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60화 (160/650)

160화 여기를 믿지 않으면 어디를 믿겠는가?

추 부회장은 잠시 마이크를 손으로 가린 채 이수암 회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수암의 뜻을 확인한 후 노 전무를 향해 질문했다.

“확실하답니까? 컨설팅 업체라는 곳의 분석이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번 실수한 곳 이야기를 다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확실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노 전무. 우리가 믿어도 되는 겁니까?”

노 전무는 추 부회장의 질문에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확실하다고 하여 이렇게 긴급 보고서까지 보낸 겁니다. 급히 포지션을 변경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내일 보내오는 정식 보고서를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내일 오는 정식 보고서를 보고 결정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긴급 보고서를 보낸 그들의 뜻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뜻?”

추 부회장이 의아한 듯이 되묻자 노 전무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들이 긴급 보고서를 보낸 의미 말입니다. 이런 류의 보고서를 고객에게 제공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지금 상황이 매우 급하다는 뜻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지만 그들의 의중을 파악하여 움직이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정식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는 말인가요?

노 전무는 추 부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해 내일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아까 말씀하신 대로 급한 건 우리가 급하니 저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입니까?”

노 전무는 추 부회장과 이수암 회장이 포지션을 바꾸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자세히 물어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 전무는 조금 전과 달리 차분한 표정으로 추 부회장과 이수암 회장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려 이야기했다.

“먼저 포지션을 바꿀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정식 보고서가 들어오길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준비를 마친 상태로 확인을 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자는 말씀입니까?”

“바로 그겁니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노 전무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이제는 이수암 회장과 추 부회장이 아니라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노 전무였다.

그는 자리에 있는 임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기 컨설팅 회사는 돈을 싸 짊어지고 간다고 해도 쉽게 의뢰를 받아주는 곳이 아닙니다. 세계의 유명한 회사들이 컨설팅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곳이지요. 그런 곳을 제가 개인 인맥을 통해 뚫어내 받아낸 분석입니다. 게다가 성의를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정식 보고서 전에 긴급 보고서를 보내주기도 한 것이고요. 여기를 믿지 않으면 어디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말은 노골적으로 신성증권을 어떻게 믿냐는 듯한 말이었다.

그 말에 김정대는 다시 발끈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수암 회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노 전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씩씩대는 김정대의 모습에 눈길도 주지 않는 이수암 회장은 다시 추 부회장과 낮은 목소리로 상의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무언가 결정을 내린 것인지 이수암 회장이 고개를 들어 김정대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지시했다.

“좋습니다. 그럼 포지션을 바꾸는 작업을 하도록 하지요. 미국 10년 물 매도로 포지션을 정하도록 합시다. 김 본부장. 노 전무가 제안한 대로 진행하도록 해주세요.”

“회장님!”

김정대가 깜짝 놀란 얼굴로 이수암 회장을 바라봤다.

이수암 회장이 한진영의 말을 듣고도 노 전무의 제안을 받아들일 줄 몰랐기 때문이다.

김정대도 노 전무의 제안이 조금 더 말이 된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분위기가 국채 금리 상승에 국채 가격 하락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말에 고민해보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은 것에 김정대는 놀라고 말았다.

이수암 회장이라면 한진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수암 회장은 한진영의 말에 잠시 고민하기는 했다.

하지만 고민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큰 금액이 들어간 만큼 자그마한 변동성에도 움직이는 금액이 무시무시했다.

벌써 500억이라는 손해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때에는 확률이 높은 곳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추 부회장 역시 노 전무의 말에 동의했다.

500억을 이미 잃은 상황에서 계속 매수 포지션을 지키고 앉아 있다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3,000억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던 추 부회장이었다.

그는 노 전무의 말에 마음이 기울어지고 말았다.

이수암 회장도 노 전무가 말한 배움의 깊이가 다르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회사지만 컨설팅 회사에 비교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빠르게 판단하여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바로 진행하세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바로 진행하도록 FICC 본부에 상주하여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정대 본부장에게 지시를 내렸건만 노 전무의 입에서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번 일의 책임자는 자기라는 것을 이 자리를 통해 공식화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런 노 전무의 행동에 이수암 회장이 무언의 동의를 하며 노 전무가 이번 일의 책임자임을 확인시켜줬다.

김정대는 당황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말리지 않느냐는 눈빛으로 한진영을 바라본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의 눈빛에 어깨를 으쓱하며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진영은 이런 결과가 나올 거로 예상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부터 기존에 잡고 있던 포지션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밑에 깔려 있지 않으면 마련될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하게 어필한 것이었다.

실제로 포지션을 바꾸지 않을 걸 알고서 말이다.

한진영은 자기의 행동을 사람들 머리에 깊이 각인시킨 것을 만족해하며 노 전무를 바라봤다.

노 전무는 자기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을 확인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본 이수암 회장과 추 부회장이 기대에 찬 얼굴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

한진영은 보름 뒤에 그들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해하며 웃음을 참았다.

***

여름 휴가를 앞두고 증시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국 양당이 결국 부채 한도를 높이는 데드라인을 넘어서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의 디폴트는 상상이 아닌 현실의 단계에 들어서고 말았다.

미국 정부는 셧다운을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무디스에 이어 S&P까지 신용등급 강등을 이야기하며 합의가 되지 않았을 때 일어날 초유의 사태를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첨예하게 서로 자기의 주장을 내뱉기만 할 뿐이었다.

