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어려워지는 쪽이 나에게 더 좋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노 전무가 이야기한 펀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도 한진영의 투자전략사업부에서 새롭게 출시가 된 펀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펀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그걸 누가 가입해?’
펀드가 어디에 투자하고 예상 수익률이 어떠며 수수료가 얼마인지 등과 같은 펀드 본연의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40개의 계좌만 받을 것이고, 계좌당 설정금액이 50억이라는 말만 귀에 들릴 뿐이었다.
게다가 가입 조건은 신성증권의 VIP만 가능하다고 했다.
펀드가 팔리더라도 절대 절반인 1,000억 금액을 채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만큼 말도 안 됐고 일반적인 상식을 파괴하는 펀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 전무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같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게 다 팔렸어?’
‘도대체 왜?’라는 궁금증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사람들은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 부부문장.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대답해보시죠. 이번에 새롭게 설정한 펀드는 도대체 어디에 투자할 예정입니까?”
“분명 제가 투자설명서를 함께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요. 분명 적혀 있기는 했죠. 특정자산, 지역, 섹터에 구분하지 않고 돈이 되는 곳에 투자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보셨네요.”
“이거 몇 년 전에 나왔던 펀드와 매우 유사한 이야기 아닙니까?”
“아웃사이트 펀드요?”
“끄응~”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이 아무렇지 않게 펀드 이름을 이야기하자 모두 불편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 아웃사이트 펀드는 입에 올리기 불편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노 전무는 인상을 찌푸린 채 한진영에게 말했다.
“맞아요. 그 아웃사이트 펀드. 그게 지금 어떻게 됐는지는 아시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펀드를 내놓았으니 우리가 걱정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아웃사이트 펀드와 우리 사업부에서 내놓은 펀드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추구하는 방향이 같다고 다 같은 펀드는 아니니까요.”
“그래도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겁니다.”
“그것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저는 다수를 위해 내놓은 것이 아니니까요. 가입한 사람들만 제 생각을 이해해주면 되는 겁니다.”
노 전무는 한진영을 상대로 도저히 말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점차 개장 시간이 다가온 상황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오래 논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핵심만 다시 물었다.
“뭐 그건 좋아요. 그러니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번에 모인 자금을 어디에다 쓰실 생각입니까? 자그마치 2,000억이나 되는 돈을 말입니다.”
“돈이 들어왔으니 주식을 사는 게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설마 돈이 들어왔는데도 현금으로 들고 있을 거라 생각하신 건 아니시죠?”
“주식을 산다고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크게 돌려 한진영을 돌아봤다.
자기들이 들은 게 맞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저희의 판단으로는 지금 타이밍은 매수할 때라는 겁니다. 그것도 매우 강력하게 말입니다.”
“아니. 이봐요. 한 부부문장.”
노 전무가 한진영의 말에 강력하게 반발하려 할 때 김정대가 나섰다.
“자자. 그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도록 하시죠. 지금 개장하기 한 시간 반 전입니다. 이제 슬슬 돌아가 오늘 있을 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김정대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같이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게 뻔한 날에는 두 시간 전에는 모여 오늘 있을 시나리오를 정리해야 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빨리 자기 사무실로 돌아가길 바라는 얼굴로 노 전무를 쳐다봤다.
이런 사람들의 시선을 노 전무는 외면할 수 없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로 자리를 마무리했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돌아가기 시작했다.
“매수를 할 거라고?”
김정대와 장근수는 자기 사무실로 돌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한진영의 뒤를 따라 투자전략사업부로 향했다.
그들에게는 조금 전 한진영이 회의 자리에서 꺼낸 말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네. 모르셨어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한진영의 대답에 장근수가 김정대를 돌아봤다.
그러자 김정대가 장근수를 대신해서 한진영에게 질문했다.
“오늘?”
“오늘이라도 좋은 자리가 온다면 매수해야죠.”
“정말로 매수하려고? 왜?”
“이유는 제가 호텔 컨벤션 룸에서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한진영의 말에 그제야 김정대와 장근수는 한진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고베 대지진 이후 자동차와 전자 산업이 수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진영이 분명 그 자리에서 했던 것이었다.
김정대와 장근수는 잠시 서로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장 마감하면 찾아갈 테니까 오늘도 수고해라.”
“수고해.”
