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65화 (165/650)

165화 완전히 무너진 뒤에 손을 내민다

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일이 일어난 것에 시장은 혼란스러워했다.

특히, 주식시장의 혼란은 극에 다다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2,000만큼은 지킬 줄 알았던 종합주가지수가 하락에 하락을 이어가며 1,800은 물론이고 1,700선까지 깨버린 것이었다.

285에서 잡았던 국내선물 매도 포지션이 220에서 며칠 만에 청산될 정도로 시장은 공포에 휩싸였다.

2주 만에 20%가 넘게 하락한 것으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단시간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이 나타난 증시였다.

상품시장도 하락이 나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유가를 비롯하여 천연가스와 니켈 등등 원자재는 더블딥에 이은 미국 신용등급 하락에 크게 반응했다.

100불을 넘보던 서부텍사스유가 단숨에 70불 대 아래로 빠져 내려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와 반대로 금과 같은 안전자산으로의 자금 쏠림은 더욱 심해졌다.

금의 경우 한때 온스당 1,720불 근처까지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혼란한 시장을 빠져나와 안전자산에서 몸을 피하려 한 것이었다.

이렇게 미국 시각으로 금요일 저녁 벌어진 일로 투자시장은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다.

그리고 이런 혼란은 국채 시장에서 절정에 달했다.

[美 국채의 역설, 등급 강등에도 가격 상승]

미국 국채의 반란이라고까지 언론에서 이야기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S&P의 신용등급 강등 대상이 미국의 국채인데도 오히려 미국 국채 값이 올랐다는 것에 시장 참여자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국 국채의 10년 물 금리는 당일에만 2.57%에서 2.47%로 0.1%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30년 물조차도 고점 대비 0.07% 하락했으며 2년 물 국채 금리는 사상 최저치인 0.252%까지 떨어지는 기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장기와 단기를 가리지 않은 금리의 하락은 자금이 국채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상을 일부에서는 아시아 증시와 유가의 폭락에 자금이 안전자산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안전자산의 제일 종목인 미국 국채에 자금이 쏠린 것으로 해석하는 분석을 내놨다.

신용등급이 강등됐다고 하더라도 등급은 투자자들에게 큰 의미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FRB가 3차 양적 완화(QE3) 논의가 활발해지며 국채를 매입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가격이 올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뭐가 됐건 국채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갔다.

한진영은 장이 진행되는 도중에 신성그룹 본사의 부름을 받고 본사 건물 회장실에 앉아 있었다.

이미 1,700이 깨지는 시점에서 손을 턴 한진영은 급한 일도 없었기에 자리에 앉아 있는 게 편하기만 했다.

한진영과 마주한 사람들이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그게…… 후~”

추 부회장이 입을 열려다 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곁에 앉아 있는 이수암 회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수암 회장도 추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쉬기만 했다.

한진영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두 사람을 보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완전히 쓰러뜨린 뒤에 손을 내밀어야겠어.’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좌절을 맛보게 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한진영이었다.

그리고 쓰러져 더는 일어날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 때 손을 내밀어야만 그들에게서 완벽한 항복을 받아 낸다는 것도 알았다.

한진영은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먼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에 빠트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손실을 얼마나 보신 겁니까?”

이곳에 오기 전에 김정대 본부장에게 먼저 물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김정대 본부장은 고개만 저을 뿐 정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가 먼저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손실은 심각한 듯 보였다.

“3…… 3,500억 손실을 봤네.”

추 부회장이 이수암 회장을 힐끗 쳐다보고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한진영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군요.”

예상했다는 한진영의 말에 추 부회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자네가 두 번째 투자금을 막아줘서 그 정도였다네. 아니었다면…… 손실금이 5,000억이 넘었을 거야.”

“들으셨군요.”

“그래. 김 본부장이 이야기해주더군. 한 부부문장이 잠시만 투자를 멈추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말이야.”

