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유가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사업에 진출하라
정유사는 분기별로 1~2불까지는 아니더라도 10불 안에서 예측을 해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사업 계획을 세울 수 있으며 원자재의 수급량을 결정할 수 있었다.
원자재 가격에 따라 이익이 천차만별로 벌어지는 업계의 특성상 가격 예측이 사업의 성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측범위를 벗어나고 말았다.
100달러가 깨지지 않을 거로 예측한 것을 벗어나 90달러 중반대까지 밀려난 모습에 대한정유의 미래전략실은 두 손을 들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먼저 윤길영 회장을 찾아와 세이지 자산운용의 한진영에게 유가의 흐름을 물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세이지 자산운용의 최석영 차장이 방송에 나와 헤게모니 싸움을 예측한 사실은 이미 업계에서는 유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윤길영은 그런 미래전략실의 판단이 한편으로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유가의 폭락을 정확하게 감지해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윤길영은 한진영이라면 지금의 상황도 예상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윤길영 회장은 섭섭한 마음을 잠시 접어뒀다.
한진영의 말대로 그 상황에서는 한진영이 아니라 그 누가 하락을 이야기했더라도 안 믿을만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가 않았다.
지나간 상황보다는 앞으로의 상황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윤길영은 차분한 모습으로 한진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결론이 뭔가? 하락은 계속된다는 이야기인가?”
“먼저 저희 쪽부터 결정을 해주시지요?”
“어떤 거? 펀드 말인가? 재투자. 재투자하겠네.”
“재투자하시겠다고요?”
“그래. 뭐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배당을 받으면 뭐 하나? 그 돈이 꼭 있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그냥 묻고 가. 그것보다 어서 빨리 이야기해 보게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윤길영은 이제 됐으니 어서 유가 이야기나 해보라는 식으로 손을 들어 까닥였다.
한진영은 그런 윤길영을 보고 살며시 웃었다.
한진영이 이곳에 온 이유 중 하나가 대한정유의 투자금을 재투자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한진영과 세이지 자산운용의 운신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쉽게 재투자를 결정한 윤길영이었다.
그에게는 재투자보다 유가의 향방이 더 중요한 듯 보였다.
한진영은 원하는 목표를 하나 완성했기에 윤길영에게도 원하는 것 하나를 들어주기 위해 입을 천천히 열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원유 수입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십시오.”
“소극적 대응?”
“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원유만 수입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뜻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 자네 말이 그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 말인가?”
80달러, 70달러를 운운하던 한진영의 말을 떠올린 윤길영이었다.
윤길영은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는 느낌에 방우열을 돌아봤다.
방우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단순하게 얼마까지는 열어놓는 것이 좋다는 정도가 아니라 수입 자체를 자제하라는 듯한 한진영의 말이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표정이 굳어있는 그들에게 더욱 놀랄만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앞으로 길면 1년 짧아도 반년 동안의 지루한 하락장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소 70달러 언더, 심각하게 빠져 내려간다면 50달러 이하를 볼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어디까지 빠져 내려갈지 알고 있는 한진영이었지만 모호한 말로 두리뭉실하게 목표가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런 두리뭉실한 가격이 오히려 윤길영과 방우열을 놀라게 했다.
“최소…… 70달러 언더라고?”
“최대 50달러 이하까지 보고 있단 말입니까?”
윤길영과 방우열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쳤다.
70달러 언더면 고점 대비 반 토막이 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원자재 가격이 반토막이 원웨이로 펼쳐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최대 50달러 언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원자재 시장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윤길영은 몇 년 전 서브프라임 사태 때가 떠올랐다.
“한 대표. 지금 그럼 몇 년 전에 있었던 그 일이 또 일어난다는 이야기인가?”
“아닙니다. 그때는 그야말로 짧은 시간에 직각으로 빠져 내려온 것이지만…… 지금은 은근히 눌러 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게 더 괴로운 거야. 은근히 누르는 거.”
