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55화 (155/650)

155화 여름을 대비해야 한다

이정훈은 이성우를 유심히 살폈다.

조금 나아진 정도가 아니었다.

기대했던 모습을 까마득히 넘어선 모습이었다.

아무리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를 예상한 건 아니었다.

환골탈태나 괄목상대라는 고사성어 속의 말이 떠오를 정도로 이성우의 성장은 대단했다.

반면 이성우는 이정훈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한진영의 생각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까 걱정했다.

이성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이정훈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나 이정훈은 이성우의 걱정과 달리 눈곱만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듯했다.

흡족한 표정을 짓는 것이 이성우의 말이 마음에 드는 것만 같았다.

이정훈은 무릎을 치며 크게 즐거워했다.

“그래. 역시 아들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이정훈은 속이 시원해졌는지 양팔을 모두 팔걸이에 걸치고 편안하게 앉았다.

그리고 평소와는 달리 이성우와 진지하게 기풍철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네 말대로다. 언제까지 기풍철강의 깃발 아래 모든 것을 담아둘 수는 없어. 몸집이 비대해졌고, 비대해진 만큼 움직임도 둔해졌다. 하나의 사업을 하기 위한 결정까지 걸리는 단계가 7단계야. 이렇게 가다가는 언젠가는 동맥경화가 걸린 것처럼 의사 판단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게 전략실의 판단이다.”

“저도 그래서 말씀드린 거예요. 사업을 분화시켜서 나눠야 한다고요.”

“그래. 나도 그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아. 네 말대로 한두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야. 집단이 필요해.”

“그러니 신성증권이 필요한 거죠.”

이정훈은 이성우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성우는 그런 이정훈을 향해 자기 생각을 계속 밀어붙였다.

마치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난번과는 다를 거예요. 지난번에는 신성그룹이 살만해서 배짱을 부렸다면 지금은 그렇지 못해요. 그리고 이번 여름에는 그게 더 심할 거고요.”

“이번 여름에 더 심하다고?”

이정훈이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이성우를 바라봤다.

이성우는 이정훈을 향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번 여름에는 제대로 휘청일 거예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신성그룹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게 분명해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지금만으로도 신성그룹은 어렵다는 것을요.”

“그래. 나도 알아. 신성그룹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니까. 그래서 너희 신성증권에 도움을 청한다는 사실에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건 우리 전략실 쪽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니까. 그런데…… 여름에 휘청인다고? 그러니까 네 말은 어려워하는 지금보다 여름에 더 심각한 위기를 겪을 거라는 이야기냐?”

“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여름에 큰 위기를 겪을 거예요.”

이정훈은 전혀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던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정말이냐?”

“아버지.”

이성우는 잠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정훈이 의문을 품은 만큼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마음가짐으로 이성우는 차분히 이정훈을 설득해 나갔다.

“지금까지 저희 사업부가 걸어온 길을 보세요. 남들보다 빠른 정보력으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로 큰 이득을 얻었어요. 그리고 저희와 거래를 한 곳은 모두 흡족할 만큼의 결과물을 얻었고요. 이번에는 제가 특별히 아버지께 정보를 물어다 드린 거예요.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신성증권과 신성그룹의 이야기니까요.”

“확실히 너희 사업부는 남다르기는 하지. 그런데…… 여름이라니? 여름에 뭐가 있는데?”

이제 막 봄이 시작되는 시기였기에 아직 여름을 논하기에는 일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름에 일이 벌어지려면 벌써 그에 대한 밑밥이 깔려야만 했다.

그리고 시장에 그런 분위기가 깔리기 시작한다면 이정훈과 같은 사람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들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국내 산업이 크게 반사이익을 얻었다며 한동안 우리나라의 호황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증시는 계속 올랐으며 이제는 2,100 돌파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시장이었다.

수출 호조로 원화는 안정세를 찾아갔다.

국채 또한 변화가 없었다.

