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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14화 (214/650)

214화 소문의 주인공이 우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지난 북한발 사고가 터졌을 때 HFT 프로그램이 보여준 승률은 96%가 넘었었다.

그랬던 프로그램을 억지로 70% 승률로까지 떨어뜨렸으니 남들이 보면 미쳤다는 말이 튀어나올 만했다.

그러나 한진영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의 숫자처럼 보였다.

96%라는 숫자보다 70%라는 숫자가 사는 사람으로서는 더욱 군침이 도는 것이었다.

더는 건드릴 곳이 없는 것보다 내가 가지고 가서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구매자에게는 더욱 유혹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한진영의 입장에서는 70%라는 승률이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승률은 그 정도면 됐고…… 속도는 어떻습니까?”

“속도도 많이 다운시켰습니다. 초당 최대 3번의 거래만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상태입니다.”

“종목은 어떻죠?”

한진영은 박도하 곁에서 같이 모니터링을 준비하고 있는 김준하에게 물었다.

김준하는 한진영의 대답에 차분히 대답했다.

“선물과 옵션을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옵션 시장 유동성이 풍부하고 움직임도 빨라서 옵션에 더 주력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옵션 시장 좋지요.”

“3.0 이하 1.0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옵션을 주로 매매할 계획입니다. 유동성도 좋고 변동성도 그쪽이 가장 좋아서요.”

“그렇죠. 근외가가 아무래도 풍부한 유동성과 변동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딱 좋게 만기도 넉넉히 남았으니 큰일이 벌어질 일도 없을 테고…… 좋습니다. 준비한 대로만 진행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 같습니다. 그대로 진행하세요.”

한진영의 말에 김준하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한진영을 올려다보고 물었다.

“5% 수익 맞나요?”

“네. 투자금 대비 5%로 맞춰주세요. 딱 맞추면 뭔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오늘 5%로 맞췄다면 내일은 3%, 모레는 1%나 오히려 손해도 보고…… 이런 식으로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해주시는 것 명심하세요. 그게 핵심이니까요. 자연스럽게 가 가장 중요합니다.”

한진영의 말이 이해가 됐는지 김준하와 박도하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이 HFT 프로그램의 준비상태를 확인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해의 첫 시장이 열렸다.

약 10거래일 전에 벌어진 사건에서 시장은 많이 충격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언제든 시장이 하락하게 되면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보여줘서 그런 것인지 시장은 재차 1,900 돌파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40 풋 500계약 500만 원 수익 실현 완료했습니다.”

“242.5 콜 300계약 400만 원 수익 실현 완료했습니다.”

“235 풋…….”

“245 콜…….”

선물보다 옵션시장에서 탁월한 실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률을 낮춘 만큼 전과 달리 손실 구간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247.5 콜에서…… 100만 원의 손실을 봤습니다.”

“232.5 풋에서도 마찬가지로 100만 원의 손실을 봤습니다.”

전에는 수없이 많은 매매 속에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손실이 계속 튀어나오자 직원들은 한진영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일부러 승률을 낮췄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보다 많이 나오는 손실에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냐고 걱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진영이 신경 쓰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따라붙는 곳이 있습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모니터링하고 있던 박도하가 바로 대답했다.

“기관 두 곳 정도에서 우리 매매에 따라붙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패턴은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김준하가 대답했다.

“우리와 흡사하지만, 우리가 처음 HFT를 개발했을 때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한 모습이에요. 잘해야 승률 60%?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될 것으로 보여요.”

“좋습니다. 그럼 계속 돌립니다.”

한진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때까지도 눈치를 보고 있던 직원에게 말했다.

“손실은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끝나고 손에 쥔 돈이 수익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니까요.”

한진영은 천장에 붙어 있는 시세 전광판에 나와 있는 총 승률만 확인했다.

총 승률 71.5%.

70% 승률로 맞추기를 바랐던 한진영의 생각대로 HFT 프로그램은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

장이 끝나는 3시에 들어가자 다들 손을 털고 기지개를 켰다.

