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70화 (170/650)

170화 확신이 생겼다

한진영은 대한정유의 윤길영 회장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기풍철강의 이정훈 회장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윤길영 회장과 마주한 것에는 숨겨진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와 다른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항상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회사 이름을 먼저 앞세웠던 한진영이었다.

물론 그것을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작게는 성과급과 직급의 상승을 노렸으며, 크게는 수십억에 달하는 집과 집값에 못지않는 미술품 등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진영은 우선 기풍철강에서 가지고 온 것을 윤길영 회장에게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대한정유의 윤길영 회장은 한진영의 제안에 크게 놀랐다.

“리튬 광산? 기풍철강이 그걸 확보했다고?”

“네. 그것도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에너지의 2차 전지에 사용할 충분한 리튬을 확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대한민국의 기업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는 회사와 말입니다.”

“기풍철강?”

윤길영 회장은 잠시 입을 닫고 한진영을 바라본 뒤 놀란 표정을 급히 지웠다.

너무나 좋은 제안이었지만 한 번에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윤길영 회장이었다.

밀고 당기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했다고 느낀 윤길영 회장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진영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직은 공급망을 다변화할 생각이 없는데 어쩌나?”

“‘아직은’이겠죠. 슬슬 원료 확보를 준비하고 있으시지 않습니까? 지금만으로는 안정적인 원료 수급이 힘들다는 보고서가 올라오고 있을 텐데요. 앞으로 계획하는 사업 내에서는 지금 확보한 것만으로 분명 부족할 테니 말입니다.”

“흐음…….”

윤길영 회장은 짧은 신음만 내뱉을 뿐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진영은 그런 윤길영 회장에게 또 한가지 매력적인 제안을 건넸다.

“그리고 분리막은 LZ신소재 어떠십니까?”

“LZ신소재?”

잠시 한진영의 시선을 회피하던 윤길영 회장이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보고 물었다.

“LZ신소재에서 분리막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동안 일본 쪽 분리막을 사용하느라 골치 아프셨죠? 이번에 대지진으로 인한 혼란에서 피해를 보기도 하셨을 테고요.”

윤길영 회장은 한진영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윤길영의 표정을 보고 자기가 한 말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지만, 윤길영 회장의 표정 속에서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참에 분리막 쪽도 이원화를 진행하시죠. 뭐가 됐던지 공급이 한곳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예기치 못한 일이 터지면 골치 아파지니까요.”

“LZ…… LZ.”

윤길영은 계속 LZ그룹의 이름을 되뇄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LZ가 그 정도의 기술력이 있던가?”

한진영은 윤길영의 말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직은 LZ신소재의 기술력을 의심할만한 시점이기는 했다.

2차 전지 관련 소재 및 배터리 부문까지 모든 것은 일본 회사들이 꽉 움켜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배터리 관련 사업에 진출한 적이 없는 LZ가 분리막과 같은 배터리 사업의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믿을 수가 없는 윤길영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알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 뒤에는 LZ신소재가 분리막과 관련되어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대한에너지도 마찬가지였다.

대한에너지는 세계 2차 전지 시장의 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기존의 전자기기 시장이 아닌 전기차와 ESS 시장에 발 빠르게 들어간 덕분에 대한에너지의 시장 점유율은 지금과는 다른 위치에 올라서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한진영은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과감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윤길영 회장에게도 과감한 제안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개발된 기술을 이용한다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한진영은 아직도 의문이 가득해 보이는 윤길영 회장을 향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대한에너지의 배터리가 일본 쪽 배터리에 밀리는 것이 바로 이 안정성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걸 한 번에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분리막을 개발했으니 믿으셔도 될 겁니다.”

윤길영 회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마치 LZ의 사람처럼 잘 알고 있어. 그리고 마치 LZ의 사람처럼 나를 향해 영업하고 있고…… 자네 LZ쪽으로 이직한 건가?”

“아닙니다.”

