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05화 (205/650)

205화 기다렸던 사건

한진영은 대표실에서 나와 운용부서가 위치한 7층 사무실의 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직원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만 특별히 점심은 거르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장이 끝나고 제가 한턱 거하게 쏠 테니 오늘만 참아 주십시오.”

“대표님. 뭘 쏘시는 겁니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최석영이 직원들을 대표하여 한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직원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의 손 크기로 보아 그냥 가볍게 밥 한 끼를 산다는 게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마치 그 이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들에게 말했다.

“앞에 자리한 자이언트 호텔을 오늘 하루 우리 세이지를 위해 빌렸습니다. 14층에 자리한 뷔페에서 자유롭게 드시고 15층에 있는 바에서 술도 한잔 드신 후에 아래 자리한 방에서 푹 쉬고 내일 출근하시면 됩니다.”

“자이언트 호텔에서요? 풀코스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풀코스로 즐기시면 됩니다. 지하에 있는 사우나에서 몸도 푸시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하시고 편하게 즐기십시오. 그리고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오늘은 모두 4시에 정리하고 퇴근하도록 할 테니 그렇게 아시고 늦지 않도록 정리하길 바랍니다.”

“그럼 4시부터 바로 달려가서 즐기면 되는 겁니까?”

“네. 이미 결제는 끝이 났습니다. 자이언트 호텔은 아침부터 우리 세이지를 맞을 준비에 들어갔으니 언제라도 가서 즐기시면 됩니다. 세이지 직원이라는 신분증만 있으면 오늘 자이언트 호텔에 있는 모든 것을 프리패스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직원들을 둘러본 후 옆에 놓인 모니터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 하루. 점심시간만 집중해 주십시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석영이 큰 소리로 대답하자 다른 직원들도 같은 소리로 한진영의 말에 대답했다.

한진영은 사기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뒤 곁에 있는 조수아에게 말했다.

“아래 있는 직원들에게도 알려주세요. 그리고 자이언트 호텔에 확인해서 4시에 바로 갈 테니 준비 확실히 해달라고 전해주시고요.”

“네. 제가 직접 챙길게요.”

“고맙습니다.”

한진영은 조수아를 향해 눈짓으로 수고하라는 말을 전한 후 팔짱을 꼈다.

그리고 앞에 떠 있는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난 시절 겪었던 경험이 한진영은 새록새록 떠오르게 할만한 장면들이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도 점심시간이었지.’

언제나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터진다는 말이 있었다.

한가한 연말을 코앞에 둔 시점에 직원들이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간 사무실을 한진영은 홀로 짜장면을 먹으며 지켰었다.

그렇게 비어있는 사무실에서 한진영은 홀로 그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북한에서 뭐 또 발표한다고 하네. 중대 발표? 얘네는 뭐 툭하면 긴급성명에 중대 발표 이러고 있어. 뭐 또 김정일이 백두산 천지 장군에 오른다고 하려나?”

“그러니까 말이야. 맨날 중요한 발표라고 하더니 결국 나오는 건 쌀 주세요. 배고파요. 같은 식의 이야기들이었잖아. 아유~ 지겨워.”

한진영은 팔짱을 낀 채 직원들의 대화를 들었다.

여지없이 지금도 지난 시절과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정오 북한방송에서 중대 발표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속보로 화면 아래 지나갔다.

한진영은 속보를 확인하고 운용팀을 임시로 맡은 최석영을 불러들였다.

“차장님.”

최석영은 하던 것을 멈추고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여전히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한진영의 옆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둘만 있을 때는 편하게 이야기하기로 한 한진영과 최석영이었다.

한진영이 신입사원일 때부터 모든 것을 지켜본 최석영이었기에 한진영의 이런 제안을 싫다고 하지 않았다.

한진영도 이게 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야 일을 시킬 때도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최석영에게 조금 있을 일을 대비하여 지시하기 시작했다.

“11월 저점을 기준으로 매수 세팅을 진행하도록 하세요.”

“11월 저점? 11월 저점이라면 1,800언더? 1,800이 깨진다고 보는 거야?”

“네.”

최석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첫 매매야. 그런데 정말 1,800언더를 기준으로 세팅하라고? 그 자리는 지난 몇 달 동안 지켜냈던 자리였는데…… 아무리 지금 고개를 수그린 상태라지만 1,800을 깰 거로 보이지 않는데 정말 괜찮겠어?”

“무슨 걱정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자리부터 잡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그러시는 거죠?”

