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확실한 카드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를 꿈꾼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시선에 멋쩍게 웃고는 말했다.
“1,500억에 합쳐서 2,000억이면 뭐 나쁘지 않을 거야. 그것만으로도 사실 우리가 운용하는 금액의 1/5이 너희 쪽으로 넘어가는 거니까.”
“돈은 지금 중요하지 않고…….”
한진영은 팔짱을 낀 채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이성우를 빤히 바라보고는 말했다.
“내가 나오니까 네 동생이 노골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걸 막기 어려운가 보네.”
“괜찮아. 신경 안 써도 돼.”
“신경을 어떻게 안 써? 내가 너 기풍철강의 꼭대기에 올려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웃었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 말 들으니까 자신감이 팍팍 생긴다.”
“사장님 그렇게만 볼 건 아닙니다.”
최준호는 기왕 이렇게 이야기가 나왔으니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 있으면 지금 좀 내놓는 게 좋을 것 같다. 회사 분위기가 마냥 좋은 건 아니야.”
웃고 있는 이성우와 달리 최준호는 한진영을 향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기풍철강 내에서도 줄서기에 들어간 모습이야.”
“제가 회사를 나간 이후 판이 흔들렸나 보네요.”
“맞아. 그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판이 흔들렸어. 그래서 지금 다들 어디에 줄을 서야 하는지 눈치를 엄청나게 보고 있다. 게다가 이유정 본부장님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 회사에 사람까지 꽂아 넣어버렸고…… 그러게 내가 그렇게 우리 쪽 인사를 넣어놔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최준호가 답답하다는 듯이 이성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성우도 최준호가 이야기한 것이 아쉬웠다는 듯이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그러게요. 이럴 줄 알았다면 최 본부장님이 사내이사로 올라가는 편이 나았을 텐데 말입니다.”
“누가 됐건 우리 사람을 올렸어야 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회장님도 그냥 수수방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이 본부장에게 더 힘이 실릴 겁니다.”
한진영은 최준호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입을 열었다.
“무슨 상황인지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이유정 본부장이 이대로 성우를 내버려 둘 수 없다고 판단했나 보군요.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기풍철강에 본부장으로 앉아있는 이유정 본부장의 힘이 더 강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이성우와 최준호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파악한 한진영이었다.
최준호는 그런 한진영을 향해 기대가 담긴 눈으로 물었다.
“역시 한 대표가 정확하게 보고 있네. 뭐 방법이 없을까?”
“단순하게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단순하게?”
한진영의 다음 말이 궁금했는지 이성우까지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와 최준호를 향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유정 본부장을 기풍철강에서 쫓아내지 않는 한 영향력은 이유정 본부장이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성우가 기풍증권의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기풍철강에게는 본부 급도 되지 못하니까요.”
“그럼 내가 기풍철강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쫓아낼 수 없으니 내가 들어가는 거로…….”
이성우의 말에 최준호가 손뼉을 쳤다.
“그래. 그거 좋겠네. 그거로 하자.”
최준호는 자기도 모르게 이성우를 향해 반말을 하고 말았다.
사장 자리로 이성우가 올라간 이후 최대한 조심을 하던 모습을 잊을 만큼 지금 이성우의 말에 크게 반응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금 상황에서 성우가 기풍철강에 들어가는 것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기풍철강은 저쪽에게는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니까요. 게다가 회장님도 지금 방관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거기에 들어가는 것은 죽여달라고 목을 들이미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그거 말고 방법이 있어?”
최준호가 답답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저쪽은 이미 이사진들을 꼽아놓기 시작했어. 기풍철강은 이미 저쪽 손에 들어가 있는 상태고 여기까지 손을 미치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렇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죠.”
한진영은 팔짱을 풀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선수를 놓친 상황에서 일을 복잡하게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가자고 말씀드린 것이지요.”
“단순한 방법이 뭐가 있는데?”
당사자인 이성우보다 더욱 애가 타는 모습을 보인 최준호였다.
최준호는 한진영을 따라 본사에 온 이후 함께 승승장구하며 이성우에게 미래를 맡겼다.