며칠 만에 10년은 늙은 것만 같은 이수암 회장이 떨궜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본 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이번에도 한 부부문장에게 신세를 졌네요.”

“신성그룹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 당연한 일을 다른 사람은 하지를 못 했으니 감사 인사를 받아야지요.”

이수암 회장은 노 전무를 생각한 것인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추 부회장도 이수암 회장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금니를 앙다물며 말했다.

“노 전무 그 작자…… 애초에 그런 말을 하게 놔두면 안 됐는데…… 으~”

몸서리까지 치는 추 부회장을 보며 한진영은 말없이 웃었다.

애초에 그런 말을 하게 놔둔 사람이 이렇게 자기 눈앞에서 이러는 것이 우습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영은 그런 내색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이미 약자의 입장에 서 있는 그를 더욱 코너로 몰아붙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한진영이었다.

그저 가만히 그가 본론을 꺼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몸서리를 치던 추 부회장은 한진영을 부른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기 한 부부문장.”

“네. 말씀하시죠.”

“우선 사과부터 할게. 포지션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됐네. 이해해주게.”

“제가 이해하고 말고 할 문제는 아니니 저에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야. 아무리 우리가 어른이고 상사라고 하더라도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야지.”

추 부회장이 말을 마치고 이수암 회장을 슬쩍 바라봤다.

이제는 이수암 회장 차례라는 듯한 눈빛을 보낸 것이었다.

그 눈빛에 이수암 회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우리가 이렇게 벌을 받는 게 다 한 부부문장의 말을 듣지 않아서입니다.”

이수암 회장까지 사과의 말을 전하자 추 부회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진영을 향해 부탁의 말을 꺼냈다.

“여보게. 한 부부문장. 어떻게 안 되겠나?”

“뭘 말씀이십니까?”

한진영은 추 부회장의 말에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추 부회장의 몸이 달아올랐는지 엉덩이를 소파 끝으로 빼 앉은 채 입을 열었다.

“들었네. 자네 사업부가 이번 일로 약 700억의 수익을 올렸단 것을 말이야. 그것도 지난 월요일 당일에만 500억 수익을 올렸다며?”

“네. 맞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떻게…….”

추 부회장은 남은 돈을 가지고 돈을 벌 방법이 없느냐는 말을 하려다 말고 얼굴을 붉혔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고개를 떨궈 부끄러움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얼굴을 달궜던 붉은 기운은 쉽게 털어지지 않은 듯 보였다.

귀까지 빨개진 추 부회장은 결국 작전을 바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노 전무에게 화를 내는 것으로 자기가 얼굴을 붉히는 것은 노 전무 때문이라는 듯이 행동했다.

“노 전무 그놈의 자식을…… 한 부부문장. 노 전무는 신경 쓰지 말게. 회사에서 내보냈어. 그리고 이번 일을 아주 끝까지 쫓아가 책임을 물을 생각이야. 그러니 화를 풀게.”

한진영은 모르는 척 추 부회장에게 노 전무의 일을 물었다.

“회사에서 내보내셨다고요?”

“그럼. 그 자식을 그대로 회사에서 어떻게 보고 있나? 나쁜 자식. 그렇게 매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아무래도 수상해. 주식에서는 그런 게 있다며? 먼저 자기가 사고 다른 사람에게 사라고 해서 자기 물량을 넘기는 거 말이야. 그거 한 거 아닌가 싶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서 지금 법무팀에서 고발을 진행하려 하네. 그리고 검찰 측에 자료를 넘겨서 제대로 수사를 해달라고 하려고 한다네.”

“그렇군요.”

한진영은 추 부회장의 말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추 부회장은 한진영의 반응에 당황했다.

노 전무가 한진영을 향해 노골적인 적개심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던 추 부회장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고발조치를 한다는 말을 한진영에게 한 것이었다.

그래야 한진영에게 고마운 마음을 하나쯤은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한진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관심이 없기도 했다.

