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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68화 (168/650)

168화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태연한 표정의 한진영과 달리 이정훈 회장은 복잡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성그룹 내부 정보통을 통해 신성증권의 매각 가격이 6,000억쯤에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정훈이었다.

그리고 기풍철강 쪽에서도 자체적으로 판단했을 때 신성그룹이 겪고 있는 자금난을 6,000억 선에서 일단은 해결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보고서를 보고 협상 자리에 온 이정훈이었다.

그래서 6,000억 근방까지는 준비해 놓은 상태에서 협상 자리에 임했던 이정훈이었다.

5,000억부터 차근차근 올려가며 하나씩 옵션을 달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5,500억에서 5,700억쯤이 협상 마무리 가격이 아닐까 예상했다.

그 정도면 모두가 만족할만한 가격으로 마무리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다짜고짜 7,000억을 부르고 시작했다.

게다가 인수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원했다.

그것도 일시불을 통한 현금이었다.

옵션으로 붙은 것도 하나 없이 이런 식의 인수가격은 8,000억 혹은 그 이상을 주고 신성증권을 인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이야기한 한진영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이정훈 회장이었다.

그는 한진영이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과 같은 조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알고 있군. 그런데 나한테는 씨알이 먹힐 것 같아 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나?”

“네. 다른 사람이라면 먹히지 않을 이야기지만 회장님께는 먹힐 이야기지요.”

“내가 호구라서?”

“설마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조건을 이야기했겠습니까?”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들리는 게 사실이네. 그렇지 않다면 설명이 되지 않거든. 남들보다 내가 왜 비싼 가격에 신성증권을 인수하려 하겠나?”

한진영은 날 선 이정훈 회장의 질문을 듣고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에서 7,000억이라는 숫자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이정훈 회장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한진영이 7,000억을 염두에 두고 이 자리에 왔다는 것도 같이 알 수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기가 보고받은 6,000억이라는 신성그룹의 내부 이야기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이정훈 회장은 잘못된 이야기를 가지고 온 기획조정실 실장을 향해 불편한 기색의 눈빛을 보냈다.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 회장과 자기도 어쩐 일인지 모른다는 눈빛으로 열심히 해명하려 하는 기획조정실 실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정훈이 느낀 대로 한진영은 처음부터 7,000억을 염두에 두고 자리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인 이수암 회장과 이야기를 할 때부터 7,000억은 한진영이 신성증권의 매각가격으로 정해 놓은 가격이었다.

한진영과 임재홍 리서치 센터장이 은밀하게 계산한 신성증권의 가치는 7,000억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수암 회장에게 6,000억 플러스알파로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렇게 이정훈 회장에게 잘못된 정보가 흘러 들어가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6,000억 플러스알파를 이야기해도 6,000억만 생각할 거라는 것을 알고 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이정훈 회장을 흔들고 다음에 할 이야기의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한진영의 의도대로 이정훈 회장은 흔들렸다.

그리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강한 모습으로 나가려 한 이정훈 회장이었다.

“혹시 성우가 이야기한 그룹화 작업을 믿고 그러는 건가? 그건 안 해도 그만이고 꼭 신성증권의 손을 통해서 해야 할 이유가 없어.”

단호한 이정훈 회장의 말에 이성우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쌓아 온 자기에 대한 믿음이 함께 무너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이성우는 안정을 찾았다.

한진영의 변함 없는 모습과 자기를 믿으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정훈도 그런 한진영과 이성우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말을 건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확신하고 있군. 내가 자네 조건을 받아들일 거라고 말이야.”

“네. 저는 한 치의 의심 없이 회장님께서 제 제안을 받아들이실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나라면 받아들일 그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가 수용한다고?”

“네.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회장님께서는 저에게 고맙다고 하실 겁니다.”

“고맙다고 한다고? 내가? 자네한테?”

이정훈 회장은 자기가 잘못 들은 건지 확인하기 위해 곁에 앉아 있는 고문 변호사와 기획조정실 실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나 그들도 모두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 이정훈만이 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지 않게 반응했다.

이정훈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내가 왜 자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지?”

