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95화 (195/650)

195화 파트너사 발표

선강그룹 본사에서 이루어진 파트너사 선정작업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이어졌다.

세세한 것까지 하나하나 따지는 선강그룹의 등쌀에 파트너십을 맺기를 원하는 증권사들은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강그룹과의 파트너십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선강그룹 외에 하이식스를 인수하겠다고 나오는 회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하이식스 인수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선강그룹을 끼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국내외 30여 개의 증권사들이 선강그룹에게 수많은 고초를 겪고 난 뒤 파트너사 선정의 날이 밝게 됐다.

하나둘 선강그룹 본사에 위치한 컨벤션룸으로 각 증권사의 대표들이 모여들었다.

국내의 대형 증권사들은 물론이고 홍콩과 영국, 미국, 일본 등등 해외 유수의 대표 증권사들 또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자를 보내 오늘 있을 파트너사 선정 결과를 지켜보게 했다.

“이번에는 우리니까 욕심내지 마세요.”

DL증권 사장이 오랜만에 만난 서봉증권 사장을 향해 농담을 건넸다.

서봉증권 사장은 그런 DL증권 사장과 웃으며 악수를 했다.

“이번 건은 저희 서봉증권도 자신이 있습니다. 만만치 않을 테니 긴장하고 결과 지켜보세요.”

“아무렴 우리만 하겠습니까? 하하하.”

서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인 DL증권 사장과 서봉증권 사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이렇게 많은 증권사 사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제가 서봉증권을 맡은 이래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DL증권 사장님께서는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유사 이래 최대 인수합병이라는 하이식스의 인수전에 참여할 증권사를 선택하는 자리라 이렇게 다들 관심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희 전임 사장님께서 911테러 때 증권거래소에 모든 증권사 사장들이 모여 회의를 나누는 진풍경을 보았었다고 했는데…… 지금이 더 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해외 증권사 담당자들까지 모두 몰려들었으니 말입니다.”

서봉증권 사장의 말에 DL증권 사장도 동의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단숨에 IB 파트의 강자가 될 수 있으니 다들 사활을 걸고 달려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정이 너무 험난했어요.”

“왜 안 그렇겠습니까?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서봉증권 사장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얼마나 까다롭게 굴던지……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답니다.”

“저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너무하다 싶은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런데…….”

서봉증권 사장은 한쪽에 유독 젊어 보이는 두 사람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친구들은 누구입니까?”

DL증권 사장은 서봉증권 사장이 바라본 곳을 보고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서봉증권 사장님께서는 처음 보시겠군요. 기풍증권 친구들입니다.”

“기풍증권이요? 이번에 기풍철강에 인수된 예전 신성증권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거기 신임 사장입니다.”

서봉증권 사장은 DL증권 사장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고 기억을 되짚었다.

“기풍증권의 신임 사장은…… 기풍철강 이정훈 회장의 아들이라고 하던데…….”

“네. 맞습니다. 그 친구입니다.”

“새로 사장이 됐으니 뭐라도 해보려고 참여했나 보군요. 기풍증권 정도라면 이런 곳에 참여할 사이즈가 못 돼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사실 기풍증권이 선정과정에 참여할 깜냥이 되지는 못하죠. 요새 조금 어디더라…… 뭔 사업부 때문에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 봤자 아닙니까? 규모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기풍증권이 여기 있을 만한 수준은 아니죠.”

“마침 말이 나와서 여쭙는데…… 그 기풍의 새로운 사업부라는 곳 그곳 말입니다.”

“네.”

서봉증권 사장은 기풍증권 쪽을 슬며시 한번 쳐다보고 DL증권 사장을 향해 말했다.

“들리는 이야기에는 꽤 짭짤하게 돈을 번다면서요?”

“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소문이 과장되어 퍼진 겁니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우연히 얻어걸려서 돈 좀 벌었나 보군요. 밑에 있는 친구들이 괜히 호들갑을 떨었나 봅니다.”

“혹은 기풍에서 일부러 수선을 피우며 과장된 소문을 흘린 걸 수도 있습니다.”

“기풍증권 사장이라는 이정훈 회장의 아들 때문에 말입니까?”

“네. 그렇죠. 아들을 부각하기 위해서 아들과 함께 있는 이를 띄워 주는 건 뭐 흔히들 쓰는 방법 아닙니까? 직원을 띄워 주게 되면 그를 다스리고 있는 로열패밀리도 같이 주가가 오르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DL증권 사장의 말에 서봉증권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쨌든 기풍증권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마 참가에 의의를 둔 채로 이곳에 왔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서봉증권만 신경 쓸 뿐입니다.”

