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92화 (192/650)

192화 선강에게 선강이 썼던 방법을 알려준다

최대일은 소파에 앉으며 비어있는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와서 앉아.”

“네.”

한진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고 소파로 걸어가자 뒤이어 이성우도 소파로 걸어갔다.

한진영은 최대일과 가까운 쪽에 이성우가 앉게 한 후 그 옆에 자기가 앉았다.

어쨌든 지금 자리에서 이성우가 기풍증권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한진영까지 자리에 앉자 최대일은 이성우와 한진영을 향해 손을 들어 술을 마실 것을 권했다.

“마셔. 그거 좋은 술이야.”

“네. 감사합니다.”

한진영이 대답하고 먼저 술잔에 입을 가져다 대자 이성우도 눈을 질끈 감고 술을 마셨다.

뜨거운 위스키가 목을 훑고 지나가자 이성우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최대일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하며 자기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탁!

소리가 나게 탁자에 술잔을 내려놓은 최대일은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내가 파생으로 손실을 본 걸 어떻게 알고 있지?”

“그동안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에 100계약 이상을 가지고 테스트하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어떻게?”

“희한하게 그 작업을 칠 때는 선강증권만이 조용히 있어서 말입니다. 보통 그런 식의 호구…… 죄송합니다.”

“아니야. 호구 맞아. 맞으니까 계속 이야기해봐.”

한진영이 고개 숙여 사과하자 최대일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대일의 모습에 계속 뒷이야기를 이어갔다.

“보통 그런 식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들러붙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선강증권이 들러붙지 않는 게 혹시 관련이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고…… 선강그룹에서 한 방에 수백억을 아무렇지 않게 진입하고 손절 치는 사람은…… 회장님이 유일하지 않을까 하여 드린 말씀입니다.”

동우산을 통해 모든 것을 확인했던 한진영이었지만, 그런 말을 쏙 빼놓은 채 이야기했다.

최대일에게 동우산과의 관계가 알려지는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설명만으로도 최대일을 설득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이미 최대일 스스로도 자기는 증권사의 먹잇감밖에 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한진영 말도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흐흐. 그래. 완전 호구였어. 호구였지.”

스스로를 비웃는 듯한 웃음을 흘린 최대일은 나지막이 웃고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좋아. 부정하지 않아. 맞아. 내가 한 일이고 내가 그렇게 당했다. 그래서 네 말이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농락까지 하면서 복수를 할 수 있다는 말이냐?”

한진영은 관심을 보이는 최대일의 모습에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최대일과의 대화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최대일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렇게 반은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최대일을 향해 그가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관은 물론이고 외국 증권사들까지 회장님에게 달려들어 안달하게 만드는 겁니다. 회장님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나하고 함께 일하고 싶게 만든다고?”

“네. 지난 일을 후회하며 회장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게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만들 수가 있어?”

최대일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성우를 바라봤다.

네가 한번 말해보라는 듯한 눈빛의 최대일이었다.

이성우는 그런 최대일을 향해 한진영의 말을 받아 이야기했다.

“있습니다. 있어서 이렇게 온 겁니다. 다만…….”

이성우는 슬쩍 한진영을 돌아본 뒤 최대일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한 가지 약속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약속? 무슨 약속?”

“다른 증권사들을 모두 농락한 뒤 저희하고 일을 같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그러니까…….”

최대일은 다리를 꼬고 앉아 이성우를 바라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들에게 일을 줄 것처럼 해놓고 진짜로는 뒤에 가서 너희와 하자는 거 아니냐?”

“네. 그겁니다.”

“하하하. 배짱 좋다. 배짱이 좋아. 내가 전에 너에 대해서 들은 게 있는데…… 네가 원래 이런 놈이더냐?”

“뭐가 됐든 소문보다는 직접 보는 게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니겠습니까? 이게 바로 제 본 모습일 겁니다.”

“그래?”

최대일은 오른 다리에 손을 올리고 한진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이성우를 바라보고 웃었다.