“당연히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니 고맙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싸게 산다고? 7,000억에 신성증권을 인수한다는 게 지금 싸다는 말인가?”

이정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가 엇나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정훈의 미간에는 깊은 내 천(川)자가 그려졌다.

“다른 사람에게는 비싼 것이 나에게는 싼 것이다?”

“네.”

“좋아. 그렇다고 치고…… 그 이유나 들어보세. 도대체 7,000억 현금 박치기 인수가 어떤 의미에서 더 좋은 것인지 말이야.”

이정훈 회장은 팔짱까지 끼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말로는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지만 실상 그가 보여주는 반응은 자세에서부터 부정적인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 회장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성증권은 기풍의 그룹화에 필요한 필수 요소입니다. 그러니 다른 곳과 회장님은 입장이 다른 것이지요. 하나의 증권사를 인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룹화에 필요한 필수요소를 인수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룹화에 필요한 필수요소?”

“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수천억의 돈을 버실 수도 있습니다. 7,000억을 주고 사는 게 아니라 어쩌면 무일푼 혹은 돈을 벌게 될지도 모를 정도로 큰돈을 말입니다.”

“그룹화를 하며 돈을 번다고?”

이정훈 회장은 곁에 앉아있는 기획조정실 실장을 돌아봤다.

수년 동안 은밀하게 그룹화를 진행했던 인물인 만큼 한진영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기획조정실 실장도 한진영이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룹화를 진행하며 돈을 그것도 수천억을 버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향해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7,000억을 주고 사지 않겠지만, 회장님은 7,000억은 물론이고 고맙다는 말까지 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 한 겁니다.”

“그 방법이란 게 무엇인가?”

“궁금하십니까?”

“솔직히 궁금하네. 자네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괜한 말로 내 눈을 흐리려고 꺼낸 말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자네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더 궁금하게 느껴지는 거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돈까지 벌어가며 그룹화를 진행할 수 있는지 말이야.”

날이 많이 무뎌진 모습의 이정훈이었다.

그만큼 한진영이 꺼낸 말이 이정훈의 관심을 끌었다는 뜻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풍철강에서 특수강 부문을 물적분할 하는 겁니다.”

“물적분할?”

“네. 아마 기풍철강에서는 인적분할을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하셨을 겁니다.”

한진영이 말을 하고 기획조정실 실장을 바라보자 기회조정실 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대답하지 않아도 되건만 지금 순간에는 마치 대답을 해야 할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기획조정실 실장을 향해 살짝 미소를 띤 후 이정훈 회장에게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회사를 분할할 때 신설법인의 주식을 모회사의 주주와 같은 비율로 배분하는 분할 방식이 합당해 보이기는 할 겁니다. 모회사에서 신설법인을 병렬 구조로 나누는 수평적 분할법이 분할 방법에서는 어떤 면에서 기준처럼 보이기도 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기풍철강은 그렇게 그룹화를 진행해서는 안 됩니다.”

“수평적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으로?”

“수직적으로 해야죠. 기풍철강을 정점으로 잡고 그 밑으로 계열사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겁니다. 즉, 모회사인 기풍철강이 신설법인으로 분리할 사업부의 지배권을 계속 유지한 채 수직 분할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는 이정훈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는 인적분할을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해 온 것이 사실이야. 그리고 그 방법이 승계에 있어서 장점이 있다고 알고 있어. 절세는 덤으로 오는 것이고…… 하지만 무엇보다 기존 주주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는 면에서 인적분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네. 그런데…… 자네는 물적분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가?”

“맞습니다.”

“자네 말대로 물적분할을 한다면 수천억의 돈을 벌 수도 있겠지. 하지만 기존 주주들의 반대는 어떻게 하고?”

“기존 주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이지요.”

한진영은 집게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바로 주가하락. 주가하락이 나올 것이 걱정돼 반대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게 가장 큰 문제지.”

“그것만 해결되면 기존 주주들도 싫어할 명분이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야.”

이정훈 회장은 숙였던 고개를 들어 한진영을 바라봤다.

“마치 주가하락을 막을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네. 막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호재와 함께 터트리는 겁니다. 그래서 악재를 덮는 것이죠.”