“아닌데 LZ 물건을 팔기 위해 왜 그렇게 노력하는 건가?”

한진영은 윤길영 회장의 말에 기분 나쁜 기색을 하나도 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윤길영 회장을 향해 무슨 소리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LZ를 위해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LZ를 위해 제안을 하는 게 아니라고?”

“네. 바로 대한정유를 위해 하는 제안입니다.”

“우리를 위해?”

한진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지분매각 건. 진행하셔야죠.”

“그래. 안 그래도 그 일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기는 한데…… 그거하고 지금 이야기하고 무슨 상관이지?”

“지분매각을 통해 구한 자금으로 무얼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윤길영 회장은 말없이 가만히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윤길영 회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대한에너지가 진행하는 배터리사업에 힘을 주기 위해 지분매각을 진행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럼 돈만이 아니라 주변에도 힘을 주셔야죠. 안정적인 원료 공급과 안정적인 소재 확보. 이 두 가지를 확보하는 것이 돈만큼이나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말입니다.”

윤길영 회장인 입꼬리를 비튼 뒤 한진영에게 물었다.

“자네가 얻는 건 뭐고?”

“제가 특별히 원하는 게 뭐 있겠습니까? 다 대한정유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린 것이지요.”

“쉰 소리 그만하고 이야기해봐. 뭘 원하는데?”

“단순합니다. 지분매각 이후 유증을 진행할 때 거기에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허허. 유증을 할 것까지도 알고 있었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고 있는 윤길영 회장이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그런 윤길영 회장에게 웃는 빛 하나 보이지 않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분매각 후 그 돈을 이용하여 진행할 유상증자. 거기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신성증권이?”

“아니요.”

한진영의 표정에는 이제 더는 웃음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진영은 진지한 얼굴로 윤길영에게 오늘 이 자리에 온 진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자격으로 참여를 원합니다.”

“개인적인? 자네가 직접 유증에 참여하고 싶다는 말인가?”

“네. 바로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회사 이름이 아니라 제 이름만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됩니까?”

오히려 되묻는 한진영의 말에 오히려 윤길영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네 진심이군.”

“네. 진심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려는 사업이 전망이 있다는 뜻인가?”

“회장님이라면 제가 개인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뜻이 무슨 뜻인지 아실 겁니다.”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에 조금 전까지 보이던 웃음기를 지웠다.

그리고 한진영과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정도이던가? 우리 사업이?”

“믿으십시오. 그리고 진행하시면 됩니다. 제가 원료 공급처와 소재 부문까지 들고 왔으니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애매했는데…… 자네 덕분에 확신이 생겼어. 좋아. 다 허락하지. 기풍의 리튬과 LZ의 분리막. 허락하겠네. 그리고 자네의 유증 참여까지 모두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내가 해야 할 것 같아. 하하. 그 정도란 말인가? 그 정도야?”

윤길영 회장은 아직은 비상장 회사에 일개 사업부와 비교하여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대한에너지에 대한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진영은 혼자 생각에 잠긴 듯한 윤길영 회장을 보고 어쩌면 지난번보다 더 빠르게 대한에너지가 성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에는 구체적인 성과가 보이면서부터 대한정유의 푸시를 받았던 것을 기억했던 한진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부터 푸시를 받을게 분명했다.

한진영이 이렇게까지 적극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윤길영 회장이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에너지는 지난번보다 더 빨리 성장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기풍과 LZ를 이른 시간에 붙여준 만큼 시너지 효과도 지난번보다 몇 배는 빨리 일어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진영이 얻는 소득도 작지 않을 게 예상됐다.

작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백 배의 이득이 한진영의 주머니를 채우게 될 것이다.

한진영은 두둑해진 주머니를 상상하며 굳었던 표정을 밝게 바꾸어 나갔다.

***

LZ의 반응은 대한정유 때보다도 더 격했다.

“뭐라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건가?”

