 뻔질나게 한진영을 찾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한진영은 기다려 보자는 말만 건넸었다.

김정대와 장근수가 보기에 한진영은 진심으로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을 믿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어.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으면 생각에 변화가 있지 않겠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천재지변을 아직도 기다릴 리가 없잖아. 가자. 어차피 내일이면 주말이야. 생각해놓았다면 오늘은 다른 모습을 보일 거야. 그럼 뭔가 답을 얻을 수 있겠지.”

김정대는 앉아있는 장근수를 놔두고는 방을 나섰다.

앉아있던 장근수는 그런 김정대의 뒤를 급히 일어나 뒤쫓았다.

투자전략사업부는 오늘도 여전히 바쁜 모습이었다.

신년 초부터 돈을 쓸어 담았던 것이 지금은 피크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야. 소문에 여기서 운용하는 프로그램 수익이 하루에 30~40억 정도라고 하던데…… 뭐 거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수준 아니냐?”

장근수가 혀를 내두르며 투자전략사업부를 살폈다.

사업부가 올리는 하루 수익과 사업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한다면 이제는 사업부라 부르기도 어려울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장근수는 조만간 본부로의 승격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사업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한진영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김정대와 장근수를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마저 이야기하던 것을 마무리 짓기 위해 조수아에게 지시했다.

“계속 계좌 열어두세요. 주말 동안에 입금부터 하고 펀드에 가입하겠다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수시로 확인하시고요. 혹시 모르니 우리가 설정했던 숫자보다 더 많이 돈이 입금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됩니다.”

김정대와 장근수는 한진영의 곁에서 한진영이 조수아에게 지시하는 이야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장근수는 조수아가 알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나는 것을 확인한 뒤 급히 한진영의 옷깃을 잡았다.

“혹시 네가 만든 그 펀드에 가입하겠다는 VIP분들이 있으셨어?”

“아니요. 문의 전화는 꾸준히 오는데 아직 가입하겠다는 분은 없으셨어요.”

“그런데 주말 동안에 가입하겠다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계좌 열어놓고 수시로 확인하라는 말은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입니다. 주말 동안에 가입하겠다고 연락이 올지 모르니까요.”

“그게 무슨…….”

장근수가 생각지도 못한 한진영의 대답에 김정대를 돌아봤다.

자기는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니 김정대에게 대신 물어보라는 눈빛이었다.

김정대는 그런 장근수의 눈빛을 받아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럼 호텔에서 이야기한 그 생각이 유효하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는 거냐?”

“본부장님.”

한진영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천장에 달린 화면에 떠 있는 시세 전광판을 바라봤다.

일주일 전과 바뀐 것이 많지 않은 숫자들이었다.

코스피와 유가 선물 가격 그리고 해외시장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쪽에 떠 있는 투자전략사업부의 누적 수익만큼은 김정대가 방문했을 때와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누적 수익 500억.

3천억으로 설정된 사업부의 운용기금이 벌써 누적수익 20%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수익을 바라본 채 말했다.

“조금 더 기다려도 저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건 두 분의 본부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FICC 본부 수익도 상당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WM 본부도 마찬가지고요.”

김정대와 장근수는 한진영의 말에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한진영의 말대로 두 본부가 이번 일로 올린 수익도 상당한 것이 사실이었다.

미리 포지션을 잡고 코스피와 유가를 다 발라먹은 덕분이었다.

김정대는 머쓱한 표정을 지우고 다시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래. 네 말이 사실이기는 해. 그런데 기다림이라는 것도…….”

“야. 야.”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법이지 않냐고 이야기하려던 김정대의 옷을 장근수가 잡아당겼다.

“왜 그래?”

한창 말을 하려는 자기 옷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장근수의 손을 김정대가 뿌리쳤다.

그리고 장근수를 돌아봤을 때 장근수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김정대도 장근수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일본의 니케이 지수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야?”

엉덩이가 무겁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니케이 지수가 갑작스럽게 심하게 요동치는 모습과 함께 엔화 가격의 급변도 눈에 들어왔다.

“왜 저래?”

김정대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 급히 블룸버그 속보가 나오고 있는 화면을 돌아봤다.

그곳에서는 일본에서 전해진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긴급. 일본 도호쿠 지방 진도 7 강진 발생. 쓰나미 발령]

[미야기현 높이 6m, 이와테와 후쿠시마현 3m 쓰나미 경보 발령]

[센다이 공항 비행기 이착륙 중단]

[일본 기상청 해안이나 강가에 사는 주민들 즉시 고지대로 대피 권고]

바로 5분 전만 해도 언제까지 천재지변이 일어나길 기다리냐는 생각을 하던 두 사람은 실제로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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