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91화 (191/650)

191화 알 수 없어 기쁘다

“찾으셨습니까?”

“어. 그래. 들어와서 앉아.”

기풍철강의 권수형 미래전략팀 팀장이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이정훈에게 다시 한번 인사한 후 이정훈 회장의 오른편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기풍증권에 파견 나가 있던 권수형은 매주 수요일 이정훈 회장을 찾아 기풍증권에 있었던 일을 보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화요일이었다.

기풍증권에서 한참 볼일 봐야 할 시간에 이정훈 회장이 권수형 부사장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권수형 부사장은 어떤 이유에서 이정훈 회장이 자기를 불렀는지 알지 못한 채 이정훈 앞에 앉게 됐다.

이정훈 회장은 당황한 듯한 권수형 부사장을 슬쩍 바라보며 먼저 말했다.

“조금 전 성우가 왔다 갔네.”

“사장님께서요?”

권수형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선에서 이성우가 이정훈을 만날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정훈은 고개를 갸웃하는 권수형을 향해 조금 전 있었던 이야기를 건넸다.

“성우가 찾아와 선강그룹의 최대일 회장과의 자리를 주선해달라고 하더군.”

“선강그룹이요?”

권수형 부사장은 여전히 알지 못하게는 표정으로 이정훈 회장을 바라봤다.

이정훈 회장은 그런 권수형 부사장을 빤히 바라보고 물었다.

“자네도 모르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유라고 하던가요?”

“내가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

“숙제요? 그건…… 한 부문장에게 회장님이 내준 것이 아닙니까?”

“그래. 그런데 워낙에 큰 건이라 자기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하더군. 이번 건만 성사시키면 중소 증권사로 자리하고 있는 기풍증권을 단숨에 대형증권사로 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이야.”

“네? 단숨에 대형증권사로 가는 발판을 만들 수가 있다고요?”

권수형 부사장은 깜짝 놀란 얼굴로 이정훈 회장을 바라봤다.

기풍증권에 파견 나가 기풍증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권수형이었다.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말이 좋아 서포트지 실제로는 남아있는 신성의 이름을 털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래서 회사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모든 일을 권수형의 손을 거쳐 가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누구보다 기풍증권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는 권수형이었다.

그런데 그런 권수형도 이성우가 한다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네 표정을 보니 자네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가 보군. 회사 내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건가?”

“전혀 없습니다. 특별히 진행할만한 일이 제가 아는 선에서는 없습니다. 한 부문장의 투자전략사업부가 빼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고, 나머지 부서들 또한 안정된 상태에서 일하는 것 모두 지난 신성증권 때부터 이어오던 것들입니다. 새롭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준비하는 것도 없고?”

“네.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

이정훈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만난다고 할 놈이 아니야. 그리고 무조건 꼭 만나야 한다는 말도 했고…… 그런 걸 보면 만나야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인데…….”

이정훈은 가만히 표정을 굳히다가 갑자기 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사무실이 떠나갈 듯이 웃어 젖히는 이정훈의 모습에 권수형은 놀란 얼굴로 이정훈을 바라봤다.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으십니까?”

“아니.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럼 왜 웃으신 겁니까?”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네?”

권수형은 이정훈 회장이 말한 의도를 알지 못해 눈만 끔벅거렸다.

그러나 이정훈 회장은 기분이 매우 좋은 듯이 팔걸이를 한번 내려치고는 전화기가 있는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인터폰을 눌러 밖에 대기하고 있는 비서를 향해 지시했다.

“선강그룹 최 회장과 연결해.”

지시를 내린 이정훈은 즐거운 표정으로 전화기 옆에 서서 여전히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권수형에게 말했다.

“재미있지 않나?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일을 벌이고 있어. 그게 딸내미인 유정이도 아니라 성우가 말이야. 하하하. 생각도 못 한 일이야.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아~ 그래서 웃으신 거군요.”

얼마나 생각도 못 한 일인지 몇 번이나 되뇌며 지금의 상황이 뜻밖이라는 것을 강조한 이정훈이었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웃더니 기분 좋은 표정의 미소를 지었다.

“자식은 내어놓고 키워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품 안에 품고 있었을 때는 그저 모자라게만 보이던 놈이었는데 밖에 나가서 이렇게나 크게 성장하다니 매우 흡족해.”

