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29화 (229/650)

229화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는지는 곧 알게 된다

티비에서는 얼마 전 있었던 OPEC 회의에 관해 이야기로 토론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진행자는 자리한 사람들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뜻밖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우디 석유장관은 원유가격의 상승으로 전세계가 인플레 위협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증산을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행자의 질문에 제일 먼저 경제 전문가로 유명한 연구소 연구원이 대답했다.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면서부터 이에 대한 예상이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습니다. 시기가 언제인지가 중요했을 뿐이지 사실 증산 여부는 예정된 수순으로 여겼었지요. 하지만 100만 배럴 증산이 아닌 150만 배럴 증산은 좀 뜻밖이었습니다. 그만큼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흘러간다는 뜻이겠지요.

-급박하다고요?

-네. 원유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OPEC 회원국은 본 것입니다.

-지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경제가 순항하고 있다는 뜻으로 봐도 될까요?

-기본적으로 원유 수요 증가는 경제의 호황과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으니 진행자분의 예상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진행자는 또 다른 전문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교수님이 보시기에는 이번 결정으로 유가가 잡힐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OPEC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는 소식과 회의의 주제가 증산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며 120달러에서 115달러 부근까지 밀려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하락이 일시적인 하락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시적이다? 그렇다면 상승세는 계속된다고 예상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한번 불붙은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쉽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대 원자재 가격의 폭등 사이클 속에서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졌지만 잡지 못했다는 것이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진행자는 전문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장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상승할 것으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는 역대 최상단 가격인 150달러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50달러…… 무시무시한데요. 이제 부자만이 차를 끌고 다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말씀입니다. 큰일 났네요. 저도 이제 대중교통을 적극 이용해야겠습니다.

진행자는 가볍게 농담을 건네고 마지막 자리에 앉아있는 최석영을 돌아봤다.

-최석영 차장님. 차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티비를 바라보던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저 양반은 공중파인데도 떨지도 않네. 하여튼 심장 튼튼한 거는 알아줘야 해.”

“대표님께서 최 차장님을 화면으로 보면 다를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진짜로 그렇네요. 사무실에서 보던 최 차장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 모아 놓으면 얼마나 대단하다고. 너도 조만간 보게 될 테니까 기대해.”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가볍게 말하고는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조금 전 한말을 떠올리고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 힘든 자리가 될 거라고 하셨는데…… 잘하실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저 양반이라서 참석 제의를 받아들이라고 한 거야.”

한진영은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오늘은 욕을 많이 먹겠지.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야. 누가 맞고 누가 틀리는지. 그리고 이런 자리에서 그 맞고 틀림이 명확해진다면…… 우리 명성이 한층 더 높아지지 않겠어? 그걸 알고 받아들이라고 한 거야. 그리고 최 차장님이라면 한번 경험했던 것이 있어서 잘할 거로 생각했고…….”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으시다고요?”

“그래.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다른 사람들이 다 무시하는 자리가 처음이 아니야.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으니까 믿고 나가라고 한 거지. 아니면 나가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어?”

화면 속의 최석영은 진행자의 질문을 받아 차분한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르다고요? 어떻게 다르다는 말씀이신가요?

-저는 이번 싸움을 석유 시장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보고 있습니다.

-헤게모니 싸움이요? 어디와 어디가 싸우고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기존 석유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과 새롭게 부상하는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미국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동과 러시아가 한편을 먹어 미국과 싸우고 있다고요?

진행자가 슬쩍 눈치를 보며 자리에 있는 다른 전문가들을 바라봤다.

다른 전문가들은 대학에 자리하고 있는 교수와 중동 관련 학자 그리고 경제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정부관료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최석영의 말에 비웃음과 같은 모습을 보이며 최석영의 말에 반박했다.

-최석영 차장님은 잘 모르시나 본데 중동국가와 미국이 싸울 일은 없습니다. 중동의 가장 큰 우방 국가가 미국이며 미국의 든든한 조력자가 바로 사우디, 쿠웨이트와 같은 OPEC 회원국입니다.

