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93화 (193/650)

193화 만들어진 기적

향이 피어올라 자욱해진 방으로 최대일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이곳에 오기 전에 깨끗이 목욕을 한 최대일은 옷 또한 한진영과 만났을 때와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깨끗하게 만든 채 동우산의 법당으로 온 것이었다.

딸랑딸랑.

최대일이 안으로 들어오자 동우산이 마구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방 안을 가득 채워갔다.

최대일은 방울 소리를 들으며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는 몸을 반쯤 숙였다.

그러자 동우산이 그런 최대일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여긴 어쩐 일이냐?”

호통에 가까운 소리에 최대일은 몸을 더욱 숙이고는 대답했다.

“미천한 미물이 일월성신과 천지신명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

“하늘의 일을 어찌 궁금해하는 것이냐?”

“송구합니다. 그래도 저만이 아니라 저와 함께 일하는 모든 직원과도 관련된 일이니 불쌍히 여겨 길을 가르쳐 주시기 바라옵니다.”

최대일의 말에 동우산이 들고 있던 방울을 자그마한 탁자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앞에 놓인 방석을 턱짓하며 말했다.

“와서 앉아라. 그리고 무슨 일인지 한번 말해봐라.”

동우산의 말에 큰 은혜라도 받은 듯이 최대일이 조심스럽게 방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방석 위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 선강그룹이 하이식스를 인수했을 때 어떻게 될지 궁금하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최대일의 말에 동우산이 멈칫했다.

최대일에게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았던 동우산이었다.

동우산은 법당에서 최대일을 맞을 준비를 하며 혹시나 한진영이 말한 일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웠던 동우산이었다.

동우산이 알고 있기로는 내부에서는 이미 가능성이 없는 얘기라고 결론이 난 이야기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일이 다른 일 때문에 자기를 찾았을 것으로 생각했고 한진영이 준비하라 했던 하이식스는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웠던 동우산이었다.

그런 동우산의 귀에 최대일이 하이식스라는 말이 나오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대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동우산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동우산은 최대일의 머리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급히 눈을 뒤집었다.

“으으~”

마치 신내림을 받는 것처럼 눈을 까뒤집은 채로 신음을 내던 동우산은 방울과 쌀알이 흩어져있는 탁자를 손으로 내려쳤다.

탁!

“좋아.”

단숨에 소리를 친 동우산은 여전히 몸을 굽히고 있는 최대일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아주 좋아.”

“좋습니까?”

“그래. 좋아. 너를 보호하고 있는 장군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물론이고 너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모두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이야.”

“정말입니까?”

“어허. 내가 좋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어? 그런데도 계속 묻는 것이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최대일은 동우산의 말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아니옵니다. 작은 일이 아니기에 다시 묻느라 그런 것이니 노여워하지 마시옵소서.”

“알아. 네가 불안해한다는 것 말이야. 하지만 걱정하지 마. 그거 먹겠다고 나서는 곳이 너희밖에 없을 테니 네가 칼자루를 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한진영이 건네줬던 자료들에 있는 이야기를 동우산이 최대일 앞에서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일에서만큼은 동우산이 전문가였다.

한진영에게 받은 자료를 포장하여 신이 이야기한 것처럼 최대일 앞에서 풀어 놓은 것이었다.

최대일은 동우산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랐다.

한진영이 했던 말과 비슷한 이야기를 동우산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4조를 이야기하지?”

“네. 그렇습니다.”

“3조 5천억만 써도 돼. 아까우면 3조 4,500억을 쓰던가. 그 정도만 되도 네 손에 쥘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돈도 바로 준비하지 않아도 돼. 물건 팔겠다는 놈들이 지금 안달 난 상황이라 네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테니 천천히 해. 천천히.”

최대일은 동우산의 말을 듣고 점차 마음이 인수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최근 동우산의 신기에 따라 파생의 일을 확인한 뒤 동우산에 대한 믿음이 하늘 높게 커졌던 최대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동우산이 이번에는 한진영이 했던 말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이러니 최대일은 동우산의 말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진영에 대한 믿음도 함께 커졌다.