윤길영은 상상만으로도 괴로운지 이야기를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방우열은 그런 윤길영을 대신해서 한진영에게 말했다.
“한 대표님. 너무 시장을 과하게 안 좋게 보고 계신 것 아닌가요? 70달러 언더도 그렇고…… 50달러 언더는…… 이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대입니다. 아무리 헤게모니 싸움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된다면 중동 국가들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버틸 수 있습니다. 첫 번째니까요.”
한진영은 말을 하고 슬며시 웃었다.
두 번째는 버티지 못하고 OPEC 회원국들조차 살려달라는 비명을 질러댔다는 것을 한진영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첫 번째였다.
첫 번째는 다들 경험이 없었기에 무모할 수 있었으며, 처음 진행하는 일이었기에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었다.
OPEC 회원국들도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셰일 업체들을 고사시키는 것에 모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바로 첫 번째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불가능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 첫 번째에서 벌어지는 것을 지난 시절을 통해 이미 경험한 상태였다.
한진영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윤길영 회장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 최소한의 물량만을 받아 진행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괜히 여유분을 두고 수입했다가는 내려간 가격에 괜히 가슴치고 후회할지 모르니까요.”
윤길영 회장은 한진영의 말에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의 말대로 70달러가 무너지고 50달러 언더를 보게 된다면 대한정유가 받을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윤길영의 표정을 보고 이제 이곳에 찾아온 두 번째 이유를 진행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진영은 복잡한 심경의 윤길영 회장에서 시선을 돌려 방우열 미래전략실 실장을 바라봤다.
윤길영보다는 그래도 방우열이 조금은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에게 앞으로 대한정유가 가야 할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빠져 내려간 유가는 쉽게 회복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진행도 지루하게 이어질 게 분명하고요. 아시겠지만 헤게모니 싸움은 쉽게 결판이 나지 않으니까요. 이런 지루하고 이런 지저분한 싸움은 결국 중간에 끼어있는 대한정유와 같은 곳만 피해를 보게 만들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방우열은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생각해도 한진영이 이야기하는 상황이 가장 그럴듯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한 대표님의 말씀을 듣고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해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쉽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요.”
“맞습니다.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낮지요. 그리고 지금 사태가 해결된다고 하여도…… 또다시 이런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양측이 모두 살아있다면 말입니다.”
다른 곳을 보면서도 한진영의 말에 귀를 세우고 있던 윤길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알고 있는 것을 보니 해결책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한진영은 말끝을 흐리며 자기를 찬찬히 살피는 윤길영을 향해 가만히 웃기만 했다.
윤길영은 그런 한진영의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알고 있구먼그래.”
“안다기보다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새로운 방향? 어떤 방향을 말하는 건가?”
“앞으로 대한정유가 나아갈 방향 말입니다. 언제까지나 국제 유가의 요동치는 가격에 일희일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에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리고 몸을 슬쩍 틀어 한진영을 향해 마주 앉은 채 물었다.
“자네가 지금 와 있는 이곳의 회사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러는 것은 아닐 테고…… 자세히 이야기해보게.”
한진영은 윤길영을 설득한다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
의지와 달리 시시각각 변하는 해외 시장을 바라보고 제발 안정되기만을 바라는 수동적인 자세는 윤길영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싫어할만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심리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한진영이 제안하기에는 최적의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한진영은 윤길영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이미 하려고 하시는 일을 조금 더 빨리 진행하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하려는 일?”
“네. 2차 전지 배터리 사업 말입니다.”
“흐음~”
윤길영이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방우열로 시선을 옮겼다.
이미 내부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친 상태였지만 본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지는 않고 있었다.
그걸 한진영이 이야기하자 윤길영이 신음을 내뱉은 것이었다.
방우열은 윤길영의 신음이 무얼 말하는지 깨닫고 윤길영을 대신하여 한진영에게 말했다.
“한 대표님. 2차 전지 배터리 사업은 저희가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자금확보를 위해 지분매각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고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수요처가 보이지 않아 지금 지지부진한 상태 아닙니까?”