“일이 잘못될까 걱정은 되지 않으십니까?”

“잘못돼 봤자지. 제 놈이 선강그룹 회장을 상대로 사기를 칠 것도 아니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사고를 쳐봤자 뭐 얼마나 치겠어? 괜찮아. 도대체 뭔 일을 하려고 하는지 지켜보자고.”

자기의 생각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는 것 같은 이성우의 모습에 만족스러웠는지 이정훈 회장은 선강그룹과 연결이 됐다는 연락이 올 때까지 한참이나 전화기 옆에 서서 크게 웃었다.

***

이성우와 한진영은 선강그룹 회장실에 올라가기 전 다섯 차례의 몸수색을 당했다.

“아니. 내가 뭔 백악관에 가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것도 아닌데 너무들 하시네.”

이성우는 잔뜩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마지막 몸수색이라며 자기 몸을 뒤지는 선강그룹 비서실 직원을 향해 투덜거렸다.

비서실 직원도 그런 이성우의 불만이 이해가 갔는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손은 이성우의 바지를 훑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사과의 말을 건네 이성우의 불만을 조금이라도 낮추려 노력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회장님께서 이런데 워낙에 철저하신 분이라서요.”

“이건 철저가 아니라…… 조금 전 밑에서 검색대도 지나왔고 몸 훑는 기계로도 다 훑어봤는데 이제는 손으로까지 훑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이성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를 넘은 듯한 선강그룹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이런 과정을 넘어가야만 선강그룹의 최대일 회장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꾹 참은 채 선강그룹의 직원이 하는 대로 놔뒀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몸수색을 마치고 나서야 겨우 회장실 앞에 설 수 있게 된 한진영과 이성우는 회장 비서의 안내에 따라 최대일 회장이 있는 회장실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어. 어서 와라.”

한눈에 보기에도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한 몸 크기의 최대일은 목소리만큼이나 큰 목소리로 들어오는 한진영과 이성우를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이성우를 위아래로 살피며 말했다.

“어유~ 다 컸네.”

“안녕하셨어요?”

“그래. 내가 널 봤을 때는 회장님 손을 꼭 잡고 있던 키가 요만한 아이였는데…… 지금 네가 몇 살이라고?”

“예. 서른입니다.”

“서른. 그래. 좋을 나이구나. 젊은 나이에 중요한 자리에 앉았어. 내가 네 나이 때는 미국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요즘 애들은 뭐든지 빠르다더니 너도 그러나 보구나.”

한진영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최대일 회장은 이성우에게만 말을 걸었다.

그는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지도 않은 채 선 채로 이성우에게 말했다.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고?”

“네. 회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어디 보자.”

최대일은 시계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나가지 않은 채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는 비서를 향해 물었다.

“다음 스케줄이 몇 시부터라고?”

“5분 뒤 선강텔레콤에서의 마케팅 보고가 있을 예정입니다.”

“알았어.”

이성우는 5분이라는 소리에 뒤를 돌아 비서를 바라봤다.

몸수색하느라 허비한 시간이 30분은 됐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도 남았을 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허투루 시간을 쓰는 바람에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게 돼 버리고 말았다.

이성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눈빛을 담담히 받으며 생각했다.

‘일부러 그랬네.’

한진영은 몸수색을 할 때부터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성우의 말대로 백악관이나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꼼꼼히 몸수색을 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최대일 회장의 편집증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했던 한진영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이성우와의 만남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한진영도 전략을 바꿨다.

“회장님.”

한진영에게 시선도 주지 않던 최대일은 한진영의 부름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아들이 기풍증권의 사장으로 취임한 뒤 중요한 일을 상의하고 싶다고 하니 잠시만 시간을 내달라고 이정훈 회장이 부탁하여 만들어진 자리였다.

최대일은 그런 이정훈 회장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정훈 회장이 무슨 부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던 최대일이었기에 그가 처음으로 건넨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탁을 받아 햇병아리 같은 이성우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밑에서 시간을 끌은 것이었고 5분의 시간만 준 채 이야기를 나누려 한 것이었다. 이렇게만 해도 이정훈 회장의 부탁을 들어준 것으로 생각한 최대일이었다.