“저도 DL증권이 가장 신경 쓰였습니다. 누가 되더라도 축하해주도록 합시다. 물론 최종 승자는 우리가 될 테지만 말입니다.”

“길고 짧은 대봐야 알지요. 나중에 억울하다느니 같은 소리 하시면 안 됩니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너스레를 떤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편 이성우는 멀리서 DL증권 사장과 서봉증권 사장이 웃는 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곁에 앉아있는 한진영을 향해 슬쩍 물었다.

“사람들이 우릴 계속 쳐다본다.”

“우리가 참가할 만한 사이즈의 일이 아니니까 궁금해서 계속 쳐다보는 걸 거야.”

“무시하는 건가?”

“무시하는 거겠지. 왜 안 그러겠어? 되지도 않을 일에 욕심낸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한진영은 입이 삐죽 튀어나온 이성우의 어깨를 두드리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런 무시하는 류의 시선은 조금 뒤면 모두 사라지고 말 테니까.”

“그래. 그렇게 되겠지. 아마 다들 까무러치게 놀랄 거다.”

“그때 가서 표정 관리나 잘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러지 말고.”

“걱정하지 마. 내가 또 연기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잘하지 않냐?”

이성우는 조금 뒤면 바뀔 분위기를 기대했다.

발표회장에 들어설 때부터 기풍증권은 찬밥 취급을 받았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 참가했다는 사실에 무시하는 것인지 기풍증권을 아는 척하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들러리로 참여했다고 여기는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이성우는 다른 증권사 사장들과의 첫 만남을 기대했었다.

자기보다 한참이나 나이 많은 사장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지난밤을 꼴딱 세울 정도로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찬밥 신세가 된 것에 기분이 상해 일어날 생각도 모두 지워버렸다.

빨리 선강그룹의 발표가 나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각 증권사의 사장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을 무렵 발표회장에 선강그룹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조금 뒤 파트너사 선정 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장내에 계신 여러분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선강그룹 직원의 발표로 소란스럽던 장내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오늘 있을 가장 큰 이벤트가 이제 곧 펼쳐질 예정이었기에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도 조용히 발표가 있을 단상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렇게 장내 분위기가 차분히 가라앉았을 무렵 선정작업의 책임자로 이번 일을 진행했던 선강그룹 전략기획본부의 본부장인 최강현 본부장이 마이크 앞에 나섰다.

“아아. 그럼 이번 하이식스 인수에 선강그룹과 함께할 파트너사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최강현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자 컨벤션룸이 숨 막힐 정도로 고요해졌다.

그리고 조용해진 컨벤션룸에 최강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달 동안 저희 선강그룹은 여러 증권사의 제안을 듣고 심사숙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증권사가 우리와 가장 잘 맞을지를 판단했고, 그 결과를 지금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와 하이식스 입찰에 함께 참여할 증권사는…… 기풍증권입니다.”

“와!”

이성우가 기풍증권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기쁨에 겨워 양손을 들어 올린 채 소리를 질렀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한 증권사 사장들은 축하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지 의심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이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기풍증권이 선정될 거라는 생각이 조금도 자리 잡고 있지 못해 나온 반응이었다.

이성우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뻐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한진영과 함께 단상 위로 올라갔다.

최강현은 이성우와 한진영과 악수를 한 뒤 증권사 사장들이 당황할만한 이야기를 또 건넸다.

“입찰에 성공하게 되면 10년 동안 저희와 함께해야 할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선강그룹이 하이식스를 인수한 뒤 성공적으로 합병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최강현이 축하의 말에 증권사 사장들은 하이식스 인수 뒤에 기풍증권이 10년 동안 선강과의 파트너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반도체 분야의 강자인 하이식스를 손안에 10년 동안 쥐게 된다는 것은 앞으로 10년 동안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남들보다 먼저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제서야 증권사 사장들은 정신을 차리고 단상 위에서 기뻐하는 이성우를 향해 손뼉을 쳤다.

발표가 끝난 뒤 단상에서 내려온 이성우는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이렇게 기쁜 소식을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는 직원들과 아버지인 이정훈 회장에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사장님.”

한진영과 함께 나갈 준비를 하던 이성우는 이제서야 자기를 향해 찾아온 사람을 쳐다보고 물었다.

“네? 누구시죠?”

