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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63화 (163/650)

163화 산산조각이 나는 것만큼은 막겠다

주 5일제가 시행되고 난 이후 신성그룹의 본사 건물은 토요일에는 한가로운 모습을 보였다.

특근하는 소수 인원과 건물을 지키는 보안요원 외에는 주말에 본사에 나오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래서 주말만큼은 조용한 모습을 보여줬었던 본사였다.

그런 본사 건물이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시끌벅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새벽에 갑자기 연락받았다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무슨 회의를 한다는데…… 도대체 무슨 회의를 토요일에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회장님하고 몇몇 고위 임원들만 모여서 긴급회의를 한대.”

급하게 불려 나와 회의를 준비하는 직원들은 아직 피로가 덜 풀린 푸석한 얼굴로 회의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토요일 새벽같이 불려 나온 이유를 궁금해했다.

그리고 이렇게 오늘 불려 나온 것을 궁금해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건물 앞에서 조금 뒤 들어올 차들을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도 오늘 있는 일을 궁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뭔 회의를 한다고 그러는 거야? 아직 아침 안개도 다 걷히지 않았구먼.”

“그러게 말이야. 평소에는 점심 먹고 느지막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야?”

“요새 소문에…… 회사가 어렵다던데 그것 때문인가?”

“회사가 어려워?”

생소한 이야기를 들은 듯이 놀란 얼굴을 한 동료를 향해 이야기를 꺼낸 직원이 다가갔다.

“자네 못 들었구나? 회사 무지하게 어렵대.”

“뭐가 또 무지하게까지야? 어디서 이상한 소리 들은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가뜩이나 자금이 돌지 않아 골치가 아픈데 뭔 투자에 실패해서…….”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주변을 살핀 뒤 그는 동료의 귀에 손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사가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무슨 말도 안 되는…….”

바싹 붙은 동료를 밀쳐낸 직원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신성그룹이야. 신성그룹. 알아? IMF 시절도 잘 넘어간 우리가 넘어가긴 뭘 넘어가? 정신 차려. 어디서 이상한 소리나 듣지 말고…… 온다.”

한창 이야기를 하는 사이 검은색 차가 들어왔다.

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은 멈춰선 차 문을 연 뒤 안에서 내리는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

차에서 내린 추 부회장은 조금 뒤에 이어 들어온 차에서 내린 임원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추 부회장이 들어갈 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던 직원은 추 부회장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아이고 왜 이 짓을 토요일 아침에 하고 있어야 하냐?”

“표정이 좋지가 않은데?”

허리를 두드리던 직원은 추 부회장이 들어간 쪽을 바라보고 있는 동료를 향해 말했다.

“토요일 이 시간에 나오면 중요한 일일 텐데 그게 좋은 일이겠어? 네 말대로…… 회사가…… 또 온다.”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또다시 검은색 차량이 연달아 들어왔다.

그곳에서는 얼굴 한번 보기 어렵다는 그룹 고위 임원들이 단체로 내리고 있었다.

하나하나 모두 차 문을 열어주고 인사를 마친 직원은 이번에도 그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떠나고 나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직원은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얼추 거의 다 온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제 회장님만 남았나?”

“회장님에…… 신성증권 임원들도 온다고 하더라.”

“신성증권? 거기가 왜?”

그룹 내에서도 고위 임원들만 모이는 자리에 자회사의 임원이 왜 참여하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게는 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야기했잖아. 그룹에서 뭔 투자를 했다고…… 그래서…… 오신다. 이번에는 회장님이시다.”

한 번에 세 대의 차량이 건물 앞으로 들어섰다.

이수암 회장이 탄 차와 그를 수행하는 두 대의 차량이 함께 도착한 것이었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은 이번에는 차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됐다.

수행하는 이들이 번개처럼 차에서 내려 이수암 회장의 차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호위하듯이 주변을 에워싸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은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인 채 땅바닥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수암 회장이 안으로 들어가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직원은 곁에 있는 동료에게 말했다.

“그런데 뭔 일이 있기는 정말 있나 보다 찬바람이 여기까지 느껴져.”

