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64화 (164/650)

164화 준비했던 시간이 왔다

월요일 아침부터 투자전략사업부는 정신이 없었다.

사업부 직원들은 새벽같이 회사에 나와 일할 준비를 하며 전날 있었던 중동 쪽 증시 이야기를 나눴다.

“봤어?”

“봤지. 사우디 완전 박살 나더라. -7%?”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어. 장중 회복하는 거 하나 없이 -8%를 단번에 찍더라. 아무리 금요일 하락분까지 더해졌다고 하더라도…… 너무 심하던데.”

“맞아. 와~ 살벌하더라. 걔네는 금토 쉬고 일요일 문 여는 걸 너무 억울해할 거야. 다른 나라에 비해 두 배로 얻어터졌으니까.”

출근하는 사업부 직원들은 모두 어제 있었던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만큼 어제 중동 증시는 쇼크 이상을 시장에 던져줬다.

이렇게 폭락한 이유는 미국 시각으로 금요일 저녁에 나온 발표 때문이었다.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할지 누가 알았겠어. 미국 내에서도 몰랐을 거야. 그러니까 금요일 1.5%가 넘는 상승을 보이고 마감했지.”

“맞아. S&P 놈들 정말 악랄한 게 장 끝나고 발표한 것 봐. 자기네 딴에는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으려 그렇게 했다지만…… 금요일 들어간 사람들 완전 다 휘말려 죽는 거 아니냐? 아무리 부채 협상이 시원치 않으면 강등 때릴 거라고 이야기했다지만 그걸 진짜로 강등을 때리냐. 막말로 미국이 AAA등급이 아니면 어디가 AAA등급이야?”

직원들은 하나같이 금요일 날 있었던 발표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뭐 그건 그건데…….”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 중 하나가 한진영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혀를 내둘렀다.

“우리 부부문장은 그걸 어떻게 안 거냐?”

“알기야 나도 알고 너도 알았지. 조금 전에도 네가 그랬잖아. 협상이 시원치 않으면 강등 때리겠다고 S&P가 이야기했다고 말이야.”

“그렇지. 알기는 다 안 거지.”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직원은 다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조수아를 향해 무언가 지시를 내리는 중이었다.

조수아는 그런 한진영의 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열심히 메모하는 중이었다.

직원은 그렇게 조수아에게 지시를 내리는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안다고 해도 그걸 실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데…… 정말 새삼 느끼는 거지만 우리 부부문장은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거기에 2,000억을 태우냐? 세상에 누가 그날 하방을 잡았겠어. 아마 우리만 잡았을 거야. 분명해.”

“우리만 잡았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내 대학 동창들 이야기 들으니까 주말 동안 아주 난리가 났대. 대책 강구한다고…… 그런데 우리는 주말 푹 쉬었잖아. 이런 곳 우리밖에 없어.”

“맞아. 우리밖에 없을 거야. 하여튼 대단해. 정말 대단해. 난 사람이야.”

그들은 혀를 내두르며 한진영의 탁월한 선택에 찬사를 보내는 중이었다.

이렇게 직원들이 감탄하며 바라보는 중에도 한진영은 조수아에게 계속 지시를 내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경영지원본부를 괴롭혀야 합니다. 예산을 가지고 해도 되고 물품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아도 됩니다.”

조수아는 알겠다는 듯이 한진영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본부장님이 우리 사업부로 달려오게 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죠. 그겁니다.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어서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게 만드세요. 그래서 화에 못 이겨 우리 사업부로 달려오게 하는 것. 그게 중요한 겁니다.”

“부부문장님.”

조수아는 들고 있던 노트를 내려뜨리고 한진영을 바라본 채 울상을 지었다.

“그러다가 본부장님에게 저 찍혀서 회사 잘리면 어떡해요? 저 아직 시집도 못 갔단 말이에요.”

한진영은 조수아의 말에 한차례 크게 웃고는 조수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 전무가 누구를 찍어내고 말고 할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절 믿으세요. 조수아 씨는 분명 노 전무보다 회사를 오래 다니게 될 겁니다.”

“제가 당장 결혼하니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해도요?”

“네. 지금 사표를 내셔도 노 전무보다 회사를 오래 다니시게 될 겁니다. 조수아 씨는 최소한 인수인계를 하는 한 달은 회사에 다니셔야 할 테니 말입니다.”

“한 달도 못 채우나요? 노 본부장님이요?”