나란히 앉아 있는 조병수 회장과 조용재 상무는 한진영의 말을 듣고 화가 난 듯 말했다.

“우리가 LZ신소재의 지분을 맡긴 이유는 자네를 믿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지금 우리의 믿음을 이렇게 배신할 셈인가?”

“배신이라니요?”

“배신이 아니면 뭐야?”

조용재 상무가 화를 참지 못하겠는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진영을 향해 삿대질했다.

“너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지? 뭐? 2,000억에 대한 대출을 풀고 LZ신소재의 주식을 신성증권에서 인수한 것으로 하자고? 우리가 지금 2,000억이 없어서 이러는 줄 알아? 아버지.”

조용재 상무는 일어선 채로 앉아있는 조병수 회장을 향해 말했다.

“그냥 돈 갚아버리시죠? 그깟 2,000억에 LZ신소재 지분 10%를 넘기는 게 말이 됩니까?”

조용재 상무는 한참을 열을 내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다시 한진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너. 성우 이용해서 접근한 것도 이러려고 그런 거냐? 하. 무서운 놈. 처음부터 이상한 말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직 계약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뭐? 너 이 새끼……!”

“가만히 있어봐.”

조병수가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조용재를 조용히 시켰다.

화가 나기는 조병수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LZ신소재 주식 10%의 가치는 2,000억으로 이야기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LZ그룹의 기업지배 구조에서 차지하는 LZ신소재의 위치로 생각했을 때 LZ신소재의 가치는 2조를 훨씬 웃돌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병수 회장은 이런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한진영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진영이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말을 꺼낸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가 궁금해진 조병수 회장이었다.

“이야기나 들어보게 앉아.”

조병수 회장은 아들인 조용재 상무를 나무라듯이 쳐다보고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이유를 들어봐야겠지? 내가 알고 있는 한진영이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아무 이유 없이 꺼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야.”

조병수 회장은 옆자리에 씩씩대며 자리에 앉는 조용재 상무를 힐끗 바라보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분명 우리는 LZ신소재의 지분을 담보로 하여 자네 신성증권에서 대출을 진행한 것인데, 이렇게 난데없이 갑자기 바꾸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자네는 물론이고 신성증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될 테니까.”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 LZ신소재의 주식이 탐이 나 그런 것이겠지요.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가만있어.”

여전히 화를 내는 조용재 상무를 향해 조병수 회장이 인상을 쓰고는 소리를 질렀다.

한진영의 이야기를 듣고도 화내는 기색을 보이지 않던 조병수 회장이 처음으로 화를 낸 것이었다.

조용재는 아버지인 조병수 회장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 급히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잠시 화를 참지 못해 실례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닌 진짜 직장 상사를 향해 사과하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조용재는 아버지인 조병수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한다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조병수 회장은 잠시 조용재 상무를 노려보다 다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나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으니 어서 이야기해보게. 뭣 때문에 그러는 건가?”

그때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한진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분이 어이없어하는 제안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LZ그룹에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네. 그리고 그냥 기회를 줄 수는 없으니 LZ그룹과 좀 더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고 싶어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지분을 인수하려 하는 겁니다. 그래야 LZ그룹을 더욱 믿고 일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마치 우리를 믿지 못해 조금 더 강력한 인질을 잡고 싶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나쁘게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좋게 생각하면 협력관계를 넘어 동맹으로 가기 위한 지분 참여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병수 회장은 유려한 한진영의 말솜씨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뭐가 됐건 좋아. 이야기해보게. 도대체 뭐가 우리에게 기회가 된다는 건가?”

조병수 회장의 말에 한진영은 씩씩대는 조용재 상무를 바라보고 말했다.

“LZ신소재에서 이번에 개발한 분리막. 그걸 대한에너지에서 독점으로 공급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독점공급. 어떻습니까?”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화를 낼 준비를 하던 조용재 상무가 갑자기 식어버리는 모습이 한진영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눈 속에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용재 상무는 한진영의 말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