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16화 (216/650)

216화 시연회 때 보고 판단하라

한참을 한진영을 띄워 주는 이야기를 하던 오찬종은 곁에 앉아있는 남부증권 부회장의 눈치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보다 열대여섯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사람에게 너무 과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 오찬종은 얼굴을 붉히며 겨우 본론을 꺼냈다.

“남부증권이 한 대표님을 뵙기를 원하는 이유는…… 그…… 자동매매 프로그램…… 그…….”

“HFT 프로그램 말씀하시는 겁니까?”

“HFT요?”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진 오찬종이었다.

한진영은 오찬종이 고개를 갸웃하자 친절히 설명했다.

“하이 프리퀀시 트레이딩의 약자로 그냥 HFT라고 부르고는 합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초단타 매매 뭐 그쯤으로 이야기하면 되겠네요.”

“아~ 초단타 매매. 썩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오찬종과 남부증권 부회장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초단타라는 말에 자기들이 봤던 게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자기들끼리 즐거워하는 남부증권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문제요? 문제없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급히 양손을 들어 흔든 오찬종은 급히 다음 말을 꺼냈다.

“너무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한진영은 오찬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니까요. 외국에서는 쓰는 곳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꽤 됩니다.”

“그걸 국내에 적극 도입하신 거군요.”

“네. 그렇죠.”

한진영이 웃으면서 그렇다고 하자 오찬종이 무릎을 치며 한진영을 추켜세웠다.

“역시 젊으셔서 그런지 해외문물을 도입하는데 탁월하십니다. 저희 같은 사람은 그게 뭔지도 모르고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데 말입니다. 사실 이번에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사람도 아닌 기계가 이렇게 매매를 잘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한진영은 70% 승률로 낮추고 속도를 줄이고 나서야 사람들이 알아챘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러나 이런 것을 모르는 오찬종을 그러고도 또다시 한참이나 한진영을 추켜세웠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고 난 뒤에 드디어 오늘 이 자리에 온 진짜 이유를 넌지시 꺼냈다.

“그래서 그런데 저희도 그 프로그램을 써보고 싶습니다.”

“쓰고 싶으시다고요?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부회장님. 쓰고 싶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명확히 이야기해달라는 한진영의 말에 부회장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크흠. 그게…… 오 실장의 표현이 부족했나 보군요. 그럼 제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저희에게 파십시오.”

“팔라고요?”

“네. 듣기로는 그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권한을 저희에게 넘기십시오. 남부증권에서 후하게 값을 치러드리겠습니다.”

한진영은 부회장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제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을 하려고 오신 거군요.”

오찬종이 가만히 한진영의 표정을 살피다 급히 끼어들었다.

“언뜻 들으니 파실 의향이 있다고 하던데 저희가 제대로 들은 건가요?”

“누가 그러던가요?”

“기풍증권의…… 이 사장님께 들었습니다.”

“거참. 그 친구가 못 하는 말이 없네요.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와 대화 중에 무심코 나온 말이니 이 사장님을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십시오. 이 사장님도 말씀하고 싶어 하신 게 아니니까요.”

“이해합니다. 여기저기서 말을 듣느라 골치 아파하다가 아마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피곤하다고 하기는 했거든요.”

“네. 실수입니다. 실수.”

한진영이 웃으며 실수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것도 한진영이 의도한 것이었다.

적극적으로 그들이 나서게 하기 위해서는 한진영이 물건을 팔지도 모른다는 뜻을 그들에게 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얇게 웃은 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들으신 대로 팔 생각이 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왜 팔려고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유를 묻는 부회장의 말에 한진영이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대답했다.

“사실 한계를 느꼈습니다. 더 개선하기에는 아무래도 능력이 되지 못해서요.”

“이해합니다. 기풍증권 때와 달리 지금은 챙겨야 할 것이 많을 테니까요.”

“네.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지금은 그게 아니라도 할 게 너무 많아서 버거운 상태입니다.”

오찬종이 이런 한진영의 말에 의문을 던졌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인력 몇 명만 붙여도 될 텐데요.”