“호재와 함께?”

팔짱을 끼고 있던 이정훈 회장의 팔에 힘이 느슨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 회장의 마음을 녹여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우선 첫 번째. 신성증권의 인수 발표. 이건 분명 호재가 될 겁니다. 철강 쪽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지워줄 만한 사업 다각화의 모델로 이것보다 나은 것이 없을 테니까요.”

이정훈은 한진영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신성증권을 인수하려 했을 때도 그것을 노리고 인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새롭게 인수한 리튬 광산이 인수할 때 생각했던 보유량보다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100배에 달하는 리튬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최대 광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시장에 풀어놓는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산된 리튬을 대한정유가 진행하고 있는 2차전지 배터리 사업에 사용되는 리튬의 원료 공급자로 선정되어 안정적인 공급처도 확보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된다면 특수강 부문이 떨어져 나가는 것쯤은 주주들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자사주 매입 소식까지 더해진다면 물적분할을 하는지 인적분할을 하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한진영이 마지막 말을 마쳤을 때 이정훈의 팔짱 낀 손이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정훈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안 건가? 우리가 리튬 광산을 인수했다는 것을 말이야.”

이정훈은 말을 마치고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이성우가 한진영에게 정보를 흘린 게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웠다.

이번 일은 아들인 이성우도 모르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극비로 진행했던 일이었다.

철광석 광산을 인수하기 호주에 갔다가 우연히 인수하게 된 광산이었다.

그런데 인수 후 실사 과정에서 리튬 보유량이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많다는 측정결과가 나와 기풍철강 측에서도 당황한 게 며칠이 되지 않았다.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에서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정훈을 비롯하여 측근 중의 측근만이 아는 일이었다.

지금 자리에서도 기획조정실 실장은 아는 사실이었지만 대표 고문변호사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이런 사실을 방증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떼어내면 됩니다. 이번에는 특수강 다음에는 해외자원 개발회사 그리고 강판과 냉간 등을 진행하는 회사와 기회가 된다면 케미칼 쪽도 떼어내면 좋고요. 하나하나 물적분할 후에 비상장으로 떼어낸 후 분위기를 봐서 상장을 진행하는 겁니다. 하나씩 차례차례…….”

한진영이 말을 들으며 상상이라도 하는 것인지 이정훈 회장의 표정이 몽롱하게 변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 회장의 꿈이 깨어지지 않게 그의 귀를 간질이는 말을 계속이었다.

“그렇게 호재와 섞어 이야기를 풀어내고 포장을 잘하여 분할을 하게 된다면 기존 주주들은 반발하지 않을 겁니다. 나중에 가서는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기풍철강을 오히려 좋게 보게 될 겁니다. 정부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정부에서도 그룹의 지주화 작업에 손을 들어주니 자네 말이 맞을 거야.”

이정훈은 한진영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면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자네 말이 다 맞아. 하지만…… 우리가 인수한 리튬 광산은 그렇다고 치고…… 그걸 대한정유가 진행하는 2차 배터리 사업에 원료 공급처로 지정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야.”

이정훈은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의 얼굴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걸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정말입니다. 어떠십니까 이럼 7,000억이 비싸지 않지요?”

이정훈은 양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즐거워했다.

“하하하. 자네 말대로야. 그렇게만 된다면 7,000억이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아.”

이정훈은 기분 좋게 한참 동안 웃은 후 오른손을 한진영이 있는 쪽으로 내밀고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 준다면 바로 계약서에 사인하도록 하겠네.”

“좋은 소식 가지고 갈 테니 회장님께서는 기다리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좋아. 약속하지. 우리 쪽 계약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자네가 오기만 기다리도록 하겠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서둘러 계약서를 만들어 놓으셔야 할 겁니다.”

“하하하. 어이 기획조정실 실장. 들었지? 김 변호사도 들었지? 두 사람 바쁘게 움직여야 해. 저 친구가 저렇게 말한 걸 보면 내일이라도 대한정유에서 계약서를 들고 올지도 모르니까.”

즐거워하는 이정훈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비즈니스 룸으로 음식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딱 맞게 식사 전 이야기가 마무리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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