이렇게 미국이 한 치 앞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흘러가자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증시는 발작하듯이 반응했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지난 몇 달간의 모습과는 다르게 하루에 2%가 넘는 등락을 보였으며 미국 정부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위험자산이 격렬하게 반응하자 안전자산 시장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특히 미국의 국채시장은 뉴스에 크게 반응했다.

국채 금리는 3.4%를 넘겨 4%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국채 금리가 끝을 모르고 오르자 가격은 반대로 날개 없는 추락을 보여줬다.

시장은 디폴트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성그룹은 결국 700억이 넘는 손실을 본 채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회의 자리에서는 500억의 손실이었지만, 회의를 마치고 매매에 들어갔을 때는 200억의 손실이 더해질 정도로 지금 시장의 움직임은 과격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쓰릴 정도의 손실이었지만 이수암 회장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들은 다음날 들어온 컨설팅 업체의 보고서에 안도했다.

현재 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미국 정부는 결국 셧다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보고서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미국은 과거에도 셧다운을 결정한 적이 있으며 여름 휴가와 겹치는 지금 오히려 셧다운을 통해 정부를 폐쇄한 채로 협상을 계속 이어가는 쪽이 양당에는 더욱 유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하향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보고서에 적혀있었다.

미국 채권이 가지는 시장의 위치를 생각했을 때 감히 신용등급을 하향시킬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 시장이 혼란스러워할 거라고 보고서는 이야기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계속 경고만 보내며 분위기를 잡아가는 일이 이어질 것으로 본 것이었다.

컨설팅 업체에서는 정부 폐쇄가 결정된다면 짧으면 한 달 길면 석 달간의 혼란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 기간 국채 가격은 끊임없이 하락하여 신성그룹은 많게는 5,000억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최종 주장이었다.

노 전무는 보고서를 이수암 회장에게 보고한 이후 보란 듯이 신성증권의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도록 배포하기까지 했다.

이게 바로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린 컨설팅 회사의 분석이었고, 이 분석을 보고 배우라는 뜻에서였다.

이렇게 배포된 보고서는 투자전략사업부 직원들에게도 건네졌다.

“이거 정말이야? 이럼 증시는 어떻게 되는 거냐?”

이성우는 노 전무가 보낸 보고서를 들춰보며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자리에 있던 다른 이들도 이성우와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김준하는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최석영은 정수리에 손을 얹은 채 노 전무가 보낸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최준호는 보고서를 연신 앞뒤로 살피며 자세히 읽어보는 모습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노 전무가 받아온 보고서에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한진영만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보고서를 훑어보고는 표지를 덮어 한쪽에 던져놓았다.

최준호는 그런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2,000이 깨지는 건 아니겠지?”

2,100을 훌쩍 넘겼던 종합주가지수가 2,200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무너져 내렸다.

일본 대지진의 효과로 증시를 끌어 올렸던 모멘텀도 사라지자 외부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한 탓이었다.

그렇게 빠져 내리는 증시는 2,100마저 무너뜨린 채 2,000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2,000이 문제가 아니지요.”

“2,000이 문제가 아니라고?”

열심히 펜을 굴리던 김준하와 보고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최석영 그리고 시세 전광판에 지나가는 뉴스를 응시하던 이성우까지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 보고서대로라면 증시는 2,000을 깨는 것은 뭐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럼…… 상승장은 이대로 끝이 나는 건가?”

최준호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조금 전까지 이성우가 바라보던 시세 전광판을 돌아봤다.

2,050을 가리키고 있는 증시는 2,000을 눈앞에 두고 등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2,000이라는 자리가 상징적인 만큼 시장 참여자들은 2,000만큼은 지키려는 의지가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말대로 2,000이 깨진다면 작년 말부터 이어왔던 상승장은 이대로 끝이 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상승장 막판 피날레를 만끽하지 못한 투자전략사업부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최준호는 이내 고개를 흔들고 잡생각을 떨쳐냈다.

피날레 부분을 먹지 못했지만, 상승장 초입부부터 눈썹 끝까지 발라먹은 상황에서 정수리를 못 본 것을 아쉬워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준호가 마음을 다잡고는 무릎에 앉은 먼지를 양손으로 털며 개운한 듯이 말했다.

“그래. 뭐 이렇게 된 거 아쉬워하지 말고 휴가나 제대로 즐기자.”

“휴가요?”

최석영이 듣던 중 반갑다는 목소리로 최준호의 말을 반겼다.

“안 그래도 와이프가 이번에 유럽으로 여행을 가자고 그랬는데…….”

“다녀와. 어차피 우리는 포지션도 다 줄여놓은 상황이라서 특별한 일이 없으니까. 한 보름쯤 사업부 통으로 쉬어볼까? 그래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최준호의 말에 최석영이 반색했다.

증권회사에 다니며 변변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던 그는 이제야 가족들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석영은 방송국에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김준하도 즐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빚에서 허덕이던 김준하는 얼마 전 남아있던 빚을 모두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

이제부터 즐기면서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에 자축하며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여행이라든지 맛집 탐방과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김준하였기에 그동안 가지고 싶던 게임기와 컴퓨터를 새것으로 바꾸고 며칠 동안 밤을 새는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최준호는 최석영과 김준하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며 같이 웃었다.

그러다 가장 좋아해야 할 이성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성우야. 왜 그래? 보름 동안 휴가 준다는 말을 믿지 못해서 그러는 거야? 왜 아무런 반응이 없어?”

평소라면 보름이 아니라 한 달 동안 쉬는 것이 어떠냐며 오지랖을 떨었을 것이 분명했던 이성우였다.

그런데 지금은 최준호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한진영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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