“당연하지. 충분히 많이 옆으로 기었고 1,800에 대한 지지도 몇 달 동안 지겹게 확인했는데 여기서 1,800을 깬다는 것을 전제로 대기하다가 그대로 올라가 버리면 어떡해? 그럼 우리는 손가락만 빨게 되는 거잖아.”

“차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지 않는다고? 정말 확신하는 거야?”

최석영의 말에 한진영이 가만히 웃기만 했다.

최석영은 한진영의 이런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

점심을 건너뛰게 한 결정.

화면에 뉴스 방송만 나오게 한 것.

그리고 월요일임에도 회사가 끝난 뒤 신나게 놀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준 것.

마치 오늘 점심때 생각보다 큰일이 벌어질 것이고 그것으로 큰 이득을 볼 것이라고 자신한 것처럼 한진영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최석영은 한진영에게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냐고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최석영은 한진영에게 질문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찾아온 박도하가 한진영을 향해 보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세팅 끝이 났고 언제라도 가동할 수 있게 준비가 마친 상태입니다.”

“좋습니다. 우선 1,000억부터 시작하죠.”

“1,000억?”

최석영은 곁에 박도하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큰 소리로 한진영을 물었다.

최석영은 한진영의 눈빛에 자기가 실수한 것을 깨닫고 급히 다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1,000억이요? 한번에 1,000억을 태울 셈입니까?”

“네. 퀀트 프로그램에 1,000억. 그리고 차장님 쪽에 1,000억. 우선 토탈 2,000억을 주식과 선물 파트에 집행할 겁니다. 그리고…… 마침 오네요.”

김석현 팀장이 한진영의 곁에 오자 김석현 팀장에게도 한진영이 지시했다.

“원달러가 1,300원을 넘어가거든 원화 매도 포지션 잡으세요.”

“1,300원이요?”

김석현은 오자마자 들은 한진영의 지시에 한진영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 지금 1,230원대에서 원달러 포지션이 자리 잡고 있는데요.”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다고요? 그런데도 1,300원에서…….”

김석현은 자기가 잘못 알고 자리에 온 게 아니냐는 생각에 한진영에게 자기를 부른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저는 오늘…… 포지션 이야기를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혹시 제가 이야기를 잘못 들은 건가요? 내년 계획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오늘 포지션 맞습니다.”

“네?”

괜히 조금 전 놀란 모습을 보인 게 아니냐고 후회하던 김석현은 한진영의 말에 더욱 크게 놀랐다.

“그러니까. 대표님. 지금 대표님께서는 오늘 하루에만 원달러가 70원이 오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네. 순간 치고 갈 겁니다. 그러니 먼저 대기하세요. 1,300원 자리에다 촘촘히 그물을 쳐놓고 고기가 걸리게 대기하는 겁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김석현은 한진영의 말에 알겠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얼추 비슷해야 의견 교환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1,230원에 머무르는 원달러가 갑자기 1,300원까지 오른다는 이야기에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알겠다고 대답한 김석현에 이어 최석영과 박도하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우선 최 차장님.”

“네. 말씀하세요.”

“우선 시가총액 상위주들 위주로 그물을 쳐놓으세요. 시총 상위 10위까지는 -5% 하락 지점에 그 외의 종목은 -10%에서 하한가 근처까지 쭉 그물 쳐놓으시면 됩니다.”

“어디에 쳐놓으라고요?”

최석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진영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자기가 분명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잘못들은 게 확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꿎은 주변에 있는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조용히 있어 봐.”

최석영이 주변에 자리한 직원들을 조용히 시킨 후 한진영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에 그물을 치고 있으라고요?”

“상위 10위까지는 -5% 선에 그 외의 것들은 -10%에서 하한가 근처에 쭉 걸어놓고 대기하세요. 이미 이사하면서 언제라도 매수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을 테니 가격만 적어놓고 매수주문 넣어놓으시면 돼요. 아참. 코스닥 종목은 모두 하한가에 걸어놓으세요. 제가 코스닥 종목들을 놓칠 뻔했네요.”

최석영은 자기가 잘못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김석현과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 포지션이 맞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김준하 팀장님.”

“네?”

김석현과의 대화에 자리로 와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던 김준하는 한진영의 부름에 깜짝 놀랐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를 향해 퀀트 프로그램에 관한 지시도 빼먹지 않았다.

“국내 선물만 진행하도록 하세요. 해외선물 및 상품시장은 우선 대기합니다. 주식도 여기 최 차장님 쪽에서 진행할 예정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고요. 국내 선물에만 속도를 높여 잡아주세요.”

“네. 어느 지점을 포인트로 잡을까요?”

