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50화 (150/650)

150화 우리에게 알맞은 수준

일본의 지진 속보는 우리나라 장 마감 직전에 시장에 알려졌다.

속보가 떴을 때는 이미 정규 장이 마감한 뒤였기에 우리나라 장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일본의 니케이도 영향이 미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인 급락이 나오기는 했지만, 하락 폭은 제한된 상태였다.

그저 선물만이 지금의 속보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이었다.

김정대와 장근수는 화면에 보여주는 숫자에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고베 대지진 때의 이야기 들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수준의 천재지변이라면 엄청난 충격이 몰려올 것으로 생각했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작은 수치에 그들은 충격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진짜…… 지진이…… 난 거야?”

하지만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일이 일어난 것에 충격이 없을 수는 없었다.

장근수는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올려다본 채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김정대도 놀랐는지 입을 벌린 채 장근수가 바라보고 있는 화면을 같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이성우가 다가왔다.

“한 부부문장님. 뭐야? 어떻게 알았어?”

이성우는 놀라기는 했지만, 김정대와 장근수만큼은 아니었던 듯했다.

한진영에게 말을 거는 것이 당황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신기한 마음에 소식을 듣고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 듯 보였다.

“진짜 지진 일어났네. 진도 7? 근데 이 정도는 일본에서 매번 일어나는 수준 아닌가? 우리는 잘 모르지만 얼마 전에도 보니까 진도 6짜리가 몇 번이나 일어났었다고 하던데…… 대지진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것 아니야?”

이성우의 말에 김정대와 장근수는 정신을 차렸다.

진도 7이라는 숫자가 지진 청정구역인 우리나라에는 큰 숫자일지 몰라도, 일 년에도 수백 번의 지진이 일어나는 일본이 느끼기에는 작은 숫자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교묘하게 유가 폭등 다음에 일어나서 그렇지 이게 일본으로서는 큰일이 아닐 수도 있어. 그렇지? 봐봐. 그러니까 니케이 하락도 제한적이었지. 아니었다면 막 -5%, -7% 혹은 서킷이 걸리는 장이 연출됐을 거 아냐?”

장근수가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는 말로 김정대를 돌아봤다.

김정대도 지금만큼은 장근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진영이 말 듣고 계속 일본 쪽 모니터링 했었어. 안 그래도 일주일 전에 진도 5짜리 지진에 6짜리 지진은 한 달 전에도 있었다고 하더라. 진도 7이면…… 비슷한 거 아닌가?”

지진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기에 진도 6과 7은 숫자 1만큼의 차이로 비슷한 수준의 지진이 아니냐고 생각한 김정대였다.

한진영은 억지로라도 지금 상황을 외면하려는 장근수와 김정대의 마음을 이해했다.

진짜로 한진영이 예상하고 벌어진 일이라면 이제부터는 한진영의 말은 믿음의 영역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주일날 예배를 보듯이, 절에 들어가 불공드리듯이, 서낭당에서 치성 기도를 하듯이.

한진영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반발이 일어나 애써 외면하려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향해 말없이 웃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어차피 주말이 지나면 그들도 모두 알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금요일 장 끝나기 10분 전에 속보로 전해진 일본의 지진 뉴스는 그날 밤은 물론이고 주말 내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속보로 7이라고 이야기했던 지진 계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올라갔다.

그리고 결국 다음 날 진도 9.0이라는 공식발표를 일본 정부에서 하며 역대급 지진이 발생했음을 공식화했다.

9.0이라는 숫자도 문제였지만 더욱 크게 세상을 뒤흔든 건 뒤이어 일본을 덮친 쓰나미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쓰나미라는 명칭에 생소했던 대한민국 국민도 쓰나미가 가진 위력을 몸소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주말 내내 방송에서 쓰나미로 쓸려간 일본이 화면에 나갔기 때문이다.

사망자 수는 천 단위를 훌쩍 넘어 만 단위에 이르렀으며, 통신과 전력까지 모두 끊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미국 다음가는 나라라며 자부심에 쌓여있던 일본이 삽시간에 석기시대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일본에 친척이나 지인이 있던 사람들은 주말 내내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통신시설이 끊어지며 일본에 연락을 넣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쓰나미가 직접 들이닥친 지역에서는 일본 내에서도 연락이 닿을 길이 없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그저 별일이 없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 교민들과 여행 간 국민들 그리고 관계자들의 안전을 확인하며 이번 일이 어떤 영향을 줄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가장 가까운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정부 관계자들은 주말도 잊은 채 정부 청사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그리고 이런 대한민국 정부만큼이나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 신성증권에도 있었다.