“좋아. 그럼 그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 증권사 놈들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같이 하자고 애원할만한 일이 도대체 뭐냐?”

최대일의 말에 이성우는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목이 탔던지 술잔 속의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

“하하하.”

참는다고 참았지만, 위스키의 뜨거운 기운을 참을 수는 없었던 이성우였다.

입을 통해 뜨거운 기운이 튀어나왔고 그런 모습을 최대일은 재미있는 듯이 지켜봤다.

이성우는 안주를 먹지 않아 입안에서 계속 맴도는 쓰디쓴 맛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정부에서 선강그룹에 제안이 하나 들어갔을 겁니다.”

웃고만 있던 최대일은 이성우의 말에 얼굴을 굳혔다.

이성우는 최대일의 표정이 변한 것을 확인하고 계속 이야기했다.

“그 일을 진행하는 겁니다.”

이성우의 말에 최대일은 가만히 이성우를 바라봤다.

처음에 마셨던 술기운에 지금의 술기운까지 더해져서 그런 것인지 이성우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그리고 독하디독한 술기운은 이성우의 표정도 흐트러지게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헛소리를 한 것 같지가 않았다.

흐트러진 표정 속에서도 눈빛만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최대일은 그런 이성우를 바라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부에서 온 제안이 뭔 줄이나 알고 그러는 거냐?”

“알고 있습니다. 하이식스 인수건 아닙니까?”

“너 하이식스가 뭔지는 아냐?”

“제가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하이식스를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나보고 받으라고?”

이성우는 여전히 쓰린 입을 손등으로 한차례 훑어내고는 한진영의 등을 손으로 두드렸다.

“여기 있는 한 부문장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최대일이 이성우에서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옮겨지자 한진영이 이성우의 말을 받아 최대일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선강그룹은 방직산업을 모태로 하여 학생들 교복을 팔아 돈을 번 곳입니다. 그리고 이후 여러 공기업을 인수하여 몸집을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모두 내수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재계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입에 ‘온실 재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최대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한진영은 그런 최대일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건 바로 인수한 공기업들이 모두 경쟁 입찰을 통해 선강의 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낙점’ 혹은 ‘배분’의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강그룹의 모태인 선강방직조차 해방되어 비어버린 주인 자리를 초대 회장님께서 정부에서 건네받아 지금의 선강그룹을 만드신 것 아닙니까?”

“야 인마!”

한진영의 말에 최대일이 팔걸이를 손으로 치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한진영은 그런 최대일의 모습에도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방에 모두 불식시킬 수 있습니다.”

최대일은 손을 들어 한진영을 향해 삿대질했다.

“어떻게? 어? 어떻게 불식시킬 건데?”

한껏 흥분한 최대일이었다.

이성우가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졌다면 최대일은 한진영의 말에 흥분하여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대일을 향해 천천히 이야기했다.

“하이식스를 입찰로 따내시면 됩니다. 그것도 우리나라 역사상 역대 최고가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말입니다.”

“이 새끼 이거 완전 또라이 아냐?”

최대일은 욕지거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비어있는 술잔을 들고 술병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술이 부족했던지 술잔에 술을 따르러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해가 지지도 않았으며 술집이 아니라 회사 그것도 사무실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이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대일은 이런 모습이 익숙했던지 술병의 마개를 따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내가 그까짓 사람들 시선이 무서워 돈을 내다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야?”

“아닙니다.”

한진영은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도 최대일이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최대일의 등에 대고 계속 이야기했다.

“선강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도움? 어떤 도움?”

술잔에 가득 술을 따른 최대일은 몸을 돌려 한진영의 말을 안주 삼아 술잔에 가득 담긴 술을 마셔댔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선강은 정부의 비호 속에 내수로 커온 기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계가 명확합니다. 8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석유공사를 인수하고도 여전히 재계 서열 10위권을 맴도는 게 그 증거지요.”

“내수가 우리 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말이야?”

