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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61화 (161/650)

161화 회사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

이성우는 최준호 부문장이 자기를 바라본다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한진영을 불렀다.

“진영아.”

“어? 왜?”

“네가 그랬잖아. 올해 휴가 잡지 말라고 말이야.”

이성우의 말에 한창 즐거워하던 최석영과 김준하가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꿈이 날아가 버릴 만한 이야기에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최준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진영에게 아무런 말도 들은 게 없었기에 이성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씀드려야겠네요. 올해 여름휴가는 웬만하면 넘어가도록 해요. 뭐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여름휴가 챙기지 못하는 게 일상이라 특별한 일은 아닌데…… 혹시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부문장님께서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니. 왜? 왜 이번 여름도 휴가를 그냥 넘겨야 하는 건데?”

최준호가 이유를 묻자 최석영과 김준하도 이유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향해 보고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것과 반대되는 일이 벌어질 테니까요.”

“반대되는 일?”

최준호가 함께 의문을 품고 있는 최석영과 김준하를 한번 돌아본 뒤 대표로 입을 열었다.

“반대되는 일이라면……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고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야?”

최준호의 말에 한진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반대라며? 지금 시장이 혼란하니…….”

“벌어질 일이 반대라는 거지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시장이 반대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여전히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곁에 앉아 있는 최석영과 김준하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들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보고서와 반대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영향은 그대로라는 게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지난 시절을 겪으며 알고 있었다.

보고서가 보여준 내용이 오히려 희망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진영은 차분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보고서에서는 미국 정부가 셧다운을 감행할 거라고 보고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셧다운까지 가지 않은 채 양당이 합의할 겁니다.”

“그러니까 좋은 일 아니야? 양당이 합의한다면 모든 불안 요소가 지워진다는 뜻이잖아.”

“불안 요소가 합의만으로 지워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래서?”

최준호는 한진영의 표정으로 보아 뭔가 일이 심각하게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진영과 함께하며 항상 이런 식의 모습을 보일 때 예상하지 못할만한 일이 벌어지고는 했기 때문이다.

이런 최준호의 생각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들어맞았음을 한진영의 말로 확인됐다.

“신용등급의 하락은 피하지 못할 겁니다.”

“신용등급이 하락한다고? 미국 양당이 합의하는데도 신용등급이 하락한다는 말이야? 왜?”

“합의 내용이 중요하니까요.”

“그건…….”

최준호가 이렇게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신용등급의 강등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번 사태에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것이 바로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될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디폴트를 걱정했던 것이었다.

디폴트에 빠지면 신용등급의 강등은 필연적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의를 하여 디폴트를 피하더라도 신용등급의 강등은 피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최준호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한진영은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최준호를 앞에 두고 가만히 보고서를 들춰봤다.

그리고 보고서를 훑어보며 이야기했다.

“합의보다 더 중요한 게 합의 내용인데…… 보고서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네요. 뭐가 핵심인지 모르고 겉만 핥고 있다는 뜻이지요. 이런 것도 보고서라고 내보이고 있으니 제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어? 정말로…… 신용등급이 하향된다는 거야?”

“하향될 겁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신용등급이 하향되지 않을 이유가 100가지는 생각이 난 최준호였다.

그리고 자기뿐만 아니라 언론과 시장 참여자들 대부분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한진영이 이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100가지 이유가 모두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100가지 이유보다 한진영의 말이 더 믿을 만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멍한 얼굴의 최준호와 최석영 그리고 김준하를 향해 말했다.

“물 반 고기 반의 시장이 펼쳐질 겁니다. 거기서 돈을 바짝 벌어야 하니 당분간 휴가 가는 건 보류하도록 하세요.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우리 회사인데 망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말은 이번 투자 건으로…… 회사가 망할 위기까지 간다는 이야기야?”

“그럴 거예요. 한번에 수천억의 손실금이 생기는데 신성그룹이라고 버틸 수가 있겠어요? 게다가 원래부터 좋지도 못했던 그룹 사정을 생각했을 때 그냥 웃으며 넘기지는 못할 거예요.”

“우리가 그 돈을 메워주자고?”

