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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80화 (180/650)

180화 써먹으려는 상대가 잘못됐다

이성우는 놀란 모습의 최준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왜 놀라세요? 본부장님 자르라는 이야기 아니었어요.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이성우는 최준호를 진정시켰다.

최준호는 이성우의 말에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성우는 그런 최준호의 모습에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이제 좀 보기가 좋네요. 웃으세요. 지금 하는 이야기들은 전부 본부장님과는 상관없는 일들이니까요.”

“아. 네.”

자기도 모르게 최준호의 입에서는 경어가 튀어나왔다.

본능적으로 조금 전처럼 편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그런 최준호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최준호도 이성우의 미소에 마음을 안도하며 같이 웃었다.

그러나 최준호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최준호를 자극하는 말이 이성우의 말에서 다시 나왔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최준호에게서 시선을 여전히 떼지 않은 채 곁에 서 있는 미래전략팀 직원을 향해 또 다시 지시했다.

“권 부사장님께 말씀드려서 임원진 정리 명단 좀 확정 짓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우선 대기하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대기하고 있으라고 하세요. 명단이 추가될지도 모른다고요.”

이성우의 말에 웃고 있던 최준호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그리고 추가되는 명단 속에 자기 이름이 올라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준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성우에게 말했다.

“저기…… 사장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본부장님. 본부장님 이야기가 아니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희 이야기 먼저 끝내고 이야기 나누도록 합시다.”

다시 한번 최준호를 안심시켰지만, 다음에 나온 이야기에 최준호의 얼굴은 더욱 하얗게 질려가고 말았다.

“경영지원본부…… 꼭 필요한 부서죠?”

이성우는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서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경영지원본부 본부장으로 낙점되어 자리에 앉아 있는 최준호와 이성우를 번갈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쓰읍. 아니 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굳이 본부 급으로 있을 필요가 있나 뭐 그런 생각이 드는데…….”

이성우는 말을 하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최준호는 이런 이성우의 말에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이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진영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 최준호의 모습에 웃으며 나섰다.

“성우야 그만해라.”

이성우는 이런 한진영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싱긋 웃었다.

“그럴까?”

이성우가 웃으며 대답하고는 최준호를 향해 말했다.

“농담이에요. 농담. 당연히 경영지원본부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옆에서 저를 최 본부장님께서 도와주셔야죠. 제가 어떻게 혼자서 회사를 끌고 가겠어요. 안 그래?”

“그래. 그러니까 그만해. 본부장님 놀라셨다.”

“놀라셨어요?”

“아닙니다. 놀라긴요. 저도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최준호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지만, 얼굴이 떨리는 게 아직 마음이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한진영은 이성우가 농담 속에 진심을 담아 기강을 잡으려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최준호와 이성우는 오랜 기간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이였다.

그것도 보통 상사가 아니라 이성우 입장에서 최준호는 까마득한 위치의 상사였다.

한진영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할 정도의 차이가 났던 관계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갑작스럽게 관계가 역전된 것을 최준호가 제대로 받아들일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가볍게 나눈 대화 속에서 그런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성우는 그걸 바로잡으려 했다.

자기가 확실히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농담이라는 말로 최준호에게 자기의 위치를 알려줬다.

이런 이성우의 계획은 최준호에게 제대로 들어맞은 것으로 보였다.

최준호가 이성우 앞에서 말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미래전략팀 직원을 내보낸 후 최준호에게 다시 웃으며 말을 건넸다.

“최 본부장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엇을…… 요?”

“임원진 정리 말이에요. 최 본부장님은 누굴 정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저 사장님의 말을 따를 뿐이죠. 제가 어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에이. 또 이러신다. 말씀 편하게 하시라니까. 편하게 하세요. 우리끼리인데.”

“아닙니다. 조금 전에는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제가 어떻게 사장님께 말을 편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어리석은 저의 옛 모습을 잊어주시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최준호는 이성우 앞에 납작 엎드려 항복하고 말았다.

이성우는 이런 최준호의 모습을 보며 조금 미안한 듯 웃어 보였다.

이렇게 몇 번의 대화가 오간 후 최준호가 먼저 자리를 떴다.

이성우는 최준호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 한진영에게 말했다.