“그럼 인수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요?”

“그럼. 벌 수 있어. 3년? 못해도 5년이면 산 돈을 모두 회수하고도 남을 거야. 다만…….”

“다만…… 뭐가 문제인가요?”

“초반에는 돈을 좀 많이 써야 할 거야. 안 그러면 힘들어.”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5년 안에 인수자금을 모두 되찾을 수 있다면 투자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내가 뭘 걱정한다고 그래? 내가 네놈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저 제가 신이 난 바람에…….”

“에이. 기분 잡쳤다. 나는 이만 갈 테니 다음에 또 일이 있으면 그때 불러라. 그리고 너…….”

“네.”

최대일은 화들짝 놀라 동우산을 쳐다본 뒤 다시 급히 고개를 숙였다.

동우산은 그런 최대일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나를 만나러 오기 전에는 술 마시지 마라.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최대일은 고개를 조아리며 역시 신이기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동우산이 비서실 직원을 통해 알아낸 정보였다.

그러나 이런 것을 모르고 있는 최대일은 깨끗이 씻고 왔고 몇 번이나 비서를 통해 냄새가 나는지 확인을 했음에도 귀신같이 자기의 상황을 알아챈 동우산의 신기에 놀라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최대일은 동우산이 불러들였다는 신과의 대화를 끝으로 결심을 마쳤다.

***

며칠 전부터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채권단이 하이식스 매각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 확신을 주는 소식이 기풍증권과 두리은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들려왔다.

[두리은행, 기풍증권에 바로크 호텔 매각 결정]

[매각액 5,000억의 초대형 매각 성사]

[기풍증권 PEF(사모펀드) 시장 진출. 그 첫 번째 단추로 바로크 호텔 인수를 결정]

[두리은행, 바로크 호텔 매각으로 하이식스 매각에 힘을 싣나?]

바로크 호텔의 매각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바로크 호텔의 매각이 하이식스 매각에 힘을 싣기 위한 절차가 아녔느냐는 시각으로 두리은행과 기풍증권을 바라봤다.

매각 가격이 예상을 밑돌았기에 이런 의문에 힘이 실렸다.

이성우는 임원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바로크 호텔의 인수를 성공적으로 이끈 한진영을 칭찬했다.

“바로크 호텔의 인수 건이 잘 마무리됐습니다. 자금 모집부터 바로크 호텔 인수 협상까지 한 부문장이 고생 많았습니다.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게 운이 좋아 결과까지 좋은 것이었지요. 이게 모두 사장님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모두 한 부문장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지요. 어쨌든 누가 뭐래도 이번 일의 1등 공신은 한 부문장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가장 끝자리에서 인사를 하는 한진영을 향해 뿌듯한 표정을 지은 이성우는 다른 임원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아직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서 먼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식적으로 한진영 부문장을 이사로 승진시킬 계획입니다. 이런 결정에 이의를 가지고 있는 분은 없으시겠죠?”

자리에 있던 임원진들은 일제히 끝자리에 앉아 있는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몇몇은 축하의 눈빛으로 한진영을 바라봤고 몇몇은 당연하다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하지만 대부분은 뜻밖이라는 눈빛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진영의 이사 승진은 매우 파격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차장과 부장을 모두 건너뛰고 한 번에 임원으로 올라온 것이 문제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사업부 부문장을 맡아 사업부를 이끌고 있고, 우리 기풍증권에서 최근 가장 좋은 성과를 내놓고 있는 만큼 한진영 부문장이 임원에 올라서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가장 먼저 동의한 것은 역시 회의실에 있는 임원 중에 한진영과 가장 오랫동안 일했던 최준호 본부장이었다.

한진영 덕분에 지점장에서 본사 본부장까지 올라왔던 만큼 이 정도 도움은 최준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저도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만이 있을 수가 없는 결정입니다.”

뒤를 이어 한진영과 함께 일을 해왔던 장근수 본부장, 김정대 본부장 그리고 임재홍 센터장이 이성우의 결정에 힘을 실었다.

이렇게 되니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없게 됐다.