“맞습니다.”
방우열은 모든 것을 알고 이야기를 꺼낸듯한 한진영의 모습에 설명하는 것을 멈췄다.
한진영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계획 없이 꺼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어쩌면 막혀있는 2차 전지 배터리 사업의 숨통을 틔워 줄 만한 아이디어를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방우열이었다.
그리고 이런 방우열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 한진영의 말을 통해 증명됐다.
“최근에 해외 전기자동차 회사에서 문의가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정확히는 납품의뢰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방우열이 놀랐다는 표정을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회사를 제가 관심 있게 보고 있었으니까요.”
“그 회사를요? 정말이십니까?”
“네. 정말입니다.”
“아니. 왜 관심 있게 보신 겁니까? 그 회사는…… 내일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입니다. 진심으로 관심 있게 보고 계셨다는 것 맞습니까?”
유가가 70달러 선을 하회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였다.
방우열도 직접 만나기보다는 보고를 받은 뒤에 알게 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윤길영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방우열에게 고개를 돌려 무슨 이야기냐는 표정으로 방우열을 바라봤다.
“별거 아닙니다. 미국의 모회사가 저희가 2차 전지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납품을 부탁하기 위해 찾아왔었습니다.”
“왜 나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지?”
방우열은 윤길영이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급히 이유를 설명했다.
“너무 소규모라 특별히 보고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넘어갔던 이야기입니다.”
“소규모? 얼마나 소규모이길래 누락이 됐어?”
자기 회사 사람도 아닌 한진영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윤길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방우열은 그런 윤길영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대답했다.
“월 100대 분량의 자동차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목표라서 확정적으로 몇 대가 생산될지는 자기네들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뭐? 월 100대?”
방우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윤길영이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자동차라지만 월 100대 생산이라면 윤길영이 신경 쓸 단위가 아니었다.
게다가 대한정유의 사이즈 상으로 이런 류의 거래는 하지 않느니만 못했다.
만나준 것만으로도 용하다 싶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의 이야기와 배터리 사업을 함께 이야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윤길영은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월 100대에 그것도 확답할 수 없다는 곳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건가? 지금 자네가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곳이 이곳이 맞아?”
“네. 맞습니다. 테라. 이번에 나스닥에 상장된 전기자동차 회사 아닙니까?”
“테라 맞아?”
윤길영의 질문에 방우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서로 다른 곳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답을 받자 윤길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혹시 이곳에 무엇이 있는 건가?”
“전기차 시장을 선두에서 이끌어갈 만한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과 함께한다면 다른 자동차 회사와도 협력하기 쉬워질 겁니다. 아무래도 선두업체와 함께한다는 건 그만큼 큰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일이니까요.”
한진영은 아직 긴가민가한 모습의 두 사람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회사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절 믿고 누구도 함께하려 하지 않는 회사와 손을 잡으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위아래로 출렁이는 유가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사업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한진영은 잠시 말을 멈춘 뒤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뒤 입을 열었다.
바로 두 곳을 묶으며 자기가 얻을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한정유 눈에 테라라는 회사가 믿음직스럽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섣불리 투자를 진행할 수도 없을 테고요. 지분매각까지 하면서 배터리사업을 육성하여 엄한 회사와 손을 잡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제안?”
“네. 지분매각 하지 마십시오.”
“지분매각을 하지 말라니 그럼 투자금은 어디서 구하나?”
“저희가 대겠습니다. 3,000억. 세이지 자산운용이 파트너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2차, 3차 투자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렇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유가가 50달러가 되건 200달러가 되건 흔들리지 않는 사업을 손에 쥐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투자자를 유치해서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윤길영과 방우열의 마음이 기울어져 갔다.
본인들의 자금이 아닌 투자금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기에 위험부담도 적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라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이 한진영이라는 것에 윤길영과 방우열은 이건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윤길영과 방우열은 말로 내뱉지만 않았을 뿐 하겠다는 뜻이 얼굴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