중동 전문가의 말에 대학교수가 말을 덧붙였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가격이 오르는 것을 증산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증산 양도 OPEC에서 찬물을 끼얹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하기 때문에 헤게모니 싸움으로까지 번지지 않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헤게모니 싸움이라니…… 중동과 미국이 석유 패권을 놓고 싸운다는 말입니까? 이 무슨 해괴한 주장인지 모르겠군요. 저는 토론 자리라고 해서 기대하고 왔는데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경제관료 출신 전문가의 말에 진행자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인신공격으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는 이야기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석영은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자기주장을 펼쳤다.

-미국에서 한창 활발하게 벌어지는 산업이 있습니다. 바로 셰일 산업이지요. 여기서 뽑아 올린 오일과 가스 등은 엄청난 속도로 산업 전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중동 국가들이 미국의 셰일 산업을 흔들기 위해 증산을 결정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셰일 산업은…….

-그러니까 지금 최 차장님의 말씀은 중동이 미국에게 싸움을 걸었다고요?

-러시아도 함께 포함하여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러시아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큰 산업은 바로 가스와 석유입니다. 그걸 미국이 압박하기 위해…….

-하하.

최석영의 말에 더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맞은 편에 앉아있는 세 사람은 동시에 최석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됐습니다. 그만 말씀하시지요.

-저는 아직 다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더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진행자님. 방송을 시청하는 많은 국민 여러분께 혼란을 줄 이야기는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끊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더 들을 필요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헤게모니 싸움? 하하하. 살다 살다 별 이야기를 다 듣는군요.

진행자는 최석영을 제외한 모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같은 반응을 보이자 곤란한 표정으로 최석영을 돌아봤다.

-최 차장님께서도 의견이 있으실 겁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최 차장님의 생각을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마지막이라는 말에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최석영을 더는 막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말을 막는 것은 학계와 관료사회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자기들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석영은 마치 관용이라도 베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을 향해 차분히 이야기했다.

-120달러를 하향이탈한 유가는 앞으로도 계속 하락을 이어갈 것입니다. OPEC에서 증산을 이번으로 마무리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번의 증산은 긴급소집에 의한 증산이었습니다. 2주 뒤 예정되어있는 정례회의에서 또 한차례의 증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허허.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 같군.

-2주 만에 또 증산한다고 생각하다니 철부지도 아니고…….

최석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꺼냈다.

혼잣말과 같은 이야기였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인지 알 것만 같은 말투였다.

그러나 최석영은 이런 노골적인 무시에도 주눅이 드는 모습 없이 계속 이야기했다.

-첫 번째 증산에 긴가민가하던 시장은 두 번째 증산을 통해 알게 될 겁니다. 확실히 셰일 산업을 죽이겠다는 OPEC의 태도를 말입니다. 1차 목표가는 100달러 하향이탈이 첫 번째 목표가 될 겁니다.

-허허. 제정신이 아니군.

120달러를 돌파할 때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이 주장했던 것이 바로 100달러의 회귀는 더는 없다는 것이었다.

화폐가치의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생각했을 때 현재 유가 100달러는 30년 전 30달러일 때와 마찬가지라는 주장이었다.

최석영의 말이 끝나자 최석영의 밑에 커다란 글자로 세이지 자산운용이라는 글자가 떴다.

조지훈은 회사 이름을 보며 한진영에게 슬쩍 말했다.

“방송사에 소속명을 크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는 했는데…… 너무 크게 했네요.”

화면의 1/4은 띄워놓은 듯한 최석영의 회사 이름에 조지훈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런 조지훈과 달리 한진영은 만족하는 미소를 띄웠다.

“잘됐다. 방송사 놈들이 최 차장님의 의견이 자기들의 의견이 아니라는 뜻을 보이기 위해 우리 회사명을 크게 띄운 것 같은데 덕분에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는 할 것 같으니 오히려 우리로서는 잘 된 일이야.”

한진영은 세이지 자산운용이라는 회사 이름 밑에 최석영의 의견은 개인의 의견일 뿐 투자에 참고하지 말라는 글까지 뜨는 것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

OPEC의 증산 결정 이후 유가의 상승세는 눈에 띄게 꺾여 버렸다.

