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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58화 (158/650)

158화 뜨거운 햇살이 비출 때 시작된다

신성증권 내에서 신성그룹의 투자는 굉장한 이야깃거리로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 다녔다.

“들었어?”

“뭘?”

“이번에 FICC 본부에 그룹 자금이 들어갔다고 하더라.”

“그룹 자금이 들어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장이 마무리된 뒤 삼삼오오 모인 흡연 공간에서 신성증권 직원 두 사람은 얼마 전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그룹에서 FICC 본부에 5,000억을 집어넣어 미국 국채를 매수했다고 그러더라. 내 동기가 FICC 본부에 있는데 지금 FICC 본부는 그것 때문에 난리도 아니래.”

“그게 무슨 소리야? 그룹이 미국 국채를 매수했다고? 왜?”

“그거야 모르지. 근데 소문에는…….”

잠시 말소리를 줄인 강 대리는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주변에 다른 사람이 듣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도 대리는 조심하는 동료의 모습에 함께 어깨와 머리를 숙였다.

아무래도 다음에 나올 말이 심상치가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본 강 대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그룹 자금이 급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자금이 급한데 5,000억은 어디서 났고, 그 돈으로 왜 미국 국채를 매수하는데?”

“그게 지금 문제라는 거야.”

“문제?”

“그래. 문제.”

강 대리는 다시 주변을 살피더니 더욱 몸을 사리며 입을 열었다.

“그룹에서는 돈이 말라가서 투자를 통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됐어. 그만해. 더 들을 것도 없겠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느낀 도 대리는 더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 바짝 긴장한 채로 이야기를 들었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는지 입에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러나 강 대리는 숙인 몸을 펴지 않은 채 계속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도 안 된다고 자르지 말고 잘 들어봐.”

도 대리는 입에 담배를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잘 들을 테니 이야기해봐. 뭐가 또 이상한데?”

“5,000억이 어디서 났는지 알아?”

“어디서 났는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하더라.”

“아니.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된다고. 돈이 급하면 그 대출받은 돈을 사용하면 될 일인데 그걸 가지고 투자를 한다고?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니라 미국 국채에? 얼마나 먹겠다고 그런 짓을 해. 뭔가 잘못 와전된 거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 이야기를 들은 직원은 담뱃재를 터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5,000억으로 레버리지를 써서 2조를 배팅했다고 하더라.”

“2조? 미친 거 아냐? 그것도 대출을 받은 돈을 가지고 레버리지를 썼다고?”

“그래. 그런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야. 우선 5,000억을 사용한 거고 지금 심사가 끝나면 들어올 돈이 5,000억이 더 있대. 이걸 또 투자한다는 소문도 있어. 그렇게 해서 단기간에 치고 빠진다고…… 순식간에 2,000억 가까이 땡길 수 있으니 이 방법을 썼다는 거야.

“돌았네.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야? 삐끗하면 나락으로 가는데 도대체 뭔 정신으로 이런 방법을 쓴다는 거야?”

“들리는 이야기에는 그렇게 해야 할 정도로 그룹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어.”

“힘든 회사에 대출이 1조나 나온다고?”

“우선은 5,000억. 그 5,000억으로 돈을 벌면 번 금액으로 급한 불 끄고 그거로 신용도 좀 높인 다음에 다시 또 5,000억을 빌린다는 계획이지.”

“아뜨뜨.”

도 대리는 담뱃재를 재떨이에 떨지 않아 그대로 손에 담뱃재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급히 담뱃재가 떨어진 손을 털어냈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강 대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이야기는 황당하기만 했다.

강 대리는 손을 털어내는 도 대리를 바라보고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야.”

“끝이 아니라고?”

“지금 FICC 본부는 패닉이라고 하더라.”

“또 뭣 때문에?”

“이런 결정을 그룹에서는 우리 회사와 상의 한마디 없이 진행했다고 해.”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했다고? 뭘 믿고?”

“외부 컨설팅 회사에 30억 주고 의뢰해서 가장 안전한 투자처를 찾았다고 그러더라.”

