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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31화 (231/650)

231화 예측범위를 이미 벗어나 버리고 말았다

낙관적이기만 하던 유가에 대한 시각이 점차 바뀌었다.

OPEC의 증산 결정은 수요량의 증가 때문이라고 애써 위로하던 이들도 점차 입을 다물고 지금의 유가 하락에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100달러가 깨졌지만, 하락은 여전히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엑손 모빌을 비롯한 정유사들이 올해 생산량 조절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점차 시장에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하락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조만간 다수의 의견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재미있네. 확실히 인간은 흐름을 타기를 좋아하는 존재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빠질 일은 없다더니 지금은 너도나도 아래를 보기 바쁘니 말이야.”

유가 하락이 가속화에 다다르자 세계 정유사들도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긴장의 모습은 국내 정유사라고 하여 다를 것이 없었다.

보고를 마친 조지훈이 들고 있던 태블릿의 덮개를 덮은 뒤 말했다.

“대표님. 대한정유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을 슬쩍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시간이 괜찮으시면 윤길영 회장님께서 회사로 한번 놀러 와주십사 하신다고 전했습니다.”

서류를 내려다보던 한진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놀러 와 달라고 했다고? 언제 연락 온 거지?”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에 받은 연락입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보고 맨 뒤에 넣어 첨언처럼 전한 조지훈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놀러 오라고 했다는 말에 가장 크게 반응하고 있었다.

한진영은 보고 있던 것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려있는 외투를 들고는 조지훈을 향해 지시했다.

“차 대기시켜.”

“차요? 어딜 가시려고 하십니까?”

“놀러 오라니 놀러 가야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어서 가자.”

“기다리고 계시다고요? 대한정유의 윤길영 회장님께서 말이십니까?”

“그래. 아마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나한테 놀러 오라고 말한 뒤에 왜 반응이 없나 하고 지금쯤 초조해하고 있을걸?”

조지훈은 자기가 말을 잘못 전한 게 아니냐는 생각에 한진영을 향해 비서실에서 받은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전했다.

“대표님. 대한정유의 비서실에서는 놀러 오시라고 말한 겁니다. 찾아뵙기를 청한 것이 아니라요.”

“그래. 잘못 듣지 않았어. 대한정유에서 시간 있으면 놀러 오라고 한 거 아니야?”

한진영은 조지훈 쪽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하고 치며 말했다.

“그래서 나도 지금 놀러 가는 거야. 그러니 어서 차 대기시켜. 여기서 더 늦으면 그 양반 피가 말라 쓰러질지도 모르니까.”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이상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더는 계속 묻지 않았다.

이 정도 이야기했는데도 놀러 가는 거라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한진영이 잘못 알아듣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지훈이 차를 가지고 나오자 한진영이 차에 올라탔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차에 타자마자 대한정유의 본사가 있는 마포로 차를 몰며 룸미러를 통해 한진영에게 말했다.

“차를 가지고 나오며 대한정유에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깜박하고 회장님이 자리에 계신지 확인하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확인하고 움직일까요?”

“그럴 필요 없어. 오늘은 어느 때 가도 만나 뵐 수 있었을 테니까. 우리가 어서 가는 게 회장님을 도와주는 일이야.”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대한정유 본사에 도착했을 때 한진영이 말한 도와주는 일이라는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차가 도착하자마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방우열 미래전략실 실장이 한진영이 타고 온 차 문을 열어주며 한진영을 향해 인사했다.

대한정유 직원들은 이런 방우열의 모습에 크게 놀라는 중이었다.

미래전략실 실장이자 부회장인 방우열은 실질적인 대한정유의 이인자였다.

그런 그가 차 문까지 열어주며 반가워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이었다.

차에서 내린 한진영은 방우열에게 간단하게 인사했다.

“부회장님께서 직접 나와 계신 겁니까? 저는 회장님께서 놀러 오라고 하셔서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온 건데 말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한 대표님께서 오셨는데 제가 마중 나와야지요. 어서 가시지요. 회장님께서 목 빠지라 기다리고 계십니다.”