“처음 뵙습니다. 서봉증권의 장대식이라고 합니다.”

“아~ 서봉증권 사장님이셨군요.”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성우는 모르는 척 장대식을 향해 인사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곁에서 지켜보며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았다.

전날부터 처음 만났을 때 실수하지 않기 위해 각 증권사 사장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혔던 이성우였다.

그런데 그런 게 아무 소용 없다는 듯이 상대 증권사 사장이 먼저 찾아와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장님께서는 뭘 좋아하십니까? 혹시 골프 좋아하십니까? 제가 이번에 필리핀에 오픈한 골프장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데 한번 나갔다 오시겠습니까? 제가 풀코스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서봉증권의 사장이 웃으며 이성우의 호감을 사기 위해 말을 건넸다.

하지만 시큰둥한 이성우의 반응에 그는 급히 다른 이야기로 이성우의 관심을 끌려 했다.

“혹시 테니스? 테니스는 어떠십니까? 제가 테니스 코치도 끝내주는…….”

“이 사장님~”

서봉증권 장대식 사장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멀리서 애타게 이성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가 애달프게 느껴지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조금 전 서봉증권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DL증권 사장이 이성우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을 만난 듯이 반가운 얼굴을 하고 이성우에게 인사했다.

“제가 사장님 취임식 때 가보려고 했는데 마침 해외 출장과 날짜가 겹쳐 축하 인사를 하러 가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참. 제 소개를 잊었네요. 저는 DL증권의 김도평이라고 합니다.”

“아~ DL증권의 사장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이성우의 손을 양손으로 잡은 김도평 사장은 마치 상사를 대하는 듯이 깍듯한 자세로 이성우와 인사를 나눴다.

그런 김도평의 반응에 서봉증권의 장대식이 몸으로 슬쩍 김도평을 가리고 이성우에게 말했다.

“사장님. 조금 전 제가 말을 하다 말았는데 테니스 코치가…….”

“사장님. 술 좋아하십니까? 이번에 제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하나 구했는데…….”

이야기를 하던 장대식의 말을 김도평이 잘라내며 앞으로 나섰다.

장대식은 그런 김도평의 모습이 화가 났던지 그의 어깨를 잡아채 자기 쪽을 바라보게 한 후 화를 냈다.

“아 거참.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왜 말을 끊으십니까?”

“이 사장님 표정 보시면 모르시겠습니까? 재미없어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서봉증권 사장님. 사장님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사장님이 누구인지도 모르셨던 분 아닙니까? 속보이게 그러지 마세요. 뻔히…….”

“어…… 어…….”

김도평은 말을 하다 말고 자기 어깨너머를 바라보고 손가락질하는 장대식의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장대식이 손가락질한 곳에는 어느새 다가왔는지 다른 증권사 사장이 이성우의 옆에 바짝 붙어 즐거운 듯이 이야기하며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에이.”

김도평은 몸을 돌려 이성우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기풍증권이 선정됐지만 혼자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증권사 사장들이었다.

어딘가와는 손을 잡아야 했고, 그래야만 분석부터 시작해서 인수 후의 과정까지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찬밥 취급을 하던 이성우에게 바짝 붙어 뭐라도 하나 얻어먹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이성우는 돌아가려는 차 앞에 서서 자기 뒤를 졸졸 따라다닌 사장들을 향해 말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시간을 내서 따로 자리를 가지도록 하시지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성우가 차에 타자 뒤를 이어 한진영이 차에 올랐다.

한진영은 문을 닫고 이성우에게 물었다.

“뭘 또 시간을 가지고 만난다고 했어? 함께하자고 귀찮게 할 텐데 말이야.”

이성우는 제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자기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증권사 사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좋은 걸 여기서 끝내라고? 이대로 쉽게 함께할 곳을 정하면 안 되지. 충분히 알아보고 정할 거야.”

“충분히 알아보고 정한다고? 진짜로 다른 곳과 손을 잡을 생각이야?”

“글쎄?”

이성우의 입꼬리가 귀에까지 올라가며 즐거운 듯이 말했다.

“근데 난 맛있는 거는 남들과 나눠 먹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을 흐리는 것이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이런 반응에 손등으로 이성우의 배를 두드렸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 어쩐 일로 다른 곳과 하려고 하나 했다.”

“쉽게 알려줄 수는 없지. 충분히 골려 먹다가 알려줄 생각이야. 자기들도 알아야지.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걸 말이야.”

이성우의 즐거워하는 목소리가 차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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