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79화 (179/650)

179화 밝은 미래가 보이는 곳

권수형이 이정훈 회장에게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기 전 한진영에게 먼저 연락을 받았었다.

한진영은 권수형에게 이정훈 회장이 본사로 부를 것이라며, 만약 그런 연락을 받으면 본사 앞 커피숍에서 잠시 먼저 자기를 봤으면 한다는 말을 건넸다.

그래서 권수형은 본사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진영과 잠시 만나 대화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진영은 권수형에게 제안을 건넸다.

“만약 회장님께서 저를 꺼림칙하게 여기시거든 저를 시험해보라는 제안을 해주십시오.”

“시험이요? 무슨 시험을 말씀이십니까?”

“조금 더 큰 것을 가지고 오게 하는 게 어떠냐는 말만 건네시면 됩니다.”

“조금 더 큰 것? 저는 도저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서 보시면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실 겁니다.”

한진영의 말대로 권수형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정훈 회장이 건넨 서류를 보고 알게 됐다.

그리고 모든 것을 예상한 한진영의 이야기에 귀신에 홀린 듯이 한진영의 부탁을 들어주고 말았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이정훈 회장의 걱정을 지우는 방법은 한진영을 시험하는 것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권수형이었다.

그래서 이정훈 회장과 만난 뒤 한진영이 기다리고 있는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한진영은 권수형의 질문에 곁에 앉아 있는 이성우를 잠시 돌아본 뒤 권수형을 향해 대답했다.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꼭 하고 싶은 일이요?”

“네. 제가 꼭 진행하고 싶은 M&A 작업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그걸 하기 위해서 시험을 받겠다고 자처하신 겁니까? 굳이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 솔직히 말씀하시면 될 일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권 부사장님은 아실 텐데요.”

“제가요?”

권수형은 여전히 한진영의 말에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한진영은 그런 권수형을 보고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바로크 호텔 인수 정도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일 겁니다. 물꼬를 트는 역할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우리 사업부에 호의적인 시각을 보내겠지요. 하지만 그 뒤에도 계속 인수합병 작업을 이어간다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하겠지요.”

“다른 사람들이야 생각하는 것만으로 끝이 날 테지만, 권 부사장님은 행동으로 움직이실 겁니다. 분명 성우를 등에 업고 투자전략사업부가 무리하게 힘을 키워나갈지도 모른다는 보고를 회장님께 하실 테지요. 안 그렇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권수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나쁘실지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기분 나쁠 것 없습니다. 권 부사장님의 일을 이해하니까요.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회장님께서 저를 곱게 보지 않을 걸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그러느니 먼저 자처하고 나선 겁니다. 그렇게 되면 회장님의 지시로 제가 움직이게 되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게 탐이 나는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6,000억짜리 바로크 호텔 인수건 보다 더요?”

“네. 탐이 나는 일이 있습니다. 저나 회사 모두에게 이득이 될 만한 일이니 권 부사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회장님의 지시를 받았으니 부사장님께서 지원해 주시는 것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권수형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것까지 한진영은 모두 생각해 두고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복잡해 보이는 권수형 부사장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

탕비실에 모인 직원들은 얼마 전 나왔던 발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투자전략사업부의 이성우라면서요?”

“어. 그 사람이야.”

“어떤 사람인지 차장님은 아세요?”

“모르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들리는 이야기도 별로 없어. 일을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아니. 기풍철강의 아들이 그렇게 조용히 우리 회사에 다녔단 이야기예요? 어제 신임 사장 발표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런 사람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를 뻔했어요.”

리스크관리팀의 강 차장은 커피를 마시며 모여있는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만 몰랐지. 위에서는 다 알았던 모양이야.”

“알았다고요?”

“그래. 기풍철강에 매각이 결정된 이후 우리 본부장도 투자전략사업부에 뻔질나게 들락날락했던 게 다 그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아.”

“어쩐지. 투자전략사업부에 별일이 없는데 본부장님이 왜 그렇게 거기에 가시나 했죠. 그러니까 자기 보신을 위해 신임 사장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뻔질나게 다녔다는 이야기네요?”

실망한 목소리의 차 과장은 인상을 찌푸리고 녹차를 들어 마셨다.

“뭐…… 그렇겠지.”

강 차장의 말에 탕비실에 모여있던 다른 직원들도 모두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직원들을 바라보며 강 차장이 말했다.