최대일은 그런 이성우의 꼽사리로 끼어 찾아온 한진영이 자기를 부르는 것에 불쾌감을 느꼈다.

“뭐야?”

인상을 찌푸린 최대일은 당장에라도 밖에 이야기해서 한진영을 내보내려 했다.

이런 조무래기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까지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대일이 인터폰을 눌러 밖에 대기하고 있는 비서를 부르려 할 때 한진영이 최대일을 향해 말했다.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네. 회장님.”

인터폰에서 대답과 한진영의 말이 동시에 최대일에게 들렸다.

최대일은 한진영을 바라본 채 인터폰을 향해 말했다.

“아니야. 내가 이따 다시 연락할 테니까 우선 대기하고 있어.”

인터폰을 끊은 최대일은 한진영을 향해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조금 전 한 말을 다시 물었다.

“억울하지 않느냐고? 내가 뭐가 억울하다는 거지?”

“파생시장에서 당한 것 말입니다. 그거 억울하지도 않으십니까?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계속 당하기만 했는데 말입니다.”

“이 새끼가.”

커다란 몸집의 최대일이 한진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큰 키와 두꺼운 상체를 가진 최대일은 외모만으로도 상대를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가 앉아있는 위치까지 생각한다면 상대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쳐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제자리에 선 채로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지난 시절의 경험이 이 정도 모습에 주눅이 들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대일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난 듯 보였다.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으며 입에서는 당장에라도 쌍욕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치부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한진영을 당장에라도 씹어먹을 것처럼 화를 내려 했다.

하지만 그런 최대일의 귀를 의심하는 말이 한진영의 입을 통해 나왔다.

“복수하셔야죠. 기왕이면 이득까지 보면서 말입니다.”

“복수?”

최대일은 한진영 앞에 멈춰 서서 한 뼘이나 작은 한진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복수한다는 거지?”

“가장 좋은 건 똑같이 복수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회장님을 농락했듯이 똑같이 그들을 농락해주면 됩니다.”

“똑같이?”

최대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잠시 이성우를 바라본 뒤 한진영을 턱짓하며 이성우에게 물었다.

“이 녀석은 누구냐?”

이성우는 최대일의 모습에 뒤로 물러났던 걸음을 앞으로 옮기며 대답했다.

“저와 함께 일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기풍증권 투자전략사업부의 부문장을 맡은 친구죠.”

“한진영이라고 합니다.”

“한진영?”

최대일은 이름을 인사하고 고개를 살짝 숙이는 한진영을 유심히 바라봤다.

“네가 한진영이구나.”

“제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몇 번 스치듯이 듣기는 했다. 꽤 재미있는 일을 많이 벌였다고 하더니…… 네놈이었구나.”

최대일은 다시 한번 한진영을 위아래로 살피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한쪽 벽면에 마련되어 있는 바로 걸어갔다.

사무실에 바를 차려놓은 최대일은 그곳에서 잔에 얼음을 집어넣은 후 디켄딩 되어 있는 위스키를 따랐다.

그리고 한진영과 이성우에게 묻지도 않은 채 두 사람의 몫의 술잔까지 만들어 들고 왔다.

“자 마셔.”

한진영과 이성우는 잔을 받아 든 뒤 잠시 서로 바라봤다.

일 이야기를 하러 와서 술잔을 건네는 최대일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대일은 태연한 모습으로 술잔을 들고 인터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다시 밖에 있는 비서에게 지시했다.

“선강텔레콤 마케팅 이사가 도착했나?”

“네. 도착했습니다.”

“그럼 돌아가라고 해. 내일 이야기 듣겠다고…… 그리고 뒤에 있는 회의들도 우선은 취소해.”

“어디까지 취소할까요?”

최대일은 인터폰에서 고개를 들어 한진영을 바라본 채 대답했다.

“우선은 3건만 취소해봐. 나머지는 내가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본 뒤 결정할 테니까.”

“네? 아, 알겠습니다.”

아마도 이런 최대일의 모습은 예상 밖이었는지 인터폰 너머에 자리한 비서가 자기도 모르게 의문 섞인 대답을 한 듯했다.

최대일은 인터폰에서 들린 소리에 작게 웃고는 응접용 소파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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