중간중간 상승을 위한 발버둥과 같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건 아시아 시장 혹은 유럽장의 초반부에나 해당하는 일이었다.

본 장이 시작되면서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하락세를 이어갔다.

115달러를 찍은 유가는 110달러 초반대까지 미끄러져 내려갔다.

150만 배럴 증산의 효과가 톡톡히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하락세와 함께 한풀 꺾인 기운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승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미국에 이어 중국 쪽에서 보여주는 원유 소비량 상승세가 꾸준히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장은 또 한 번의 증산만 있지 않는다면 한풀 꺾인 기세가 다시 살아나 120달러를 재차 뚫어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망상이었음이 밝혀지고 말았다.

[OPEC 정례회의에서 100만 배럴 증산 결정]

[2주 전 150만 배럴 증산에 이어 이번에 100만 배럴 증산을 결정함으로써 총 250만 배럴 증산이 결정됨]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사흘 전부터 30만 배럴을 증산하여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고 발표]

[증산이 한두 번 더 이어질 수 있다는 발표에 시장 급락]

[크루드오일 선물 110달러 하향 이탈]

[전 거래대비 -7% 하락 유지 중. 시장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100달러까지 후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

뉴스는 전날 있었던 OPEC 회의 결과에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결과에 시장이 극렬하게 반응했다.

“100달러 지지선도 뚫렸습니다.”

“현재 차월물 또한 100달러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차차월물을 비롯한 유가 선물 시장에 매도세가 급격하게 몰리고 있습니다. 매수세가 실종된 것으로 보아 하락은 점점 더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진영은 속속들이 들어오는 보고에 조지훈을 돌아보고 물었다.

“현재 파생팀의 수익이 어떻게 돼?”

조지훈은 들고 있는 패드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파생 관련 수익은 현재 800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조롭네.”

“주식운용 파트도 말씀드릴까요?”

“아니야. 그건 길게 보고 갈 거니까 그냥 잡고 리스크 관리나 하라고 해. 그것보다…….”

한진영이 조지훈을 돌아보고 이성우의 돈이 들어간 CFD 계좌에 대해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 세이지 자산운용으로 이성우가 들이닥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조지훈에게 말했다.

“됐다. 직접 주인이 나서서 이야기해주러 왔네.”

한진영이 말을 마쳤을 때 이성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대표.”

한진영이 고개를 돌려 찾아오는 이성우를 바라보고 대답했다.

“왜? 너는 바쁘지도 않냐? 왜 업무시간에 여기에 왔어?”

“바빠. 바쁘니까 여기 온 거야. 지훈아. 안녕?”

이성우는 조지훈에게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둘이 친해졌나 보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원래 친했어. 지훈아. 내가 추천해준 게임 어때? 괜찮지?”

“아. 네. 재미있었습니다.”

“그래. 괜찮다니까. 그리고 시간 되면 우리 집에 놀러 와 듀오로 같이 게임 좀 돌리자. 점수 올리는 데는 듀오가 좋아.”

생각보다 더 친한 두 사람의 모습에 한진영은 어처구니없어했다.

“뭐야? 게임 이야기하려고 왔어?”

“얘 질투한다. 지훈아 조금 이따가 이야기하자. 내가 새로 배워온 전략이 있는데 그거 알려줄게. 기똥차.”

이성우는 조지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쉽다는 표현을 전한 후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야. 그 크루드오일 뭔 펀드?”

이성우가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한진영이 고개를 흔들고 실버만삭스를 통해 들어간 종목명을 대신 이야기했다.

“크루도오일 3X 인버스. 실버만삭스에서 연락 왔냐?”

“어. 연락 왔다.”

이성우가 잠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3.9달러.”

“하하하. 얼마라고?”

“조용히 해.”

한진영이 큰소리로 웃자 이성우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급히 한진영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살피며 낮은 목소리 말했다.

“3.9라고 3.9. 이런 젠장. 이게 무슨 일이냐? 단번에 2배 됐어. 겨우 60억으로 1,200억을 벌었단 말이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정신이 없다.”

이성우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손까지 들어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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