김정대와 장근수는 짧은 인사를 건넨 후 급히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본부로 향했다.
최준호는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잠시 지켜본 뒤 한진영에게 물었다.
“왜들 저러는 거야?”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할 테니까요.”
“네 말대로 네가 호텔에서 VIP들에게 했던 말 아니야? 근데 전략을 다시 세워?”
한진영에게 모든 것을 맡긴 최준호에게는 두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진영의 말을 듣기만 하면 알아서 모든 일이 착착 굴러가는데 왜 전략을 다시 세우고 말고 하는 것인지 최준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그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최준호는 잠시 떠나간 두 사람을 바라보다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아! 맞아. 그런데 노 전무는 왜 시비를 거는 거냐?”
“시비를 거는 것처럼 보였어요?”
“시비 거는 게 아니야? 일본 쪽에 투자한 자금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는 자리에서 왜 우리가 투자받은 돈을 어디다 쓸 거냐고 물어보는 게 의도가 있어 보이던데? 아니야?”
“제대로 보셨네요.”
“맞지? 시비 거는 거지?”
최준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눈을 부라리고는 아직 노 전무가 나오지 않은 회의실을 한번 노려보고는 말했다.
“아니. 경영지원본부 사람이 왜 우리 사업부 자금을 가지고 어디다 쓰냐 마냐를 따져? 이상한 사람 아니야?”
“이상할 것 없습니다. 그는 정말로 우리가 새롭게 설정한 펀드 자금을 어디다 쓸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까요.”
“궁금하다고? 그가 왜?”
최준호는 회의실 쪽을 쳐다보는 것을 멈추고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기 본부나 사업부에서 진행하는 일 외에는 절대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이 바닥 특징이었다.
괜한 관심으로 책임을 함께 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노 전무는 경영지원본부였다.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곳도 아닌 곳에서 투자전략사업부의 사업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최준호가 궁금한 듯한 표정을 짓고 한진영을 바라보자 한진영은 웃으며 최준호의 등을 쓰다듬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오늘 있을 일을 준비하는 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그 이야기는 차차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일입니다.”
“준비? 아차.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어서 가자. 애들이 기다리고 있겠다.
이미 사업부 회의실에 모여 있을 팀장들을 떠올리며 최준호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방향을 정해줘야 사업부에 자리한 팀장들도 각자 맡은 팀을 끌고 오늘의 전장에 참여할 수 있었다.
최준호가 속도를 높여 앞으로 걸어가자 한진영은 잠시 노 전무가 있는 쪽을 돌아보고 최준호의 뒤를 따랐다.
한진영은 노 전무가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고 있었다.
‘탐이 나겠지.’
상황이 좋지 않은 신성그룹이었기에 2,000억이라는 자금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펀드에 가입하는 2,000억을 신성그룹이 중간에서 자기들 쪽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 자금을 이용하여 그룹을 측면에서 지원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걸 기대하여 노 전무가 한진영에게 자금의 사용 출처를 물어본 것이었다.
그러나 신성그룹과 노 전무의 기대와 달리 한진영을 신성그룹을 측면에서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에게는 오히려 흔들리는 신성그룹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답답해하는 노 전무와 남원석 사장의 기운을 느끼며 투자전략사업부로 향했다.
***
도호쿠 대지진이 일본을 강타한 뒤, 열린 시장은 쓰나미에 쓸려나간 일본의 도시만큼이나 처참했다.
예상대로 일본은 장 시작과 함께 서킷이 터지며 폭락에 폭락이 더해져 갔다.
엔화 가치도 폭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채를 비롯하여 일본과 관련된 것은 모든 것이 시장에서 맹폭격을 받았다.
당장에 일본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팽배한 시장은 일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던져댔다.
이런 일본의 폭락에 우리나라 시장도 충격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코스피가 장중 -2%가 넘게 빠지며 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그대로 우리나라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팽배해져만 갔다.
철통같이 지키던 1,900라인도 대지진의 영향으로 무너지며 분위기는 긴장감이 넘치게 변하고 말았다.
작년 가을부터 이어온 상승세가 이제 끝이 났다는 의견이 시장을 장악한 것이었다.
그만큼 1,900이라는 라인은 시장의 연속성에서 중요한 위치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지를 받을 수만 있다면 재차 2,100라인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가 펼쳐질 수 있는 곳이 바로 1,900라인이었다.