이렇게 안정된 시장 덕분에 우리나라는 국격이 한 단계 높아지는 효과를 받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으며 불안해야 할 이유가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우는 여름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외부차원이 아닌 신성그룹의 개별적인 위험이 찾아오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이정훈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정훈의 생각을 무참히 깨버리는 말이 이성우의 입에서 나왔다.

“여름에 전 세계가 한번 크게 요동칠 거예요. 그러니 아버지도 몸을 사리세요.”

“몸을 사리라고?”

“지금부터 준비하세요. 여름휴가를 편히 가지 못할 정도로 시장이 요동치게 될 거예요. 거기에 신성그룹같이 체력이 허약한 곳은 파도를 넘지 못하게 될 테고요. 그러니 괜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기풍철강도 단단히 준비하셔야 해요.”

“도대체 뭔데?”

이정훈은 답답한 마음에 이성우에게 달려들 듯이 몸을 기울였다.

이성우는 이쯤이면 이정훈이 거의 넘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연습한 대로 익숙한 표정을 짓고는 몸을 뒤로 뺐다.

“많은 사람이 알면 좋지 못한 이야기예요.”

“아비인 나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냐?”

“아버지. 사업하시니 더 잘 아시잖아요. 가족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할 정도의 정보가 있다는 것을요.”

“허허.”

이정훈은 기울였던 몸을 본래 자리로 돌렸다.

이성우에게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이정훈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무릎을 쳤다.

“좋아. 그럼 지금 당장 어쩌라는 뜻이 아니라 몸을 사리고 기회가 왔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이지?”

“바로 그 이야기예요.”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신성증권을 잡아 우리 회사의 그룹사 전환을 신성증권에게 맡기고?”

“네. 역시 아버지께서는 제 이야기를 잘 알아들으시네요.”

“하하하. 너한테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날이 올 줄은 몰랐구나. 좋아. 아주 좋아.”

이정훈은 이성우의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좋다는 이야기를 연속해서 내뱉었다.

그리고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 이성우를 바라보고 말했다.

“네가 말하는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기다리며 돈을 마련해 놓고 있으마. 그러니 내가 신성그룹을 만나야 할 때 날 찾아오도록 해라.”

“알겠어요.”

“그리고 네 말대로 신성증권을 인수하게 되면 그걸 너에게 주도록 하마. 네가 맡아서 해봐라. 그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말이야.”

이성우는 얼빠진 표정으로 이정훈을 바라봤다.

이정훈은 그런 이성우의 표정에 웃으며 말했다.

“놀란 거냐?”

“네. 뜻밖이라서요.”

“이걸 기대하고 온 건 아니고?”

“그럴 리가요. 제가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 아시잖아요.”

“하긴. 그런 면이 네가 네 동생보다 못한 부분이지. 그래서 너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는데……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그러니 내 바뀐 생각을 그대로 굳혀봐. 그럼 너에게도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이정훈은 반쯤은 넋이 나간 표정의 이성우를 웃으며 바라보고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여름이라고? 여름에 일이 터지니 몸을 사리라고?”

이정훈은 도대체 어떤 일이기에 기풍철강의 정보력으로도 잡아내지 못하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을 품은 채 성숙해진 이성우를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일본 대지진의 영향은 우리나라에는 큰 기회가 됐다.

효과는 전자와 자동차를 넘어 관광과 금융에까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외국에서는 일본에 여행을 가느니 한국에 여행을 가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퍼지며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 가치 또한 올라가는 효과를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외국에서의 인식 변화는 항상 저평가를 받던 증시에도 호재로 작용했다.

북한 리스크에 본래 가진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고는 했던 코스피가 외국인들의 힘에 강한 상승세를 보인 것이었다.

“2,100 돌파했네요.”

조수아는 한진영에게 건넬 서류를 품에 든 채 시세 전광판에 보이는 숫자를 보며 이야기했다.

“다음은 2,200이겠죠?”

“그러겠죠.”

한진영은 조수아가 서류를 건네며 던진 말에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그러나 조수아는 서류를 건네고도 아쉬운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서 있었다.

한진영은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은 채 조수아를 올려다보고 물었다.