따르릉.

조수아가 익숙한 표정으로 벨이 울리는 수화기를 들고 통화했다.

“네. 계좌를 트고 싶으시다고요? 성함이…… 아 조 회장님. 네. 네. 확인됐습니다. 안 됩니다. 저희는 무조건 1인당 2계좌 이상을 열지 못하도록 방침을 세운 상황입니다. 대신 조 회장님의 초대로 지인을 한 명 데리고 들어오실 수는 있습니다. 저희 증권사에 VIP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지만 저희 펀드에 가입하시고 싶으시다면 이 방법밖에 없으십니다.”

조수아는 능숙한 말솜씨로 연락을 받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도 이런 연락을 받는 전화를 직원들이 받았다.

“선착순으로 40계좌만 받기로 했습니다. 금액도 계좌당 50억으로 고정되어 있고요. 네. 결정을 내리셨다고 하더라도 늦으시면 저희가 받지를 못합니다. 지금…… 판매된 계좌 수는 서른 계좌입니다. 딱 10계좌가 남았네요.”

한진영은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커피를 든 채로 사무실 가운데 서서 상담을 받고 있는 사업부 직원들을 훑어봤다.

그런 한진영의 곁으로 최준호가 다가왔다.

한진영은 최준호를 슬쩍 돌아보고는 웃었다.

“이제 부문장님께서는 들어가세요. 주말에도 나와 계시면 사모님께서 뭐라고 하지 않으시겠어요?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내셔야죠. 저처럼 총각이나 주말에도 이러고 있지만…….”

“아이들이라고 해 봤자 다 큰 놈들이야. 그리고 서방님이 나와서 돈 버는데 마누라가 뭐라고 하면 쓰나?”

최준호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한진영에게 바싹 붙었다.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도 마음고생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진영의 말도 안 되는 일을 처음부터 곁에서 계속 지켜본 최준호도 이번만큼은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공하지 못하면 사표를 내겠다고 큰소리치고 만든 펀드였다.

그렇게 큰소리를 쳤는데 펀드가 개설된 뒤 보름이 넘어가도록 한 명도 유치하지 못한 것에 최준호는 가슴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한동안 최준호는 가슴팍에 사직서를 품고 회사로 출근했었다.

그런데 금요일 오후 벌어진 일로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다.

이제는 서로 가입하겠다고 주말에도 불이 나도록 전화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최준호는 직원들이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는 것을 둘러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펀드 규모를 조금 넓혀보는 건 어떨까? 계좌 수 40개는 너무 적은 것 같아. 한…… 60개. 아니 아니. 그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 50개만이라도…….”

한진영이 커피를 든 채로 최준호를 돌아봤다.

최준호는 그런 한진영을 향해 아쉬운 표정을 가득 지은 채 말했다.

“40개로 한정해 놓으니까 아쉬워서 그렇지. 돈을 더 많이 넣겠다는데도 받아주지 않으니까.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또 우리한테 VIP 가입하겠다고 펀드에 돈을 넣게만 해달라는 사람도 받아주지 못하니까.”

“초대를 받으면 받게 해주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한 사람이 딱 한 명만 초대할 수 있으니까. 그게 문제가 되는 거지.”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터진 것을 확인한 VIP들은 앞뒤 잴 것도 없이 돈을 무섭게 집어넣었다.

일부는 연락도 없이 계좌에 돈부터 집어넣는 사람도 있었다.

한진영의 예상대로 마감이 무서워 돈을 먼저 넣어 순번을 당기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최준호는 한 명도 받지 못했던 펀드가 이제는 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2,000억을 다 채울 수 있을까 했던 펀드규모가 이제는 왜 3,000억이나 4,000억으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됐다.

지금이라면 4,000억이 아니라 1조로 설정해도 돈을 모으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최준호만이 아니었다.

상담전화를 받고 있는 조수아부터 시작해서 펀드 설계에 참여한 신임 리서치 센터장에 정식으로 올라선 임재홍까지 모든 이들이 2,000억이라는 숫자를 아쉬워했다.

그러나 한진영만은 펀드 규모를 늘리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0억이 딱 좋습니다.”

“딱 좋다고?”

“네.”

한진영은 계속된 속보가 전해지는 화면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는 총 5,000억의 자금만 있으면 돼요. 그 이상을 굴리기에는 우리가 아직 체력이 튼실하지 못한 상황이니까요. 괜히 욕심만 생겨서 돈을 마구마구 끌어오다 보면 감당하지 못해 탈이 날 게 분명해요. 지금 우리 수준에서는 딱 5,000억이 우리가 운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금액이에요.”