조수아는 한진영의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손목시계를 두드리는 것이 어서 빨리 가라는 제스처를 한진영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수아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 일이라고 생각한 조수아였다.

그녀도 다른 사람만큼이나 한진영에 대한 믿음이 깊었기에 한진영이 하라는 일을 잘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수아가 떠나고 나자 코스피는 동시호가에 들어갔다.

“-3% 시작 예상.”

전날 중동 시장의 폭락으로 예상됐던 일이었지만 폭락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직원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사업부 직원들은 안정을 되찾았다.

어쨌든 지금 그들은 결을 따라 파도에 몸을 싣고 내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이었다.

다른 곳처럼 2,000을 깨고 난 뒤에 나올 반등을 예상하고 매수 포지션을 잡지 않았던 것이었다.

종합주가지수는 동시호가에서 나온 시초가 폭락을 열심히 메워갔다.

지난 금요일 -3%가 넘게 하락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반발 매수세라고 볼 수 있었다.

이대로 단숨에 1,900선까지 깨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개인들의 적극적인 매수세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매수세도 한계가 있었다.

-1.5%까지 회복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 올리는 것은 개인들의 힘만으로는 무리가 있는 듯 보였다.

우리나라와 함께 시작하는 일본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결국, 지수는 -1.5% 하락 이상을 끌어 올리지 못한 채 1,913에서 장이 시작됐다.

“뭐야?”

장이 시작됨과 동시에 사업부 입구에서는 큰 소리가 들렸다.

노 전무가 씩씩대는 얼굴로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너 뭐 잘못 먹었어?”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몰라서 물어?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노 전무는 한진영을 향해 서류뭉치를 던졌다.

한진영은 노 전무가 던진 서류뭉치를 받아 들고 안을 살폈다.

서류뭉치는 지난달은 물론이고 작년에 사용했던 투자전략사업부의 업무추진비 명세서였다.

노 전무는 씩씩대는 것을 멈추지 않고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진영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작년에 너희 사업부가 구매한 의자 물품 대금을 지금 보고 있어야겠어?”

한진영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노 전무를 따라 들어온 조수아를 바라봤다.

조수아는 노 전무 뒤에서 그를 이곳으로 불러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한진영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노 전무를 잡아 온 것에 피식 웃으며 조수아를 향해 말했다.

“알았으니까 조수아 씨는 그만 가보세요.”

노 전무는 자리를 떠나는 조수아를 힐끗 한번 보고는 시선을 시세 전광판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종합주가지수뿐만 아니라 각종 해외선물들과 각 나라 국채들의 가격이 수시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한진영도 노 전무의 시선을 따라 미국 국채 10년 물의 가격을 확인하고 말했다.

“아직 변동이 없네요.”

장이 열리자마자 채권 가격이 폭락할 것으로 믿었던 노 전무는 변동이 없는 것에 잠시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저거 맞는 거야? 혹시 실시간이 아니라 지연시간으로 보여주는 거 아니냐?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가격이 움직이지…….”

노 전무가 말을 하는 사이 오히려 금리가 하락하며 국채 가격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전무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진영은 노 전무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조금 전 자기에게 던진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사업부로 개편되면서 정리가 되지 않은 업무비를 처리하다가 실수를 했나 보네요. 뭐 하러 직접 오셨어요? 아랫사람을 시켜도 되는 일을…….”

“작년에 쓰인 업무비를 무조건 오늘 오전 중으로 처리해달라고 그러는데 그럼 어떻게 해? 날 물 먹이려고 하는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내가 쫓아와야지. 그런데…… 저거 뭐야? 저거 맞는 거야?”

이야기하는 사이에 국채 금리는 또다시 1bp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겨우 0.01%에 불과한 하락이었지만 노 전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신용등급이 강등됨으로 인해 나올 국채의 매도 공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매수세가 현재는 더 강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시세 전광판에서 떼지 못하는 노 전무를 따라 돌린 한진영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노 전무님이라면 아시지 않습니까? 저거 다는데 돈 많이 들었다는 걸요. 그리고 저기에 연결된 블룸버그 통신이라든지 여러 가지 정보를 가지고 오는 데 한 달에 수천만 원의 돈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다른 사람보다 노 전무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잘 알지. 저것 때문에 한 부부문장하고 싸웠으니까.”

별것도 아니게 보이는 시세 전광판을 다는데 돈을 그렇게 많이 써야 하냐면서 노 전무가 사업부 인테리어를 진행할 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곳을 찾아왔었다.

