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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71화 (171/650)

171화 좋은 끈 역할을 할 거다

당황한 듯한 조용재 상무에 비해 조병수 회장은 침착해 보였다.

그러나 흔들리는 그의 눈빛에서 그도 한진영의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울산을 비롯하여 평택 등지에 새롭게 공장을 세우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간 생산량을 얼마로 맞추어야 할지 예상할 수 없어 공장 규모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

“LZ와 함께 가기 위해서는 이 정도 쯤은 알고 있어야죠. 동업자가 되려 하니까요.”

“동업자? 하하.”

조병수는 졌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좋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맞아. 우리는 새롭게 지으려는 제2 공장과 제3 공장의 규모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네. 내부에서 제3 공장의 착공을 뒤로 미루고 진행 중인 제2 공장의 공사도 축소하여 시행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으로 말이지. 그것 때문에 요즘 골치가 아픈 상황이야.”

“아버지.”

조용재는 너무 많은 것을 한진영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아버지인 조병수 회장을 말리려 했다.

그러나 조병수 회장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다 알고 왔어. 숨겨서 뭐해?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고 모를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내 말이 맞지?”

한진영은 조병수의 말에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병수 회장의 말대로 한진영은 모든 것을 알고 온 것이 사실이었다.

이미 지난 시절 겪었던 LZ신소재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발하듯이 성장하는 2차 전지 배터리 시장에 LZ그룹은 적응하는 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배터리 수량이 늘어남과 동시에 분리막 수량도 늘어났는데, 충분한 공급량을 LZ신소재가 시장에 내놓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LZ신소재는 눈뜨고 중국 업체들이 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초기 공장 증설 때 예측을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한진영은 이걸 바로잡아주려 했다.

그래야 기풍과 대한정유 그리고 LZ까지 모두에게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크게 이득을 보는 것은 대한에너지의 지분에 참여하게 된 자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네. 그래서 바로 대한정유 측과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대로 이곳으로 온 겁니다. 신축공장 공사를 한시라도 빨리 진행했으면 해서 말입니다.”

“10년 독점 공급. 매력적이야.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야.”

조병수는 한진영이 가지고 온 제안을 곱씹으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한진영의 말대로 10년간의 독점 공급 계약이 체결된다면 제3 공장의 신축이 문제가 아니라 공장규모를 새롭게 정의해서 지어야 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한 만큼 앞으로의 사업 계획도 조금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진행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조병수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린 후 질문을 던졌다.

“대한정유에는 뭘 줬나?”

“안정적인 원료공급과 LZ신소재의 기술력을 줬습니다.”

“안정적인 원료공급? 리튬 광산이라도 구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맞습니다.”

조병수는 농담처럼 건넨 말에 맞는다는 말을 하는 한진영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정말로 리튬 광산을 구한 건가?”

“이번에 기풍철강에서 인수한 광산이 좀 규모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걸 대한에너지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조건을 걸었지요.”

“기풍철강? 리튬 광산?”

조병수가 조용재를 돌아보자 조용재는 그제야 무언가를 떠올리고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이제 생각이 난다. 거기 말입니다. 호주 쪽에서 인수한 광산이 생각보다 매장량이 많더라는 이야기. 그거 말하는 거 같습니다.”

“아~ 호주.”

조병수도 조용재의 설명을 듣고 리튬 광산이 무얼 말하는지 떠올렸다.

그리고 더욱 의혹이 가득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럼 기풍철강은? 기풍철강에는 무얼 주기로 했나? 기풍철강이야말로 작은 것으로는 움직이지 않을 텐데 말이야. 리튬 같은 건 굳이 독점 공급을 걸지 않아도 서로 사가겠다고 줄을 대는 것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LZ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거래처가 있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뭐 말씀대로 꼭 독점 공급을 걸지 않아도 사업을 이어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지요.”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와 달리 원자재 쪽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 잘 알고 있네. 그런데 기풍은 도대체 어떻게 설득한 건가? 무얼 미끼로 기풍과 거래를 한 거야?”