“다는 메우지 못하지요. 아무리 저라고 해도 손실금을 한 번에 다 메우고 회사를 정상화시킬 정도의 능력은 없으니까요. 그저 회사 숨이라도 붙여놔야 뭐가 됐건 다른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거기까지 하려는 것뿐이에요.”

한진영은 말을 하고는 이성우를 바라보고 눈을 찡긋했다.

이성우에게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않느냐는 눈짓이었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의 눈짓에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최준호는 그런 한진영과 이성우의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정말로 신성그룹은 잘못된 판단을 했고, 앞으로 펼쳐질 일은 신성그룹을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한진영이 그룹이 입은 피해를 다 메우지 못한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

분명 그럴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진영이 원하는 수준이 그룹이 숨만 쉬는 수준이기에 거기에 맞게 목숨 줄만 붙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하게 됐다.

최준호는 모든 것이 한진영의 뜻대로 움직이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단순히 느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2,000 초반까지 내려갔던 증시는 반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채 협상에 대한 데드라인을 넘기기는 했지만, 어쨌든 합의시한인 8월 2일을 넘기지 않을 거라는 소문이 빠르게 시장에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당 지도자들이 하루에도 수 차례 만남을 지속하며 합의점을 이끌어내려 노력한다는 것이 소문에 힘을 실었다.

증시는 힘차게 다시 2,100위로 올라탔으며 끝도 없이 오를 것 같던 미 국채 금리는 꺾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4%까지 오를 것을 예상하여 미 국채 매도에 베팅한 신성그룹만이 안도하는 시장에서 울상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2,100을 넘기던 증시가 다시 한번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오늘 당장에라도 합의를 발표할 것 같던 미국에서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도 포지션을 잡을 준비를 합니다. 현물 계좌는 비우고 선물 계좌는 매도, 상품시장도 모두 매도 포지션에 힘을 실을 겁니다. 그러니 모두 긴장하고 자리를 잡으세요. 오면 언제라도 때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랜만에 투자전략사업부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동안 손을 놓고 놀고 있던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선물 285에서 일괄적으로 매도 진입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총 200계약 진입이 예상됩니다.”

“오일도 98불 위에서 매도 진입 준비를 마쳤습니다. 500계약까지 매도량을 늘릴 계획입니다.”

“미 국채 3년, 5년, 10년 물 모두 매수…… 진입 준비 중입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한진영에게 보고하던 조수아가 슬쩍 한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룹이 조 단위의 금액을 매도하는 상황에서 사업부가 매수해도 되는지 묻는 눈치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조수아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계속 보고를 이어 할 수밖에 없었다.

“골드도 매수 진입 준비를 마쳤습니다. 1,500불 이하에서 500계약 매수를 목표로 포지션을 잡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조수아의 보고를 가만히 듣다가 고개를 돌려 김준하가 있는 쪽을 보고 조수아를 향해 물었다.

“퀀트 프로그램 쪽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지시 내리신 대로 현물 시장을 제외하고 선물 시장 위주로 돌리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말을 지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좋습니다.”

다른 사업부의 경우에는 대부분 휴가 준비에 한창인 시간이었다.

물론 업종의 특성상 모든 직원이 다 함께 휴가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절반 이상이 7월 말에 휴가를 가 업무가 잠정 휴업상태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투자전략사업부는 바깥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일방적이라고 보여지는 포지션을 잡을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바깥에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오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됐다.

합의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와 합의가 불발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혼재된 상황에서도 투자전략사업부는 한진영을 중심으로 흔들림 없이 작업을 진행했다.

“상방은 없다고 생각해. 무조건 하방이야. 알았지?”

한쪽 포지션을 배제한 채 진행한다면 퀀트 프로그램의 승률은 현재 95%를 넘어갈 정도로 진화해 있었다.

그 방향을 한진영은 하방으로 잡았고, 드디어 디데이인 8월에 돌입했다.

***

“덥다. 더워.”

장근수는 손부채를 하며 한진영이 있는 투자전략사업부로 찾아왔다.

그는 투자전략사업부 문이 열리자마자 반갑게 맞이하는 에어컨 바람을 잠시 문 앞에서 눈을 감은 채 맞았다.