방우열이 한진영을 재촉하듯이 떠밀었다.

한진영은 그런 방우열의 안내에 발걸음을 옮겨 대한정유 안으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시라고 해.”

누가 찾아왔는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사무실 안에서 윤길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서는 문을 열어준 뒤 한진영에게 들어갈 것을 권했다.

한진영이 가볍게 비서를 향해 고개 인사를 한 후 안으로 들어가자 윤길영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어서 오시게. 어서 와.”

어느 때보다 더 반갑게 반겨주는 윤길영의 모습에 한진영도 마주 반가운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셨습니까? 안 그래도 조만간 찾아뵈려고 했는데 이렇게 오늘 오게 됐습니다. 회장님께서 놀러 오라고 하셔서요.”

“그래. 오늘 만나건 내일 만나건 그게 뭐 그렇게 큰 차이가 있겠나? 이렇게 서로 얼굴 보면 되는 거지. 자 앉게 앉아.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윤길영이 한진영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을 것을 권한 후 비서에게 차를 내올 것을 지시했다.

한진영이 윤길영의 왼편에 앉자 맞은 편에 방우열 부회장이 소파에 앉았다.

윤길영은 방우열을 슬쩍 흘겨본 후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그래. 요즘 하는 일은 어떤가? 듣기에는 꽤 재미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네. 마침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회장님께서 투자금에 꽤 많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논의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논의? 무슨 논의?”

윤길영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한진영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수익금에 대한 논의 말입니다. 정산하여 배당이 나오게 되면 그 배당금을 재투자하실 생각이신지 아니면 받아 가시길 원하시는지 마침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라서요.”

한진영의 말을 듣자 더욱 윤길영이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투자한 지 뭐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배당 이야기를 해? 내가 알고 있기에는 세이지도 분기 보고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네. 맞습니다. 저희도 분기마다 보고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윤길영이 한진영의 입을 바라봤다.

다음 말이 그의 흥미를 끌어당길 만한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진영의 다음 말은 윤길영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간 정산에 들어가야 할 만큼 큰 수익을 얻어서 분기까지 갈 것 없이 지금 한번 보고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뭐 얼마나 이득을 봤기에 중간 정산까지 한다는 말인가?”

“수수료를 제하고 현재 대한정유가 얻은 수익은 20%입니다.”

“뭐?”

윤길영은 크게 놀란 얼굴로 한진영에게 되물었다.

“20%라고? 그것도 세이지에 내야 하는 수수료를 제하고 순수하게 내 손에 쥔 이득이?”

“네. 맞습니다. 아시다시피 총수익의 30%는 저희가 떼어 갑니다. 그렇게 떼어가고 여러 가지 수수료도 제한 뒤에 순수하게 얻는 순수익이 20%를 넘겼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정리라면 뭘 정리한다는 이야기지?”

“재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배당을 받아가실 것인지 정리를 하셔야지요. 200억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니까요.”

윤길영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방우열을 돌아봤다.

그들이 처음 세이지에 투자하기로 결정했을 때 내부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었다.

1,000억이라는 돈을 섣불리 신생 자산운용사에 투자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을 가진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세이지에 투자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일개 자산운용사에 투자하는 데 1,000억이라는 자금은 너무나 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투자금을 줄이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세이지 자산운용에 200억 대의 투자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단호했다.

1,000억 이하의 유치는 하지 않는 것이 기준이라며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로 오히려 대한정유의 제안을 단칼에 잘라내고 말았다.

눈먼 돈 한 푼이라도 끌어오려는 신생 자산운용사가 보일 수 없는 태도를 한진영이 보인 것이었다.

이 모습에 투자를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높은 콧대를 자랑하는 세이지 자산운용과 한진영에게 굳이 1,000억이라는 투자금을 안겨줄 필요가 없다며 투자를 철회하는 것이 낫다는 뜻으로 이사회의 의견이 좁혀졌다.

그때 윤길영 회장이 나서서 이사회를 설득했다.