그러나 이 라인이 외부 악재에 의해 힘없이 무너지며 이제 상승은 끝이 났다는 시각이 시장을 장악했다.
이제는 하락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의견이 모여 가는 모양새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성증권만은 다른 선택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받았냐?”
장이 마감한 뒤 찾아온 장근수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대충 이번에 새로 설정된 펀드 금액의 절반 정도를 담았습니다.”
“절반? 오늘 하루에만?”
“네. 아주 쌌거든요.”
“그래?”
한진영의 대답에 장근수가 머리로 계산하는 사이 이번에는 김정대가 질문했다.
“어떤 거 담은 거야?”
“그건…….”
한진영이 대답하려 할 때 이성우가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이성우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다 자리에 있는 장근수와 김정대를 발견하고 급히 인사했다.
“오셨어요?”
“뭐야? 무슨 일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잠시 머뭇거리던 이성우는 이곳에 온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진영이가 말도 안 되는 일을 해서요. 들어보세요.”
이성우는 자리에 앉으라는 이야기를 듣지도 않았는데 의자를 빼 자리에 앉으며 두 사람을 향해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글쎄 한 부부문장이 오늘 자그마치 1,000억이라는 돈을 모두 집행했어요.”
“그건…… 우리도 들었어. 그게 왜?”
처음부터 자기의 말에 호응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성우는 이런 말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오늘 지수가 1,880까지 빠졌단 말이에요. 이럼 하락장에 들어갔다고 봐도 되지 않아요? 1,900이 깨지면 조정장이 아니라 명백히 하락장이라고 볼만한 자리니까요. 이건 제 생각만이 아니에요.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이성우의 말에 장근수와 김정대가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이성우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또 자기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말을 꺼낼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뭐 그거까지는 이해해요. 한 부부문장의 판단이야 알아주는 거니까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전자와 자동차를 매수하냐 이 말이에요.”
“전자 어떤 거 매수했는데?”
장근수의 말에 이성우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삼선전자요.”
“그렇지.”
장근수가 주먹을 꽉 쥐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성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부장님. 왜 그러세요?”
“어? 그거 우리 본부에서 추천주로 각 지점에 내려보낸 거거든. 잘 맞췄네. 자동차는 당연히 미래차겠지?”
“네. 그것도 맞는데…….”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장근수가 속 시원한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전과는 다른 자세로 의자에 편히 앉았다.
이성우는 그런 장근수를 향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본부장님. 일본이 타격을 입으면 가장 힘들어할 곳이 바로 전자와 자동차예요. 매도해도 모자랄 판에 거기를 매수하면 안 되지요.”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지.”
김정대가 이성우의 말에 반응하자 이성우는 이번에는 김정대 쪽을 돌아보고 이야기했다.
“맞아요. 그렇다니까요. 부품소재에 강점을 보이는 일본에서 부품을 생산하지 못하고 공급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전자업계는 어떻겠어요? 한 방에 무너진다니까요. 자동차는요? 자동차는 또 어떤데요? 자동차에 들어가는 나사 하나만 일본에서 건너오지 못해도 완성차는 나오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하필이면 소재 관련 회사도 아니라 완성차 업체에 돈을 그렇게 때려 박다니…… VIP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성우는 답답하다는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고 한진영을 돌아봤다.
김정대는 그런 이성우와 한진영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다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럼 나머지 1,000억은 언제 집행할 거냐?”
“내일이나 모레? 아무리 늦어도 이번 주 내로는 집행해야죠. 그러기로 마음먹은 거니까요.”
“이번 주 내?”
편히 앉아있던 장근수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디에 집어넣을 건데?”
장근수의 질문에 한진영이 고개를 돌려 이성우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건…… 성우와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조금은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는 상의 좀 하면서 집어넣어라. 고객들에게 좋은 결과를 보여줘야 하잖아.”
“네 말이 맞다. 그러니까 오늘 시장 좀 자세히 살피고 네 생각 이야기해줘. 알았지?”
“걱정하지 마. 내가 제대로 살피고 좋은 종목으로 이야기해줄 테니까.”
“아니. 그거 말고 일본의 대지진으로 인해 우리에게 가장 피해를 받을 업종이 어디인지…… 그걸 알려줘 그편이 더 도움 될 것 같으니까.”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뜻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진영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