한진영은 잠시 말없이 조병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그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줬다.

“조만간 신성증권은 사명을 바꾸게 될 겁니다.”

“사명?”

왜 갑자기 회사 이름을 바꾼다는 말을 꺼내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조병수의 눈이 점점 커졌다.

조용재도 마찬가지였다.

한진영의 말이 무얼 뜻하는지 깨닫고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기풍이 신성증권을 인수하는 거야?”

한진영은 조용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만간 신성증권은 기풍증권으로 이름이 바뀌게 될 겁니다.”

“하하. 하하.”

조병수는 웃음을 끊어 웃으며 옆에 놓인 인터폰으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

“양준 사장에게 한 시간 뒤에 내 방에 좀 오라고 해. LZ신소재 건으로 이야기할 게 있다고 말이야.”

조병수는 지시를 내린 뒤 한진영을 보고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풍과 대한에너지 그리고 우리까지…… 계획대로 진행하는 거였군.”

“계획이라기보다는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쪽으로 연합을 구축한다면 조금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니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너그럽게 봐주고 말고 할 게 있나? 우리 쪽에서 나쁘지 않은 일이니 아무 상관 없네.”

조병수의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 보지 못했던 웃음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연합이라면 마다치 않아. 나도 만족해.”

“감사합니다.”

“내가 감사하다고 말해야지. 이봐 조 상무.”

“네.”

조병수는 조용재를 바라보고 지시했다.

“네가 소유한 LZ신소재 지분 5,000주만 내놔.”

“네?”

조병수는 깜짝 놀란 표정의 조용재에게서 시선을 돌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 녀석이 가지고 있는 5,000주에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5,000주를 더해 LZ신소재 주식 10,000주를 자네에게 주지.”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야. 내가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아직 비상장이라서 몇 푼 안 되는 거니까 부담 안 가져도 돼.”

“회장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주식으로 밥 벌어먹고 있는 제가 어찌 LZ신소재의 가치를 몰라보겠습니까? 10,000주면 전체 주식의 0.1%에 해당하는 양으로 30억이 넘는 금액이 아닙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2,000억으로 담보 잡은 10%의 주식을 인수하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하던 조병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0.1%의 주식인 10,000주를 건네주겠다고 했다.

한진영은 뻔히 보이는 조병수의 의도에 양손을 저으며 거부했다.

“아닙니다. 저는 회사에서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굳이 회장님께서 챙겨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니야. 자네가 이렇게 좋은 것을 가지고 왔는데 내가 그냥 모른 척할 수는 없지.”

“회장님. 남들이 보면 제가 무슨 브로커라도 된 줄 알겠습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그럼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더 많은 것을 챙겨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조용재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현실이 맞는지 어리둥절해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아버지인 조병수가 아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임에도 세상 둘도 없는 짠돌이가 바로 조병수였다.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조차 총수 집무실이라는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소파는 낡아 가죽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차가 담겨 있는 찻잔은 얼마나 오래 썼는지 찻잔에 눈금처럼 커피가 담긴 선이 얼룩져 있었다.

옷과 안경 그리고 공기조차 낡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그런 조병수가 10,000주의 LZ신소재 주식을 거저 한진영에게 안겨주려 하고 있었다.

조용재는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용재가 이해하지 못하는 중에도 실랑이는 계속됐다.

“어차피 가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것 아닌가? 지금 비상장 회사인 LZ신소재의 주식은 거래가가 아무 의미 없어. 그저 액면가인 주당 5천 원이 그 종이쪼가리를 나타내는 공식적인 가격일 뿐이야. 게다가 계열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영권 지분구조에서도 자유롭고…….”

한진영은 조병수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조병수는 점차 거절의 강도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설득했다.

“10,000주라고 해 봤자 5천만 원에 불과하니까 받아. 그 정도는 내가 자네한테 고마워하는 의미로 해줄 수도 있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5천만 원에 너무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조병수는 웃으며 다시 한번 자기가 주는 것이 5천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LZ신소재 10,000주의 가치가 5천만 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액면가인 5천 원으로 따졌을 때의 가치가 5천만 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증권사에서는 가치를 주당 30만 원쯤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신성증권에서도 담보물로 잡을 때 주당 가치를 25만 원에 잡았었다.

