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90화 (190/650)

190화 공부하는 데 필요한 것

동우산이 한진영을 만나고 난 뒤 국내 선물시장에서는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선물시장이 갈팡질팡하며 방향을 며칠째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시장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큰 폭의 하락이 나온 뒤 매물 소화를 거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매물 소화 과정을 거친 뒤에 위든 아래든 방향을 정할 거라는 이야기로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한진영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개인 계좌를 통해 100계약 이상이 진입한 적은 어제도 도합 3번이 있었습니다만 모두 손절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1포인트 손절로 보이는 청산이 1시간 이내에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한진영은 조수아의 보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의 말을 듣고 난 뒤 동우산이 최대일 회장에게 이야기하여 테스트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 흔적이 포착된 것이었다.

보고를 하고 떠난 조수아의 머리 위로 보이는 시세 전광판을 확인한 한진영은 혼잣말을 뱉었다.

“열심히 테스트하니 슬슬 결과가 나오겠지?”

벌써 오늘로 닷새째였다.

일주일 내내 테스트를 진행했으니 오늘로써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한 한진영이었다.

“부문장님.”

한진영이 시세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리서치센터장인 임재홍 센터장이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임재홍은 한진영에게 다가와 두꺼운 서류 뭉치를 하나 내밀었다.

한진영은 서류뭉치 위에 쓰여 있는 ‘세계 반도체 시장 전망과 하이식스의 경쟁력’이라는 글자에 눈을 고정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라고 할 건 없었습니다. 반도체 관련 시장은 수시로 모니터링 하는 곳이기 때문에 자료들이 항상 최신 것들로 업데이트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들이 하이식스 위주로 정리된 것은 아니어서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입니다.”

한진영은 임재홍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뭉치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세세하게 적혀있는 것들을 손으로 넘겨보며 확인했다.

“생각보다 하이식스의 경쟁력이 뛰어났습니다. 대만과 일본 그리고 독일 쪽까지 대부분의 경쟁회사가 도태되는 바람에 경쟁력이 살아난 모습이었습니다. 버티니까 경쟁자들이 모두 쓰러졌더라 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과였습니다.”

한진영은 임재홍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들춰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임재홍은 가만히 서서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건 왜 필요한지 여쭤봐도 될까요?”

한진영은 내려다보던 서류뭉치를 닫고 임재홍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이런 걸 준비하라고 해서 궁금하셨습니까?”

“네. 솔직히 지금 같은 타이밍에 이걸 준비한 이유는 하이식스 매각에 참여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맞습니다. 그 이유 때문입니다.”

임재홍은 자기가 말을 꺼내놓고도 놀라고 말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하이식스 매각에 참여할 생각입니다.”

“파트너는요? 어디가 인수한다고 합니까? 소문대로 LZ가 유력한가요? 아무래도 LZ반도체가 전신인 만큼 LZ가 가장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미래그룹 쪽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쪽은 중공업 회사가 주축인 곳이라 시너지가 LZ만 하지가 않아서요.”

임재홍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때 한진영의 전화기 벨이 울렸다.

“마침 주인공이 전화를 줬군요.”

“LZ의 조 상무님이십니까? 조용재 상무님이 승계 절차의 한 축으로 하이식스의 인수를 이용하려 하는 건가요?”

임재홍은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예상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시장에 흘러 다니는 다수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전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다 대며 임재홍이 기대하던 대답과는 다른 대답을 내놨다.

“아니요. LZ가 아닌 선강그룹입니다.”

한진영은 임재홍에게 뜻밖의 대답을 건네고는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부문장님. 저 동우산입니다.

“네. 동 상무님.”

-오늘 괜찮으시면 저녁 식사 어떠십니까?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천장에 걸려 있는 시세 전광판을 확인했다.

시세 전광판에는 개인 계좌에서 나온 100계약 이상의 물량이 진입했다는 소식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한진영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네. 좋습니다. 그럼 어디서 뵐까요?”

“제가 좋은 일식집을 알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이야기 나누기도 좋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뵙지요.”

“네. 알겠습니다.”