그 어떤 회사라도 이런 큰 피해를 준 직원을 그대로 자리에 앉혀 두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노 전무는 계속 자리를 지킬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머뭇거리는 추 부회장을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추 부회장님.”

“어? 어. 그래. 이야기하게.”

“기대하시는 그런 일은……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기대하는 일이라면…… 남은 돈을 가지고 투자를 하는 것 말인가?”

“네. 그거 말입니다.”

추 부회장과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이수암 회장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못한다는 말을 듣자 실망감이 급격히 몰려온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에게 혹시라도 남아있는 기대를 지우겠다는 듯이 계속 이야기했다.

“처음 제가 제안했을 때라면 기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기회를 날려버린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시 투자한다는 것은…… 그건 투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투기입니다.”

“투자건 투기건 아무런 상관이 없네. 우리는…… 돈만 벌면 되네.”

추 부회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한진영을 향해 애원하듯이 이야기했다.

“자네 사업부에 이번 일로 700억을 벌지 않았나? 우리가 남은 돈을 넘겨줄 테니 그거로 돈을 불려주게. 5,000억. 우린 5,000억이 필요하단 말이네.”

“추 부회장님.”

“그래. 말하게.”

“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는데 그새 잊으신 것 같습니다. 기회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고 말입니다.”

“기회…….”

지나고 나니 기회였다는 말이 새삼스레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5,000억을 대출하여 2조의 레버리지를 일으켜 3,500억을 손실 본 상태였다.

이걸 반대로 했다면 3,500억을 수익을 봤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두 번째 돈까지 집어넣었다면 조금 전 한진영에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5,000억을 이미 손에 쥐고도 남았을 것이 분명했다.

한진영의 말대로 기회는 이미 지나가 버리고만 이후였다.

“세상에 미국이 신용등급 강등되는 일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먹었는데도 700억을 먹은 게 전부였지요. 그런데 5,000억이라니요? 제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5,000억을 만들어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한 부부문장.”

추 부회장은 애처롭게 한진영을 부른 뒤 이수암 회장을 힐끗 바라봤다.

이수암 회장은 고개를 숙이고만 있을 뿐 나서려 하지 않았다.

추 부회장은 이런 이수암 회장의 모습에 할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번 자기가 나서서 한진영에게 말을 건넸다.

“어렵다는 거 아네. 그런데 지금은…… 방법이 없어.”

추 부회장은 말을 마치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을 한 듯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좋네. 내 솔직히 이야기함세. 우리 신성그룹은…….”

“추 부회장.”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이수암 회장이 곁에 앉은 추 부회장의 손목을 잡으며 말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추 부회장은 결심이 선 듯한 모습이었다.

추 부회장은 이수암 회장이 잡은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회장님.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 아시지 않습니까?”

“추 부회장. 그래도…….”

“다 알려야죠. 그래야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추 부회장의 단호한 말에 이수암 회장의 어깨가 한 뼘은 내려간 듯 보였다.

추 부회장은 그런 이수암 회장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사업 수완이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이었다.

선대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회장 자리에 앉았고, 그 때문에 신성그룹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 추 부회장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다시 돌렸다.

“한 부부문장.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네. 알고 있으니 설명을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지요.”

말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을 이미 알고 있다는 말 한마디로 잘라 내버린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은 쓸데없이 앓는 소리를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려 했고 추 부회장과 이수암 회장은 흔들리는 눈으로 한진영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진영은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할 정신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들의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릴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제가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딱 잘라 말씀드려서 저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안겨주신다고 해도 제가 5,000억이라는 돈을 만들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한 부부문장.”

“계속 5,000억을 이야기하셔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저는 뻔뻔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한진영의 말에 추 부회장과 이수암 회장의 시선은 갈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진영은 그들의 눈에서 희망의 빛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음을 확인했다.

도살장에 끌려가 순서를 기다리는 듯한 두 사람의 눈은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 한진영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제가 하지 못하다는 것이지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이 있어?”

이수암 회장과 추 부회장은 기적을 마주한 사람들처럼 한진영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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