HFT 프로그램을 운용하던 직원들도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으~”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신음에 몸을 쭉 펴던 조 대리는 천천히 다가오는 한진영을 보고 뻗었던 손을 급히 거뒀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수고는요. 모니터 바라보고 있는 게 전부였는데요 뭘.”

조 대리가 머쓱하게 대답하자 한진영이 조 대리의 어깨를 두드리고 김준하 곁에 앉았다.

“어때?”

그때까지 모니터를 확인하던 김준하는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70.7%요.”

“잘했네.”

“저는 플러스마이너스 0.5% 이내로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오차범위를 벗어났으니 실패한 거죠.”

한진영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김준하를 내려다보고 있는 조 대리를 보고 웃었다.

“야. 조 대리님 봐라. 네 말에 완전히 굳었다. 그렇게 너무 쪼여서 일하지 마. 남들이 보면 내가 쪼이는 줄 알겠어. 조 대리님.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김 팀장이 괜한 말을 한 거니까요.”

한진영은 웃으며 조 대리를 안심시키고는 김준하가 보고 있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오늘 있었던 매매 내역이 모두 떠 있었다.

김준하는 내역과 함께 당시 틱 차트를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는 굳이 매수할 이유가 없었는데…… 선물시장에서 움직임이 있었나?”

옵션 차트에 선물 차트 그리고 개별 종목 중에 삼선전자 등의 차트를 확인하며 프로그램에 적용했던 공식을 확인해 나간 김준하였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내렸다.

“잘했어. 괜찮아. 이 정도면 돼.”

“그래도…….”

“너무 여기에 온 힘 쏟지 마. 어차피 팔아먹을 거야. 너 이렇게 애정 쏟았다가는 나중에 팔 때 팔지 말라고 하게 생겼다.”

한진영의 말에 보던 것을 멈춘 김준하는 몸을 돌려 한진영을 마주 보고 앉아 말했다.

“솔직히 지금도 같은 생각이기는 해요. 1,000억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주더라도 저는…… 팔고 싶지 않은 생각이에요. 이 프로그램만 있으면 그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김준하는 한진영을 설득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팔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 이런 자기의 말에 한진영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미 결정을 내린 사항을 놓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리 한진영이라도 기분 나빠할 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준하의 생각과 달리 한진영은 김준하의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다시 한번 김준하의 머리를 쓸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바로 그런 생각이 너만 가진 게 아니겠지? 박 팀장님.”

한진영은 박도하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박도하에게 최종 확인 사항을 물었다.

“어떻습니까? 많이 따라붙던가요?”

“장 막판에는 다섯 곳 정도까지 붙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좋아요. 슬슬 판이 커지려고 하네요. 그럼…….”

한진영이 박도하와 그의 팀원들을 살피며 미안한 듯이 말했다.

“오늘 나스닥 선물에도 적용하고 싶은데…… 혹시 괜찮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오늘 아무 일도 없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간이침대에서 자도 끄떡없습니다.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의 말이 채 끝내지도 않았는데 오늘 밤에 있을 미국 시장에 프로그램을 돌릴 일을 박도하 팀의 팀원들이 자원하여 나섰다.

한진영은 그런 팀원들을 한차례 훑어보고 박도하를 바라봤다.

박도하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하고 싶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IT 팀원들이 나서서 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다른 팀과 달리 IT 팀원들에게 있어서 성과 포인트는 고생한 것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과에 따라오는 성과급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서로 힘든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박 팀장님이 잘 정해서 오늘 남아있을 팀원을 정해주세요. 이번에는 나스닥 선물만 돌릴 생각이니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요.”

한진영이 지시하고 다시 몸을 돌리자 IT 팀원들은 서로 하겠다고 박도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하고 싶다는 사람끼리 가위바위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참가자에는 박도하 팀장까지 포함되었다.

장이 마무리된 후 세이지 자산운용에는 한동안 가위바위보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

새해 첫날부터 시장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옵션 시장에서 이상한 매매를 하는 주체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파다하게 소문이 난 것이었다.

“봤어?”

“봤지. 트레이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 봤을걸? 워낙 이상한 움직임이었잖아.”

“어디래? 아무리 봐도 개인은 아닌 것 같던데.”