“분위기 살벌한데……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 나 이번에 대출 왕창 땡겨서 집 샀는데…….”

“어. 온다. 이번에는…….”

이수암 회장의 뒤를 따라 들어온 차는 지금까지 들어온 차들과는 조금 달랐다.

검은색의 국내 차량이 아닌 휘황찬란함이 느껴지는 외제 스포츠카였기 때문이다.

임원을 비롯하여 이수암 회장이 올 때마다 의전을 담당하던 직원들은 생소한 차량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다.

그러는 사이 차량이 먼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한진영은 뒤따라 들어온 김정대 차량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차 문이 열리자 김정대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오셨어요?”

“어. 그래. 왔구나.”

김정대의 얼굴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새벽에 미국에서부터 날아온 소식에 그는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중이었다.

한진영과 김정대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노 전무의 차도 도착했다.

노 전무는 의전 직원들이 차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인사를 하는 한진영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한진영이 건넨 인사도 받지 않은 채 손가락을 들어 말했다.

“포지션을 유지해야 한다고? 어?”

노 전무는 한진영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했다.

“지금도 그 말 계속할 수 있겠냐? 어?”

노 전무는 한진영을 잔뜩 비웃음을 날리고는 큰 소리로 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김정대는 그런 노 전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한진영을 위로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몇 시간 전에 있었던 발표는 사고와 같은 거니까. S&P 그 미친놈들이 정말로 신용등급을 강등할 줄 누가 알았겠냐?”

김정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한진영이 웃으며 김정대를 향해 말했다.

“장 본부장님께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하긴 장 본부장님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휴가 가 있는 직원들까지 불러내 각 지역에 지시를 내려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본부에서 관리하는 고객들에게도 연락해야 했고…… 그리고 본부장님도 바쁘셨으니 아마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셨을 겁니다.”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저는 알았습니다.”

“뭐? 알았다고?”

김정대는 너무 놀라 주변에 의전직원들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걸 알고 있었다고?”

“네. 알아서 장 본부장님께 주의하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어제 장 본부장님께서 갑자기 사라지셨지요? 제 이야기를 들어서 그러신 겁니다.”

한진영의 말대로 어제 갑자기 장근수의 모습이 김정대의 시야에서 사라진 게 사실이었다.

그 전날만 하더라도 FICC 본부에서 오후 늦게까지 놀다가 갔던 장근수였다.

직원들 대부분 휴가 보내 할 일이 없다는 핑계로 FICC 본부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때웠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아침나절부터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조 단위의 금액을 넣은 후라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김정대는 그저 장근수도 휴가를 간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럼 알고 있었으면서도 포지션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던 거였어?”

“들어가시지요. 제가 막 도착했을 때 회장님 차가 떠나는 것을 봤습니다. 아무래도 회장님께서 먼저 도착하신 것 같으니 나머지는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한진영이 김정대에게 웃으며 말을 건넨 후 차 키를 의전 직원에게 건네고는 본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김정대는 그런 한진영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오늘 회의에 참석할 마지막 사람인 한진영 일행까지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의전 직원들은 허리를 완전히 펼 수 있었다.

***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노 전무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노 전무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계속 이야기했다.

“분명 국채 가격이 하락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는 돈을 쓸어 담을 일만 남았습니다. 하하하.”

노 전무는 자리에 이수암 회장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크게 웃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노 전무의 이런 모습을 말리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누구보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렇게 웃던 노 전무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추 부회장이 노 전무를 불렀다.

“노 전무. 아직 국채 가격이 내려가지 않았는데…… 그럼 앞으로 떨어질 거라는 이야기인가?”

노 전무는 웃음은 멈췄지만, 입가에는 여전히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추 부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국채 가격이 내려갈 겁니다.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떨어질 겁니다.”

“어째서 그렇지?”

노 전무는 추 부회장의 질문을 받아 자리에 있던 임원들을 훑어본 뒤 추 부회장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대답했다.

“S&P에서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습니다.”