“미친 거 아냐? 증권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니라 컨설팅 회사에 투자분석 의뢰를 했다고? 그것도 30억이나 주고?”

“우리를 못 믿는다는 거겠지.”

“돌겠네.”

허탈해하는 도 대리였다.

자기 회사 직원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회의감마저 드는 모습이었다.

이런 회의감은 이야기와 함께 빠르게 신성증권 전체에 퍼져갔다.

같은 신성이라는 이름을 쓰는 자회사를 믿지 못한다는 것에 신성증권 직원들은 허탈감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성그룹은 신성증권의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일을 진행했다.

5,000억을 신성증권 FICC 본부에 이체했으며 FICC 본부는 이걸 가지고 미국 국채를 매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이 선택만 놓고 보자면 나쁘지 않은 선택처럼 보였다.

일본 대지진의 여파는 여전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민주화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언제라도 이 불씨는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시각이었다.

그리고 작년부터 시작한 유럽발 악재는 끝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곁에서 한가롭게 땅콩을 까먹으며 사업부 중앙에 위치한 시세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그는 한진영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성공한 거 같네.”

“뭘?”

“신성그룹의 도박 말이야.”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은 모니터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 이성우가 바라보고 있는 시세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조금 전 나온 뉴스가 긴급으로 전해지는 중이었다.

[포르투갈 국가등급 강등]

유럽발 악재가 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제 미 국채 10년 물은 물론이고 2년 물, 5년 물 금리 모두 떨어져서 3일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고 하더라. 3개월짜리 재무부 채권은 다시 제로금리 찍었다고 하고…… 국채 금리가 떨어지니까 국채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데 이럼 성공 아니야?”

이성우는 땅콩을 연신 입에 넣으며 한진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의를 듣고 싶기보다는 반박을 듣고 싶어 하는 이성우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입에서 아무 소리가 나오지 않자 답답했던지 이성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유럽 금융위기가 다시 불씨를 지피면 한동안 국채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 같은데…… 아니야?”

“왜 이렇게 생각이 많아?”

한진영은 땅콩이 든 봉지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성우와 마찬가지로 땅콩 껍데기 까 입에 넣었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말했다.

“생각 많이 할 수밖에 없지. 이번 일로 신성그룹의 운명이 걸렸지만 나도 운명이 걸리기는 마찬가지니까.”

“네 운명?”

“그래. 내 운명.”

이성우는 잠시 몸을 한진영 쪽으로 숙이고 한진영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잖아. 여기서 신성그룹이 기사회생해서 살아난다면…… 신성증권을 매각하지 않을 거라는 거 말이야.”

한진영은 잔뜩 긴장한 이성우의 표정을 내려다보며 땅콩을 입에 넣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신성증권이 매각되면…… 나에게 맡기겠다고 하셨어.”

“그래서 기대했는데 신성그룹이 기사회생할 것 같아서 아쉬워?”

“아쉽다뿐이냐? 이렇게 살아나면……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잖아. 안 그래?”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땅콩을 집어넣었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한진영의 손을 막았다.

“아 그렇게 먹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

“무슨 말?”

“그러니까…… 크흠. 긴장한 날 긴장을 풀어줄 만한 말 말이야. 뭐 잘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 같은…… 그런 거 있잖아.”

“혼자 잘 이야기하고 있네.”

“그걸 네 입으로 해 달란 말이야.”

이성우는 손가락을 들어 시세 전광판을 가리켰다.

“봐라. 저대로 그리스 다음은 포르투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저러면 미국 국채 가격 상승은 뻔한 거 아니야? 게다가 미국에서는 유럽발 위기 확산이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고…… 그뿐이야? 미국 공장 주문 지표까지 저조하게 나오는 바람에 증시는 여기가 고점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이렇게 채권시장으로 자금이 쏠리게 되면…….”

“신성그룹이 큰돈을 벌겠지.”

“그래. 그렇다니까.”

한진영은 그럴 수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까닥였다.

그리고 손에 묻은 땅콩 껍데기를 털어내며 말했다.