“너무 심했나?”

“뭐 조금은 심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러는 게 앞으로 서로 간에 좋으니까.”

“역시 그렇지?”

이성우는 내심 최준호에게 조금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이내 가볍게 털어버리고는 한진영을 바라봤다.

“좋아. 앞으로 이렇게 하면 되겠어.”

“임원들 기강 좀 잡으려고?”

만족한 모습을 보인 이성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임원들이 나를 얼마나 무시하겠냐? 특히 나는 여기일까지 해서 더 무시할 거라고. 이걸 초장에 잡아야 해. 내가 지금 가진 최고의 무기로 말이야. 뭐 못 견디고 나갈 수도 있는데, 나는 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니까 좀 강하게 나가볼 생각이야. 견디지 못하고 나갈 거면 나가라는 식으로 말이야.”

마치 다짐과 같은 말을 하는 이성우를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듯이 이성우가 말했다.

“그래서 그걸 먼저 최 본부장님께 해본 거고?”

“어. 다른 임원에게도 먹히겠지?”

“최 본부장님도 저 정도니까 다른 임원들은 더 잘 통하겠지.”

“좋아.”

이성우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김준하가 들어왔다

“여기 계셨네요.”

김준하는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성우는 그런 김준하를 게스츠름하게 바라보는 것이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힐끔 바라보고 들어온 김준하를 향해 물었다.

“어쩐 일이야?”

“퀀트 프로그램에 관련해서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아 마침 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앉아봐.”

한진영은 자기 앞에 놓인 의자를 빼서 김준하에게 앉을 것을 권한 후 이야기했다.

“혹시 이런 것도 될까?”

“어떤 거요?”

“으음. 예를 들어서…… 이건 어디까지나 예니까 심각하게 고민하지 마. 갑자기 생각이 나서 묻는 거니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만 말해. 내가 지금 말하는 걸 꼭 구현해야겠다고 너한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니까. 네가 그렇게 나올까 봐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워.”

“어떤 건데 그러세요?”

한진영이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워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게는 김준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평소보다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아무래도 중요한 이야기가 한진영의 입을 통해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궁금해하는 김준하에게 지난 시절 자기가 직접 보고 경험했던 퀀트 프로그램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엄청나게 빠른 매매 속도를 이용하여 차익거래에만 주력했다면 이제는 그런 것을 탈피할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네. 안 그래도 저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왔어요. 새로운 걸 시도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해서요.”

“그래. 그래서 내가 떠올린 건데…….”

잠시 멈춘 한진영은 몸을 앞으로 굽히고 김준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말했다.

“기업의 움직임까지 넣어보는 건 어떨까 해서…… 말하자면 정보를 수식화하는 것. 예를 들자면…… 기풍철강의 주요 임원진들의 출장지를 통해 신규 광산 매입을 예측하는 거야.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기업 가치를 새롭게 집어넣는 거지. 그렇게 만들어진 기업의 가치를 기준으로 자동으로 매매하는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어.”

“야!”

눈에 가득 장난기를 담고 김준하를 바라보던 이성우가 깜짝 놀라 한진영에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기풍철강을 감시하겠다는 뜻이야?”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도 대답하지 않은 채 김준하를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또는 전세기의 움직임을 보고도 예측할 수 있을 테고…… A라는 기업이 중국과 동구권으로 향하는 것을 파악하여 그쪽에 공장을 새롭게 짓는 것을 먼저 파악할 수도 있고…… 그걸 통해서 앞으로의 생산량 예측 같은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때?”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빠졌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의 모습을 확인하고 여전히 놀란 얼굴을 하는 이성우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예를 든 거잖아. 예.”

김준하가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 한진영이었다.

이성우도 그런 한진영을 따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예를 들어도…….”

“가만.”

계속 이야기를 하려던 이성우의 말을 막은 한진영이었다.

김준하가 생각하는 것을 마친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김준하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려 조금 전 한진영이 했던 말에 대답했다.

“예전에도 말씀하셔서 저도 많이 고민했던 문제예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요.”

“그래.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

사실 생각한 게 아니라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에 건넨 말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었지만, 미래에서는 이런 식으로 매매하는 것이 특이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래서 김준하에게 이야기한 것이었다.