직접 한진영의 곁에서 그가 보인 행동들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한진영과는 좋은 관계를 맺어놓아야 한다는 것이 윤길영 회장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만약 1,000억의 투자금이 손실처리 되게 된다면 자기도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윤길영은 한진영을 믿었고 한진영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대한정유를 위해서도 나은 길이라는 판단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자기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이 지금 증명되고 있었다.

윤길영은 한진영을 향해 자기가 부른 이유도 잊은 채 세이지 자산운용의 성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벌써 20%의 수익을 올린 건가? 설마 자네 폰지 사기 뭐 그런 건 아니지?”

터무니없는 수익률에 놀란 건지 윤길영은 폰지 사기까지 의심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진영은 그런 윤길영의 모습을 보고 이해한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폰지 사기의 핵심은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해서 그 돈으로 기존 가입자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인데……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는 투자자를 골라 받고 있으며 지금은 투자자 유치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 알지. 알아서 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데…… 수익률이 너무 높지 않나? 내가 이런 의심을 한 걸 자네가 이해해야 해. 상식선을 까맣게 넘어선 수준이라서 그런 의심을 한 거니까 말이야.”

“이해합니다. 이해하니까 이렇게 회장님 곁에 앉아있는 거지요.”

한진영은 가볍게 웃으며 방우열을 슬쩍 돌아본 뒤 이야기했다.

“뭐 지금 자리가 어떻게 제가 수익을 올렸는지와도 관계가 있는 것이니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왜 한진영을 불렀는지 이야기하지 않았건만 한진영은 지금 자기를 부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윤길영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였다.

자기가 제대로 사람을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시장에서 단기간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회장님께서 저를 부르신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지 않습니까?”

“그래 그것 때문에 왔으면 해서 말을 전한 건데…… 설마 정말로 유가 하락에 베팅한 건가?”

“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방송. 회장님도 보셨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이 가만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봤네. 봤어. 최 차장이 나온 방송 말하는 거지?”

“네. 그 방송 말입니다. 그 방송에 왜 최 차장이 나와 그런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이미 그 전에 우리는 포지션을 잡아놓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잡은 건가?”

“120달러에서 잡았습니다.”

“후우~”

정수리도 모자라 그 끝에 솟아나 있는 여드름 자리에 잡았다는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그러니 이런 수익을 들고 날 찾아왔겠지. 이제 이해했네. 그런데…….”

윤길영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치켜뜨고는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서는 섭섭함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왜 말해주지 않은 건가?”

“무얼 말입니까?”

“그 자리에서 유가가 하락한다고 말이야.”

“회장님.”

한진영은 무릎에 팔꿈치를 기대고 윤길영 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말했다.

“그 자리에서 제가 100달러가 깨지고 90달러가 깨지며 80, 70달러 줄줄이 깨져 나간다고 말하면 제 말을 들으셨겠습니까?”

“뭐? 90, 80, 70달러까지 모두 깨진다고?”

윤길영의 놀란 모습에 한진영은 기울였던 몸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방우열을 돌아봤을 때 방우열의 눈빛은 한진영의 말에 마치 희망을 얻은 듯이 빛나기 시작했다.

한진영은 그런 방우열을 향해 이야기했다.

“아마 두 분께서 저를 부른 이유는 90달러 선이 깨질지 궁금하여 부른 것일 겁니다. 대한정유 내부에서도 전략팀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그렇지요?”

방우열을 향해 건넨 질문에 방우열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부끄럽게도 저희 미래전략실에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희의 판단입니다. 이미 100달러 선이 깨지는 순간 예측범위를 벗어나 버린 상태입니다.”

“그게 현실일 겁니다. 대한정유만이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다른 곳들도 모두 같은 상황일 겁니다. 방 부회장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방우열이 고개 숙여 진심으로 한진영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한진영은 방우열의 표정으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착잡함과 함께 차라리 한진영이 충격적인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100달러가 깨진 지금 하락을 멈추고 상승으로 돌아설 겁니다’ 같은 말을 방우열이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폭락에 폭락을 거듭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 방우열이었다.

누구도 손 쓸 수 없는 충격의 향연.

방우열은 그걸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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