“그래도 잘 됐지 않았냐? 고용승계를 보장해줬으니까 말이야.”

강 차장의 말에 차 과장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정말일까요? 지금까지 대부분이 인수 완료 시점에만 그렇게 이야기하지, 간판 갈아 끼운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직원들 정리했잖아요.”

“그렇지. 대부분이 그랬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일걸.”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탕비실에 모여 있던 직원들이 모두 강 차장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아무래도 탕비실에 모여 있는 직원 중에 강 차장이 직급이 가장 높았으며 사회 경험도 가장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의견이 가지는 무게가 다른 사람들보다 크다는 뜻이었다.

강 차장은 들고 있는 커피를 마셔 입을 축이고는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번에 사장 발표 나오면서 같이 나온 이야기가 뭐야?”

“사모펀드 출시요?”

강 차장은 차 과장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 말고. 또 있잖아.”

“또 있다면…… 아~ 기풍철강으로의 인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 퇴사하는 직원에게는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거요?”

“그래. 그거.”

강 차장은 차 과장에게 말 잘했다는 듯이 손가락을 들어 차 과장을 가리켰다.

기풍철강에서는 특이한 발표를 한 가지 하게 됐다.

신임 사장에 투자전략사업부의 직원이자 기풍철강 이정훈 회장의 아들인 이성우가 앉는다는 것과 함께 퇴사자에게 특별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결정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인수 과정에서 퇴사자에게 퇴직금 외의 돈을 지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풍철강이 지금까지 유례없는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오지 않았냐? 그게 무슨 의미겠어? 우리는 자신 있으니까 나갈 사람 붙잡지 않겠다 이거잖아.”

“그게 기존 직원들 정리하지 않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하아~ 이 사람 아직도 모르겠어?”

강 차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잠시 차 과장을 바라보다 들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제스처까지 취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걸 이야기하면 조금 쉽겠네. 아까 PEF 이야기했잖아.”

“네.”

“신규사업 진출을 발표했어. 회사가 신규사업에 진출하면 뭐부터 해야 해?”

“어~ 인력충원이요?”

“그래. 이제 좀 알아듣네. 그거야. 인력충원. 그런데 나가는 사람에게는 돈까지 준다고 하잖아. 이건 뭐야? 굳이 불만을 가진 사람들 붙잡을 생각 없으니까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라 이 말이야.”

차 과장은 확실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강 차장이 하려는 말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만 같았다.

강 차장은 그런 차 과장의 표정을 보고 이제야 만족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 잘 썼어. 이렇게 되면 나가려 했던 사람도 나가지 못해.”

“자르지도 않고요?”

“당연하지. 사람을 오히려 채워야 하는 처지에서 뭐 하러 회사 잘 다니고 있는 사람을 처리하겠어?”

“그럼 이대로 아무도 자르지 않고 간판만 기풍으로 갈아 다는 건가요?”

“글쎄? 과연 그럴까?”

강 차장의 입꼬리 한쪽이 올라갔다.

“임원들이 뻔질나게 신임 사장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걸 보면 답이 뻔히 보이지 않아?”

“그럼…… 임원급만 정리한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뭐가 됐건 난 신임 사장이 취임하기 전부터 마음에 들어.”

“저도요. 차장님 말씀 들으니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마음에 드네요.”

차 과장의 말에 강 차창은 물론이고 탕비실에 있는 다른 직원들도 크게 동의했다.

기존 직원들의 정리를 하지 않는 데서 표를 얻는 것도 모자라 강 차장의 말대로라면 위에 앉아 있는 임원들을 정리한다는 것이었다.

일반 직원들이 크게 반길만한 직원 정리였다.

“게다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한다는 청사진도 보여줬고…… 기풍이라는 튼튼한 모기업이 버티고 있는 데다가 사장이 그 기업 오너의 아들이야. 이러면 뭐 이야기 끝난 거 아니냐? 이런 분위기면 웬만하면 나가고 싶지가 않아질 거야. 뭐하러 나가서 생고생해. 여기 있으면 밝은 미래가 보이는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이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네요.”

강 차장이 포문을 열자 여기저기서 같은 생각이라며 직원들이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리스크관리팀만이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신성증권 곳곳에서 이성우에 대한 호의적인 시각이 번져갔으며 어서 빨리 취임을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도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기존 직원들의 지지 속에 순풍에 돛 단 듯 기풍철강의 신성증권 인수는 탄력을 받아 나아갔다.