“뭐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조수아는 잠시 뒤를 돌아봤다.

뒤에서는 직원들이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조수아를 응원하고 있었다.

조수아는 그런 그들의 응원에 결국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수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려 할 때 한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수아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입을 열은 채 말을 내뱉지 못했다.

이야기를 들을 상대인 한진영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사업부의 중앙으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조수아와 그녀를 응원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이참에 그들에게 정확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수아가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

짝짝.

중앙에 자리해서 손뼉을 친 한진영은 사업부에 있는 직원들의 시선을 모았다.

“자 잠시만 하던 일을 멈추고 저를 봐주세요.”

직원들은 고개를 들어 한진영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가운데 서서 잠시 주변을 돌아보며 직원들이 자기를 잘 지켜보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머리 위에 자리한 시세 전광판을 가리켰다.

“지금 지수가 2,100을 뚫었습니다. 증시는 역사상 고점을 계속 기록하고 있고요.”

한진영의 말대로 머리 위에 자리한 시세전광판에는 오늘도 역사상 최고점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런 최고점 경신은 내일도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지난 번에 2,000을 돌파하여 2,100을 향해 달려갔을 때처럼 시장에서 변동성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에서는 하락에 관한 모습은 옷깃도 보이지 않게 됐다.

한진영은 여전히 손가락을 든 채 이야기했다.

“우리가 2,100을 찍을 때까지 올린 실적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우리 실적은 성에 차지 않을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업부 직원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과거에 비추어봤을 때 지금의 실적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했기 때문이다.

“이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의도한 실적의 하락이니까요.”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한진영이 직접 이걸 자기 입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직원들은 모두 놀라는 중이었다.

자기의 실수를 한진영이 많은 사람 앞에서 직접 인정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자기가 의도한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압니다. 퀀트 프로그램을 왜 적용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 겁니다. 퀀트 프로그램만 적용한다면 이런 장에서 커다란 실적을 올릴 것이 불 보듯 뻔하니까요.”

한진영은 잠시 직원들을 둘러본 뒤 다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저를 믿으신다면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올해가 끝이 났을 때 여러분이 받게 될 성과급을 보고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절대 작년보다 못한 성과급을 받지 않게 제가 만들어 드릴 테니 말입니다.”

결국 문제는 돈이었다.

직원들이 왜 퀀트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는지 궁금했던 것도 돈 때문이었다.

시원치 않은 실적 때문에 자기들이 받을 성과급이 줄어들까 걱정되어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퀀트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않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이 돈 이야기를 하는 편이 가장 낫다고 판단한 한진영이었다.

그들에게는 퀀트 프로그램이 돌아가야 할 이유보다 실적과 그로 인해 들어올 성과급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한진영의 판단이 잘 먹혀들었는지 직원들 얼굴에 물들어있던 의문이 많이 가신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직원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확실히 잡아주기 위해 큰 소리로 약속했다.

“지금은 끝도 없이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큰 장이 펼쳐질 겁니다. 우리는 그걸 기다리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 준비한 것들을 모두 풀어 제대로 돈을 긁어오면 됩니다. 지금까지 저를 따라오셨던 분들은 제가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겁니다. 그러니 기다려주십시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직원들은 가슴속에 품었던 불안을 지워냈다.

한진영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더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가볍게 직원들을 향해 믿어달라는 눈짓을 건네며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직원들의 불안을 지워내기는 했지만 다른 쪽의 불안은 여전했다.

“하아~”

최준호가 임원회의를 마치고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세요? 많이 시달리셨어요?”

“많이 시달렸다 뿐이냐? 난감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장님과 노 전무가 계속 쪼던가요?”

“그래. 실적이 떨어졌다고…… 왜 이러냐고 자꾸 닦달하는데…… 네 말대로 이야기했더니 잡아먹으려고 그러더라. 으~”

최준호는 조금 전까지 자기 목을 졸라오던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연신 목을 쓰다듬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슬슬 원하던 방향의 반응이 신성증권의 수뇌부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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