오히려 지금까지 임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가 있을 지경이었다.

당연히 임원회의에 참석하기에 임원이 아니었나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만큼 한진영의 임원 승진은 어쩌면 시간이 문제였을 뿐, 당연한 일이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받아들인 일이었다.

다만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점프하여 올라갔다는 것이 신경 쓰일 뿐 나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성우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수긍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정식 발령은 해가 넘어가서 그룹 차원의 인사조치가 나온 뒤에 바로 이루어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룹에서도 별말이 없겠지요?”

최준호는 그룹 이야기가 나오자 걱정되는 말투로 이성우에게 물었다.

기풍증권 내부에서야 한진영의 위치가 단단하여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룹에서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성우는 그런 최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야 한 부문장의 능력을 잘 알고 있지만, 사실 그룹에서는 너무 파격적인 인사라며 꺼릴 수 있는 일이지요. 그래서 한 가지 일을 이번에 한 부문장에게 맡겨 그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임원 승진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한 가지 일을 더요? 바로크 호텔 인수 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보다 조금 더 큰 일을 처리하게 되면 아마 그룹에서도 한 부문장의 임원 승진에 별말이 없을 겁니다.”

“조금 더 큰 일이요?”

자리에 있던 이들은 이성우의 말에 서로 얼굴을 바라볼 뿐 이성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성우는 그런 그들을 한차례 쓸어보고 한진영과 눈을 마주쳤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에게 고개를 끄덕여 이야기해도 좋다는 뜻을 전했다.

이성우는 한진영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자리에 있는 이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이번에 우리는 하이식스 인수 건에 뛰어들 겁니다.”

“네?”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크 호텔 매각 절차에 들어가며 하이식스 매각 또한 채권단의 발표만 없었을 뿐이지 기정사실처럼 시장이 받아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쨌든 공식 발표는 없는 일인데다가 기풍증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매물이었기에 사람들은 이성우의 발표에 크게 놀라고 만 것이었다.

“한 부문장님.”

“네. 사장님. 말씀하십시오.”

이성우는 허공에서 한진영과 눈을 마주하고는 웃었다.

이미 진행은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우선 인수 의사를 보일만 한 곳을 선별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인수를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입찰에 참여하여 인수를 모두 마무리 짓는 것.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 될지 모릅니다.”

“꼭 성사해서 기풍증권은 물론이고 기풍그룹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한진영과 이성우가 주거니 받거니 말을 하며 선언에 가까운 다짐을 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권수형은 한 가지 사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선강그룹?’

이성우가 이정훈 회장에게 자리를 주선해달라고 한 곳이 선강그룹이었다.

이성우가 부탁했을 때는 무슨 이유에서 자리를 주선해달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자리에서 이성우의 말을 듣자 의문이 풀리고 말았다.

“저…….”

뒤에 앉아있던 권수형 부사장은 자기도 모르게 이성우에게 질문하려던 것을 참아냈다.

권수형은 철저히 참관자로서 회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회의에 끼어들 수 없었고 질문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회의 내용을 듣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런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무의식중에 이성우에게 질문을 하려 했던 것이었다.

이성우는 뒤에서 짧게 들린 권수형의 목소리를 모른 척 흘려버리고는 자리에 있던 이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한 부문장이 이 일을 성사시키면 우리 기풍증권은 IB 파트에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기풍증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로 이곳이니 모든 분은 한 부문장이 하려는 일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자리에 있던 이들은 이성우의 말에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이번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크 호텔의 인수만 해도 기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하이식스의 인수 건까지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은 기대하는 것이 양심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인수 주체부터 선별하고 인수 작업을 메이킹 해야 한다는 사실에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을 진행하려는 사람이 한진영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다.

사람들은 또 다른 기적을 기원하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러나 권수형은 사람들과 다른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회장님께 이야기 드려야 해. 어쩌면 바로크 호텔 인수 건부터 하이식스를 염두에 두고 진행했던 일일지 몰라.’

자리에 있던 이들과 달리 모든 것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권수형은 기대가 아닌 두려움에 가까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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