“사이드카 걸리고 30분 뒤. 거기를 타겟으로 잡고 프로그램을 가동하도록 해주세요.”

“사이드카 걸리고…… 30분…… 뒤?”

김준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급히 머리 위에 달린 시세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준하만 고개를 쳐든 것은 아니었다.

자리에 있던 팀장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시세 전광판에 떠 있는 종합주가지수를 확인했다.

종합주가지수 1,836 -0.18%.

약보합의 상황에서 지금 한진영은 사이드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했다면 욕을 들어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말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한진영이었다.

그리고 그 한진영이 자리에 있던 이들을 향해 또 이야기했다.

“앞으로 한 시간 안에 요동을 칠 수 있으니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코앞에 다다르고 나서야 여러분께 이야기한 이유는 세팅이 모두 끝나 있다는 보고를 받아서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판단으로 지시를 내린 겁니다. 우리 세이지 자산운용의 첫 단추를 끼우는 중요한 매매가 되는 만큼 모두 기대에 부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바로 움직이시죠.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요.”

한진영이 손뼉을 치자 팀장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하나하나 팀장들의 등을 떠미는 한진영의 손길에 더는 질문을 하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로 모두 흩어져 내려갔다.

한진영은 한쪽에 서서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게는 고제상을 불러들였다.

“채권 쪽은 그물을 치지 마세요. 거기는 이상한 움직임이 일어나면 바로 포착되니까 그물 치지 말고 계속 주시하다가 이상이 보이면 그때 움직이세요.”

“어떤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될까요?”

“우리나라 채권 가격이 갑자기 급락할 겁니다. 갑작스러운 급락에 대기하고 있다 멈추면 그때 채권을 바구니에 담도록 하세요.”

“대표님. 대표님께서는 뭔가 이변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군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렇게 과감하게 포지션을 잡지는 않았겠지요?”

고제상은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식과 환율이야 그렇다지만 채권 가격의 급락은 평범한 상황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일이었다.

고제상은 잠시 해외에서 이슈가 나올만한 것이 무엇이 있나 떠올려봤다.

그러나 연말을 앞둔 지금 해외 쪽에 특별히 이야기 나오고 있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시장을 들썩이게 할만한 주요 이슈 생산국인 미국은 지금 한밤중이었다.

이야기가 나오려면 우리나라 장전 혹은 늦어도 10시 전에 이야기가 나왔어야만 했다.

고제상은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국내군요.”

“네. 국내 문제입니다.”

“채권 가격의 급락이라면…….”

고제상의 시선이 한진영 어깨너머 화면에서 나오는 긴급속보에 눈이 갔다.

“이번 북한 발표는 진짜라는 건가요?”

화면 하단에는 여전히 조금 뒤 북한에서 중대 발표가 있다는 이야기가 화면 하단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거…….”

고제상은 궁금한 것을 한진영에게 묻기 위해 입을 열려다 참았다.

한진영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체 조용히 하라는 뜻을 전했기 때문이다.

고제상은 한진영에게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한진영의 말이 정말이라면 채권시장에도 폭풍이 몰아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고제상이었다.

지난 연평도와 천안함 사건이 그걸 증명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제상까지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한진영은 사무실을 둘러봤다.

한진영의 지시를 받은 팀장들이 각자 팀원들을 이끌고 한진영의 말대로 그물을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바로 오늘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지. 이날을 해 먹으려고…….”

기풍증권에서 나와 회사를 차리는 데까지 여유 부리는 것 하나 없이 달려온 이유가 이제 모습을 드러내려 한 것이었다.

오후 1시 모든 치밀하게 그물을 펼쳐 시장에 널어놓은 세이지 자산운용의 직원들은 모두 사무실 앞과 위에 달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곳에는 북한에서 나온 중대 발표를 전하기 위한 아나운서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금일 정오 북한중앙방송에서는 중대 발표를 전했습니다.”

아나운서는 평소와 달리 긴장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뭐야? 왜 저래? 김정일이 뭔 장군 됐다는 발표가 아니야?”

한눈에 보기에도 이상한 모습의 아나운서였다.

그는 앞에 놓인 종이를 들고 방송국 아나운서답지 않게 책 읽는 목소리로 긴장한 얼굴을 한 채 북한 소식을 전했다.

[북한에서는 12월 17일 북한 국방위원장인 김정일 위원장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에서는…….]

50여 명이 자리한 7층의 사무실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띠링!

정적을 깨는 소리가 하나둘씩 들려왔다.

하한가에 걸어놓은 주식이 체결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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