한진영은 의심을 거두지 않는 남부증권의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더는 속일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하자고 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남부증권의 두 사람은 솔직한 듯 나오는 한진영의 모습에 조금은 마음을 푸는 모습을 보였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에게 앞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다른 것에 더 집중하려 합니다.”

“다른 것이요?”

“네. 모델을 수치화하여 수식으로 시장에 접근하려 하는 게 저와 우리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게 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부회장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오찬종이 급히 부회장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무래도 오찬종은 필드에서 직접 뛰다 보니 한진영의 말을 이해한 듯했다.

부회장은 오찬종에게 한참을 설명 듣고 나서야 한진영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됐다.

“그걸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해외에서도 매우 소수만이 하는 작업을요?”

“네. 그걸 해볼 생각으로 나온 겁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자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없이 사람을 뽑고 자원을 채워 넣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오 실장님은 아시겠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통계 분야는 물론이고 물리학과 같은 기초분야의 박사급 인재들이 수두룩하게 필요한 일이니까요.”

“네. 알고 있습니다. 거의 연구소급으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요. 그리고 그렇게 모은 사람으로도 성공을 자신하지 못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걸 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사람도 사람이지만 돈이…….”

오찬종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물단지와도 같은 물건을 왜 팔려고 하는지 이해가 됐던 오찬종과 부회장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이제 제일 중요한 말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저는 싸게 팔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인기가 크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중이고요.”

“설마 저희 말고도…….”

“오늘만 남부증권이 아홉 번째 손님이십니다.”

“아홉…… 번째요?”

예상보다 경쟁자 숫자가 많은 것에 부회장은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그는 오찬종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찬종은 부회장이 보낸 신호에 아랫입술을 질끈 문 뒤 입을 열었다.

“돈이 중요하다니 그럼 저희가 생각해온 가격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50억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흐음~”

한진영은 가격을 들은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찬종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가격을 올렸다.

“혹시 작다고 느껴지신다면 저희는 60억까지도 생각한 상태입니다.”

한진영은 오찬종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한진영은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남부증권의 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웬만하면 국내에 팔고 싶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희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른 곳이 있나요? 어디인가요? 말씀해주시면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맞추고 말고 할…… 에이. 어차피 이건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니 그냥 허심탄회하게 가격을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들으시고 판단은 남부증권에서 하십시오.”

“네.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다른 곳이 얼마를 불렀는지 이야기해주십시오. 듣고 판단하겠습니다.”

입이 바짝 말라오는지 부회장은 앞에 놓인 찻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한진영은 그런 부회장을 바라보고 가격을 이야기했다.

“외국계 증권사에서 100억을 불렀습니다.”

“100억이요?”

부회장은 찻물을 뿜어낼 뻔했는지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되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부회장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것도 두 곳에서 100억을 제시했고 다른 곳은 90억을 이야기하더군요.”

“100억은…….”

부회장은 오찬종을 돌아보고 고개를 저었다.

60억이라는 금액도 오찬종이 사정을 해서 허락을 받아 가지고 온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거의 두 배 가까이 웃도는 가격에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었다.

오찬종은 부회장의 신호를 모르는 척했다.

금액이 밀릴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차이라면 해볼 만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40억 차이면 좁힐 수 있어.’

오찬종은 마음을 다잡고 한진영에게 다시 부탁하려 했다.

정 안되면 여기서 1~20억을 추가하는 한이 있더라도 잡아야만 하다는 것이 오찬종의 판단이었다.

“대표님. 저희가 비록…….”

“실장님. 제 말씀 먼저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막 이야기를 꺼내 한진영에게 부탁하려던 오찬종은 갑작스럽게 말을 막는 한진영의 모습에 입을 닫고 말았다.

한진영은 그런 오찬종과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의 부회장을 번갈아 바라보고 말했다.

“지금 저희 프로그램을 사시겠다는 분도 많으신 것 같고…… 저도 누구를 택해야 할지 모를 정도라서 시연회를 할 생각입니다.”

“시연회요?”

“네. 보시고 판단하도록 하십시오. 사실 지금은 간접적으로 저희 HFT 프로그램이 매매하는 것을 느끼기만 한 것일 뿐이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 것인지 메커니즘도 파악이 안 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면 저희가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보고 가격을 생각하는 게 좋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웬만하면 국내 증권사에 팔고 싶은 사람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럼 시연회는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길게 끌 필요 뭐 있나요? 다음 주에 할 계획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저희도 그때까지 내부에서 논의를 거친 후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네.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아닐 것 같으면 거절하셔도 되고요.”