한진영과 이성우라면 기풍증권의 임원 자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함께 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희망이 암초를 만나 좌초될 위기를 겪는 중이었다.
최준호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쪽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으면 저쪽을 쪼개 놓으면 됩니다.”
“저쪽을 쪼갠다고? 저쪽이라면…… 기풍철강을?”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성우를 돌아봤다.
“이유정 본부장이 앉아 있는 대궐 같은 집에 칼과 창이 꽂혀있어 들어가지 못하겠다면 대궐 같은 집을 초가집으로 만들면 될 일이야.”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무릎을 쳤다.
“계열분리?”
한진영은 이성우가 아주 바보가 아니라는 것에 만족하며 웃었다.
“그래. 계열분리. 어차피 하려던 일이었어. 그걸 하면 자연스럽게 이유정 본부장의 영향력도 줄어들 거다.”
“그럼 나는?”
“너는 반대로 힘을 키워야지. 그렇게만 된다면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게 될 거다.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이 무언가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가 힘을 키운다면 입지가 줄어든 유정이와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어떻게 힘을 키우는데?”
“힘은 곧 돈이지. 너 재산이 얼마나 있냐? 네 이름으로 된 모든 것 다 포함해서…… 주머니에 있는 돈까지 숨기지 말고 다 말해봐.”
한진영의 말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이성우가 떠듬거리는 말로 이야기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있어봤자 뭐 얼마 안 될 것 같은데…… 기풍철강 지분이야 의미 있는 숫자가 아니고 예금도…… 한 3~4억? 할아버지가 땅을 물려준 게 좀 있는데 대부분 임야라 돈이 되지는 못할 거야.”
“그 정도면 됐다.”
“그 정도면 됐다고?”
“그래. 쓸 곳 임야라도 물건이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이성우는 한진영이 하려고 하는 게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최준호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돈이 중요하다면서 돈으로서 값어치를 하지 못할 땅 이야기에 그거로 됐다는 게 도대체 무얼 하려고 하는지 감도 잡을 수 없었던 최준호였다.
한진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두 사람에게 자기 계획을 이야기했다.
“기풍철강은 언제고 계열분리를 해야 했어. 그게 회장님의 오랜 숙원이고 꿈이었지. 그건 나와 회장님 그리고 너도 있는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니까 기억하고 있을 거야.”
“어. 그건 기억하고 있어.”
“그래. 그렇게 계열분리가 이루어져 지주사로 전환된다면 결국 지주사 지분을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느냐로 판가름이 나.”
“그것도 이해해. 그거로 아버지는 승계 문제까지도 해결하려고 하시는 거잖아.”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면 지주사의 지분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저 위의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질까?”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구나? 지분 확보를 위해 현금을 들고 지주사 전환에 참여해야 해서 말이야.”
최준호가 한진영의 말에 맞장구치고 들어가자 한진영이 최준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죠. 3자 배정 유증을 하든지 아니면 지분 취득을 하든지 돈은 꼭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조금 전 이야기한 대로 나는 돈이 없는데?”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이 이번에는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돈이야 만들면 되지.”
“만든다고 어떻게?”
이성우와 최준호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1,500억에 대한 운용권을 위임한다는 내용이 적힌 계약서 위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기풍철강의 아들이자 기풍증권의 사장이라는 네 이름과 팔리지 않는 임야로 대출을 땡겨라.”
그럴듯한 기발한 계획이 나올 줄 알았던 최준호와 이성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출이라도 받으라는 말이야? 대출을 받으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래. 뭐 그걸 감수한다고 해도 그렇게 나온 돈으로 유의미한 지분을 획득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무리 내 이름값으로 대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20~30억이 전부일 텐데?”
“20~30억이면 충분해.”
“그 정도 돈으로 충분하다고?”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 돈으로 CFD에 참여하면 된다.”
“CFD? CFD가 뭔데?”
이성우가 최준호를 돌아보자 최준호가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CFD? 차액거래결제를 말하는 건가? 실제 보유하지 않고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을 이용한 차익을 목적으로 매매하는 그 장외파생상품?”