한진영이 전화를 끊은 뒤 서류를 챙겨 자리를 돌아갈 때까지도 시세 전광판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한진영은 조수아에게 지시하여 더는 시세 전광판에 개인 계좌에서 특이한 움직임이 나오는 것을 보이지 말도록 지시했다.

이제 더는 모니터링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

일식집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한진영과 이성우는 준비된 룸에 먼저 들어가 동우산을 기다렸다.

“여기 좋은데?”

이성우는 문밖으로 보이는 물레방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쪽으로 이렇게 공간을 내는 거 참신하네. 우리도 여기 자주 애용하면 좋겠다. 손님 모시기 좋네.”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이 곁에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회장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냐? 분명 지금쯤이면 궁금하셔서 뭐라도 물어보셨을 것 같은데 말이야.”

“뭐 계속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묻고 계시지. 숙제를 내놨는데 왜 문제를 풀었다는 말이 없느냐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하려는 일 말씀 드렸어?”

“말 못 하지. 어떻게 하냐? 하이식스 인수전에 참여한다는 말은…… 못해. 아직 확정된 게 하나도 없는데…….”

“잘했다. 그냥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는 말만 말씀드려.”

“그래야지. 선강그룹의 하이식스 인수? 이건 섣불리 이야기할 게 아니야.”

그 어디서도 선강그룹의 인수를 예상하는 곳이 없었다.

하다못해 경쟁업체인 삼선전자의 인수 이야기와 그로 인한 독점 여부를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선강그룹은 인수전에 참여할 회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도 못했다.

그 정도로 선강그룹의 하이식스 인수는 모든 이의 예상 밖에 있는 일이었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동우산이 한진영과 이성우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한진영과 이성우는 들어오는 동우산 상무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우산은 그런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조금 일찍 도착한 겁니다.”

한진영, 이성우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동우산은 두 사람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고 자기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종업원을 향해 항상 먹는 것으로 주문했다.

동우산은 종업원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 앞에 앉아 있는 한진영과 이성우를 향해 이야기했다.

“그럼 음식이 나오기 전에 먼저 이야기부터 하도록 할까요?”

급해 보이는 듯한 동우산의 모습에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그편이 저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밥을 먹으며 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한 일이니까요.”

한진영이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동우산은 이성우를 슬쩍 돌아본 뒤 손을 맞잡고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이었습니다.”

“닷새 동안이나 확인을 하셨으니 신중하게 꼼꼼히 파악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얼마나 확인했는지도 아신다는 말입니까?”

“이곳에 오기 전까지 모니터링 했습니다. 오늘 11시 무렵에 진입한 게 마지막 진입이셨지요?”

“허어~”

동우산의 입에서는 짧은 탄성이 나오고 말았다.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한진영의 모습에 허탈함마저 느끼는 듯했다.

동우산은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고개를 저었다.

“이러니 이길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우리의 실력을 탓하고 있었으니. 허허.”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으니까요.”

“그렇지요. 회사 공금에까지 손을 댔다면…… 아찔합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복수하고 싶으시겠죠. 이해합니다.”

“자존심이 강한 분이시니까요.”

동우산은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파생에 더는 손대지 못하게 막기는 했지만, 그게 언제까지 유지될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한진영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늘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하이식스…….”

먼저 운을 띄운 동우산은 쉽사리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잠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동우산을 바라보고 웃으며 옆자리에 놓아둔 서류뭉치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이건…….”

동우산이 한진영이 내놓은 서류뭉치를 내려다봤다.

이곳에 오기 전 한진영이 임재홍에게 건네받은 것으로 하이식스에 대한 분석이 담긴 서류뭉치였다.

“현재 반도체 시장을 바탕으로 하여 하이식스의 미래를 분석한 자료입니다. 급하게 만든 거긴 하지만 안에 있는 자료들은 모두 믿을만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분석 또한 날카롭고요.”

“이런 것도 준비하신 겁니까?”

동우산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쪽에서는 이제 이야기를 해볼 생각으로 자리를 마련했건만 한진영은 이미 자료까지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동우산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자료와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본 후 말했다.

