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팔아먹을 준비를 할 때가 됐다
홍대민은 지금으로부터 3년이 지난 뒤에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퓨처에셋에서 나가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난 뒤에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여전히 걱정만 가득 안고 있는 홍대민을 바라보고 말했다.
“제가 누구입니까? 세이지 자산운용의 대표입니다. 제가 사장이란 말이죠. 선배님께 전권을 제가 드리겠다고 하면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선배님이 팀장이 되실 겁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와 직속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저에게만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홍대민은 한진영의 말이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그런 홍대민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선배님 성격이 그러셔서 매매 스타일도 리스크 관리 측면에 많이 치우쳐져 있던 것이었군요. 더 잘됐습니다. 제가 공격적이니 선배님이 저와 반대로 리스크 관리를 중점으로 매매를 해주어 균형을 맞출 수 있겠습니다.”
“정말 진심이야?”
“진심이죠. 그럼 제일 중요한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연봉은 기본으로 2억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과급은 분기마다 측정하여 3달에 한 번씩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익의 1%. 어떻습니까?”
“수익의 1%?”
홍대민은 자기가 잘못들은 게 아니냐는 생각에 되물었다.
한진영은 이런 홍대민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이 대답했다.
“다른 곳과 다른 연봉체계에 조금 당황하셨을 겁니다. 수익의 1%를 제시하는 곳은 없을 테니까요.”
“수익의 1%라니? 그건…….”
“다른 곳이라면 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린 수수료로 수익의 30%를 고객에게서 받으니까요. 소문 들으셨죠?”
“그게 사실이었어? 나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수수료 30%는 뭐랄까…….”
한진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신장개업 할인과 같은 겁니다. 새롭게 회사를 열어 고객을 끌어들이는 기간만 30%라는 이야기죠. 이 기간이 지나면 40%까지 올릴 생각이거든요. 뭐든지 첫 고객에게는 그만큼의 혜택을 줘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라서요.”
“30%가 혜택이라고? 40%를 받겠다고? 그런 펀드에 누가 투자를 하겠어?”
“그렇게 수수료를 주고라도 가입하고 싶게 많은 돈을 벌면 되죠.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저는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선배님께 수익의 1%를 드리는 것은…… 적절한 보상입니다.”
지난 시절 연평균 40%의 수익을 올리던 홍대민이었다.
여기에 자기가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두 배인 80%의 수익률도 가능하다는 것이 한진영의 계산이었다.
한진영에게 홍대민은 한쪽 날개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진영은 고민하는 홍대민 앞에 놓인 펀드 가입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쥐고 있었는지 꾸깃꾸깃한 계약서를 찢어버리며 말했다.
“언제까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회사에 다니실 생각이십니까? 저하고 함께 꿈을 펼쳐 보이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은 결심을 했는지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좋아. 결심했다. 앞으로 깎듯이 대표님이라고 부를 테니 나를 도와줘.”
“그러시죠. 홍 팀장님.”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은 미래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인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
1,800대에서 북한발 쇼크가 터지며 1,700 초반까지 무너져 내린 종합주가지수는 단숨에 1,700대를 깨버릴 듯 요란을 떨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에 긴장감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김일성 때와 달리 후계 구도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세습제로 내려오는 북한 정권의 특성상 후계 구도가 무너지면 삽시간에 모래성이 무너지듯이 무너질 거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와 달리 주식시장과 환율 그리고 채권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북한의 붕괴보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가 더 걱정이었던 정부는 시장 안정 조치를 연달아 내놓으며 시장을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1,700 붕괴를 걱정했던 종합주가지수는 1,800대 회복을 단숨에 이루고 말았다.
그리고 연이어 신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언론에 쏟아내며 주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환율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서브프라임 시절 곳간에 쌓아놓은 외화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써도 되겠느냐는 비판을 그사이 잊은 것이었는지 정부는 달러를 시중에 풀어 1,300원을 찍었던 원달러 환율을 1,200원 초반까지 찍어 누르고 말았다.
채권시장 또한 다른 두 시장과 다른 것이 없었다.
일반인들이 채권 가격 변화를 잘 못 느낀다는 것을 이용하여 정부 주도하에 채권 가격 조정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시장의 변화에 세이지 자산운용은 단숨에 시장의 기린아로 우뚝 솟아나게 됐다.