다른 사람이라면 욕심을 낼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서로 돈을 넣겠다고 난리인 상황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 있었다.

수많은 고객을 상대했던 최준호조차도 흔들렸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달랐다.

이미 자산운용사를 설립해서 높은 곳까지 올라가 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냉철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이 계산하기에는 여기가 딱 알맞은 수준이었다.

***

주말에도 계속 일본에서 날아온 소식에 정부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일본에서 벌어진 일로 한국이 받을 타격을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회의에는 각 증권사 사장단도 포함되었다.

금융시장의 피해가 가장 크고 빨랐기 때문이다.

회의는 월요일 새벽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장이 열리기 전에 각 회사의 사장들은 자기들의 회사로 돌아갔다.

장이 시작하기 전에 피해를 먼저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피해금액을 파악하기 위해 남원석 사장은 긴급소집을 명령했다.

소집된 사람은 임원급부터 시작하여 신성증권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직원으로 범위를 넓혔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두 시간 만에 급히 마련된 자리에 남원석은 지난밤에 있었던 정부 관계자들과의 회의를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신성증권은 피해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으며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 회사는 일본에 투자한 자금이 얼마나 되는 건가요?”

남원석의 질문에 경영지원본부의 노 전무가 대표로 대답했다.

“현재 일본 관련 펀드에 50억 정도 들어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거 외에는 현재 특별하게 위험에 노출된 금액은 없는 상태입니다.”

“50억…… 다행이네요.”

“네. 다행입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노 전무는 FICC 본부의 김정대와 WM 본부의 장근수를 슬쩍 돌아본 뒤 이야기했다.

“올해 초부터 각 본부에서 일본에 투자하고 있던 자금을 회수한 게 익스포저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었던 이유로 판단됩니다.”

“어디가 줄인 겁니까?”

“FICC와 WM이 일본 쪽 자금을 회수하는 데 적극적이었습니다. 다른 곳도 그런 두 곳의 모습을 보고 몸을 사렸고요.”

노 전무의 대답에 남원석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있는 김정대와 장근수를 바라봤다.

“다행입니다. 두 분이 우리 신성증권을 살리셨습니다.”

남원석이 임원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김정대와 장근수를 향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직 금융시장이 열리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모두들 장이 열린다면 큰 위기가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일본 원전까지 피해를 보며 그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식은 물론이고 국채를 비롯하여 엔화까지 모든 것이 지진이 몰고 온 쓰나미가 일본을 쓸어갔던 것처럼 모든 것을 쓸고 갈 것으로 예상했다.

남원석은 다른 증권사 사장들의 한숨 속에 담겨있던 금액을 떠올리고는 안도했다.

대부분 천억 단위 이상을 이야기했던 증권사 사장들이었다.

그런 그들에 비하면 미미하다는 말 조차도 우스울 정도인 50억은 웃으며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었다.

김정대와 장근수는 그런 남원석의 고마움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탁자 끝에 앉아 있는 한진영의 이야기를 따른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걸 밝힐 수가 없었던 두 사람이었다.

한진영이 자리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있는 상황에서 모든 공이 한진영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는 FICC 본부와 WM 본부가 한진영의 투자전략사업부의 산하 부서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대와 장근수는 미안한 표정으로 한진영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와 장근수의 생각과 달리 무심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만 있을 뿐이었다.

한참 동안 각 부서에 특별한 일이 없는 것인지를 살핀 남원석은 긴장이 풀린 모습을 보였다.

크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신성증권은 이번 일에서 비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 남원석이었다.

남원석이 한숨 돌릴 때 노 전무가 한진영이 있는 쪽을 돌아보고 입을 열었다.

“사장님.”

“네. 노 전무님. 말씀하세요.”

“오늘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투자전략사업부에서 새롭게 출시한 펀드가 마감되었다고 하더군요.”

“새로 출시된 펀드라면…… 그 펀드 말입니까? VIP들만으로 구성한 펀드? 2,000억 규모의?”

“네. 그게 마감되었다고 합니다.”

남원석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한진영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제가 분명히 금요일 퇴근 전까지 받은 보고로는…… 신청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들었는데 그게 마감이 됐다는 말입니까? 어떤 분께서 대규모로 자금을 집어넣으신 건가요?”

“자리에 그 펀드를 설계한 주인공이 있으니 이 참에 그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떠십니까? 다행히도 우리는 이번 일본의 쓰나미의 위험에서 한걸음 비켜난 것 같으니 말입니다.”

노 전무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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