***

최준호는 이성우의 사장 취임과 함께 발표된 부서별 승진 인사 발표에 자기 이름이 올라간 것을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이거 참.”

쑥스러우면서도 즐거운 듯한 모습에 이성우는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최준호를 바라보고 물었다.

“어떠세요? 만족하세요?”

“어떻기는…… 요. 저야…… 만족스럽다 못해 감동했을 정도지…… 요.”

최준호는 말투가 아직 적응하기 어려웠는지 어색해하는 모습으로 말했다.

“존댓말이 어색하네…… 요.”

이런 최준호의 모습에 이성우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우리끼리 있을 때 편해야 저도 본부장님을 편하게 대하지 않겠어요? 본부장님?”

본부장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연속해서 이야기한 이성우였다.

이런 이성우의 말에 최준호의 얼굴에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왜 이러십니까? 아직 정식 발령을 받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남들이 들으면…… 오해합니다.”

말로는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얼굴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최준호였다.

이성우는 그런 최준호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곁에 앉아 있는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진영아. 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

“혼자는 아니잖아. 부문장님만 영전하여 경영지원본부의 본부장으로 가시는 거지 나머지는 그대로니까.”

“나도 빠지잖아. 왜 나는 빼고 이야기해.”

“너야 뭐 있으나 마나였으니까. 빼는 게 이상한 게 아니지. 오히려 너를 더하는 게 이상한 거지.”

“너 말 섭섭하게 한다. 자꾸 그러면 부문장 자리에 다른 사람 앉힐 거야.”

이성우의 말에 최준호가 한진영을 대신하여 변명했다.

“사장…… 님. 둘이 친해서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니 오해하지 마세…… 요.”

살짝 인상을 찌푸려 보였던 이성우는 최준호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여전히 존댓말을 어색해하는 최준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거참. 본부장님.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말씀하시라니까요.”

“그럴…… 까?”

“그럼요. 앞으로 본부장님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자꾸 저를 멀리하시면 저도 불편해요.”

“그래? 그러면야 나야 좋지.”

몇 번이나 어색하게 말해서 입이 꼬였는지 최준호는 입을 한차례 풀고는 웃으며 속에 있던 말들을 시원하게 쏟아냈다.

“성우야. 정말 고맙다. 내가 너 의리 있는 놈인 줄 알았어. 나 너 기풍철강 아들인 거 알면서도 내가 입 꾹 다물고 비밀 지켰던 것도 잊으면 안 돼.”

“그럼요.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내가 너 참 많이 도와줬다.”

과거를 떠올리자 아련해 왔던지 최준호는 눈을 살며시 가늘게 뜨고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너 자를까 말까 고민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 지금 진영이가 이야기한 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니까. 너는 있으면 마이너스였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골치가 아팠던지 아주 그날들만 떠올리면 지금도 으~ 몸이 떨린다. 너 정말 운 좋은 줄 알아. 나 같은 상사 만난 게 천운이야. 천운.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널 잘랐을지도 몰라. 아니. 천 번이면 천 번 다 잘랐어. 그만큼 넌 쓸모가 없었으니까.”

최준호는 이성우의 어깨를 웃으며 두드렸다.

“이해하지?”

“으음…… 이해…… 해요. 그럴 수 있죠. 그럴 수 있어요. 저도 제가 생각하기에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까요.”

“열심히 안 한 정도냐? 못했지. 너 일 참 못했어.”

못쓰겠다는 듯이 고개까지 흔든 최준호는 곁에 있는 한진영을 돌아보고 물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제가 만약 본부장님이라면 생각만 하지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을 것 같네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하고 본부장님이 이야기하는 건 좀 다른 문제라서요.”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먼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며 이야기의 물꼬를 튼 한진영이 이제는 자기라면 이야기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최준호는 한진영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이성우를 돌아봤을 때, 그들이 있는 회의실로 기풍철강에서 인수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보낸 미래전략팀 직원이 들어왔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이성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최준호를 바라보며 들어온 직원을 향해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기업금융 2사업부 부문장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저희가 판단 내리기에는…….”

“잘라요.”

더 들을 것도 없이 지시를 내린 이성우는 최준호를 바라보고 직원을 향해 말했다.

“지난번에 한 번 만났다고 친한 척을 하더군요. 그런 사람은 회사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 자르세요. 공사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제가 제~~일 싫어하거든요.”

이성우의 말에 최준호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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