“바로 알아들으시네요.”
“그거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되나?”
한진영은 고개를 갸웃하는 최준호를 보고 웃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식으로 운용하는 곳이 없지요. 한다는 곳은 모두 불법적으로 운용해서 금감원에 두드려 맞기 일쑤고요.”
“그래. 그거 금융위원회의 인가 없이 시행했다고 단속당하기 일쑤잖아. 그런데 그걸 세이지 자산운용이 하겠다고? 인가를 받을 수 있어? 아니. 그전에 그거 레버리지가 10배라는 말이 있던데 인가가 나오기는 하는 거냐?”
“저희가 하겠다고 하면 인가가 나오지 않겠지요. 하지만 저희가 어디와 업무협약을 맺었는지를 생각하면 제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큰 소리로 말했다.
“실버만삭스? 아~ 실버만삭스에서 하고 있는 CFD 서비스를 대행하면 굳이 인가를 받지 않고도 서비스할 수 있겠다.”
“네. 게다가 좋은 점은 미국은 레버리지가 20배를 넘길 수도 있다는 것이죠.”
잘됐다고 생각하던 최준호는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의문을 품은 채 한진영에게 물었다.
“20배까지 레버리지를 키울 수 있다고 쳐도…… 어디에 투자할 생각인데?”
한진영이 최준호의 말에 대답 없이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성우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할 수 없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붉게 상기 된 것이 자리에 최준호만 없었어도 한가득 이야기를 쏟아냈을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바라본 채 말했다.
“제가 어디에 투자할지는 성우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때? 내 생각이?”
“좋아. 아주 좋아.”
이성우는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20배의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해서 돈을 번다면 지분 참여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이성우는 오히려 지금이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는 생각마저 하는 중이었다.
“기회는 딱 한 번뿐이야. 아직 우리나라에 뿌리내리지 않고, 시행하는 곳이 없어 우회로 20배 레버리지가 가능한 거야.”
앞으로 몇 년 뒤에 CFD가 정식으로 시행되며 금감원이 2.5배로 레버리지를 묶어 놓는다는 것을 한진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레버리지를 키워 작업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돈을 벌게 되면 좋든 싫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게 분명했다.
세금 문제와 경영인으로서 양심의 문제까지 들먹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하지 않는 편이 이득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기회가 있을 때 상황을 역전해야 했고, 지금은 역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한진영이 손에 넣은 상태였다.
이성우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이 무엇인지 깨닫고 각오가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성우를 향해 계속 주의사항을 이야기했다.
“이번 한 번으로 최대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빌려 와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 네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박박 긁어 돈 가지고 와. 이번 기회로 일발 역전을 해야 하니까.”
“그래. 걱정하지 마.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니까.”
한진영은 다시 한번 이성우에게 마음 단단히 먹고 투자 뒤에 벌어질 압박을 견디라는 말도 건넨 뒤 자리를 떠났다.
조지훈은 도대체 어디에 투자할 거냐는 최준호의 질문을 웃기만 하는 이성우를 슬쩍 돌아본 뒤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대표님.”
“어?”
조지훈은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혹시 헤지펀드도 구상하고 계시는 겁니까?”
한진영은 곁에서 따라서 걷는 조지훈을 바라보고 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이 사장님께 투자를 받는 게 특이해서요. 그동안 개인 투자보다는 기업 투자를 유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특이한 일인가?”
한진영은 질문하고 있지만 웃고 있는 것이 마치 조지훈을 시험하는 얼굴인 것만 같았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을 향해 자기가 느낀 생각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다.
“회사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개인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과 개인의 유치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요. 무언가 사람들에게 어필할만한 것이 필요했고…….”
“그래 맞아. 성우가 우리를 통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를 바라고 있어.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헤지펀드로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되는 거지. 우리가 특별히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말이야.”
회사를 한 단계씩 성장시키기 위해서 한진영은 개인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생각을 펼칠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확실한 카드를 손에 쥐고 있으니 과감하게 20배 레버리지를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유가 폭락.
한진영은 이번 일을 통해 여러 가지를 꿈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