이번 일로 세이지 자산운용이 얻은 수익이 상당하다는 소문이 돌아다닌 덕분이었다.
“회사 설립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연말 보너스를 받는 곳은 우리밖에 없을 거다.”
세이지 자산운용의 직원들은 통장에 찍힌 돈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떡값이라고 해서 1~20만 원쯤 들어올 줄 알았는데 1,000만 원이 찍혀있어서 제 눈이 잘못된 줄 알았어요.”
“그러게 말이야. 하여튼 대표님 손 큰 거는 알아줘야 해. 이게 떡값이면 도대체 성과급은 얼마를 주신다는 건지 기가 찬다. 기가 차.”
믿기지 않는 것인지 말을 마친 직원은 통장을 다시 내려다보고 찍힌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한참을 통장을 내려다보던 직원 중 하나가 고개를 들고 이야기를 꺼냈다.
“이거 괜찮나?”
“뭐가?”
먼저 말을 꺼낸 직원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아무리 우리 수수료율이 높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떡값을 줘도 괜찮나 싶어서 말이야. 우리 직원이 몇 명이야? 게다가 그날 호텔에서 신나게 논 것도 그렇고…… 아무리 대표님 손이 크다고 하셔도 이런 식으로 마구 돈을 뿌리셔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지금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하루 만에 500억을 벌기는 했지만…… 대부분 고객 수익이고 우리는 거기에 일부만 가지는 거 아니야? 그런데 너무 심하게 뿌리는 게 아닌가 싶어.”
“나도 그래. 우리가 얻은 수익은 100억이 좀 넘는 수준인데 이렇게 한번에 큰돈을 뿌려버리면…… 나중엔 어떡해?”
한진영이 너무 과한 돈을 뿌린 게 아니냐는 걱정을 직원들이 하게 됐다.
자리에 있던 직원들은 1,000만 원이 마냥 편안한 돈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가장 막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무슨 이야기?”
“우리 그날 수익 500억 돌파했다고 좋아했잖아요.”
한창 가라앉는 분위기로 이야기를 하던 직원들은 막내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모두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막내를 바라봤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태연하게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런데 어쩌면 500억을 번 게 아닐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냐?”
“생각보다 수익이 적대? 우리한테 이렇게 많은 떡값을 준 게 혹시 우리 입 막으려고 한 거야?”
“이미 소문은 500억 이상 벌었다고 났던데…… 아닌 거야?”
“역시 예상대로 무리한 거였어? 500억을 예상하고 돈을 준 건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냐?”
통장을 손에 쥐고 있는 직원들은 모두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야기를 꺼낸 직원을 바라봤다.
너무 많이 주는 것이 아니냐는 자기들의 걱정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한 모습을 보인 직원들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꺼낸 막내 직원은 그런 선배 직원들을 향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아니요. 그날 500억을 번 건 맞는데…… 열흘 지나니 수익이 800억까지 올랐대요. 종합주가지수 계속 오르고 채권가격도 계속 오르고…… 아직도 우리 물량 들고 있는 것들이 수익이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어서 수익은 더 커질 거 같다고 하던걸요.”
한가득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선배들은 후배의 말에 잠시 일시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췄다.
그리고 후배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
“야 이씨. 깜짝 놀랐잖아.”
“이 자식이 뭘 잘못 먹었나. 야! 너 말 그렇게 할래?”
회사에 아무 일이 없음을 확인한 선배는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팔을 들어 후배를 위협하기도 했다.
“너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나한테 죽어.”
“두괄식. 두괄식. 알았어? 앞으로 말할 때는 결론부터 이야기해. 심장 떨려 돌아가실 뻔했잖아.”
“너 인마 회사 그만 다니고 싶어? 1,000만 원이 떡값이 아니라 퇴직금이었으면 해서 그렇게 이야기한 거냐?”
이야기를 꺼낸 직원은 선배들의 위협에 기가 죽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선배들이 걱정하는 거 같아서 제 딴에는 걱정을 덜어 드리려고…….”
“야 인마! 두 번만 그렇게 걱정 덜었다가는 여기 있는 네 선배 다 실려가겠다. 얘 사람 잡을 놈이네.”