“아~ 시원하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여긴 웬일이세요?”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장근수는 말소리에 눈을 떴다.

그의 앞에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는 이성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근수를 보고 있었다.

“너는…… 여기 놀러 오냐? 일하는데 아이스크림이 뭐냐? 아이스크림이…….”

장근수는 혀를 차고는 이성우의 손에 들려있던 아이스크림을 뺏었다.

그리고 단숨에 입에 집어넣고는 이성우에게 물었다.

“진영이는 어디 있어?”

“어…… 어…… 그거 조금 전에 깐 건데…….”

“알았어. 알았어. 거 참. 먹는 거에 되게 진심이네. 여기.”

장근수는 반이나 사라져 버린 아이스크림을 이성우에게 건네고는 사업부를 훑었다.

그리고 한쪽에 서서 뉴스를 확인하고 있는 한진영을 발견했다.

“저기 있구나.”

장근수는 슬픈 눈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성우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를 향해 낮게 혀를 차며 말했다.

“너 인마. 일할 때는 일에 집중하도록 해. 그렇게 먹는 것만 신경 쓰지 말고…… 나 간다.”

장근수는 뭐라고 말을 하려는 이성우를 뒤로하고 한진영에게로 다가갔다.

한참 화면을 응시하던 한진영은 다가오는 장근수를 확인하고 인사했다.

“오셨어요?”

“여긴 아침부터 바쁘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우리 쪽은 죄다 휴가 가서 한가해.”

“휴가…… 보통 대부분 이맘때 휴가들을 가죠.”

“너희는 휴가 안 가냐? 보니까 대부분 출근한 거 같은데?”

“네. 저희는 휴가 간 직원이 하나도 없어요.”

“야. 휴가도 좀 보내주고 그래. 남들 다 쉴 때 일하고 그러는 거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야.”

장근수는 불쌍하다는 눈으로 투자전략사업부의 직원들을 훑어보며 혀를 찼다.

“상사를 잘못 만나서 직원들이 고생하는구나.”

한진영은 장근수의 말에 낮게 웃었다.

조금 뒤면 언제 자기가 그랬냐는 듯이 휴가 가 있는 직원들을 모조리 불러들일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장근수는 사업부를 한참 둘러보는 것을 멈추고 한진영이 바라보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뭐 보고 있었어?”

“뉴스요.”

“뉴스?”

“네. 뭐 색다른 게 뜨지 않을까 해서요.”

“색다른 게 뜰 게 뭐 있어? 우리도 휴가 들어갔듯이 그쪽도 한창 휴가가 시작될 시기잖아. 합의 안 돼. 합의할 놈들이었으면 진즉에 했겠지. 너도 보고서 봤지?”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장근수를 바라봤다.

장근수는 고개를 흔들며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노 전무가 사람이 좀 그런데…… 이번에는 한 건 제대로 했어. 그 컨설팅 업체는 미국 회사들도 돈만 있다고 의뢰를 받아주고 그러는 곳이 아니거든. 그런데 인맥을 이용해서 거기를 뚫었다니…… 대단해. 여하튼…… 거기 보고서에 쓰여있는 말에 나도 동의해. 정부 폐쇄를 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름휴가라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도 받아먹는다는 서양 놈들이 지금 이런 때에 합의할 리가 없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한 장근수는 한진영을 향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너희 사업부 직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뭐길래 이렇게 바빠?”

“매도 때리려고 준비 중입니다.”

“매도? 무슨 매도?”

“상품 쪽 선물하고 국내 선물을 위주로 매도 포지션을 잡으려는 중이거든요?”

“매도 포지션을 잡겠다고? 지금? 왜?”

“저거 때문에요.”

한진영이 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시세 전광판을 가리켰다.

장근수는 한진영이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시세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지금 막 들어온 속보가 나오는 중이었다.

[美 부채 한도 조정 합의]

[미 의회는 총 2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 한도 조정 합의에 성공]

[버락 오바마 대통령 긴급 성명 발표. 美 초유의 사태는 피해]

[채무 불이행, 디폴트 위기를 피해 한숨 돌린 美. 이제 남은 것은 안도 랠리인가?]

5분 전만 해도 장근수가 합의할 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속보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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