한진영은 부회장을 향해 마지막 말을 건넸다.

부회장은 자기가 노골적으로 별로인 것 같다는 것을 밖으로 들어냈다는 사실에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그럼 그때 보자는 말을 남기고 세이지 자산운용을 떠났다.

“이봐. 오 실장. 가격이 너무 비싸.”

“아닙니다. 부회장님. 저는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이건 물건입니다.”

밖에 나온 오찬종과 부회장이 잠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왜 그렇게 확신해?”

“저희 말고도 여덟 곳이 관심을 보였다는 건 우리만 본 게 아니라는 겁니다. 거기다 더해 외국계 증권사 두 곳에서는 100억을 제시했다고 하고요.”

“아무리 그래도 무슨 프로그램을 100억을 주고 사나? 너무 비싸.”

“투자전략실에서 파악한 바로 세이지 자산운용이 하루에 벌어들인 수익이 4~5억으로 예측되었습니다. 100억. 20일이면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게다가 자본금을 높이면 20일도 걸리지 않고요. 이건…… 남는 장사입니다.”

오찬종의 말에 부회장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100억이라는 돈은 클지 몰라도 하루에 4~5억을 번다는 수익 금액을 놓고 보자면 절대 비싼 가격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오찬종은 흔들리는 부회장을 향해 다시 한번 자기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분명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겁니다.”

“개선의 여지?”

“네.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 가능성 말입니다. 분명 그럴 겁니다. 세이지 자산운용에 가봐서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100여 명도 안 되는 직원 중에 그 프로그램에 전담된 인원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분명 뛰어난 직원 몇 명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게 전부일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만 온다면……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흐음~ 좋아. 자네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니 나도 구미가 당기기는 하네. 내가 들어가서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금액을 증액해줄 테니까 시연회 때 잘 보고 판단하도록 해.”

“부회장님.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건 진짜 물건입니다.”

오찬종은 자신 있게 부회장에게 이야기했다.

***

시연회를 위해 국내와 국외의 증권 관련 회사 열다섯 곳이 세이지 자산운용에 찾아왔다.

시연회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프로그램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 곳까지 더한다면 HFT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인 곳은 스무 곳을 넘겼다.

그야말로 HFT 프로그램은 증권업계에서는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었다.

“피곤해. 피곤해.”

조수아는 탕비실에 숨어있었다.

얼굴이라도 보이면 자기에게 무슨 일을 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거라도 드실래요?”

조수아는 쿠키를 내미는 김준하를 돌아봤다.

“고마워요.”

조수아는 김준하가 내민 쿠키를 집어 들고 한입 베어 먹은 뒤 김준하에게 물었다.

“저야 여기 숨어 있는 게 편하다지만 김 팀장님은 왜 여기 계시는 거예요?”

“저도 조 과장님하고 같아서요.”

“저하고 같다고요? 저하고 어떻게 같아요. 김 팀장님은 저 프로그램을 만든 핵심이잖아요. 그럼 가서 인사라도 해야죠. 와서 구경하는 사람들 명단 보니까 쟁쟁한 사람들이던데요.”

김준하는 조수아의 말을 흘려들으며 쿠키와 음료수를 먹기만 했다.

조수아는 그런 김준하에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어서 나가보세요. 가서…….”

“저 자꾸 나가라고 하시면 여기 조 과장님 계시다고 대표님께 이야기할 거예요. 안 그래도 대표님이 조 과장님 찾으시던데…….”

“쿠키 더 드실래요? 여기 더 있는데…….”

조수아는 집에 싸가려고 숨겨놓았던 쿠키를 김준하에게 내어줬다.

김준하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한 후 밖을 몰래 쳐다봤다.

사무실에는 약 서른 명의 사람들이 모여 프로그램의 시연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환희와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모두 홀려버렸네요.”

김준하는 쿠키를 입에 넣은 채로 재미있다는 듯이 바깥 풍경을 즐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