“신성그룹이 의뢰한 컨설팅 업체도 이걸 보고 분석했을 거야. 시장을 지겹게 잡아끌고 있는 유럽 위기. 아주 지긋지긋하게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지.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누구나 예상하듯이 시장이 흘러가면 재미없지. 돈 못 버는 사람도 없을 테고…… 안 그래?”

“그럼…….”

이성우가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말했다.

“내가 너한테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그새 까먹은 거냐?”

“어? 무슨 말?”

“회장님께 분명히 전하라고 했잖아. 여름. 뜨거운 햇살이 비추기 시작할 때 큰일이 벌어진다고 말이야.”

“여름에…… 큰일…….”

이성우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봤다.

에어컨을 틀어 사무실은 시원하지만, 바깥은 뙤약볕에 30도에 육박하는 온도를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성우는 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한진영을 향해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지금이…… 여름인데?”

“어. 그래. 지금이 여름이지.”

“그럼…….”

“여름휴가 냈어?”

“아니. 아직 내지는 않았는데…….”

“그럼 7월 안에 해결하도록 해. 8월 초부터 바쁠 테니까.”

“8월은 안 돼?”

“어. 안돼.”

한진영은 단호하게 말하고 이성우의 볼을 손으로 두드렸다.

“네 인생이 바뀌는 순간을 직접 눈으로 목격해야지. 그때 휴가를 가면 되겠냐?”

“내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라면…….”

이성우의 고개가 다시 시세 전광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국채 가격의 상승 이야기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미국의 국채 가격은 7월 초를 지나자 상승 흐름이 급격히 꺾여 나갔다.

7월 중순부터 흘러나온 미국의 디폴트 이야기가 시장을 전반적으로 옥죄었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는 전 세계 투자자에게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최후의 안전자산과 같은 것이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미국이 한해 수천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내더라도 미국 국채만큼은 언제나 AAA등급을 유지하며 투자자에 믿음을 안겨줬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흔들리는 일이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미국의 정부 부채 상한 조정이 미궁 속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부채를 상향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동의는 미국의 양당이 협상을 통해 항상 이루어지고는 했다.

언제나 동의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됐고 이번에도 국회에서 부채 상향이 이루어질 것으로 시장은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여야는 첨예하게 부채 상향을 놓고 대립하며 협상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만 것이었다.

결국 시간은 질질 흘러 협상 마감 시한인 7월 말을 코앞에 두고 말았다.

시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면 몰고 올 충격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달러화 가치는 폭락할 것이며 미국의 소비는 크게 위축될 것이 분명했다.

대출 비용은 크게 늘어날 것이고 채권 가격의 폭락은 세계시장을 단숨에 집어삼키게 된다.

약 4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채권 가격의 하락은 유럽발 금융위기나 서브프라임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서는 충격을 시장에 안겨줄 게 뻔했다.

미국 월가에서는 디폴트에 대비한 포트폴리오 재검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절대 디폴트에 빠지게 여야가 가만 놔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는 했지만, 혹시 모른다는 이야기만으로 채권 가격이 계속 내리는 지금 상황을 눈뜨고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어 유럽금융 위기로 2.8%대까지 빠졌던 국채 금리가 어느새 3.4%대까지 오르고 말았다.

동시에 국채 가격 역시 빠르게 하락했다.

국채 금리와 국채 가격은 서로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리가 폭등하는 만큼 가격은 폭락을 보이는 중이었다.

이런 월가의 움직임에 신성그룹도 발 빠르게 반응했다.

수익권이라면 모를까 디폴트 이야기와 함께 빠진 국채 가격으로 인해 신성그룹은 손실 구간에 들어서고 말았다.

레버리지를 일으킨 만큼 손해는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그들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신성그룹은 포지션 변경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런 검토 자리에 김정대 본부장의 특별한 요청으로 한진영도 함께했다.

한진영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성그룹의 고위 수뇌부와 남원석 사장을 비롯한 신성증권의 일부 임원들이 신성그룹 본사에 모여 이번 사태를 놓고 이야기했다.

“컨설팅 업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 월가에서 국채 가격의 하락에 배팅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만 매수 포지션을 거두고 매도 포지션을 잡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신성증권 경영지원본부의 노 전무의 이야기로 회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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