통상 담보물 책정에서는 안전을 위해 본래 가치보다 낮게 가격을 잡는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10,000주의 가치는 30억을 훌쩍 넘는다고 보는 게 올바른 계산이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지금의 가치만 따졌을 때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 LZ신소재는 미래에 더 큰 가치를 보여줄 주식이었다.

상장을 진행하기 전에 몇 번의 액면분할과 증자를 거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몸집을 불려 가던 LZ신소재는 상장이 성공한 10년 뒤에는 수십 조의 회사로 변하게 된다는 것도 알았다.

적게 잡아도 LZ신소재 10,000주의 가치는 10년 뒤에는 수백억을 훌쩍 넘길 것이 분명했다.

조병수가 이 정도를 계산하지 못하고 한진영에게 주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돈의 가치보다 앞으로 LZ신소재가 보일 LZ그룹 내에서의 위치를 생각했을 때 돈 이상의 가치가 잠재된 회사라는 것을 조병수 회장은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한진영에게 주식을 안겨주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더는 사양하지 않고 조병수가 건넨 선물을 거절하지 않았다.

조병수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즐거워하며 껄껄 웃었다.

조용재는 당최 이게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5,000주를 내놓으라는 조병수의 말 다음부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

두 사람은 잠시 LZ신소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승계 작업에 대한 진행 정도를 확인한 후 한진영에게 조만간 대한정유 측과 분리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약속으로 자리를 마쳤다.

조병수는 떠나는 한진영을 회장실 바깥까지 따라나와 배웅했다.

“그래. 잘 가게.”

조병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하고 몸을 돌렸다.

“아버지.”

그때까지 곁에서 가만히 조병수의 이야기만 듣던 조용재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LZ신소재 주식 10,000주를 그냥 주다니요? 왜 그러셨어요?”

조병수는 회장실로 돌아가려던 것을 멈추고 조용재를 돌아봤다.

“너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거냐?”

“10,000주가 비록 얼마 안 되는 수량이지만 돈으로만 따져도 그게 얼마예요? 못해도 20억. 아니. 30억은 족히 넘는 돈이에요. 그것도 제 지분을 빼서 주라니요? 나중에 지분 정리 과정에서 생각 못한 복병이 될 수도 있어요.”

10,000주만으로 경영권을 어찌해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조용재였다.

그러나 찝찝한 마음에 과장되어 조병수에게 말한 것이었다.

조병수는 호들갑을 떠는 아들 조용재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너는 아직도 한참 배워야겠구나.”

“배우다니요?”

조병수는 한진영이 타고 내려간 엘리베이터를 돌아보고 말했다.

“저 녀석을 엮어 놓는 게 돈이 더 되는 거란 말이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엮는 게 돈이 더 된다고요?”

“그래. 그러니 처음 준다고 했을 때 저놈이 그렇게 싫다고 거부했지. 저놈도 아는 거야. 받으면 괜히 엮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잠시 말을 멈추고 엘리베이터를 응시하던 조병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놈이야. 계속 어떤 식으로든 줄을 대고 있어야 해. 그런 면에서 LZ신소재는 좋은 끈으로 작용할 거다. 저 녀석도 LZ신소재에 관심이 많은 것 같으니까.”

조병수는 조용재의 어깨를 툭 하고 치며 말했다.

“친하게 지내. 기풍 이 회장 아들내미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저 녀석하고 유독 그 녀석이 친하다며?”

“그것도 아시고 계세요?”

“너도 이 자리에 앉게 되면 알게 될 거다. 관심을 두는 순간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이 네 앞에 쏟아져 들어온다는 것을 말이야. 가자. 가서 양 사장하고 LZ신소재 신규 공장 건설에 관해서 이야기 나눌 게 많을 것 같으니 말이다.”

조병수는 조용재를 이끌고 조금 전 한진영과 함께 나왔던 회장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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