김준하라면 이런 정보의 흐름을 수식화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정보는 어떻게 알아내죠? 기업들이 정보를 공개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에요.”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준비했지.”

“어떻게요?”

“인터넷에서 사소한 정보라도 수집하여 정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박도하 팀장에게 지시했어. 그러니 그쪽은 걱정하지 마. 갈고리로 싹싹 정보를 모아서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해줄 테니까. 너는 정보를 수식화하는 작업에 집중하도록 해.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돈이 필요하면 돈을 지원해 줄 테니까. 그렇죠? 사장님?”

“어? 어. 그럼. 지원해줘야지. 걱정하지 마. 회사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할 테니까.”

이성우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약속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만족한 듯이 웃었다.

바로 이런 것을 위해 이성우를 사장 자리까지 밀어 올린 것이었다.

한진영이 하려는 일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고 절대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존재.

바로 이성우가 그런 존재였다.

김준하에게 요청했던 일이 한두 해 작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뛰어난 수학자 집단이 몇 년에 걸쳐 매달려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지난 시절을 통해 알고 있던 한진영이었다.

박도하 쪽도 마찬가지였다.

김준하에게 쉽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들의 개발이 부족한 시점에 말처럼 인터넷에 무작위로 퍼져있는 정보들을 수집하고 분류하여 원하는 것들로만 정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빠르면 5년, 길면 10년 앞서 진행하는 일이었기에 어려운 일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진행하는 일이었다.

시간과 돈 그리고 개발의 방향까지 한진영은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준하가 해보겠다는 대답을 하고 이성우가 동의하자 새로운 버전의 퀀트 프로그램의 시작이 결정됐다.

이성우는 얼추 이야기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 김준하가 왔을 때부터 참았던 말을 꺼냈다.

“준하야.”

“네?”

김준하가 이성우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이성우가 무서운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너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너 나한테 잘못 보이면 큰일 나. 우리가 비록 친분이 있다지만 내가 너를 봐줄 일이 없으니까. 처신 잘해.”

이성우는 최준호에게 보여줬던 기강 잡기를 김준하에게도 보여줬다.

조금 전 잘 먹혔을 때의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시도하여 그 느낌을 계속 유지하려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김준하는 최준호와 달랐다.

“마음에 안 들면 저 자르시게요?”

“어?”

“어떻게 하죠? 저 조금 전에 새로운 퀀트 프로그램에 대한 작업을 지시받았는데…… 이거 해야 하는 건가요? 이성우 씨가 저 마음에 안 들면 자르겠다고 하시는데 부부문장님. 어떻게 해요?”

김준하의 말에 이성우가 당황하고 말았다.

잘 보이겠다며 살랑거리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식의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권력이라는 맛에 취해 있던 이성우는 예상치 못한 김준하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그런 이성우를 향해 김준하가 쐐기를 박는 말을 하고 말았다.

“저 자르실 거면 지금 말씀해주세요. 작업 한창 시작하는데 잘리면 그동안 쏟은 노력이 다 소용없어지니까요. 일 시작하기 전에 말씀해주셔야 서로 편해요.”

“너는…… 안 무서워?”

“왜 무서워요? 저 빚도 다 갚았어요.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왔고요. 저는 잘리는 거 안 무서운데요.”

“어?”

김준하의 말에 이성우가 울상을 지었다.

그런 이성우를 향해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한진영이 입을 열었다.

“성우야. 얜 아니야. 얘 나가면 나도 물론이고 너도 힘들어져. 그러니까 다른 상대 찾아서 해.”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넌…… 안 잘라. 그러니까 진영이 지시대로 일해.”

김준하에게 이야기를 마친 이성우가 밖에 나가려 하자 한진영이 나가려는 이성우를 불렀다.

“어디 가려고?”

문 손잡이를 잡은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다른 상대 찾으라며? 다른 상대 찾으러 간다.”

“다른 상대? 누구?”

“지금 생각나는 건 장 본부장. 그 양반 나만 보면 면박 주고 내 간식 뺏어 먹었어. 그거 갚아줘야겠다. 나 간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가진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이성우는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을 찾아 문을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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