글라스의 반을 마셔버린 최대일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얼굴은 술을 마시기 전과 같아 보였지만 취기가 올라온 것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눈가가 불그스름해진 것이 이제는 최대일도 취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얼굴 전체를 붉히던 기운은 이제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한진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한진영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최대일이 자기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목소리 톤을 조금 높였다.

술기운이 오른 최대일에게 흥분도를 높이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바로 그겁니다. 그런 내수 중심의 그룹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선강은 재계 서열 10위권을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기업들을 경계하며 높아져 가는 다른 기업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는 게 선강그룹의 현실이 될 겁니다.”

“그런 모습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수출 지향적인 회사가 필요하고?”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수출기업. 하이식스만 한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도록 매각이 성사되지 못해 정부는 하이식스를 짐 덩이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을 인수하겠다고 하면…… 정부에서는 지원을 약속할 겁니다. 그리고 나라의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회장님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

최대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세간의 평가대로 선강그룹은 정부의 비호 속에 커온 회사였다.

그러다 보니 내수지향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므로 인해 성장에도 한계가 있다는 한진영의 말이 사실이었다.

한국의 인구수가 늘어나지 않는 한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최대일은 들고 있는 글라스의 나머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후 손을 맞잡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다. 하지만 하이식스 가격이 얼마인지는 알고 있냐? 4조다. 4조. 그 가격을 주고 과연 우리가 사는 게 맞을까? 아니. 그것보다 아무리 우리라도 4조를 끌어오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최대일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지난 시절 선강이 하이식스를 인수했던 방법을 오히려 선강을 향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는 선강그룹이 유일할 겁니다.”

“뭐라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하이식스를 인수할 수 있는 곳은 선강이 유일하다는 겁니다. 즉, 공개입찰에 들어가 자리에 앉는 회사는 선강그룹이 유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채권단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금액만 아니라면 웬만하면 받아들이려 할 겁니다. 최하단의 가격으로 인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3조 5천억 정도가 아마 입찰가 최하단이 될 겁니다.”

최대일은 턱을 쓰다듬으며 손짓했다.

계속 이야기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한번에 3조 5천억을 마련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선 50%만 인수한 뒤 나중에 실사 진행 결과에 따라 나머지를 인수하는 것에 관해 협상해도 채권단은 받아들일 겁니다.”

“우선은 3조 5천억에 계약을 하지만 실사를 진행해서 부실이 드러나거나 안 좋은 부분이 발견되면 가격을 다운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걸 채권단이 받아들이겠어?”

최대일의 말에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일 겁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입찰 희망자는 선강이 유일하니 말입니다. 삼선은 경쟁사로 독과점 우려 때문에 인수가 불가능하고, LZ는 인수 의사가 없습니다.”

“LZ가?”

“네. LZ는 다른 일에 지금 정신이 팔려있으니까요. 그 외에 미래중공업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선강이 입찰에 참여하는 순간 선강이 방향타를 잡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최대일은 한진영의 말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최대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고 연락하겠으니 오늘은 이만하자.”

최대일의 말에 한진영과 이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진영은 이것만으로도 최대일의 마음이 많이 기울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애초에 관심이 없다면 연락하겠다는 말조차 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동우산의 몫이겠구나.’

한진영은 최대일에게 인사하고 나가며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한진영의 생각대로 최대일은 한진영과 이성우가 회장실을 나가자마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동우산 상무에게 연락해서 내가…… 좀 물어볼 게 있다고 전해. 한 시간 뒤에 가겠다고 준비하라고…… 그리고 난 바로 씻으러 갈 테니까 그것도 준비해.”

비서는 최대일이 말하는 물어보겠다는 것과 준비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알겠다는 말과 함께 바로 사무실을 나가며 동우산에게 연락했다.

최대일은 인사를 하고 나가는 비서를 보고 자신의 얼굴을 때리며 술기운을 날려버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신을 만나기 전에 불경스러운 마음을 날리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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