한참을 후배를 혼낸 선배들은 손에 든 통장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그런데 수익이 800억까지 올랐다고?”
“그럼 우리가 받은 이 떡값은 무리해서 주신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잖아.”
“그럼 만약에 수익이 더 늘어나면…….”
“성과급이라든지 특별한 날에 주는 이런 떡값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네.”
직원들의 눈에는 욕망으로 보일 수도 있는 기대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한진영이 원한 것이 바로 이런 반응이었다.
직원으로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그냥 바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충성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만큼의 돈.
그게 바로 직원들의 애사심을 일으키는 원천이라고 생각하여 직원들에게 돈을 안겨다 주는 것이었다.
***
한해의 시장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한진영의 세이지 자산운용도 종무식을 치렀다.
거창하게 어디를 가는 게 아니라 직원들에게 빠르게 휴식을 주기 위해 한진영은 사무실에서 종무식을 치르기로 했다.
“다들 연휴 동안 푹 쉬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시기 바랍니다. 출근하시면 새로운 주식운용 팀장님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팔을 들어 올렸던 최석영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민망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향해 한번 웃고는 직원들을 향해 짧은 말을 남기고 종무식을 마쳤다.
“대표님.”
종무식이 끝나자마자 조수아가 한진영에게 다가왔다.
“저는요?”
“네?”
“아니. 저도 처리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어떤걸요?”
“와~ 모른 척하시기에요?”
조수아가 한진영의 앞을 가로막고 즐거워하는 최석영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최 차장님만 해결해주신 거예요? 제가 먼저 이야기했잖아요. 저도 다시 채권팀으로 가고 싶다고요.”
“아~ 비서 업무요?”
“다른 사람들은 벌써 다음 분기에 나올 성과급을 기대하는데 저는 이게 뭐예요? 그리고 대표님 스케줄 관리하고 외부 업무 진행하는 거. 이거 체질적으로 저하고 맞지가 않아요.”
한진영은 조수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더요? 얼마큼 더요?”
“그 친구가 아마 졸업반일 테니 회사에 데리고 올 수 있을 겁니다.”
“그 친구요? 어떤 친구요?”
“있습니다. 저와 꼭 복수를 같이 해야 할 친구가요.”
“복수요? 무슨 복수요?”
한진영은 조수아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조수아는 한진영의 말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분명 얼굴은 웃고 있지만 한진영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오싹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수아는 한진영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를 대신할 누군가가 있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한진영의 말에 생각해 둔 게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거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조수아였다.
조수아는 빨리 구해달라는 말을 전한 후 자리를 떠났다.
한진영은 떠나는 조수아에게서 시선을 돌려 직원들을 돌아봤다.
그리고 한쪽에서 혼자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김준하와 직원들과 함께 연휴 기간 동안 어딜 놀러 갈지 이야기하는 박도하를 번갈아 불렀다.
“김 팀장님과 박 팀장님. 잠시 저 좀 보시죠.”
한진영은 김준하와 박도하를 부른 뒤 회의실로 향했다.
한진영은 이제 HFT 프로그램을 팔아먹을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전가의 보도처럼 HFT 프로그램은 우수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우수한 프로그램을 한군데서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프로그램을 가진 곳은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이런 속도 경쟁이 시장을 꼬이게 만들었다.
그 결과 결국 내년 중순쯤 미국 나스닥에서 사고를 벌어진다.
그리고 그 결과 HFT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스닥은 폭락하고 만다.
그리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서는 이 부분을 그냥 보고 넘어가지 않았다.
HFT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시장에 타격을 준 곳에 거액의 벌금을 매겼다.
그리고 수시로 모니터링하여 또다시 같은 잘못을 하는지 오랫동안 사고 친 곳을 감시하기도 했다.
한진영은 이런 위험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물건을 손에서 떠나보내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냥 떠나보내려니 무언가 아쉽기만 했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원하는 곳은 많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파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물건을 팔더라도 온전한 모습으로 내보내서는 안 됐다.
가지고 간 사람이 스스로 고치고 만져 사고가 터졌다고 해야 온전히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저 가능성만 보여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진영은 프로그램을 다운그레이드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박도하와 김준하를 불러들였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정병선이 자랑했던 유리벽을 불투명하게 만든 뒤 먼저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