“부문장님께서는 저희와 꼭 하이식스 일을 성사시키려고 마음먹으신 것 같습니다.”

“네. 제가 그렇게 만들 생각입니다.”

“휴우~ 좋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말씀드려야겠군요.”

동우산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선강그룹 내부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법당에서 만나 뵈었을 때 말씀하신 대로 정부에서 우리에게 제안을 먼저 해왔습니다. 이런 제안을 받은 곳은 우리만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미 시장에서 하이식스의 인수자로 떠오른 LZ는 물론이고 심지어 삼선전자에게도 제안이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부에서 논의를 해보셨습니까?”

“제가 알고 있기에는 논의고 뭐고도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와는 접점이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없다고요.”

“실무진 차원까지 내려가 인수 뒤의 일을 살피지도 않았겠군요.”

“네. 맞습니다.”

한진영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우산은 그런 한진영을 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 부문장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도와드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아닙니다. 동 상무님께서는 저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제가 하이식스를 인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회장님께서 저에게 신뢰가 깊다고 해도…… 그건 능력 밖의 일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다고요? 그럼…… 이건 왜 저에게 가지고 오신 겁니까?”

한진영이 가지고 온 서류를 동우산이 가리켰다.

한진영은 동우산 앞에 놓인 서류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보고 공부하시라는 의미에서 가지고 온 겁니다.”

“공부요? 뭘 공부하라는 말입니까?”

최대일 회장이 하이식스를 인수하게 하기 위해 가지고 온 서류가 아닌가 생각했던 동우산이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공부하기 위해 가지고 온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도대체 자기가 뭘 공부하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게는 동우산은 여전히 서류와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회장님을 설득하는 건 저희가 하겠습니다. 상무님께서는 다른 걸 맡아주시면 됩니다.”

“회장님 설득은 한 부문장님과 이 사장님이 하시겠다고요?”

“네. 회장님을 설득하는 일을 동 상무님께 바란 것은 아닙니다.”

“그럼 저에게 원하는 건 무엇입니까? 설마 회장님과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건 아니시죠? 그건…… 제가 아니어도 가능한 일일 테니까요.”

동우산은 말을 하고 이성우를 바라봤다.

최대일 회장이 비록 선강그룹의 회장으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기는 했지만, 꼭 자기를 통해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성우가 나선다면 최대일 회장과의 자리 정도는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우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저에게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지난번에 뵈었을 때는 돈도 싫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돈도 아닐 테고…….”

동우산이 만나자고 하여 만들어진 자리건만 오히려 주인이 바뀐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진영은 복잡한 표정의 동우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께서는 상무님을 많이 의지하고 계실 겁니다.”

“이번 일로 조금…… 그런 면이 있기는 합니다.”

“네. 그러실 겁니다. 그래서 회장님께서는 분명 저희에게 하이식스 인수 건을 이야기 들은 뒤 상무님께 조언을 구하려 하실 겁니다.”

말이 좋아 조언이었지 점을 쳐달라고 할 게 분명했다.

인수했을 때 선강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하늘의 뜻을 묻고 싶어 하는 것이 지금까지 최대일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동우산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실 겁니다.”

“그때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건네 드린 서류 속에 담긴 내용을 숙지하신 상태로 말입니다.”

동우산은 한진영의 말에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리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최 회장님께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데 쓰라고 이걸 준비하셨단 말입니까? 조금 더 매끄럽게 이야기하라고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들어가 있습니다. 동 상무님께도 하이식스의 인수가 선강그룹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 준비한 겁니다. 아무리 제가 동 상무님을 도와드렸다고 하기로서니 무턱대고 하이식스 인수에 좋은 말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진짜로 도움이 되는 일에 힘을 보태야 나중에도 동 상무님의 위치가 선강에서 공고히 될 것 아닙니까?”

한진영의 말에 동우산은 허탈한 듯 웃고 말았다.

모든 것이 한진영의 손안에서 흘러가는 것이 꼼짝없이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황당하다는 표정의 동우산 너머로 문이 열리며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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