“개인은 아닐 거야. 아무리 옵션 외가라지만 그걸 한번에 100계약씩 때리고 받는 걸 개인이 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게다가 속도도 사람 손으로 하는 것 같지가 않고…….”

“사람은 분명 아니야. 100계약 틱 띠기를 쉬지 않고 계속하는데 그게 사람이면 손가락에 쥐나.”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람이라면 1틱, 2틱에 만족하고 그렇게 미친 듯이 틱 띠기를 할 리가 없어. 마치 무슨 기계를 본 것 같더라니까.”

“혹시…… 그거 아닌가?”

“어떤 거?”

“그 왜. 소문만 무성했던 거 말이야.”

슬며시 이야기를 꺼낸 이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자 그제야 다른 이들도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뭔 이상한 자동매매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던데…….”

“외국에서는 많이 쓴다며?”

“많이 쓰는 정도까지는 아니고…… 암암리에 퍼지고는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있나?”

“있으니까 우리가 본 거 아니겠어?”

“그럼 혹시…… 외국인 놈들이 그 프로그램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에서 돌리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니야.”

단호하게 아니라고 확신에 찬 말을 꺼낸 이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아니라고? 왜? 뭐 아는 거 있어?”

아니라는 말을 던진 뒤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이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털어 버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본 건 옵션만이 아니었어.”

“옵션만이 아니었다고?”

“그래. 선물에서도 보였어. 옵션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데 그게 뭐? 그게 외국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아니잖아. 외국인이 옵션도 돌리고 선물도 돌렸나 보지 뭐.”

“선물은 옵션처럼 주체를 특정하기 어렵지가 않잖아.”

“그럼 선물에서 그 움직임을 보이는 주체가 파악됐다는 이야기야?”

“그래. 얼추 파악됐어.”

“그게 어딘데?”

사람들은 모두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꺼낸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

잠시 뜸을 들이던 사람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우리가 파악하기에는…… 세이지 자산운용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어.”

“세이지 자산운용? 거기가 어딘데?”

세이지 자산운용을 모르는 이가 곁에 있는 이에게 묻자 그는 옆구리를 찌르며 설명했다.

“그 왜 있잖아. 기풍증권에서…….”

기풍증권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어딘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던 사람이 그제야 알아듣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아~ 거기. 기풍증권에서 떨어져 나온 곳. 그런데 거기라는 말이 있다고? 정말이야?”

“어 맞아. 우리 쪽에서 잡힌 계좌의 주인은…… 세이지 자산운용이었어. 그쪽 계좌와 선물이 같이 동시에 변동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거의 확실해 보여.”

“세이지라고…….”

사람들은 이번 일의 주인공이 세이지 자산운용이라는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소문은 주인공을 확정하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퍼져나가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주식 몇 군데도 돌려보죠.”

한진영은 박도하와 김준하와 함께하는 미팅 자리에서 계획을 확장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주식에도요? 그럼 지금 프로그램을 돌리는 곳이 우리라는 것이 확정될 텐데요?”

“네. 그러라고 주식에서도 돌리라는 겁니다.”

“그러라고요?”

박도하고 모르겠다는 듯이 김준하를 돌아봤지만 모르기는 김준하도 마찬가지였다.

김준하는 박도하의 시선에 고개를 젓고는 한진영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듯이 한진영을 향해 턱짓했다.

박도하는 그런 김준하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왜 우리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시는 건지…….”

한진영은 궁금해하는 박도하를 향해 친절히 설명했다.

“물건을 팔려면 파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줘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게 단순히 옵션과 선물과 같은 파생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물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아무래도 가치가 더 오르지 않겠습니까?”

“아~ 정말 그러겠네요.”

“삼선전자부터 시작하시죠. 삼선전자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거래대금이 높은 종목이니 돌리기 가장 좋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삼선전자하고 유동성이 풍부한 곳 몇 군데 정해서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박도하가 알겠다는 듯이 대답하자 한진영은 두 사람에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수익은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가 지금 하려는 것은 잘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니까요.”

한진영은 슬슬 쇼케이스의 온도를 높여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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