“그건 나도 아네. 오늘 새벽에 갑작스럽게 나온 발표. 그것 때문에 이렇게 이른 시각부터 우리가 모인 건데…… 그거하고 국채 가격의 하락하고 연관이 있는 건가?”

“있지요. 투자등급을 강등했으니 AAA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자들은 국채를 매도하게 될 겁니다. 또한, AAA등급의 국채를 매수하고 싶은 사람들은 국채 매수를 꺼리게 될 것이고요. 그럼 자연스럽게 국채 가격은 내려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시간이 이제 펼쳐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분명 노 전무가 컨설팅 업체에서 받아온 보고서에는…… 강등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노 전무는 추 부회장이 계속 질문해오자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표정을 이내 숨기고는 다시 환한 표정으로 추 부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니 강등은 없다는 전제로 이야기했던 것이고…….”

노 전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것도 우리에게 좋게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합니다.”

“전략을? 어떻게?”

“추가 투입하려고 준비했던 돈. 그걸 바로 장이 열리는 월요일 다 집어넣어야 합니다. 누구보다 빨리 말입니다.”

“그것까지 다?”

“네. 다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손해를 빨리 메울 수 있으니까요.”

추 부회장은 노 전무의 말에 곁에 앉아 있는 이수암 회장을 슬쩍 바라봤다.

이수암 회장은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 전무를 향해 물었다.

“다 넣으면…… 지금의 손실을 줄일 수 있나?”

“손실을 줄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회장님.”

“그럼?”

“처음 우리가 목표로 한 2,000억의 수익을 넘어 3,000억, 5,000억을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월요일 당장 집어넣으면 그렇게 벌 수 있고?”

“물론입니다.”

노 전무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한진영은 그런 노 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곁에 앉아 있는 김정대를 향해 고개 숙여 말했다.

“본부장님.”

“어?”

머릿속이 복잡해진 김정대는 잠시 딴생각을 하다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기를 향해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듯한 한진영을 바라봤다.

“저 믿으세요?”

“자네를? 믿지. 당연히 믿지.”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노 전무 쪽을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아무도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김정대에게 말했다.

“절 믿으시면…… 새롭게 들어오는 돈을 바로 집어넣지 말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기다리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김정대는 자기도 모르게 커지려는 목소리를 줄이고 급히 한진영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슬쩍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5,000억을 만들어서 보낼 거야. 회장님이 보유하고 있는 신성정밀의 지분을 담보로 해서 5,000억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런 돈을 집어넣지 말고 기다리라고?”

“네. 돈을 받기만 하세요. 그리고 집어넣지는 마세요.”

“만약…… 그랬다가 채권 가격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추격하여 진입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텐데? 그랬다가 다른 사람이 알기라도 한다면…….”

“모를 겁니다.”

“모른다고?”

김정대는 월요일 시장이 열리면 채권 가격이 폭락할 거로 생각하여 그런 것인지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노 전무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노 전무가 지키고 서 있을 텐데? 내가 제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 말이야.”

“제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본부장님은 잠시만, 아주 잠시만 진입하지 말고 추세를 지켜보세요. 정 제 말을 따르기 어렵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한진영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채권 가격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걸 확인하세요. 그리고 만약 떨어진다면 그때 따라붙으세요. 이건 제 말을 따르실 수 있으시겠죠?”

“자네 말은…… 장이 열렸는데도 채권 가격의 변동이 없을 거라는 말이야? S&P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는데도 불구하고?”

“네. 변동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바로 진입하지 마시고 잠시만 상황을 지켜보세요.”

지금의 말은 따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김정대였다.

노 전무가 신경 쓰지 않는 사이 잠깐은 상황을 지켜봐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김정대는 고개를 끄덕인 후 한진영에게 다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왜 말리는 거야?”

“추가 진입을 하면 회사가 망하게 될 테니까요.”

“뭐?”

“그룹이 하늘에서 산산조각이 나는 것만큼은 보고 싶지 않아서요.”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놀란 얼굴의 김정대를 뒤로한 채 노 전무와 추 부회장 그리고 이수암 회장을 바라봤다.

지금은 한껏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주말이 지나 열린 장에서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한진영은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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