그리고 배정된 사업부 업무 진행비에서 시세 전광판 운영비를 제하고 주겠다는 말로 한창 신경전을 벌였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지금 화면에 뜬 시세 전광판 숫자가 잘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노 전무였다.

한 달에 수천만 원에 달하는 돈을 지급하고 정보를 가지고 오는 곳이 어떤 곳인지 노 전무는 공부까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채권 금리가 올라가야 하는 게 맞건만 어째서 떨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는 하지요.”

한진영의 말에 노 전무는 미국 국채 금리가 보여주는 곳 옆에 있는 화면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1,900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것으로 보였던 종합주가지수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난 일본 대지진 때도 지켰던 1,900이라는 상징적인 숫자가 이번에는 깨져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국채 금리도 함께 주저앉았다.

노 전무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잠시 이게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던 노 전무가 무언가를 깨닫고 급히 정신을 차렸다.

“김 본부장!”

주말에 있었던 회의 자리에서 김정대 본부장에서 들어온 자금을 가지고 모두 매도 포지션을 잡으라고 지시했던 것을 떠올린 노 전무였다.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한진영을 잠시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그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회장님의 지분을 담보로 한 대출금이 들어왔나요?”

“어. 어제…….”

“일요일인데 잘도 대출을 해줬네요.”

“긴급으로…… 해달라고 해서…… 그쪽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진행을…….”

더듬더듬 이야기하던 노 전무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진영은 그런 노 전무의 등에 대고 이야기했다.

“얼른 가보셔야겠는데요. 그 돈까지 다 매도 포지션에 들어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금리가 5bp 또 떨어졌어요.”

장이 열린 지 이제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야기하는 사이 10bp, 0.1%가 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금리의 움직임은 점차 가속도가 붙어 빨라지기 시작했다.

잘못하다가는 오늘 하루에만 0.2% 혹은 0.3%의 금리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이런 속도로 금리가 떨어진다면 국채 가격은 하늘을 뚫어버릴 만큼 오를지도 몰랐다.

5,000억을 집어넣어 레버리지를 일으킨 국채 매도포지션이 어마어마한 손실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마음이 조급해진 노 전무가 급히 몸을 움직여 달려 나갔다.

FICC 본부에 지금 빨리 달려가 김정대가 어제 오후 입금한 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인사도 없이 떠나간 노 전무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나한테 고마워할 수나 있으려나?”

회의 자리에서 이야기한 대로 노 전무를 잠시 잡은 한진영이었다.

그리고 이 잠시의 시간으로 김정대가 포지션을 잡는 것을 막았다.

한진영은 FICC 본부에 달려가 포지션이 잡히지 않은 것을 보며 안도할 노 전무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그래 봤자 뭐…… 저 양반도 그게 끝이지.”

새롭게 투입된 자금이 집행됐는지, 안 됐는지는 노 전무의 앞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미 들어가 있는 금액만으로도 손해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다만 더 큰 피해를 막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고, 이 의미는 노 전무와는 상관이 없었다.

노 전무의 앞길은 이제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뭐가 끝인데?”

노 전무와 마주치는 것이 싫었던 이성우는 노 전무가 떠난 것을 확인하고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돌아보고 웃었다.

“마침 잘 왔다.”

“잘 와?”

“그래.”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시세 전광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말했다.

“아버님께 연락해라. 준비했던 시간이 왔다고 말이야.”

이성우는 한진영이 가리킨 전광판 속의 숫자를 확인했다.

종합주가지수는 끝을 모르고 하락하는 중이었다.

“사이드카 걸렸습니다.”

선물시장이 사이드카에 걸렸다는 소식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사업부 전체에 울려 퍼졌다.

5% 이상의 하락이 나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5% 이상의 하락이 나왔다는 뜻은 투자전략 사업부가 오늘 하루에만 500억 이상의 돈을 벌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일 수익으로는 최대 규모의 수익을 올린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렇게 속절없이 100포인트가 넘게 빠진 코스피와 함께 하락하는 미국 국채 10년 물 금리를 바라보고 이성우를 향해 말했다.

“신성증권을 손에 넣을 준비가 되셨냐고 네 입으로 직접 말씀드려라.”

“신성증권을…… 손에 넣는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을 반복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평소 실없이 웃고 다니는 이성우에게도 신성증권을 손에 넣는 것은 특별한 듯 보였다.

이성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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